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4월호

마광수 소설가

미래적 섹스 이론 정립하고 싶다

  • 입력2011-03-25 17: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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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광수 소설가

    마광수<br>●1951년 서울 출생<br>●대광고, 연세대 국문학과 박사 연세대 국문학과 교수<br>●‘나는 야한 여자가 좋다’ ‘윤동주 연구’ 등

    내가 죽기 전에 먼저 꼭 해보고 싶은 것은 ‘진짜 사랑’을 하는 것이다. 지금까지 나는 사랑을 여러 번 해보긴 했다. 그러나 그 사랑들은 진짜로 ‘겉과 속이 다 야한 여자’들과 나눈 사랑이 아니었다. 배가 고픈 김에, 하는 수 없이 ‘겉만 야한 여자’거나 ‘속만 야한 여자’와 나눈 사랑들이었다. 그래서 나는 죽기 전에 ‘겉과 속이 다 야한 여자’랑 사랑을 깊이 나눠보고 싶다. 배가 고프든 그렇지 않든, 내가 푹 빠져들어 얼이 쏙 빠진 상태로 나누는 사랑이 그것이다.

    물론 그 사랑이 ‘짝사랑’이어서는 안 된다. 상사상애(相思相愛)하는 사랑이어야 한다. 그런데 어느덧 내 나이 60. 아무래도 그건 ‘짝사랑’으로 그칠 확률이 높다. 머리가 다 빠지고 허옇게 센 늙은이를 사랑해줄 젊고 야한 여자가 어디 있으랴. 그래서 나는 지금 정말로 슬프다.

    내가 연애하고 싶은 여자를 가리키며 ‘젊은’이라는 말을 집어넣었다고 나를 염치없는 놈이라고 욕해선 안 된다. 시인 괴테도 70대 나이에 10대 후반의 소녀를 사랑했고, 화가 피카소 역시 그랬다. 이건 병적(病的)인 ‘롤리타 콤플렉스’도 아니고 그저 그런 당연한 욕구다. 세상에 젊은 여자 싫어할 남자가 어디 있겠는가? 그건 여자 역시 마찬가지일 것이다. 늙은 여자들도 젊고 예쁜 미소년을 좋아한다.

    사실 나는 2005년 이후에만도 20대 여인 두 명이랑 사랑을 나누었다. 두 명 다 ‘속만 야한 여자’들이었다. 그래서 한 명은 내 쪽에서 사랑 나누기를 그만두자고 했고, 한 명은 그쪽에서 이별을 통고해왔다.

    나는 문학사상 쪽으로도 ‘탐미주의’를 추구하기 때문에 ‘겉이 야한 여자’에게 마음이 더 쏠린다. 이를테면 화려하고 화장 짙게 하고 섹시하게 생긴 여자들이다. 그런데 사실 그런 여자들은 주변에 남자들이 쌓이고 쌓인 상태다. 그러니 나 같은 늙은이를 좋아할 리 없다.



    나는 나이를 먹어갈수록 자본주의 국가인 한국의 현실상, 남자가 나이를 먹은 후에 젊은 여자와 사랑을 나누려면 ‘능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절실히 깨닫게 되었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능력’이란 곧 ‘금력(金力)’을 말한다. 쉽게 말해서 돈이 많아야 한다는 얘기다. 그러니 나 같은 월급쟁이 선생한테 ‘겉이 야한 여자’ 차례가 돌아올 리 없다.

    특히 한국처럼 남녀 간에 연애를 함에 있어 나이를 따지는 사회에서는 자연히 ‘남자는 능력, 여자는 색력(色力)’의 공식이 적용될 수밖에 없다. 따라서 ‘겉도 야하고 속도 야한 여자’와의 연애를 바라는 나의 소망은 죽을 때까지 실현될 가능성이 전혀 없어 보인다.

    여기서 한 가지만 부연 설명을 해두겠다. ‘속이 야한 여자’란 명기(名器)를 가진 색녀(色女)인 ‘옹녀’같은 여자를 말하는 것은 아니다. 나는 나이가 50이 넘은 이후에도 ‘비아그라’ 같은 약을 먹고 섹스를 해본 적이 한 번도 없다. 그렇다고 내가 정력이 센 것도 아니다.

    나는 소싯적부터 ‘생식적(生殖的) 섹스’를 혐오해왔다. 그보다는 ‘비생식적(非生殖的) 성희(性戱)’를 더 좋아한다. 다시 말해서 ‘놀이로서의 섹스’를 좋아한다는 얘기다. 그러므로 내게 있어 ‘속이 야한 여자’란 유희적 성희를 성교보다 더 좋아하는 여자를 말한다. 또한 남자를 그저 ‘오르가슴 제공자’로만 보지 않고 다정한 ‘성희 파트너’로 보아주는 여자를 가리킨다.

    그 다음으로 내가 죽기 전에 해보고 싶은 일은, 한국을 ‘성적(性的) 표현의 자유’가 이루어지는 문화적 선진국으로 탈바꿈시키는 것이다. 헌법에 분명 ‘표현의 자유’가 명시되어 있는데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에서는 성(性)에 대한 표현의 자유가 부정되고 있다. 아니, 부정되는 정도가 아니라 매도되고 처벌받는 열악한 상황에 놓여있다.

