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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상진 기자의 藝人 탐구 ⑦

영화배우 변희봉

“난 지금 기다리고 있습니다 진한 살 냄새 나는 영화를, 내 인생 마지막 작품을…”

  • 한상진│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greenfish@donga.com

영화배우 변희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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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배우 그만두고 고향 지키라”던 아버지의 유언
  • - 전라도 사투리 때문에 그저 묻어가던 성우 생활
  • - 1년 내내 마스크 쓰고 다니는 변희봉식 신비주의
  • - “봉준호 감독 만나 진짜 영화가 뭔지 알았다”
  • - “강우석 감독에게 술 사려고 100만원 수표 갖고 다녔는데…”
  • - “연기자의 길, 다시 하라면 못할 것 같다”
영화배우 변희봉
“전도착했습니다. 걸어 다니고 있으니 천천히 오세요. 비가 참 좋네요.”

약속시간이 아직 한참 남았는데, 영화배우 변희봉(69)이 전화를 해왔다. 부슬부슬 내리는 비를 맞으며, 하얀색 마스크를 쓴 그가 기자를 맞았다. 한여름에도 한겨울에도 벗지 않는다는 마스크, 이유를 물었다. “안 더우세요? 혹시 감기가….” 그가 답했다.

“사람들은 다 자기만의 취향대로 사는 것이니까요. 저는 그래요. 배우가 다 내놓고 다니는 것은 좀 그렇다, 좀 가려져 있어야 한다. 그런 생각이 들어서요.”

생각지도 못한 대답, 그러나 진지하다. 꼬박꼬박 존칭을 쓰는 노신사의 화법이 인상 깊다.

“많은 사람이 제 연기를 보면서 ‘우리 아버지를 닮았어’ 그래요. 그런데 난 그 말이 참 듣기가 싫어요. 드라마틱하지가 않잖아요. 요 몇 년 영화 하면서는 덜 듣게 됐지만, 배우는 목소리도 너무 내놓으면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 그래도 불편하잖아요, 한여름에 마스크는.

“집에서는 안 하니까, 우리 아파트에도 아직 나를 모르는 사람이 많아요. 그리고 요즘에는 아주 기가 막힌 게 나와서, (입을 가리키며) 요기가 터져 있는 게, 얼굴도 안 타게, 아주 좋아요. 집사람하고 식당 가서도 구석자리에서 마스크 살짝 내리고 먹고 나오면 아무도 몰라봐요.”

자리를 잡고 앉아 마스크 얘기를 하는데, 오고가는 사람들이 그에게 연신 인사를 해댄다. 오랜만에 선생님을 만난 듯 고개를 꾸벅 숙이는 사람도 있고, “야~ 변희봉이야” 이러면서 웃고 지나가는 사람도 있다. 변희봉은 그때마다 한쪽 눈을 살짝 치켜뜨며 인사를 대신한다, 약간 코믹한 모습으로. 생각해보니 어느 영화에선가 본 적이 있는 표정이다. ‘괴물’이었나, ‘살인의 추억’이었나….

▼ 사람들이 알아보는 게 불편하세요?

“불편하다기보다는 좀 새로워야 한다는 생각이 커요. 그러잖아도 훌륭한 사람이 많은데, 제가 좀 덜떨어진 거죠. 덜떨어져서 그래요.”

괴물, 살인의 추억

변희봉은 영화배우다. 간간이 TV에도 얼굴을 비추지만, 사람들은 이제 그를 영화배우로 기억한다. ‘미친 존재감’이니 ‘명품 조연’이니 하는 말도 영화에 출연하며 얻은 훈장. 출연 작품의 수나 비중은 그다지 크지 않았지만, 족적은 누구보다 넓고 깊다.

기자가 처음 그를 눈여겨봤던 작품은 ‘살인의 추억’(2003)이다. 그보다 앞선 영화 ‘플란다스의 개’(2000)에서 맡은 개 잡아먹는 경비도 인상 깊었지만, ‘살인의 추억’에서 맡은 형사반장 구희봉이 기자의 뇌리에 강하게 남아 있다. 논두렁에서 자빠져가며 송강호와 대사를 주고받는 7분30초짜리 원컷 원신이 압권이었다.

1300만명이란 경이적인 관객을 불러들였던 영화 ‘괴물’에서는 또 어땠나. 손녀딸을 찾는 한 가족의 리더, 변희봉식 카리스마에 할 말을 잃었더랬다. 죽음을 예감하며 가족들에게 손짓하는 장면이나 괴물을 노려보는 눈빛은 영화사에 길이 남을 컷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특히 이 대사가 사람들의 가슴을 때렸다.

“늬들 그 냄새 맡아본 적 있어? 새끼 잃은 부모 속 타는 냄새 말여. 부모 속이 한번 썩어 문드러지면 그 냄새가 십리 밖까지 진동하는 거여.”

변희봉은 ‘공공의 적 2’ ‘주먹이 운다’ ‘이장과 군수’ ‘더 게임’ 등에서도 수준 높은 코미디와 남다른 비장미를 선보여 호평을 받았다.

▼ 연기자 생활은 어떻게 시작하셨나요.

“내가 사실 1965년에 성우로 이 바닥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성우라는 게 뭐하는 건지도 모르고 시작했죠. 라디오 드라마를 듣다가 시험이나 한번 보자 해서 봤는데, 덜컥 합격했어요. 근데 전라도 사투리 때문에 아주 안 된다고 그랬어요. 교육받는 동안 선생님들이 ‘너는 저리 가, 너는 안 되니까 저리 가 있어’ 그랬습니다. 그 수모는 이루 말로 형용할 수가 없고, 비굴함이 말도 못합니다. 그렇다고 박차고 나가면 안 되니까, 일단 버텨보자 그랬습니다.”

참고로, 변희봉은 전남 장성 출신이다. 목포와 광주를 오가며 어린 시절을 보냈다. 지금도 그의 말투엔 구수한 전라도 사투리가 짙게 배어 있다.

▼ 사투리가 그렇게 심한데 성우시험에는 어떻게 붙었어요.

“뭘 낭독하는 건 제가 좀 했어요, 뭘 보고 하는 건. 하여간 (성우로) 들락거리면서 어린이 연속극, 8시 연속극 그런 거를 하고는 했는데, 뭐 숨도 못 쉬고 앉아서 세월을 다 보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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