2011년 3월호

CEO의 image 전략

대중과 소통하라!

  • 송홍근|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carrot@donga.com

    입력2011-02-23 16: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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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EO의 image 전략
    북한 주민이 언론을 통해 접하는 김정일의 3남 김정은의 이미지는 정치적으로 계산·연출해 촬영한 것이다. 북한 선전당국은 올해 스물여덟인 김정은에게 젊은 시절 김일성 이미지를 덧씌우고 있다.

    “행동, 표정이 압권이다. 박수치는 모습을 보라.”

    이주연 리더스커뮤니케이션 대표는 “북한이 PI를 굉장히 잘하고 있다” “최고의 팀이 붙은 것 같다”고 했다. 그는 대기업 최고경영자(CEO)의 PI(President Identity)를 컨설팅해왔으며, 2012년 대선주자 중 한 명의 이미지 전략을 돕고 있다.

    “유능한 전문가 집단이 김정은에게 베스트 솔루션을 제공하는 것으로 보인다. PI 교과서를 보는 듯하다.”

    독재정권을 넘겨받든, 국가를 경영하든, 글로벌 기업을 운영하든, 동네에서 장사를 하든, 실체뿐 아니라 이미지도 신경 써야 한다.



    이명박 대통령은 가늘고 작은 눈을 보완하고 지적 이미지를 연출하고자 선이 부드러운 스퀘어 타입 안경을 쓴다. 해외출장 때 드는 브리프케이스는 비즈니스 감각을 갖췄다는 인상을 준다.

    이 대표는 “눈매가 날카로운 분에게는 안경을 씌운다. 대통령이 PI 담당자 주문을 잘 따르는 것 같다”고 했다.

    표정, 말투, 옷차림, 소품은 PI의 일부일 뿐이다.

    대통령정무수석비서관실은 2월 초순 PI와 관련한 보고서를 이 대통령에게 제출했다. 여론조사 지지율과 밑바닥 민심이 어긋나는 까닭을 찾고자 심리분석 연구용역을 발주했고, 결과가 1월 나왔다.

    성장과 개발을 위해 애쓰는 리더라는 긍정적 이미지와 함께 우리, 그들로 나뉜 사회에서 그들을 위해 일하는 전문경영인, 7급 공무원처럼 보이는 대통령, 서민을 위하는 척한다 같은 부정적 이미지도 보고서에 담겼다고 한다.

    북한과 같은 독재국가는 권력자가 원하는 것만 대중에게 전달할 수 있다. 민주국가는 다르다. 본질이 담기지 않은 연출은 역효과를 낸다. 대통령 신년 방송 좌담회(2월1일)가 질타받은 까닭이다.

    PR(Public Relations) 전문가인 이종혁 광운대 교수는 대중에게 긍정적 이미지를 전달하려면 무엇보다도 소통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긍정적 이미지를 원하면 대중과 소통하라는 것이다.

    “겉으로 드러나는 이미지를 바꾸고, 그것을 언론을 통해 노출하는 게 PI라고 생각하는 건 착각이다. 소통 중심, 메시지 중심, 본질 중심으로 옮겨가고 있다.”

    바짓가랑이를 걷고 빨래하거나, 시장에서 떡볶이를 사 먹는 모습이 언론에 실린다고 이미지가 바뀌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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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 박용만 두산 회장이 함께 찍어 트위터에 올린 사진



    핵심요소 → 필수요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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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주연 리더스커뮤니케이션 대표

    용어를 정리하고 넘어가자. 기업 이미지 즉 기업 정체성을 CI(Corporate Identity)라고 부른다. SK그룹의 행복날개처럼 이미지를 통합·관리해 브랜드 가치를 높이는 걸 이미지 통합이라고 한다. PI는 CEO, 리더의 이미지를 가리킨다. PI도 CI처럼 전략적으로 관리·운용하는데, 한국기업의 PI전략은 아직 농익지 않았다는 평가다.

