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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기념관이 공개한 3·1운동 영문 화보집

사진으로 보는 독립의 열망 … 덕수궁에서 북간도까지 만세시위 행렬

  • 홍선표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책임연구위원 hongsp6054@hanmail.net

독립기념관이 공개한 3·1운동 영문 화보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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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록된 34장의 사진을 내용별로 보면 3·1운동과 직접 관련된 사진이 30장, 대한적십자회 사진 2장, 기타 2장이다. 이 가운데 그간 국내에 알려지지 않았던 3·1운동 관련 사진이 7~8장으로, 특히 수원 화수리와 제암리에서 찍은 일제 만행의 사진과 만세시위에 참가한 여학생의 참사 사진, 일제의 탄압으로 대량학살을 당한 만세시위자들의 합동 장례식 사진, 1919년 3월13일로 추정되는 북간도 용정에서의 만세시위 사진들이 사실상 처음 발굴된 귀중한 사진들이다.

영문 화보집의 기록에 따르면 수록된 3·1운동 관련 사진들은 모두 외국인이 찍은 것이다. 촬영자의 이름을 일일이 밝히고 있지는 않지만, 여러 가지 정황으로 볼 때 주요 외국인 중 한 명은 영국 출신의 캐나다 선교사이자 세브란스의학전문학교 교수였던 프랭크 스코필드(Frank W. Scofield)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3·1운동 당시 한국인에 대한 일제의 무자비한 박해와 탄압에 분개해 그 실상을 사진으로 남겨 전세계에 알린 인물이다. 특히 이 화보집에 수록된 제암리에서 벌어진 일제 만행 사진과 무자비한 탄압으로 중상을 입은 만세 시위자들의 사진이 그가 찍은 것으로 추정된다. 스코필드 교수가 쓴 ‘수촌리에서의 잔학행위에 대한 보고’라는 제목의 기록이 남아 있는바, 이번 영문 화보집에도 수촌리에 관한 사진이 한 장 수록돼 있다. 그 밖에 화수리 참사 사진도 넉 장이 수록돼 있는데 이는 당시 현장을 조사했던 선교사 노벨이 촬영한 것으로 추정된다.

독립기념관이 공개한 3·1운동 영문 화보집
독립기념관이 공개한 3·1운동 영문 화보집
1_거리 경계를 서는 일제의 군인. 시위대를 진압한 뒤 재발을 막기 위해 시내 곳곳에 경계를 강화한 모습이다.

2_상점 문이 닫힌 서울 거리의 한산한 모습. 3·1운동 당시 상인들은 시위에 동참하기 위해 스스로 철시했다.

3_상점 문을 강제로 열고 있는 일제 경찰들.



4,5 _참변을 당해 아수라장이 된 화수리. 경기도 수원과 안성 지역에는 1919년 3월 말부터 4월 초까지 치열한 만세시위가 이어졌다. 이 가운데 4월3일 수원군(현 화성시) 장안면과 우정면의 주민 1000여 명은 시위대를 조직해 두 곳의 면사무소를 파괴하고 화수리경찰관주재소를 공격했다. 이를 진압하기 위해 일제는 4월4일 일본군 78연대 소속 1개 부대를 특파해 4월11일 화수리 마을을 포위했다. 주민들은 인근 야산으로 피신했지만 남아 있던 사람들은 일본군의 일제 사격과 구타로 죽거나 중상을 입었다. 가옥 역시 절반 이상이 방화로 파괴됐다. 당시 일제가 저지른 화수리 참변의 실상을 보여주는 생생한 사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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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선표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책임연구위원 hongsp6054@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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