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8월호

“브랜드 없는 회사는 살아남을 수 없다”

‘디자인 대가’ JOH 조수용 대표

  • 김유림 기자│ rim@donga.com

    입력2011-07-20 09:56:00

  • 글자크기 설정 닫기
    • 명함부터 건물 설계까지 ‘브랜드 디자인’
    • 회사 브랜드 감각 없으면 아무리 돈 많이 줘도 일 같이 안 해
    • NHN 그린팩토리는 내 자식 같은 결과물
    • 삼성·LG 일관성 없는 브랜드 전략 반성해야
    • 의식주와 관련된 나만의 브랜드 만들 것
    “브랜드 없는 회사는 살아남을 수 없다”
    경부고속도로 서울톨게이트를 지날 때마다 눈에 띄는 건물이 있다. 햇살을 받아 반짝 빛나는 높고 반듯한 직사각형 건물. 바로 대한민국 인터넷을 평정한 NHN 사옥 ‘그린팩토리’다. NHN의 첫 사옥인 그린팩토리는 2007년 6월부터 2년9개월에 걸쳐 지어졌다. 지상 28층, 지하 8층으로 그린팩토리는 세계적인 디자인 공모전 ‘레드닷어워드 2010’에서 5개 부문 본상 및 제33회 한국건축가협회상을 수상했다.

    그린팩토리 건설 및 디자인을 총괄한 사람이 바로 조수용 전 NHN CMD(Creative Marketing·Design) 본부장이다. 조 전 본부장이 지난해 말, 8년간 몸담았던 NHN에서 나와 올 5월 자신의 성을 딴 ‘제이오에이치(JOH)’란 새로운 회사를 차렸다. 현대카드 정태영 사장도 트위터를 통해 ‘디자인의 대가’라 칭한 조수용. 그는 무슨 일을 꾸미고 있을까?

    7월5일 오후 4시. 서울 강남구 논현동에 위치한 JOH 사무실로 따뜻한 볕이 쏟아졌다. 원목으로 꾸민 예쁜 카페테리아 뒤편에는 책이 빼곡한 책꽂이가 나란하다. 그 뒤로는 직원 1명만 쏙 들어갈 만한 독서실 같은 사무실이 있다. 벽돌담을 지나 사무실 한편에는 열 명도 족히 앉을 수 있는 열린 공간이 있다. 입구 가까운 쪽에 위치한 독립된 대표의 방은 사실 방이라기보다는 ‘부스’에 가깝다.

    명함부터 사옥까지

    “사무실을 하나의 마을로 꾸몄습니다. 커피숍, 서점을 지나면 광장도 있고 한구석에는 혼자만 집중할 수 있는 내 방도 있어요.”



    조수용 대표의 건축 철학은 “일하고 싶은 사무실을 만들자”다. 일부러 커피숍에 나가지 않아도 사무실에서 충분히 재충전할 수 있도록 한 것. 비용도 예상보다 많이 들지 않았다. 책상, 책장 등은 저렴한 합판으로 짰고 의자, 회의용 테이블 등은 고급으로 샀지만 다른 사무실로 이사해도 가져갈 수 있기 때문에 문제없다. 조 대표는 “조금만 신경 쓰면 50평 남짓한 임대 공간도 최고의 일터로 만들 수 있다”고 말했다.

    JOH가 하고자 하는 일도 이와 맥을 같이한다. JOH는 ‘브랜드’ 디자인 회사다. 명함, 회사 CI, 광고, 인테리어, 건물 설계 등 한 회사의 디자인과 관련된 모든 것을 컨설팅한다. 대부분 회사는 명함 디자인, 광고, 건물 설계 등을 각기 다른 업체에 맡겨 처리한다. 그러다보니 일관성이 없고 ‘기업 브랜드’를 형성하기도 어렵다. 조 대표는 “브랜드 디자인에 ‘줏대’가 없으면 마케팅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디자인 및 브랜드를 총괄해 관리해야 한다”고 말했다.

    JOH 직원 9명은 각 건축, 마케팅, 미디어, 기술 등 전문 분야가 다양하다. 한 회사가 JOH에 ‘브랜드 디자인’을 의뢰하면 각 분야 전문가가 총출동한다. JOH는 현재 한 금융업체와 건설업체의 브랜드 컨설팅을 맡고 있다. 제품 디자인부터 홈페이지 제작, 사옥 건설까지 관리한다. 브랜드 정책에 따라 제품 성격 및 분류 체계까지 달라진다.

    그는 ‘디자인=미대’ ‘마케팅=경영대’의 이분법에 반기를 들었다. 실제 JOH 사무실 책꽂이에는 경영학 서적과 디자인 서적이 사이좋게 섞여 있다. 조 대표는 “미대 출신 디자이너지만 출판되는 경영학 서적은 모두 다 보는 편”이라고 말했다.

    “브랜드를 키우는 건 아이를 기르는 일과 같아요. 디자인과 마케팅이 분리되면 외모와 내면이 다른, 이중인격의 아이가 되는 거예요. 생각하는 디자이너, 감각을 가진 마케팅 전문가, 나아가 두 분야를 넘나들 수 있는 ‘브랜드 전문가’가 돼야 합니다.”