    스티브 잡스, 빌 게이츠를 떠올려보자. 애플, MS의 CI는 이들의 PI와 통합돼 있다. 2월11일 잡스가 재입원했다는 소문이 나돌면서 4분 만에 애플 주가가 355달러에서 349달러로 급락했다. 순식간에 100억달러(11조원)가 증발한 것. 소비자, 주주는 애플과 잡스를 한 묶음으로 여긴다.

    “잡스가 프레젠테이션 때 입는 빛바랜 청바지, 검정색 터틀넥 셔츠, 흰색 운동화는 열정·창조·색다름이라는 애플의 아이덴티티와 일치한다. 은색 무테 프레임 안경은 날카로운 눈매를 보완하면서 진보적인 이미지를 준다. 대중은 애플 제품을 구입하면서 잡스의 이미지를 함께 소비한다. 1970~80년대 CI라는 개념이 들어왔을 때 기업들은 의아해했다. 제품만 잘 만들면 그만이지, 쓸데없는 곳에 뭣 하러 돈을 퍼붓느냐는 거였다. 지금 CI는 브랜드 제고 정책에서 으뜸이다. 선진국에선 PI도 마찬가지인데, 한국기업들은 PI에 서투르다. CEO 이미지가 좋아야 그 기업이 만든 제품에 호감을 갖는다. PI전략을 잘못 짜면 CEO리스크가 닥쳤을 때 관리에도 애를 먹는다.”(이주연 대표)

    GS그룹의 CEO가 누구더라? 대한항공 하면 떠오르는 CEO는? 한국 기업에서 PI전략은 홍보라인 임원이 수립하고 팀원이 실무 작업을 한다. 이 과정에서 PI를 전문으로 하는 컨설턴트에게서 진단·코칭을 받는다.

    글로벌 시장에선 CEO에 초점을 맞춘 마케팅 바람이 거세다. PI는 기업 가치에도 영향을 미친다. 소셜 미디어로 불리는 트위터, 페이스북은 이집트혁명의 동력 중 하나로 꼽힌다. 이렇듯 미디어 환경이 변모하고, 소통 방식이 다채로워지면서 PI전략도 바뀌고 있다.

    “CEO의 소통능력, 이미지가 기업을 살리기도, 죽이기도 한다. 기업·조직은 상징적 자본(symbolic capital)이 필요했다. 좋은 평판·이미지가 그것이다. CI를 강조한 것은 상징적 자본을 갖추기 위해서였다. 지금은 기업·조직에 상징적 자본을 넘어 사회적 자본(social capital)을 요구한다. 과거엔 PI가 미흡하더라도 다른 요소로 대체가 가능했다. 대중과 소통하는 CEO의 능력이 과거에 여러 핵심요소 중 하나였다면, 지금은 없어서는 안 되는 필수요소다.”(이종혁 교수)

    bad case

    나쁜 사례(bad case)로 지목되는 게 한화그룹 김승연 회장이다.

    시곗바늘을 2006년 11월로 되돌려보자. 한화그룹은 ‘한화 트라이서클(TRIcircle)’이라는 새 CI를 공개했다. CI 개편을 통해 화약 냄새를 벗고 동적인 브랜드 이미지를 구축하고자 했다. CI 개발은 ‘프라다’ ‘에스티로더’ 브랜드 디자인으로 유명한 카림 라시드에게 의뢰했다. 이듬해 3월 김승연 회장이 보복 폭행 사건에 연루되면서 막대한 예산을 투입한 CI 개편이 발목을 잡혔다. 한화그룹이 그간 PI 관리를 잘못해온데다 위기관리도 투박했다. 김 회장이 남대문경찰서에 출두하던 날 한화그룹은 ‘김승연 회장의 인간적 면모’라는 제목이 붙은 보도자료를 냈다. “김승연 회장의 부정(父情)은 이 시대 사라진 아버지의 사랑을 다시 일으켜 세우는 일화가 아닌가 생각한다”는 문구가 불에 기름을 부었다. PI 전문가들은 위기 때는 납작 엎드리라고 가르친다. 2007년 9월11일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항소심 선고 공판 때의 연출도 해서는 안 될 사례다. 김 회장은 수염을 깎지 않은 얼굴로 휠체어에 앉았다. 환자복을 입고 흰색 운동화를 신었다.

