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4월호

자녀 숙제까지 해주는 수행비서, 레슨비·의상비 요구 땐 거부 못해

말 많고 탈 많은 예체능계 도제교육 실태

  • 김수영| 자유기고가 futhark@hanmail.net

    입력2011-03-23 10:5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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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인혜 서울대 성악과 교수가 제자 폭행 구설에 휘말리면서
    • 예체능계 대학의 교육 실태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 예체능계 전공자들은 “지도교수 ‘라인’에서 벗어나면 도태되기
    • 때문에 문제에 침묵할 수밖에 없다”고 호소한다.
    • 무용 전공자는 안무비, 의상비까지 내느라 허리가 휘고,
    • 의상학도는 명품 백으로 교수의 환심을 산다.
    • 불합리한 ‘관행’에 갇힌 대학 예체능계 학생들의 자화상.
    자녀 숙제까지 해주는 수행비서, 레슨비·의상비 요구 땐 거부 못해

    제자 폭행 구설로 파면된 김인혜 전 서울대 성악과 교수.

    제자 폭행 혐의로 파면된 김인혜(49) 전 서울대 성악과 교수 사건이 한국 사회를 뜨겁게 달궜다. ‘연주회 티켓을 강매했다’ ‘박수소리가 작다고 제자를 폭행했다’ ‘행사를 이유로 수업을 안했다’ ‘고가의 선물을 요구했다’ ‘시어머니 생신에 제자를 동원했다’ 같은 증언이 잇달아 나왔다. 김 전 교수는 이 모든 것이 음악계의 관행을 오해한 것에서 불거졌다고 주장하고 있다.

    스무 살이 넘은 똑똑한 학생들이 교육을 받기 위해 들어간 대학에서 교수로부터 폭행을 당하거나 금품 제공을 요구받는다면 어떻게 대처할까.

    서울대가 김 전 교수를 파면하면서 적용한 규정은 학교 자체나 음대의 별도 기준이 아니다. 국가공무원법 제56조 성실의무, 제61조 청렴의무, 제63조 품위유지의무 등 국가공무원법 위반이다. 그렇다면 같은 비리, 혹은 더한 비리가 있더라도 사립대는 처벌이 어렵다는 결론이다. 도가 지나치더라도 학생들이 이 같은 불합리한 ‘관행’을 받아들여온 이유는 무엇일까? 그 관행이라는 실체는 무엇일까? 대한민국 예체능계 대학생, 대학원생들의 현실을 들여다보자.

    음대나 미술대, 체육대는 인문대, 경상대, 공대와 체질이 다르다. 예체능대에서 교육의 핵심은 도제식 교육이기 때문이다. 도제식 교육이란 스승이 제자에게 자신이 가진 모든 역량을 전수해주는 것, 스승의 가르침에 복종해 한 치의 오차 없이 배운 대로 하는 것을 말한다. 음대는 ‘성악이냐 기악이냐’ 등 전공에 따라 입학과 동시에 지도교수가 정해진다. 예고 학생들이나 1~2명 선발하는 희소한 악기를 다루는 경우에는 고등학교 때부터 해당 교수와 알게 모르게 인연이 닿기도 한다.

    대학 4년을 마치고, 석·박사학위를 받으려면 미우나 고우나 지도교수 밑에 있어야 한다. 한 교수 밑에 적게는 10명 안쪽, 많게는 수십명의 학생이 있다. 애제자가 되지 않으면 ‘자리’는커녕 그 흔한 추천서 한 장 받기 어렵다.



    만약 지도교수와 궁합이 맞지 않다면 사태는 심각해진다. 전공을 바꾸지 않는 한 지도교수를 바꿀 수 없다보니 한두 명은 자퇴한다. 한두 해 다니다가 학교를 그만두고 유학을 가는 경우도 있다. ‘학교를 뛰쳐나가는 건 조수미가 아니라면 미친 짓이다’는 말이 회자될 정도로 적응을 못한 학생은 대부분 도태된다.