    조 대표는 2000년 ‘프리챌’로고를 디자인했고, ‘녹색창’으로 유명한 ‘네이버’의 웹페이지를 제작했다. 10년 가까이 ‘IT 디자인쟁이’로 살았던 그, 왜 온라인이 아닌 오프라인에서 사업을 시작한 걸까?

    “인터넷 회사에 있으면서 사이버 세상이 아닌 진짜 세상에 대한 욕망이 생겼어요. 의식주, 실제 내 생활에 영향을 주는, 손에 잡히는 일을 하고 싶었어요.”

    그림 잘 그려도 브랜드 관심 없으면 탈락

    ‘브랜드의 대가’가 생각하는 ‘브랜드’란 무엇일까?

    “이제 마케팅보다 브랜드 자체에 대한 이미지를 만드는 게 중요해요. 마케팅이 길거리에서 호객행위하는 거라면 브랜드는 그 자체로 ‘아우라’를 갖는 거거든요. 각 브랜드는 자기만의 캐릭터가 있는데 소비자는 그 캐릭터에 동조하거나 그 캐릭터를 통해 나를 표현하기 위해 브랜드를 선택해요. 브랜드를 잘 만드는 건 모든 사업에서 출발점이자 종결점이에요.”

    조 대표는 직원을 뽑거나 사업 파트너를 정할 때 꼭 묻는다. “가장 좋아하는 브랜드가 무엇입니까?” 기자 역시 조 대표에게서 이 질문을 받았다. 평소 사용하는 화장품 브랜드 몇 개가 머릿속에 떠올랐지만 그 이유를 명확히 대답하기는 어려웠다.

    “신발을 살 때 ‘신발은 그냥 편하면 되지’ 하는 사람이 아무리 그림을 잘 그린들 좋은 신발 디자인을 할 수 있을까요? 브랜드에 대한 감각은 디자이너에게, 마케팅하는 사람에게, 심지어 회사 의사결정권자에게도 필수예요. 특히 브랜드 감각 없는 CEO는 아무리 유능한 디자이너랑 일을 하더라도 디자이너가 하는 말을 못 알아들어요. 결국 소통이 안 되니 좋은 결과물이 안 나오는 거죠. 저 역시 브랜드 감각 없는 CEO와는 아무리 돈을 많이 준대도 일 안 해요.”

    조 대표는 “상당수 대기업이 브랜드에 대한 감각 없이 일한다”고 지적했다. 그 중 하나가 신문사다. 그는 “신문사가 왜 인터넷 사이트를 그렇게 만드는지 이해가 안 된다”며 고개를 저었다. 신문과 홈페이지 디자인에 통일성이 없을뿐더러, 저급한 마구잡이 광고가 미관을 해친다는 것. 게다가 조회수를 높이기 위해 독자를 ‘낚는’ ‘섹시한 제목’은 독자의 실망 및 분노를 자아내고 이를 통해 브랜드 가치가 추락한다는 것이다.

    삼성, LG 등 세계적인 대기업의 브랜드 정책도 안타깝다. 조 대표는 “디자인에 대한 일관적인 철학 없이 ‘건별로 이기기 전략’을 쓰니 자타의적으로 세계 선두 업체를 따라가게 된다”며 “삼성은 애플과의 송사를 계기로 브랜드 디자인 전략을 돌아봐야 할 것”이라고 꼬집었다.

    “아무리 품질 좋은 신발, 가방이라도 경쟁 브랜드를 따라 한 거라면 그 브랜드는 죽은 거예요. 명품이든 싸구려든 자기만의 길이 있어야 해요. ‘개중에 나아서’ 소비자에게 선택받는 브랜드는 결과적으로는 살아남지 못해요.”

    그는 좋아하는 브랜드로 일본의 ‘무지(MUJI)’‘유니클로(UNIQLO)’ 등을 꼽았다.

    “무지는 ‘브랜드’의 편견을 없앤 브랜드예요. 이전에는 브랜드 하면 가슴팍에 커다랗게 로고를 박는 거라고 생각했어요. ‘이거 비싼 거야’라는 의미로 말이죠. 그런데 ‘무지’는 이름을 숨겨요. 옷도 실용적이고 저렴하죠. ‘무지’의 보이지 않는 브랜드의 힘은 굉장해요. 사람들은 ‘무지’를 입으면서 자기 자신도 쿨하고 다른 사람 눈을 신경 쓰지 않는다는 ‘자기표현’을 하는 거예요.”

    그는 최근 인기를 끄는 스페인 SPA브랜드 ‘자라(ZARA)’ 역시 높이 평가했다.