    1월12일 이호진 태광그룹 회장의 모친 이선애 태광산업 상무도 구급차를 타고 서울서부지검에 도착한 후 침대에 누워 검찰청사 안으로 들어갔다. 몸과 얼굴은 패딩 점퍼와 마스크로 감췄다. 검찰은 이날 ‘재벌 오너와 휠체어’라는 제목의 보도자료를 냈다. 2006년 정몽구 현대기아차 회장, 2007년 김승연 회장을 꼬집는 기사를 스캔한 것이었다. “한국 재벌 총수들은 곤란한 일이 생기면 휠체어를 탄다”고 영국 ‘파이낸셜타임스’가 비꼰 적이 있다.(2007년 9월12일자) 휠체어 출두의 원조 격은 한보그룹 정태수 전 회장이다.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 박연차 전 태광실업 회장도 휠체어를 활용했다.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도 X파일 수사가 한창일 때 휠체어를 탔다. 정치인들도 이따금 휠체어를 사용한다. 2004년 현대그룹 비자금 사건 때 박지원 민주당 원내대표가 대표적이다.

    를 보자. 동정심을 불러일으키기는 커녕 반감을 산다. 휠체어 콘셉트는 하책 중 하책이라고 전문가들은 꼬집는다. ‘회장님’들과 함께 기업 이미지도 휠체어에 앉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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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향기 나는 남자

    재벌총수가 아니더라도 퍼스널 아이덴티티(PI·Personal Identity) 관리는 중요하다.

    집단생활을 하는 동물들도 이미지 관리를 한다. 쿠데타를 준비하는 상위계급 침팬지는 우군을 늘리고자 하위계급 침팬지의 털을 골라준다. 암컷들과 소통하고 새끼들과 잘 놀아준 수컷이 권력투쟁에서 승리할 가능성이 높다.(프랜스 드 발·동물행동학자)

    그렇다면 어떻게 접근해야 할까? 이주연 대표의 견해부터 들어보자. 그는 프랑스에서 PI컨설팅을 하다 5년 전 귀국했다.

    ▼ PI가 왜 중요한가.

    “CEO의 이미지가 매출로 이어지는 시대다. 스티브 잡스를 봐라. 한국 기업의 PI 역량은 미흡하다. CEO를 다룬 부정적 보도를 막는 데 치우쳐 있다. 소셜 미디어가 활성화하면서 이젠 숨기는 것도 쉽지 않다. 알릴 걸 알리고, 피할 걸 피하면서 전략적으로 CEO를 홍보하는 게 PI다. 옷차림을 바꾸고, 매너 화술을 익히는 게 PI라고 오해하는 곳도 있다. 홍보라인에선 오너의 목에 방울을 달기 어렵다. 이미지가 나쁘니 이렇게 바꾸자고 조언하기 어려운 분위기다. 그래서 외부의 컨설팅, 코칭을 받는 것이다. 거의 모든 기업이 PI의 중요성을 인지하고 있다.”

    ▼ 구체적으로 어떻게 조언하나.

    “클라이언트의 본질을 파악하는 게 먼저다. CEO를 상대로 서베이를 진행한다. 스왑 분석을 통해 장단점을 찾은 뒤 장점을 강화하고, 단점을 보완하게끔 돕는다. 기업의 이미지, 성격과도 PI를 맞춰야 한다. 예컨대 토속적인 제품을 생산하는 분이 명품 이미지를 가져선 안 된다. 전략을 수립한 뒤, 그에 맞춰 이미지를 구축해가는 것이다. 우리가 컨설팅한 모 전자회사 전문경영인은 이화여대에서 강연하면서 분위기를 부드럽게 한다고 상스러운 말을 하더라. 이런 부분도 지적해 고치도록 한다. 옷차림, 행동언어와 관련해서도 조언한다. 좋은 이미지를 구축하려면 대중과 라포(신뢰, 친근감으로 이뤄진 인간관계)를 형성해야 한다. 대중은 잘 모르는 사람에겐 높은 점수를 주지 않는다. 내 편으로 여기지 않는다. 김치를 담그고, 연탄을 나르게 하는 건 대중이 친밀감을 느끼게 하기 위해서다.”