    마광수 소설가
    나는 내가 쓴 소설 ‘즐거운 사라’가 음란하다는 이유로 1992년에 현행범으로 ‘긴급 체포’되어 감옥살이를 했고, 대법원까지 간 재판에서 결국 유죄 판결을 받은 바 있다. 또한 그것 때문에 직장에서도 해직돼 오랫동안 백수생활을 하기도 했다. ‘죄’란 ‘범죄행위’가 있어야만 성립된다. 그런데 내가 겪은 필화사건은 오직 문학적 ‘상상’이 처벌된 사건이었다. 이뿐만 아니라 나는 2007년에도 다시 내가 쓴 글이 문제가 돼 불구속 기소되고 유죄판결을 받았다.(증거로 재판되는 게 아니라 판사의 ‘마음’으로 재판된다고 생각해 나는 두 번째 필화사건 때는 항소도 하지 않았다). 한마디로 말해서 우리나라에서 ‘성에 대한 표현의 자유’는 15년 동안 한 발자국도 나아가지 못했다는 얘기가 된다.

    그런데 더욱 기가 막힌 것은 이른바 ‘민주’와 ‘자유’와 ‘진보’를 외치는 지식인들마저 이런 상황에 관해서는 입을 다물고 있다는 사실이다. 아니 입을 다물고만 있는 게 아니라 나를 욕하고들 있다. 그들에게는 ‘성에 대한 얘기를 꺼내는 것’ 자체가 타락이나 퇴폐나 범죄로 인식되고 있는 것이다.

    지배 엘리트들이 그런 사고방식을 갖고 있는 형편이니 우리나라에서 합리적이고 민주적인 ‘문화발전’을 기대하는 것은 진정 요원한 일이다.

    나는 지금까지 60년을 살아오면서 한국이 ‘문화적 후진국’이라는 사실을 뼈저리게 절감했다. 내가 대학선생이라서 다른 대학교수들을 접할 기회가 많은데, 최고의 두뇌를 가진 대학교수 엘리트 집단이라 해도 성 문제에 대해서만큼은 무식하고 비합리적이고 봉건적인 사고방식의 테두리를 못 벗어나고 있다는 사실을 온몸으로 체감했다.

    서구의 지식사회나 이웃나라 일본의 지식사회에 견주어볼 때 한국의 지식사회는 18세기 계몽주의 시대에조차 다다르지 못한 상태에 있다. 아니 성 문제뿐만 아니다. 다른 제반 문제에 대해서도 우리나라 지식사회는 조선조 시대의 수구적 봉건윤리에 그대로 머물러 있다. 이렇게 참담한 형편이니, 우리나라의 성범죄 발생률이 우리가 ‘변태 왕국’이라고 비웃는 일본의 열 배나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나는 ‘성에 대한 표현의 자유’가 한국의 문화적 발전에 지렛대 역할을 할 것이라고 굳게 확신하고 있다. 그래서 내가 죽기 전까지라도 그 방면의 발전에 좀 더 일조하고자 하는 것이다. 하지만 지금까지 내가 겪은 일들로 봐서는 내가 죽기 전에 한국의 문화 민주화가 이뤄질 공산이 전혀 없다. 그래서 나는 지금 몹시 절망하고 있다.

    그 다음으로 내가 죽기 전에 해놓고 싶은 일은, 앞서 말한 바 있는 ‘놀이적 섹스(유희적 섹스)’의 이론을 정립해 놓는 일이다. 지금까지의 성 이론은 역시 프로이트에 의존해 있는데, 프로이트의 성 이론은 100여 년 전에 확립된 것이라서 21세기가 된 지금에는 별로 실용성이 없다. 특히 ‘변태적 섹스’의 이론이 더 그런데, 나는 변태적 섹스를 인정하고 싶지 않고 그것을 ‘특이한 성 취향’이나 ‘개성적 성 취향’으로 본다.

    다른 걸 예로 들 것도 없이, ‘동성애’ 문제만 봐도 그렇다. 이젠 동성애를 도착성욕이나 변태성욕의 결과로 인해 생겨난 것으로 보지 않고 있으며 성전환자(트랜스젠더)가 떳떳하게 기를 펴고 살 수 있고, 그들을 ‘성적 소수자’로 보아 사회적으로 보호하려는 분위기로 변해가고 있다. 또한 복장도착자(transvestite)도 마찬가지여서, 그들의 인권을 존중하려는 사회 분위기가 형성되고, 그들이 어엿한 직업인으로 사회활동에 참여하고 있다.

    그밖에 SM(sadomasochism) 섹스가 성적 유희로 인식돼 세계 곳곳에 ‘SM 클럽’이 늘고 있고, 페티시즘 역시 ‘페티시(fetish) 카페’가 생겨날 정도로 보편화하고 있다. 최근에 송혜교씨가 여주인공으로 나온 ‘페티쉬’라는 영화가 국내에서 상영된 것만 보더라도 이젠 ‘변태성욕’이라는 말 자체가 사라져가고 있는 것이다. 나는 그런 여러 가지 특이한 성 취향을 한데 섞은 ‘다형도착(多形倒錯)’이 앞으로의 섹스 경향을 주도해나갈 것이라고 본다. 그래서 그런 ‘미래적 섹스’를 이론으로 정립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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