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4월호

임진모 음악평론가

‘진모’표 빈대떡 개발 · 죽기 전까지 아들과 술자리

  • 입력2011-03-25 16:3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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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진모 음악평론가

    임진모<br>●1959년 경기 부천 출생<br>●고려대 사회학과 졸업<br>●경향신문·내외신문 기자, 現 저작권위원회 위원<br>●저서 ‘우리 대중음악의 큰 별들’ ‘팝 리얼리즘 팝 아티스트’ 등



    나는 음악평론가로서 라디오·TV 출연, 그리고 강연이나 행사 심사 활동과 같은 일에 시달린다. 모두 ‘말하는’ 일이다. 그렇게 ‘말하기’로 생계를 충당하지만 그럼에도 평론가의 본연은 ‘글쓰기’라는 정의에는 변함이 없다. 글을 쓰지 않는 평론활동이라는 게 말이 되는가. 글쓰기는 그러나 말하기보다 부담이 훨씬 더하지만 통장에 기여하는 바도 적은 게 현실이다.

    글을 쓴다는 것이 얼마나 고통스러운지는 해본 사람은 안다. 뻔히 아는 어휘가 막상 떠오르지 않아 한밤중 바깥으로 나가 머리를 식혀야 하고, 설령 원하는 문장을 찾아도 다음날 보면 이것밖에 안 되는가 연신 자책한다. 소설가 조정래 선생 표현대로 ‘글 감옥’이다. 그래도 써야 한다. 막연한 의무가 아니라 ‘말을 하기 위해서라도 글을 써야 한다!’는 경험 때문이다. 글을 쓰고 난 뒤 강연을 하면 말하기가 술술 풀린다. 글쓰기는 실용적이다.

    서구·한국 대중음악사 책 ‘반드시’ 쓰기

    나의 꿈은 무엇보다 책을 써내는 것이다. ‘신동아’에 쓴 대중음악가 인터뷰를 묶어 ‘우리 대중음악의 큰 별들’이란 책을 낸 게 2004년 1월이니까 책을 쓰지 못한 지도 어느덧 만 7년의 시간이 흘렀다. 주변으로부터도 수도 없이 질책을 받았다. 음악평론가 맞느냐고. 그때마다 60대 초반에 할 것이라고, 아직 세월이 창창하다고 변명을 하지만 솔직히 내심 당황스럽고 부끄럽다.



    뭔가 쓰려고 생각하면 머리부터 지끈지끈 아프고 엄두가 나질 않는다. 바쁜 일정에 밤에 들어와 차분하게 컴퓨터 앞에 자리할 시간이 없는 것도 사실이다. 책 쓰기는 집중력과 인내 그리고 분위기가 전제돼야 하는데 도무지 여유가 나질 않는 것이다. 더구나 내가 원하는 책 콘텐츠는 방대한 역사를 정리한 ‘서구 대중음악사’와 ‘한국 대중음악사’다. 기존 매체에 쓴 글을 재구성하거나 편안하게 풀어가는 수필이라면 몰라도 이건 무거운 타이틀이다.

    평론가로서 당연히 해야 할 숙제이지만, 또 일의 영역이지만 이 두 권의 책을 쓰는 게 버킷 리스트의 첫 번째를 장식하는 이유는 그 소중함으로, 그 진정성으로 다른 무수한 꿈에 비해 맨 위에, 꼭짓점에 위치하기 때문이다. 조금 과한 표현이지만 ‘이게 없다면 나도 없다!’는 생각이다.

    꿈에 구체적으로 다가가기 위해 올해를 두 권의 음악사 집필 준비의 원년으로 삼았다. 막연한 목표 설정으로는 부족할 것 같아서 주변의 지인 한 명을 지목해서 검토를 요청하는 점검 시스템을 마련했다. 15일마다 준비상황을 그에게 낱낱이 보고하는 방식이다. 술값이 조금 더 들어갈 테지만 책 쓰고자 하는 마음자세가 아주 조금씩이지만 생겨나고 있다. 고통인 줄 알지만 꿈이기에 즐겁다. 글쓰기와 책쓰기가 고통과 환희의 아리아라는 것을 죽기 전에 크게 한 번 반드시 체험하고 싶다.

    연못과 화단, 우물 있는 집 만들기

    열대어는 관심도 없고 취향에도 맞지 않는다. 나는 수족관이 아니라 우물 정도 크기의 금붕어가 사는 작은 연못을 꿈꾼다. 경기 소사(지금의 부천)에 살던 초등학교 2학년 때 우연히 친구 집에 놀러가서 본 작은 연못의 풍광은 수십 년이 지난 지금도 가슴속에 아련히 저장돼 있다. 그 연못은 너무나도 아름다운 꽃들의 화단 속에 있었다.

    얼마 전 로마에서 활약하는 화가 이현의 국내 전시회에서 지중해 연안의 양귀비와 수선화를 색채화한 그림을 보고 모처럼 꽃의 강렬한 아름다움에 취했다. 그 전시현장에서 내가 나도 모르게 꽃을 동경해왔음을 새삼 깨달았다. 화단 가꾸기와 연못 관리는 일을 떠난 평생의 대(大)로망이다. 이게 안 되면 내 인생은 패배로 결론난다.