    ▼ 호감을 주는 능력은 타고나는 것 아닌가. 후천적으로 획득이 가능한가.

    “그렇다. 타고나는 부분이 많다. 한계가 분명히 있다. PI는 무에서 유를 만드는 게 아니다. 촌스러운 용모는 따듯함으로 어필할 수 있다. 사람이 가진 본질을 호감으로 바꾸는 게 PI다.”

    ▼ 현대차그룹 정몽구 회장이 20~30대 소비자를 겨냥한 쿨한 이미지를 가질 수 있나. 이미지를 단기간에 바꾸는 게 가능한가.

    “그렇지 않다. 이미지는 걸어온 인생에서 풍겨 나오는 향기 같은 거다. 정몽구 회장이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처럼 될 수는 없다. 기존 이미지를 소비자에게 어필할 수 있는 호감으로 연출해내는 게 PI다. 내가 정 회장을 컨설팅한다면, 투박한 걸 더 드러내는 쪽으로 전략을 짤 것이다.”

    ▼ 인지도가 높은데, 홍보할 필요가 있나.

    “서베이를 해보면 대부분의 CEO가 ‘나는 충분히 알려져 있다’거나 ‘직원들과 충분히 소통한다’고 착각하고 있다. 정치인도 마찬가지다. CEO의 사소한 행동, 말 한마디가 일파만파를 일으킨다. 과거처럼 언론 보도만 막으면 되는 시대가 끝났다. PI전략은 리스크 매니지먼트이기도 하다. 악재가 생겼을 때 평소 이미지에 따라 극복 능력이 달라진다. 마약, 대마초 사건으로 구설에 오른 연예인 가운데 어떤 사람은 복귀하고, 어떤 사람은 사라지지 않는가. 평소에 쌓아놓은 특정 이미지가 위기가 발생했을 때 극복에 도움을 준다. 같은 잘못을 저지르더라도 친근감을 느끼는 사람에게는 관대하다.”

    ▼ CEO들이 조언을 잘 따르나.

    “CEO들을 만나면서 느끼는 게 하기 싫은 일도 해야 그런 자리에 오르는구나 하는 것이다. 스피치, 손동작 같은 것도 적극적으로 배운다. 녹화해서 비포/애프터 영상을 보여주면 본인도 바꿔야겠다고 여긴다. 스티브 잡스는 패션언어, 행동언어로 한바탕 쇼를 벌인다. 이건희 회장을 보라. CEO가 던지는 메시지는 무게가 다르다. CEO가 화두를 던지는 일을 돕고, 메시지를 가다듬는 것도 PI 컨설턴트와 홍보조직이 해야 할 주요한 역할이다.”

    ▼ 홍보담당 임원들의 마인드는 어떤가.

    “적극적으로 홍보하려는 쪽과 사고만 막으려는 쪽으로 나뉜다. 얼마 전 대기업 임원을 상대로 강연했는데, 오너가 트위터로 대중과 직접 소통하는 바람에 조마조마하다는 분들이 있더라. ‘오너가 어디 가서 무슨 사고를 칠지 모르겠다’고 하소연하는 임원도 있었다. 오너의 보이스가 홍보팀의 승인을 받지 않고 대중에게 전달되는 환경을 부담스럽게 여기는 것이다. 대중과의 라포 형성은 소통에서 나온다. 소셜 미디어를 적극적으로 사용하지 않으면 도태하는 시대가 올 것이다.”