    학교생활에 제대로 적응하기 위해서는 예체능계 교육의 구조적 특성에 순응해야 한다. 예체능계 수업은 전공 수업의 경우 시간표가 고무줄이다. 교수 스케줄에 따라 변동이 잦은 편이다. 대학 측에서는 이에 대비해 교수에게 언제, 어떤 수업을 했는지 보고하게 한다. 이때도 보충은 하지만 철저히 교수의 스케줄에 맞추어 조교가 통보하는 식이다. 다른 과 수업을 받거나 학생의 사정이 있을 수 있지만 조정은 없다.

    1000만원짜리 음악캠프

    “교수님이 보충한다고 한 시간에 다른 교양 수업이 있었거든요. 그래서 조교에게 말했더니 ‘나는 그냥 전달사항만 전달했을 뿐이야’라고 하더군요. 그 뒤 수업 직전에 조교에게서 문자가 왔어요. 지금 당장 오라고요. 다른 수업을 빼먹고 레슨을 받으러 갔습니다.”(서울대 음대 졸업생 L씨)

    개인 레슨 시간에는 수업이 제대로 진행되지 않은 적도 많다. 음악이나 무용을 전공하는 학생은 전공수업 외에 오후 늦은 시간에 개인 레슨을 받는다. 레슨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레슨비는 학교마다 15만원, 20만원, 30만원 등으로 조금씩 다르지만 등록금을 낼 때 이미 포함돼 있다. 보충을 해주는 교수는 강압적이긴 하나 그나마 성실한 교수다.

    콩쿠르나 발표회 때문에 하는 특별 레슨일 때에는 레슨비 부담이 크다. 이때는 교수에게 성의를 표시해야 한다. 스타급 교수 중에는 방학 때 외국에서 연주여행이란 이름으로 음악캠프를 열기도 한다. 경비가 1000만원 이상 소요되는 이 행사는 사실상 관광이지만, 애제자가 되려면 매년 참석해야 한다.

    인간적인 도리도 해야 한다. 스승의 날, 설과 추석 같은 명절, 크리스마스, 교수의 생일이나 공연을 챙기는 건 기본이다. 스승의 날에는 거의 대부분 회비를 걷는다. 단체선물만 해서는 결코 애제자가 될 수 없다.

    클래스메이트라고 해서 다 같은 학생이 아니다. 교수의 총애를 받는 학생이 과대표가 된다. 조교는 교수의 측근이다. 일거수일투족이 관찰당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학교 다니는 것 자체가 정말 어렵습니다. 1학년 때부터 학점을 바닥에 깔 각오 아니라면 눈치를 안 볼 수 없는 거죠. 공부를 계속하고 싶다면 대학원 TO(일정한 규정에 의해 정한 인원)가 있으니까 어떻게 하든 교수님의 예쁨을 받아야죠. 전공 자체가 특수하다 보니 강단에 서지 않으면 서울대나 연세대, 이화여대를 나와도 학원 선생말고는 할 게 없어요. 살길을 마련하기 위해서는 스펙을 쌓아야 하고, 그 과정에 교수님의 영향력이 절대적으로 작용하는 거죠. 대학원에 가지 않더라도 찍히면 성적이 어떻게 되겠어요?”(이화여대 음대 졸업생 A씨)

    사정이 이렇다 보니 다소 불합리한 일을 당하더라도 학생들은 입도 뻥긋하지 못하는 게 현실이다. 김인혜 전 교수 딸의 대학 입학 때도 수군거림은 있었으나 아무도 문제를 제기하지 않았다. 어머니가 교수로 있는 서울대 성악과에 지원했고, 입학 전 학교의 특정 장소를 이용했다는 구설에 올랐으나 수석으로 입학했다.

    악용되는 학생 경력관리

    예체능 전공자는 대학에 다니는 동안 일반 학생들이 상상할 수 없는 경력관리를 해야 한다. 하지만 각종 전시나 공연은 학생의 경력관리라기보다 교수의 경력관리가 되기 일쑤다. 때로는 교수의 사욕을 채우는 데 악용된다.