    “‘자라’는 자유롭고 개방적인 옷으로 큰 인기를 끌죠. 그런데 같은 회사에서 ‘마시모두띠’라는 서브 브랜드를 냈는데 ‘자라’ 점포에서는 안 팔아요. 강남 압구정동 등에 별도의 점포를 열었죠. 이미 ‘자라’의 유통망이 넓으니 ‘마시모두띠’도 그걸 이용하면 더 쉽게 홍보할 수 있을 텐데 왜 안 그럴까요? 또 다른 ‘인간형’을 만드는 거예요. 각기 다른 성격을 가진 다른 아이를 키우듯, 브랜드를 엄격히 관리하는 거죠. 사람들은 그런 ‘자라’의 분명함을 좋아하고요.”

    “브랜드 없는 회사는 살아남을 수 없다”

    NHN 그린팩토리 내부와 전경.



    “삼성, 디자인 철학 없이 ‘건별로 이미지 ’전략”

    네이버 페이지의 혁신을 이끈 조 대표. 하지만 8년간 NHN에서 근무하면서 가장 뿌듯했던 건 2009년 그린팩토리가 완공됐을 때다. 그는 “시작은 2005년 분당 사옥으로 이사 오면서 오피스 건물 9층에 직원 휴게실 대신 카페를 넣기로 결정한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 이전 사옥에서 직원들이 건물 1층 커피전문점에서 회의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대부분 기업은 고객을 대하는 고객센터나 매장 외부공간에 신경을 많이 쓰지, 직원들이 일하는 공간에는 큰 관심이 없죠. 하지만 직원들이 일하는 공간은 그 회사의 정체성이자 문화예요. 사옥을 잘 짓는 것은 사원을 위한 ‘선물’이 아니라는 거죠.”

    그린팩토리는 자전거 출퇴근족을 위한 자전거 거치대, 샤워실 등을 설치하고, 머그컵 이용 운동을 펼치는 등 환경 친화적인 인테리어, 건축을 했다. IT업종은 팀 이동이 많은 만큼 공간 변화를 자유롭게 할 수 있게 인테리어했다. 각 팀은 하나의 ‘촌락’이고 한 층은 하나의 ‘마을’이 된다. 지하 1층 구내식당부터 지상 27층까지 그의 손길이 안 닿은 곳이 없다. 그의 노하우는 책 ‘NHN이 일하는 27층 빌딩 그린팩토리 디자인북’에 자세히 담겨 있다. 한 페이지 넘길 때마다 아주 작은 결정 하나를 위해 머리를 싸맸을 조 대표의 모습이 떠오른다.

    “NHN의 경우 인터넷 세상에 있는 회사잖아요. 네이버의 실체를 보여주는 건 이 건물이 처음이었어요. 그만큼 심혈을 기울여 만들었죠. 그린팩토리를 통해 사람들이 ‘아 NHN이 이렇게 큰 회사구나’ ‘이렇게 직원을 배려하는 마음이 있는 회사구나’ 하는 생각을 하길 바랐어요.”

    IT 1세대, 자식에게 회사 안 물려줄 것

    조 대표의 취미는 캠핑. 11살, 9살 난 두 아들을 데리고 한 달에 두 번은 캠핑 간다. 캠핑이 좋아진 계기도 ‘디자인’이었다.

    “캠핑용품은 ‘디자인의 극(極)’이에요. 가볍고 튼튼하고 엄청나게 실용적인 동시에 멋있어야 해요. 단순히 실용적이기만 하면 군용품이죠. 캠핑용품을 좋아하다보니 자연히 캠핑도 자주 다니게 되고 캠핑 마니아가 된 거죠. 사무실에서 사용하는 컵, 탁자, 의자 등도 대부분 캠핑용품이에요.”

    조 대표는 의식주에 관심이 많다. 종종 트위터(@sean_joh)를 통해 좋은 레스토랑을 알린다. 조 대표의 추천리스트는 작은 떡볶이집부터 고급 레스토랑까지 종류가 아주 다양하다. 조 대표는 “크기와 상관없이 주관이 확실한 가게를 좋아한다”며 “나 역시 언젠가 내 이름을 내세운 ‘브랜드 숍’을 만들 것”이라고 밝혔다. 조 대표는 자신의 성공을 ‘행운’이라 표현했다.

    “책 ‘아웃라이어’ 내용처럼, 저는 1995년 대학을 마치고 기가 막히게 소프트웨어 열풍을 타고 성장했어요. 제가 받은 이 사회적 이익을 후배들에게도 꼭 전해줘야죠.”

    이런 생각을 하는 건 그뿐만이 아니다. 조 대표는 “1995년부터 10여 년 동안 IT 업계를 이끈 사람들 중 자식에게 재산을 물려주려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며 “이들은 한국 경제의 태생을 바꾸는 주역이 될 것”이라고 확신했다.

    “자식한테 회사를 안 물려주니 NHN, 다음 같은 IT업체는 주인 없는 회사가 될 거고 현재 재벌 중심의 경제 상황이 송두리째 바뀔 거예요. 10년 후쯤 이들이 우리 사회의 주체가 되는 시기에는 브랜드에 대한 철학 없이는 결코 살아남을 수 없게 될 겁니다.”



    인터뷰

    댓글 0
    닫기

    매거진동아

    • youtube
    • youtube
    • youtube

    에디터 추천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