    ▼ 제품, 서비스가 훌륭하면 되는 것 아닌가. CEO까지 나부댈 필요가 있을까?

    “패러다임이 바뀌었다. 소셜 미디어가 독재정권도 무너뜨리는 시대다.”

    ▼ 컨설팅을 받은 CEO들의 만족도는 대체로 어떤가.

    “옷차림만 살짝 바꿔도 주변의 피드백이 달라진다. 남자들이 예비군복 입으면 어떻게 되나.”

    ▼ 허기, 잠이 밀려온다.

    “점잖은 사람이 길에 침 뱉고, 욕하고 그런다. 옷차림, 헤어스타일만 바꿔도 행동이 달라진다.”

    ▼ PR을 잘하는 CEO를 꼽으면….

    “정용진 부회장은 똑똑한 분인 것 같다. 박용만 회장은 두산의 이미지까지 바꿔놓았다. 두산은 액티브, 젊은 감각과는 거리가 있었다. CEO 이미지는 직원 채용에도 영향을 미친다. PI가 유능한 인재를 모으는 수단이기도 한 것이다. 현대카드 정태영 사장도 탁월하다. 정 사장은 언론 노출 빈도가 낮은데, 내부에서 소통을 잘해 외부로 호감을 퍼뜨리는 스타일이다. 디자인 감각이 뛰어나고, 미래 비전을 제시하는 CEO로 대중에게 각인돼 있다. 반대로 KT 이석채 회장은 언론 노출 빈도가 높다. 이 회장은 전통적 방식인 언론을 통한 홍보에 일가견이 있다.”

    ▼ 언론을 통한 홍보와 직접 소통은 각각 장단점이 있을 것 같다.

    “직접 소통이 더 중요하다. 대중은 휴대전화 품질이 좋다는 광고보다 옆집 아줌마가 전해준 말을 더 믿는다. 박용만 회장은 옆집 아저씨가 얘기해주듯 트위터 멘션을 날린다. 어떤 CEO는 직원이 트위터를 대신 관리해준다. 대중은 진실이 아니라는 걸 단박에 알아챈다. 보좌진이 멘션을 날리는 정치인도 마찬가지다. 사람들은 세련되지 않더라도 진실을 보길 원한다. 정용진 부회장은 트위터를 통해 대중이 보는 앞에서 특정 의제를 놓고 설전을 벌인다. 갈등, 대립을 고스란히 보여주면서 메시지를 전하는 것이다. 노이즈를 반복해 일으키면서 소동을 대중에게 전염시킨다. 게다가 소비자의 소소한 제언, 개선점도 신세계 매장에 반영한다. 다른 세상에 사는 사람이 아니라 함께 숨 쉬는, 소통이 가능한 사람이라는 걸 보여준 것이다. 언론 노출은 이슈가 있을 때, 메시지를 가지고 접근해야 한다. 봉사활동하는 사진이 신문에 실려봐야 사람들은 연출이라는 걸 다 안다.”

    ▼ 지금 언급한 CEO 중 누가 최고라고 여기는가.

    “클라이언트가 포함돼 있어 언급하기가 적절치 않다.”

    ▼ 신비주의를 고수하는 CEO도 많다.

    “신비주의가 먹혔던 시절이 있다. 배우 전지현처럼 신비주의를 고수하면 신기루처럼 사라질 수 있다. 신비주의는 CEO 리스크가 발생했을 때 매니징하기 어렵다. 소통주의가 대세가 될 것이다. 리더가 스스로 홍보도구가 돼 조직의 이미지를 개선하면 직원들도 리더를 좋아한다. PI는 최소비용으로 최대성과를 거두는 홍보 툴이다. 비가 올 때는 우산, 해가 뜰 때는 양산 노릇을 한다.”

    ▼ 오너 경영인과 전문 경영인의 전략은 달라야 할 것 같다.