    무용과 학생들은 입학하자마자 50만원짜리 분장박스를 마련한다. 교내 공연이라 할지라도 작품을 무대에 올릴 때마다 의상비와 안무비, 감사비 명목으로 돈이 든다. 작게는 몇십만원에서 많게는 몇백만원까지 교수의 주머니로 들어간다. 모두 현금으로 내기 때문에 교수는 세금 추적도 당하지 않는다. ‘졸업할 때까지 무대 경험을 몇 번 했느냐’가 학생의 역량이다. 더구나 무용단 시험을 보거나 콩쿠르에 나갈 때는 당연히 교수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교수님이 무용단 시험을 치라고 하면 당장 전통, 창작, 타악(장고와 북) 레슨을 받고 각각 안무를 받아야 합니다. 레슨비는 교수님마다 다르고, 안무비도 보통 과정마다 300만~500만원이 들어가죠. 콩쿠르에 나가려고 해도 마찬가지예요. 어떤 학생은 4년 동안 몇천만원이 들어갈 수도 있지만, 어떤 학생은 몇억원이 들어갈 수도 있죠. 도전하는 만큼 들어가니까요.”(안무가 B씨)

    이때 안무비와 레슨비뿐 아니라 무용복 비용 중 일부도 교수 손으로 들어간다. 무용의 경우 비슷한 체격, 같은 실력 조건이면 무용복이 예쁜 사람이 더 눈에 띄기 마련이다. 그렇다 보니 콩쿠르에서 실력경쟁 못지않게 번외로 무용복 경쟁이 벌어진다. 대회용 무용복은 학교를 불문하고 창작무용은 100만원, 발레 200만원, 고전무용의 경우 100만~200만원 선으로 알려져 있다. 교수가 추천하는 특별한 무용복은 장르를 불문하고 300만~500만원이다.

    인간문화재가 이수자 시험을 보는 제자에게 직접 만들어준다는 무용복은 무려 800만~1000만원으로 알려져 있다. 좋은 성적을 얻으려면 교수가 소개해주는 권위자에게 레슨을 받는데, 그 권위자는 교수의 스승일 경우가 많다. 그리고 그들이 심사위원이기도 하다.

    의상학과의 경우에는 교수로부터 “해외전시에 참관하라”는 압박을 받는다. 졸업과 동시에 학교와 인연을 끊을 게 아니라면, 거절하기 힘들다. 패션위크 등의 행사에서 액세서리 박람회나 의상박람회가 있을 경우, 교수가 부스를 빌리고 거기에다 자신의 작품을 전시하면서 제자들의 작품도 몇 점 곁들인다. 이때 항공권 구입과 숙박에 필요한 비용은 제자가 지불한다. 전시회에 나가지 않는 학생들은 전시에 필요한 브로슈어 등 각종 인쇄물 비용을 댄다.

    “교수님은 ‘부스비 안 내고 너희들 작품이 걸리는 것’이라고 하시지만, 전시에 가도 별거 없습니다. 해외 전시일 경우 홍콩이나 일본은 200만~300만원이지만, 유럽은 1주일 동안 체류하는 데 800만원 정도를 냈습니다. 몇 명 이상이면 항공권이 할인된다며 조교까지 동원해서 참여를 독려하세요.”(서울의 한 대학 의상학과 졸업생 H씨)

    해외 행사가 있을 때 음악·무용·의상학과 학생 모두 항공료와 숙박비를 자신이 부담한다. 초청하는 단체나 대학에서 일정 비율의 지원금을 받거나 심지어 국내 문예진흥기금 등 각종 창작기금을 지원받더라도 그 내역에 대해서 제자들은 일절 모른다.

    언어폭행은 잘하라는 격려?

    자녀 숙제까지 해주는 수행비서, 레슨비·의상비 요구 땐 거부 못해

    김인혜 전 교수는 시어머니 팔순 잔치에 제자들을 동원한 것으로 알려져 논란이 됐다.