    화단을 가꾸기 위해서는 우물이 화단 끝 쪽에 있어야 할 것이다. 수돗물은 싫다. 그래서 이 꿈을 위해서는 남도로 내려가야 한다. 전남 해남이나 여수, 아니면 경남 하동이나 남해의 해변에서 제법 떨어진 산골이 좋을 것이다. 이미 아내와는 얘기를 끝냈다. 단지 아내의 지적이 조금 걸린다. “근데 땅은 어떻게 마련하고?”

    빈대떡 식당 내기

    화단 연못 우물과 함께 낭만적으로 여생을 즐기려면 생활밑천을 꾸려내야 한다. 빈대떡 식당이 그 해결책이다. 제자 중에 현재 방송작가를 하는 안재필이란 친구가 있다. 안군의 아버님이 2009년까지 서울 수유리에서 빈대떡 집을 운영하실 때 그 집에서 먹어본 빈대떡은 그야말로 발군이요 환상이었다. 반드시 그 비법을 전수받아야 한다고 다짐해왔다.

    아버님도 “임 선생이 한다면 조건 없이 가르쳐주겠다!”고 약속하셨다. 다만 당신이 잊어버리기 전에 서둘러 배우라고 하신다. 아들은 의지가 없고 친척 중에 적당한 사람이 있지만 그는 너무 땀을 흘려서 곤란하다는 것이다. 손님들 앞에서 빈대떡을 굽는 사람이 땀을 흘리면 손님이 떨어진다는 이유였다. 장보기, 반죽, 굽기(불 조절이 필수란다) 등 전반의 기술을 터득하기 위해서는 최소 1년은 걸릴 것이다.

    음식에 관심이 많은 나로서는 그건 문제가 안 된다. 녹두빈대떡이든, 해물빈대떡이든, 고기빈대떡이든, 파전이든 다 자신 있다. 빈대떡은 대개 막걸리, 소주와 같은 술과 함께 먹으므로 어렵지만 안주용으로 국물이 있는 탕을 창조적으로 개발해야 하고, ‘테이크 아웃’도 고려해야 하며 인터넷과 트위터를 통한 홍보 또한 중요하다. 안군 아버님의 그 빈대떡 맛만 재현한다면 가능성은 충분하다.

    지난해 세계적인 트렌드세터 타일러 브륄레가 해외에 수출해야 할 한국의 문화상품 10가지를 뽑았을 때 빈대떡이 9위였다. 그가 뭘 아는 친구라는 생각이 들면서 다시금 빈대떡 식당에 대한 욕망이 불타올랐다. ‘진모빈대떡’을 세계적인 브랜드, 명품 패스트푸드로 키워내고 싶은 게 40대 이후에 생긴 꿈 중 으뜸이다.



    죽기 전까지 아들과 술자리 하기

    아내는 나무랄 데가 없지만 안타깝게도 술을 못한다. 알코올 냄새만 나도 거리를 둔다. 결혼 전의 꿈 한 가지는 ‘아내와 술 마시기’였지만 지금은 ‘아들과 술자리 하기’로 바뀌었다. 현재 군복무 중인 아들은 나와의 술자리를 좋아하는 편이다. 휴가 나와 첫날은 무조건 아빠와의 술자리 시간을 위해 비워두니까. 고마운 일이다. 특히 입대하기 전에 함께 먹은 삼합에 입맛이 붙은 뒤에는 아들이 술자리 마련에 적극적이고 자발적이다.

    언젠가 아들과 어느 술집에서 한잔 기울이고 있을 때, 주문하지도 않은 술 한 병이 왔다. “안 시켰는데요”라고 주인에게 말했더니 “저쪽 자리 손님들이 보냈습니다” 한다. 그쪽으로 얼굴을 돌리자 술 마시던 40대 중반쯤 되어 보이는 남자 셋 중 한 사람이 “아버지와 아들이 같이 술 마시는 모습이 너무 좋아 보여서 한 병 보냈어요!”라고 말하는 것이다. 기분이 참 묘했다(물론 금전적으로는 손해였다. 답례로 그쪽에 비싼 안주를 보냈으니까).

    술자리는 늘 즐겁다. 어떤 사람들과 해도 불편한 상황만 아니면 유쾌한 게 술자리다. 과장되지만 기분 좋은 언어들, 과거 무용담, 너도나도 술값을 내려는 호의 등 일터에서는 볼 수 없는 인정이 난무한다. 그런데 자식과의 자리는 또 기분이 다르다. 아버지의 위풍도 지켜야 하지만 스스럼없는 분위기도 만들어야 한다. 감정의 밸런스 유지가 보통 어려운 게 아니다. 하지만 쾌감으로 치자면 단연 최고다.

    아들 입대 후 대학생인 딸이 대신 자리해주곤 했지만 갑자기 다이어트에 돌입한 후로 술을 거의 끊는 바람에 아쉽기 그지없다. 아들과 술자리 하기 위해 휴가를 기다리고 전역을 손꼽는 아빠가 있을는지. 지난번 아들이 상병휴가 나왔을 때 슬쩍 “아빠가 죽을 때까지 이렇게 같이 술자리 해줄 수 있겠니?”하고 물었더니 “당연하죠. 당연!”이라고 답한다. 하지만 취직, 결혼, 육아 등이 기다리는 아들 입장에서는 쉽지 않을 것이다. 아들과의 평생 술자리가 꿈이 되는 이유는 나나 아들이나 서로 힘들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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