    “굉장히 다르다. 연임을 노리는 공기업 CEO와 전문 경영인들도 PI 컨설팅을 많이 받는다. 전문 경영인은 오너보다 튀면 안 된다. 적당한 선에서 넘치지 않게 하는 게 중요하다. 김쌍수 한국전력 사장이 LG전자 사장으로 일할 때 PI를 열심히 했는데, 역효과가 난 케이스다.”

    ▼ 한국에서도 잡스 유의 엔터테이너형 CEO가 늘어날 것으로 보나.

    “메가트렌드가 될 것으로 보인다. 대중의 요구에 맞추려면 소통할 수밖에 없다.”

    CEO의 image 전략
    누렁이와 찰스

    PI를 잘한 CEO는 그 자체로 브랜드 파워다.

    전통적으로 PR을 잘하는 것으로 지목되는 CEO는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다. 그는 고비마다 파장을 일으키는 화두를 던졌다. “마누라 빼고 다 바꿔보자”(1993년) “10년 후 무엇으로 먹고살까를 생각하면 식은땀이 흐른다”(2001년) “천재 1명이 1만명을 먹여 살린다”(2002년)

    CEO의 image 전략
    이 회장은 공항이나 행사장에서 기다리던 기자들과 일문일답을 주고받는 몇 안 되는 재벌총수 중 하나다. 신비주의형이면서도 대중과의 소통을 꺼리지 않는 것이다. 기자들과의 대화는 언론을 통해 대중에 알려진다. 삼성 홍보조직에선 즉석에서 이뤄지는 일문일답을 부담스러워한다고 한다.

    뒷물이 몰아치면 앞물이 밀려나는 법. 스마트로 무장한 오너들이 등장하면서 이건희 회장의 PI 방법도 과거만 못한 것으로 취급받는다.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은 점퍼를 입거나 작업모 차림인 예가 상대적으로 많다.은 현장 경영을 중요시한다는 점을 강조하는 것이다. 을 보면 연출에 따라 이미지가 어떻게 바뀌는지를 알 수 있다.

    구본무 LG그룹 회장은 PR을 잘 못하는 CEO로 분류된다. 현장 방문 때는 비즈니스 캐주얼을 입는 게 눈에 띈다. 허창수 GS그룹 회장은 ‘은둔의 경영자’로 불릴 만큼 대중과의 소통을 꺼린다.

    주요 그룹 가운데 회장이 직접 나서 봉사활동하는 모습을 연출한 건 SK그룹이 처음이다. SK그룹은 젊음, 패기, 사회공헌에 PI 초점을 맞췄다. 앞치마 두르고 연탄 나르는 모습이 CEO와는 어울리지 않는다는 지적이 내부에서 적지 않았다고 한다. 외부 행사 때 인사하는 자세까지 코칭했다고 한다. 전문가들은 최 회장의 변신이 성공적이었다고 평가한다. 앞치마를 두르고 연탄을 나르거나, 자전거를 고치는 모습이 가식으로 느껴지지 않고, 권위적 모습을 탈피한 현대적 오너의 이미지로 다가왔다. 은 최 회장 이미지에 딱 맞는 연출이었던 셈이다. 의 최 회장 얼굴에 다른 오너 CEO 얼굴을 대입해 보자. 어울리는 사람을 찾기 쉽지 않을 것이다.

    특정인을 좋아하느냐, 싫어하느냐에 따라 같은 이미지를 놓고도 호감/비호감이 갈린다고 한다. 호불호에 따라 똑똑함은 재수 없음으로, 화려함은 천박함으로, 따듯함은 촌스러움으로 바뀔 수 있다.

    는 애견전문 미용실 간판이다. ‘누렁이도 찰스로’라는 상호가 앙증맞다. PI 전략에선 누렁이가 찰스가 되려고 노력할 필요가 없다. 누렁이는 누렁이 나름의 매력이 있고, 찰스는 찰스 나름의 매력이 있다. 누렁이는 친근함/촌스러움에서 친근함을 강조하면 되고, 찰스는 세련됨/재수 없음에서 세련됨을 키워주면 된다.