    1대1 수업은 도제식 교육의 가장 큰 특징이다. 비싼 학비를 내는 것도 바로 이 실기수업을 받기 위해서다. 다소 폐쇄적인 이 실기수업이 사실은 전공 교육의 핵심이다. 그러나 가위를 집어던지거나, 인신모욕을 하거나, 의자를 발로 차거나, 물건을 얼굴에 집어던지는 등 스승의 자격을 갖추지 못한 교수가 수업을 할 경우에는 그 폐쇄성이 독이 되어 나타난다.

    “일주일에 한 시간 정도 교수님 방에서 1대1로 전공실기 수업을 받아요. 일반 과에서 수십 명이 강의실에서 와글대며 수업을 받는 것과 분위기가 다를 수밖에 없어요. 1대1 수업에서 교수님의 권위는 절대적이죠. 자존심을 긁으며 야단을 치든, 욕을 하든 묵묵히 받아낼 수밖에 없어요. 물리적인 폭행은 없었지만 언어로 하는 폭행은 폭행이 아닌가요? 울면서 나온 적도 있어요.” (연세대 음대 졸업생 B씨)

    독설로 유명한 교수, 학생을 무시하는 듯 차가운 분위기로 수업하는 교수, 뺨 때리기를 일삼는 교수, 음담패설을 즐기는 교수 등 학생들 사이에는 대학별로 ‘블랙리스트’가 존재한다.

    무용수업에서는 음악보다 신체접촉이 더 빈번하다. 관행 중 하나는 머리채 잡아 올리기다. 교수는 제자의 자세를 교정하기 위해 정수리 부분의 머리카락을 위로 잡아당긴다. 그러면 반사적으로 척추를 쭉 펴기 때문이다. 자세가 나쁠 경우 척추를 따라 손바닥으로 때리는 방법도 동원된다.

    “대학에 올 정도의 애들은 어릴 때부터 이런 트레이닝을 받아왔기 때문에 머리카락을 잡아당기지 않고 말로 해도 충분합니다. 목을 젖히지 말라고 앞으로 꺾어버리거나 등이나 배를 멍이 들지는 않지만 아플 정도로 치는 것, 고함을 치며 욕설에 가까운 말을 하는 건 무식해서라는 생각밖에 안 들어요.”(서울 모 대학 무용과 재학생 L씨)

    일반대에서 통하는 ‘교수의 상식과 품위’가 왜 예체능계에서는 통하지 않을까? 음대 강단에 서기도 하는 한 전시기획자는 다음과 같이 지적하다.

    “어린 나이부터 트레이닝만 받다 보니 일반적인 공부를 통해서 얻는 사회경험이 없어요. 아티스트로서의 명성이 곧 교수로서의 명성이라고 생각하는 교수도 있습니다. 게다가 부당한 대우에 대해 학생들이 항의하지 않다 보니 교수 자체가 자신의 행동을 객관적으로 성찰해볼 기회조차 없어요. 괴팍함이 지나쳐 폭행 등 범죄행위에 가까울지라도 ‘교수로서의 권위’나 ‘예술가로서의 카리스마’라고 인지하는 경우도 많죠.”

    교수의 행동이 가르치기 위한 불가피한 접촉인지, 감정이 실린 행동인지 모르는 학생은 없다. 그런데도 교수들은 여전히 학생들이 아무 소리 못하는 것에 대해 “나는 이만큼 제자들에게 권위를 갖고 있다”고 착각하는 것이다.

    예체능계 학생의 고난은 대학원에 들어가면서 절정을 맞는다. 이때는 그야말로 ‘소수정예 수행비서’나 ‘교수의 플래티늄 카드’가 된다. 대학원에 가는 경쟁은 학부 때 이미 시작된다. 그간 학부에서의 행적을 토대로 ‘받을 만한 학생’만 입학시킨다.

