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3월호

‘시크릿 가든’ 인사동 피맛골

  • 글·김현욱 | 조경학박사, 육임조경(주) 실장 lakhw@hanmail.net 사진·장승윤 기자

    입력2011-02-23 17:3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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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크릿 가든’ 인사동 피맛골

    인사동 피맛골의 한 고갈빗집. 들어갈 때는 천장이 낮아 불편하지만 일단 앉으면 친밀감이 밀려온다.

    최근 종영된 TV드라마 ‘시크릿 가든’은 거품키스 등 키스에 대한 많은 이야깃거리를 남겼다. 남녀 주인공의 키스 장면은 수많은 연인을 설레게 했다. 그들이 데이트한 장소를 찾아 그들처럼 키스를 해보는 게 유행이 되기도 했다. 필자는 특히 여자 주인공 길라임이 골랐던 ‘돼지껍데기집’ 등 서민적인 장소가 머릿속에 남는다. 왜냐하면 그런 장소는 화려하지는 않지만 왠지 사람을 끄는 따뜻한 정(情)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물론 많은 이가 “어떻게 그런 허름한 장소에서 로맨틱한 분위기가 생기나”라고 되묻지만, 그런 공간에 직접 들어가면 생각이 달라질 것이다.

    인사동 피맛골이 대표적이다. 피맛골은 조선시대 고관대작들이 말을 타고 종로를 지나갈 때 서민들이 행차를 피해 들어가 음식을 먹던 골목이다. 이후 이곳은 서울 사람들의 삶과 애환이 묻어나는 장소가 됐다. 골목길 모퉁이 허름한 술집에 들어가 보면 ‘00과 00가 사귄 지 100일’,‘젊음이여 영원하라’등 벽마다 빽빽하게 적힌 낙서를 만나게 된다. 아쉽게도 재개발로 이전에 북적거리던 술집은 거의 사라졌지만 몇 집은 아직도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피맛골에 들어서면 구불구불한 골목길이 인상적이다. 처음 가본 사람은 미로와 같은 골목길에서 방향을 잃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곳에서 서울의 또 다른 세계를 만날 수 있다. 과거로의 여행이라 할까. 피맛골은 서민들에 의해 자연스럽게 형성된 비계획적 장소다. 계획된 장소는 도로의 선이 기하학적인 반면 비계획적인 장소는 도로의 선이 부정형적이다. 마치 물고기가 자유롭게 유영하듯, 흘러갈 때는 흘러가고 모일 때는 모이는 자연스러운 장소가 연출된다. 이곳의 친근한 골목길, 투박한 막걸릿잔, 술집의 낮은 천장은 사람을 끌어당기는 힘이 있다.

    ‘시크릿 가든’ 인사동 피맛골
    ‘시크릿 가든’ 인사동 피맛골
    ▲ ‘유선아 사랑해….’

    정다운 사연을 담은 수많은 낙서가 아련한 추억을 떠올린다. 낙서는 골목길 곳곳을 메우고 있다.



    피맛골에 비하면 인접한 인사동거리는 상당히 세련된 곳이다. 세계적인 커피 브랜드를 한글로 써붙인 커피 가게의 ‘애교’도 인사동거리에선 어색하지 않다. 일제강점기에 골동품 상점들이 들어서면서 형성된 인사동거리는 2000년 역사문화탐방로 조성공사로 거듭났다. 골동품 가게와 갤러리, 찻집, 뒷골목 전통 음식점과 현대적 술집들이 조화를 이루고 있다.

    인사동 남단 들머리에 가면 일월오악도상이 세워진 광장이 있다. 가끔 자선단체들이 공연을 하는 이곳에서 연인에게 사랑을 고백하는 이들이 눈에 띄기도 한다. 그 옆에 인사동문화마당이 있다. 직선으로 뻗은 인사동거리에 여울과 소(물고기가 모여 있는 웅덩이)의 역할을 하며, 작은 규모지만 대나무 숲이 조성돼 있어 운치가 있다. 인사동의 묘미를 만끽하려면 과감히 골목길로 발길을 옮기는 것도 좋다. 예기치 않은 공간에서 고즈넉한 카페와 갤러리들이 얼굴을 내밀고 사랑의 밀어(蜜語)를 속삭인다.

    ‘시크릿 가든’ 인사동 피맛골
    ‘시크릿 가든’ 인사동 피맛골
    ▲ 인사동 골목길의 한 가게에 ‘뽀뽀’라는 앙증맞은 간판이 달려 있다. 전통과 현대가 조화를 이룬 골목길과 눈에 띄는 가게 간판들(아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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