    SK그룹은 누렁이를 누렁이답게 만드는 데 성공한 반면, 한화그룹은 찰스를 누렁이로 만들려다가 역효과를 냈다.

    보복폭행 사건 이후 김승연 회장이 봉사활동하는 사진이 이따금 언론에 실렸다

    “봉사활동하는 사진을 연출해 찍은 뒤 신문에 실으면 CEO 이미지가 호감으로 바뀐다고 생각해선 안 된다.”(이종혁 교수)

    “PI는 이미지를 보완해주는 것이지 바꾸는 게 아니다. 강점은 살리고, 약점은 감춰야 한다. 가식은 안 된다.”(이주연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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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너 중엔 박용만이 1위

    이종혁 교수는 한국PR기업협회와 공동으로 컨설턴트 400명에게 설문지를 보내 ‘2010년 PR을 가장 잘한 CEO’를 조사했다. 정량 분석을 시도한 것이다.

    오너 경영인은 박용만 두산 회장(145포인트), 정용진 신세계 회장(97포인트),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41포인트), 최태원 SK그룹 회장(22포인트)이, 전문경영인은 이석채 KT 회장(140포인트), 정만원 SK그룹 부회장(42포인트), 정준양 포스코 회장(34포인트), 최지성 삼성전자 부회장(30포인트)이 PR을 잘한 CEO로 꼽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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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용만 회장이 오너 그룹에서 1위, 이석채 KT 회장이 전문경영인 그룹에서 1위다. 박용만 회장은 형제의 난 때 실추된 이미지를 PI로 극복했다.

    금호아시아나그룹 박삼구 회장, LG그룹 구본무 회장, 한진그룹 조양호 회장, 롯데그룹 신격호·신동빈 회장이 하위권을 형성했다. 하위권에 위치한 오너들은 대중과의 소통을 꺼리는 CEO라는 공통점이 있다.

    이종혁 교수의 의견을 들어보자.

    “이미지의 시대는 끝났다고 말하고 싶다. 본질에 근거를 두는 소통의 시대다. 소통을 거부한 채 겉으로 드러나는 이미지만 좋게 하려는 노력은 성과를 거두기 어렵다. 진정성은 특정한 상황에서 던지는 메시지에 담긴다. 쟁점이 발생할 때마다 PR 전문가와 협의해 메시지를 전해야 한다. 유능한 커뮤니케이션 참모를 둬야 한다. 옷차림, 헤어스타일, 스피치는 중요한 요소가 아니다. 본질을 보여주되 책임 있는 모습으로 신뢰를 쌓는 게 중요하다.”

    CEO의 image 전략

    이종혁 광운대 교수

    ▼ 직접 소통이 중요하다는 건가.

    “봉사활동하는 사진을 언론에 릴리스해봐야 공중은 무덤덤하거나, 무관심하다. CEO가 직원들과 함께 이웃을 돕는 행사에 참여했는데, 우연히 현장에 있던 사람들의 눈에 띄어 소셜 미디어를 통해 알려지고, 시중에 화제가 된 뒤, 이슈가 된 사실이 뒤늦게 언론에 보도되는 게 낫다. 소프트한 메시지, 사회에 참여하는 모습은 언론에 알리는 것 같은 인위적 요소를 최소화해야 한다. 경성 메시지는 언론을 통해서, 연성 메시지는 자연스럽게 노출해야 한다.”

    ▼ 정용진 부회장 식의 직접 소통은 단점도 많지 않은가.

    “소셜 미디어를 이용한 정 부회장의 소통을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홍보팀은 난감해할지도 모르겠지만. 홍보팀이 해야 할 일을 정 부회장이 단번에 해결해준 예도 있다. 최고경영자와 대중의 직접 소통은 긍정적이다. 조직과 관련한 메시지를 내보낼 때 사전 논의가 부족하다는 점을 단점으로 거론할 수 있다. CEO의 소통을 지원하고, 조율하는 카운슬러가 존재해야 한다.”