    서울 소재 무용과를 졸업하고 지방에서 작은 학원을 경영하는 B씨는 대학교 3학년 때부터 대학원 2년까지 도합 4년을 지도교수의 수행비서 노릇을 했다. 운전을 도맡아 하는 건 물론, 식성이 까다로운 교수를 위해 초밥 도시락 배달도 했다. 얇은 무대의상 때문에 떨고 있는 교수에게 코트를 갖다주고, 보온병에 건강음료를 챙겼다. 발과 다리를 안마해주기도 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성의가 모자랐는지 교수의 공연 무대에 번번이 오르지 못했다.

    ‘2009년 예술의전당 음악당에서 공연’이란 한 줄의 약력을 이력서에 올리기 위해 무용이나 음악을 전공하는 학생들이 지불하는 비용은 1000만원을 넘길 수도 있다. 교수의 무대 끝 순서에 슬쩍 제자를 끼워 넣거나 다른 제자의 무대에 더 어린 제자를 끼워 넣는 식이다. 무대에 얼굴을 비치는 것은 사실상 몇 분에 불과하지만, 이 경력이 중요한 이유는 이것 자체가 교수의 추천서이기 때문이다.

    “교수님 무대에 오르려면 안무비와 함께 감사비를 드립니다. 무대에 오르려면 내 작품이 있어야 하니까 안무를 받아야 하는 거죠. 감사비는 무대를 준비하시느라 힘드시니 드리는 거고요. 교수님 레벨에 따라서, 무대가 얼마나 크냐에 따라서 액수가 달라지죠.”

    전통무용을 전공해 지금은 안무가로 일하는 A씨는 4년 동안 제법 큰 무대에만 4~5차례 올랐다.

    “교수님이 필요한 건 학생들에게 다 시켰다고 보면 됩니다. 밤늦은 시간에 교수님 집에 가서 인터넷 장애를 해결했고, 전시나 리셉션 가실 때는 제가 가방을 들어드리거나 음료를 갖다드렸죠. 교수님 자녀의 미술 숙제를 대신해주기도 했어요. 교수님이 무대의상 만드는 걸 도와드린 것은 물론이고요. 그러다보니 휴일에도 제 생활이 없었어요.”

    서울의 한 여대 의상학과를 나온 H씨는 ‘인간적인 부탁을 차마 거절할 수 없어서’ 석사과정 내내 교수의 요구를 모두 들어주었다. 그러나 교수는 어떤 이유에선지 석사논문을 선뜻 통과시키지 않았다. 현재 H씨는 박사학위는 엄두가 안 나서 미루고 있다.

    “교수님이 학회에 다른 교수님이 들고 온 백이 참 좋다고 하셨어요. 그 교수님은 대학원생 제자에게 선물받은 것이라고 합니다. 한두 번도 아니고 계속 좋다고 말씀하시는 건 ‘너도 사서 선물하라’는 사인인 거죠. 에르메스 악어가죽 신상 백이었어요. 1000만원도 아니고 수천만원대니 부담이 컸죠.”

    서울의 의상학과 대학원에 재학 중이던 K씨가 교수의 청을 고민하던 사이, 교수는 그 백을 들고 나타났다. 이후 박사과정의 다른 대학원생 덕분에 교수의 차는 외제차로 바뀌었다.

    서울 한 대학의 무용과 교수는 선물을 요구하기로 유명하다. 선물을 살 때 아예 ‘어떤 백화점, 어떤 브랜드, 어떤 디자인의 구두를 사라’며 사이즈까지 찍어 말해준다. 너무 거리낌 없이 말을 하는 까닭에 ‘쿨하다’는 소리까지 듣는다.

    “돈 없는 학생은 수발, 돈 있는 학생은 선물. 교수가 아끼는 제자가 되기 위한 조건입니다. 수발 들 수 있는 제자보다는 돈 많은 제자를 더 좋아하죠. 수발 들 제자는 많지만 돈 있는 제자는 드무니까요.”(서울의 모 여대 의상학과 졸업생 K씨)

    교수의 수업을 듣기 위해서 학생의 자질이 아닌 배경이 더 중요한 것 또한 도제식 교육의 씁쓸한 ‘관행’이다.

