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4월호

정찬주 소설가

더 깊은 산중에 오두막 짓고 내 그림자 지우리

  • 입력2011-03-25 15:0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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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찬주 소설가

    정찬주<br>●1953년 전남 보성 출생<br>●동국대 국문과 졸업<br>●샘터사 편집부장, 행원문학상·동국문학상<br>●소설 ‘니르바나의 미소’ ‘소설 무소유’ ‘산은 산 물은 물’ 등

    마당가 연못에 사는 개구리들의 울음소리가 갑자기 잦아들었다. 겨울잠에서 깨어난 개구리들이 쌀쌀한 꽃샘추위에 놀란 모양이다. 이른 새벽 연못에 낀 살얼음을 보니 시절인연을 기다리는 개구리알들이 걱정스럽다. 그러나 한낮의 햇볕에 살얼음은 금세 녹아버릴 것이고, 바람 끝에서는 이미 봄의 손길이 느껴진다.

    매화나무의 꽃눈들도 또록또록 부풀어 올라 있다. 마당가에 설연화(雪蓮花)로 불리는 복수초는 낮 동안 꽃잎을 피웠다가 밤이 되면 오므라든다. 복수초는 내 산방에서 영상 10℃가 되면 어김없이 피어나므로 봄을 알리는 나의 기상예보관이다. 사람이 입을 다물면 자연이 입을 연다는 말이 있듯, 산중에 10여 년 살다보니 자연과 가까워졌고 알게 모르게 날마다 마주치는 온갖 나무와 풀, 무당벌레 같은 미물들에게도 고마워하면서 살고 있다.

    아직도 서울에서 살고 있다면 무는 낮에 몸무게를 불리고 배추는 밤에 잎사귀를 키운다는 그들만의 비밀을 어찌 알겠는가. 땅콩이 땅속에 있는 콩이라 해서 ‘땅콩’이라고 불리는지 어찌 깨달았겠는가. 산새들이 나무들의 열매를 먹고 그 씨를 배설해 푸른 숲이 사라지지 않게 한다는 사실을 어찌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겠는가.

    어제도 안성에서 세 분의 손님이 왔다가 갔다. 오후 한나절 동안 차를 마시며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가 헤어졌다. 손님들이 내게 하는 질문 내용은 대부분 엇비슷하다. 가장 궁금해 하는 것은 ‘왜 남도 산중으로 내려와 살고 있습니까?’이다. 수십 년 서울생활을 청산하고 외롭고 불편하기 짝이 없는 산중으로 들어와 살고 있으니 나만의 속사정을 알고 싶어하는 것도 이해하지 못할 바는 아니다.

    나는 자칭 타칭 인도 마니아다. 십수 년 전부터 여건이 허락할 때마다 시간을 내어 여러 번 다녀왔다. 내년에도 설을 쇠고 아소카대왕 루트를 답사하고 올 계획이다. 인도를 여행하면서 나는 턱없이 가벼운 내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곤 했다. 인도인들의 전통문화나 사고방식 중에는 정말 금쪽같은 것이 많다. 귀족 계급인 브라만의 인생 중에 생의 후반부는 모든 짐을 놓아버리고 자연에 귀의해 사는 이른바 임간기(林間期)라는 전통이 있는데, 그런 삶의 방식은 내 화두가 되었다.



    생의 후반부이니 무책임한 일도 아니다. 가장으로서 의무를 다하고, 사회에 봉사할 것 다하고 남은 생을 자연에 귀의해 자기를 위해 사는 삶이기 때문이다. 나는 아내의 허락을 받은 뒤, 두 아이가 청소년기를 벗어나 나름대로 판단하고 결정할 수 있는 때를 기다렸다가 마침내 결행했다. 친구들과 상의했지만 도움이 되지는 못했다. 대부분 글을 쓰기 위해 산중으로 들어간다고 지레짐작하고는 서울에서 가까운 양평이나 남양주로 가기를 권했다. 그러나 나는 서울이 지척인 곳은 사이비 낙향이라는 생각이 들어 남도 산중으로 내려와 묵은 밭에 집을 짓고 이불재(耳佛齋)라는 당호를 걸었다.

    죽는 것도 자연으로 돌아가는 것이니 미리 자연으로 돌아가는 연습이라고나 할까. 산중에 들어와 살고 보니 인도 브라만의 임간기는 노자의 식영(息影)을 떠올리게 했다. 식영을 글자대로 직역하자면 ‘그림자가 쉰다’이겠으나 더 정확한 풀이는 ‘그림자가 사라진다’고 해야 옳을 것 같다. 자연 즉 숲으로 들어가면 사람의 그림자는 저절로 사라져버리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노자의 식영은 무위자연(無爲自然)의 은유가 아닐까 싶다.