    ▼ 전문가로서 판단하기에 PI를 가장 잘하는 CEO는?

    “농담을 섞으면 이름 달고 제품 만든 분들을 꼽고 싶다. 강성원우유, 한경희스팀청소기…. 새로운 관점에서 보면 정용진 부회장을 꼽겠다. 가볍다, 경솔하다는 비판도 있지만 과거의 틀로 보면 파격으로 보일 만큼 소통의 행보를 벌이고 있다. 정 부회장은 사생활 등 가십거리로만 다뤄질 수도 있는 위치에서 신세계, 이마트의 주체로서 명확하게 포지셔닝했다. 논쟁을 마다하지 않고, 과감하고 격의 없이 소통했다. 전통적 관점에선 이석채 KT 회장이 눈에 띈다. 공룡기업, 유선전화, 공기업 냄새를 지우면서 주요 쟁점마다 유기적으로 소통했다. 아이폰 논쟁, 삼성과의 대립에서 뒤로 빠지지 않고 메시지를 전달했다. 언론의 생리를 잘 알아 여유를 갖고 언론을 활용하는 것으로도 보인다. 이건희 회장도 빼놓을 수 없다. 1993년 신경영 선언 이후 여러 화두를 던졌다. 상의하달 식이었지만 ‘이건희’라는 브랜드가 20년 가까이 유지되고 있다. 홍보실이 관리를 잘해서이기도 하고, 영향력이 워낙 큰 덕분이기도 하지만, 검찰 소환을 앞둔 상황에서도 ‘창조 경영’이 언론에서 화두가 된 사례는 (리스크 관리에서) 뜻하는 바가 크다.”

    ▼ PI를 잘하는 것으로 조사된 박용만 회장, 정용진 부회장, 이건희 회장, 최태원 회장을 각각 평가한다면….

    “이건희 회장의 PI는 현재와 같은 소셜 미디어 환경에서는 빛을 발하기 어려울 수 있다. 박용만 회장 스타일은 두산이라는 기업의 경영과 어떻게 맞물려 돌아가느냐가 중요하다. 최태원 회장은 매스미디어 시대의 끝자락에서 전통적 방법으로 PR을 성실히 수행한 케이스다. PR을 통해 이미지를 회복했으나 앞으로의 변화가 과제다. 정용진 부회장은 새로운 접근을 모색한 CEO다. 오너 경영인의 새로운 소통문화를 개척했다고나 할까. 박용만 회장은 정용진 부회장과 다르다. 그는 사생활 중심으로만 소통한다. 신비주의에서 벗어나 대중의 위치로 잠시 이동해 동질감을 극대화했다는 게 핵심이다. 소통에 인색한 오너에 익숙한 공중이 색다른 행보에 감동한 것이다.”

    ▼ 소셜 미디어의 등장으로 홍보 방법도 바뀔 것 같다.

    “홍보조직은 사회적 자본을 창출하는 곳으로 거듭나야 한다. CEO도 홍보조직을 과거와 같은 관점에서 다뤄서는 안 된다. 단순히 ‘자신의 입’ 이 아니라 ‘자신의 귀’ 그리고 ‘머리’로 여겨야 한다. 자신과 생각을 공유하고 그것을 메시지로 만들어 전달하는 협력자로 여겨야 한다. 보고를 받기만 하면서 언론에 왜 이런 기사가 나오느냐고 호통을 치는 형태는 곤란하다. 중요한 점은 소통이 필수가 됐다는 것이다. 소통은 ‘빈도’가 중요한 게 아니라 ‘깊이’가 중요하다.”

    소통하는 리더

    역동적으로 변화하는 시장은 CEO에게 엔터테이너가 되라고 요구한다. 진정을 담지 못하면 망신만 당할 수도 있다. 소셜 미디어 시대다. 엔터테이너형 리더, 대중과 소통하는 리더가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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