    ‘라인’ 이탈은 곧 도태

    의상학과 졸업생 H씨와 음대 졸업생 B씨가 입을 모아 하는 말은 “그래도 유학보다는 한국에서 버티는 게 낫다”는 것이다. 예체능은 외국에서도 돈 없으면 할 수 없는 공부인데다 재능만 믿고 유학을 갔다 와도 한국에서 자리 잡기가 어렵다는 게 그 이유다. 외국대학을 수석 졸업한 디자이너가 되거나, 유명 콩쿠르에서 입상한 연주자나 성악가들도 자리를 잡지 못해 생활고를 겪거나 개인 레슨으로 연명하는 게 현실이다. 대학에서 음악이나 무용 등 예체능을 전공한 경우 진로는 두 가지다. 아티스트로 살거나 아니면 대학에 자리 잡는 것이다. 취직 준비는 전혀 하지 않았기 때문에, 일반 회사에 들어가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두 가지 길 모두 교수의 추천이 결정적이다.

    오케스트라나 무용단은 한 해 뽑는 인원이 거의 없거나 한두 명 선발할 뿐이다. 누구나 선망하는 곳은 몇 년 동안 인원 선발을 안 할 때도 있다. 전공자가 설 만한 대학 강단은 좁기만 하다. ‘누가 먼저 대학 강사로 추천되느냐’를 두고 경쟁을 벌인다.

    “국립무용단이나 시·도립 무용단 연수단원의 선발 인원이 1년에 한 명, 어떨 때는 아예 안 뽑기도 해요. A클래스 실력은 솔직히 거기서 거기예요. 그러니 라인을 안 따질 수 없는 거죠. 당연히 영향력 있는 교수님의 제자가 유리할 수밖에요. 교수님의 제자가 시도립무용단의 안무가로 있으면 그만큼 발탁될 확률이 높은 거니까요.” (안무가 A씨)

    폭행, 금품요구, 개인적 심부름 등이 예체능계의 관행으로 굳어진 배경에는 좁은 문을 뚫고자 하는 절박감이 깔려 있다. 예체능으로 대학에 가기 위해서는 늦어도 중학교, 대부분은 초등학교 때부터 레슨을 받는다. 대학이나 대학원에서 교수와의 관계가 힘들어 공부를 그만두면 10년 공부 도로아미타불이 된다.

    예체능계 학생들은 입학 때부터 가장 좁은 문을 통과한 학생들이다. 2011학년도 서울대학교 정시모집 경쟁률은 정원 1362명에 총 6001명이 지원해 4.41대1인 데 비해 예체능계는 경쟁률이 그 두 배를 기록했다.

    미술대 서양화과는 13명 모집에 171명이 지원했다. 디자인학부와 음악대학 성악과는 12.10대1, 10.65대1을 기록해 미술과 음악이 서울대 입시 경쟁률 1, 2, 3위를 기록했다. 콘트라베이스, 오보에, 클라리넷, 비올라 같은 희소 악기들은 20대1 이상을 기록할 때도 있다. 어렵게 대학에 간 만큼 아무리 관행이 불합리하더라도 꾹꾹 참을 수밖에 없다.

    게다가 ‘라인’에서의 이탈은 곧 도태를 뜻한다. 아무리 지도교수가 비난받아 마땅하다 하더라도, 지도교수가 설 자리를 잃으면 라인이 끊어진다. 지도교수의 새끼 제자라도 돼야 학생들로부터 레슨비를 더 받을 수 있는 게 현실이다. 라인이 끊어지면 결국은 당사자인 제자만 손해기 때문에 굳건히 침묵을 지킨다. 아마도 권력의 사슬이 최상층부터 부서지지 않는 한 도제식 교육의 횡포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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