    그런데 무위자연을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손을 놓고 있다는 식으로 해석하면 노자를 전혀 모르는 말이 된다. 무위란 사람의 때를 묻히지 않는 꽃 피고 물 흐르는 것과 같은 자연을 뜻하기에 그렇다. 불가(佛家)의 본래마음, 자성(自性), 도(道) 같은 말도 도가의 무위와 동의어로 봐도 틀린 말이 아니다. 육조 혜능대사의 후예들이 무위법을 깨닫는 것을 최상의 경지라고 여겼던 역사적 사실도 있다.

    정찬주 소설가

    ‘무소유’ 법정스님이 머물렀던 전남 순천 송광사의 불일암.

    그러나 산중에 든다고 해 저절로 꽃 피듯 물 흐르듯 모든 일이 걸림이 없는, 혹은 ‘텅 빈 충만(眞空妙有)’의 삶이 이루어질까. 물론 전원생활이나 귀농생활을 염두에 둔 이들은 나름대로의 낭만이나 보람이 있을 수도 있겠지만 수행생활의 차원에서 자신의 삶을 변화시켜보고자 하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나 역시 몸은 산중에 있지만 머릿속은 저잣거리의 생각들로 들끓을 때가 많다. 특히 나의 책이 발간될 무렵에는 전화요금이 몇 배로 뛰어오른다.

    스님들이 안거하듯 어떤 계절에는 내가 나를 유배시킨다는 마음으로 밖으로의 발걸음을 일절 끊지만 생각이 산지사방으로 돌아다니게 되니 결과는 허망할 경우가 많다. 내 질서를 철저하게 지키지 못하는 이유 중에는 무엇보다 내 탓이 크지만 외부 환경도 적잖은 원인이 된다. 이 글을 쓰는 오늘도 뜻밖의 손님들이 계속해서 다녀갔다. 나의 독자라 하면서 찾아온 손님에게 차 한잔 대접하지 않고 보내기란 여간 힘들지 않다.

    나를 과대평가하는 손님이 다녀간 날에는 나는 잠시 멀미를 느낀다. 다시 더 깊은 산중으로 들어가고 싶어진다. 사람들의 발걸음이 뜸한 산중이면 더 좋을 것 같다. 도피나 은둔이 아니다. 농사짓고 명상하고 글 쓰는 내 삶이 곧 수행이기 때문이다. 중국의 어느 선사는 ‘도가 무슨 물건이더냐. 왜 닦으려고 하느냐’라고 말했다. 동감이다. 자연을 거스르지 않고 사는 것도 수행이라는 말이다.

    어차피 나는 글 쓰는 사람이기에 사회와 소통의 길은 열려 있다고 본다. 더 깊은 산중에 들어가더라도 내가 느낀 바를 소설이든 수필이든 간에 글로 쓸 것이고, 내 글에 공감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나만의 삶도 무의미하지는 않을 것이기에 그렇다. 지금과 같은 산중생활의 경험이 있기 때문에 또 다른 산중에 오두막을 지어 산다 하더라도 더 잘 살 자신이 있다. 아무도 보는 이 없는 산중이므로 적당히 살고, 때로는 게으름을 피울 수도 있지만 나는 그래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저잣거리의 삶이 힘겹고 슬픈 사람들에게 죄짓는 일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나는 산중생활 초기에 벽에 호미를 걸어놓기도 했다. 산중 마을의 농부들이 밭 갈고 김맬 때 나는 무엇을 하고 있는지 되돌아보기 위해서였다.

    더 깊은 산중에 오두막을 짓는다면 글쓰기말고도 또 하나 더 하고 싶은 것이 있다. 부끄러운 고백이지만 나는 중학교 때는 독서광이었으나 차츰 독서보다는 글 쓰는 일에 빠져 지금은 자료로서 필요한 서적 이외에는 거의 읽지 않는 편이다. 그러나 오두막에서는 한 해에 적어도 같은 책을 서너 번 읽더라도 100권 분량은 채울 계획이다. 경전이나 선어록, 그리고 철학서적, 문학작품 등을 두루두루 되짚어볼 터이다. 그래서 오두막 이름도 ‘백권당(百卷堂)’이라고 지어두었다. 그리고 나의 좌우명인 ‘글을 쓰다 죽다’가 묘비명이 되도록 힘쓸 것이다. 내가 나에게 짐 지운 금생의 숙제를 힘껏 하고, 내생에도 승속(僧俗) 가운데 어느 곳에 머물러 있더라도 구도자의 길을 걷고 싶다.

    ‘법화경’에 ‘전생을 알고 싶은가. 금생에 받는 그것이다. 내생의 일을 알고 싶은가. 금생에 하는 그것이다’라는 구절이 있다. 지금 이 순간 잘 살아야만 좋은 ‘내신성적’을 받아 내생에 내 뜻대로 이루어질 것이라는 가르침이다. 오늘 내가 하는 일에 따라 내생의 내 모습이 결정된다고 하니 죽기 전의 내 인생을 어찌 허투루 살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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