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8월호

정글에서 ‘로프 타기’로 철권 조지 포먼을 눕히다

팍스아메리카나의 실상을 관통하는 대서사

  • 안병찬│전 한국일보 부국장·언론인권센터 명예이사장 ann-bc@daum.net

    입력2011-07-20 13: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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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무하마드 알리의 인생 대서사는 미국을 관통하면서 현재에도 진행되고 있다. 일찍이 20대 챔피언일 때 그는 미합중국을 상대로 ‘1인의 전쟁’을 벌였다. 혈혈단신으로 총 없는 ‘반전(反戰)의 전쟁’을 전개했다. 기독교 백인이 기득권을 독점한 아메리카합중국의 모순에 대한 저항이고 캠페인이었다. 그 투쟁 과정에서 그는 기독교 노예 이름을 버리고 이슬람교로 개종해 무하마드 알리라는 이름을 갖는다.

    그가 챔피언으로서 미합중국에 온몸을 던져 저항하던 모습은 팍스로마나(로마제국)에 반기를 든 노예의 검투사 스파르타쿠스를 연상시킨다. 또는 이슬람 원리주의 전사로 팍스아메리카나의 철천지원수였던 오사마 빈 라덴의 일면을 생각하게 만든다. 그러므로 우리는 알리의 개인사(個人史)를 통해 미국의 내면과 모순을 들여다 볼 수 있다.

    이 원고는 당초 무하마드 알리가 로마올림픽에서 라이트헤비급 금메달을 획득하고 50주년이 되던 해인 2010년에 맞추어 기획한 것이다. 필자는 르포르타주 저널리즘의 형식에 따라 대반전의 연속인 알리의 서사적 삶을 재구성한다. 르포르타주는 역사성과 문학성을 지향하는 비허구적 저널리즘 기록 형식으로 깨끗한 서정, 냉철한 숫자, 체험에서 우러나는 명증(明證)을 근간으로 삼는다는 것이 필자의 지론이다.

    정글에서 ‘로프 타기’로 철권 조지 포먼을 눕히다

    1974년 10월30일 아프리카 자이르 킨샤사에서 열린 WBA 헤비급 타이틀전에서 챔피언 조지 포먼이 알리의 강펀치를 맞고 휘청거리고 있다.

    들어가며

    흑인이자 이슬람교도인 무하마드 알리는 세계를 뒤흔든 ‘전설적인 복서’라는 명성을 뛰어넘어 새로운 삶을 살고 있다. 그는 20년째 중증 파킨슨병을 앓으면서도 결코 주저앉지 않고 평화주의자의 삶과 인도주의의 삶을 지향하면서 인격적인 크기를 더하고 있다. 1942년 1월17일생이니 올해 나이 69세다.



    6월18일은 미국의 ‘아버지의 날’이었다. 그날 무하마드 알리의 셋째딸인 해나 야스민 알리(34)는 CNN닷컴에 ‘나의 아빠, 무하마드 알리’라는 글을 올렸다.

    해나는 아버지 알리를 네 가지로 평가했다.

    첫째, 링 위에서나 밖에서나 맞닥뜨리는 어떤 갈등도 맞서 싸우기를 두려워한 적이 없다.

    둘째, 평화와 인도주의를 위해 헌신하고 있다. 이슬람 국가인 이라크와 레바논 등지에서 미국 인질들을 석방하려고 평화의 사절로 활동해왔다.

    셋째, 중증 파킨슨병을 앓으며 동작이 무척 느려졌지만 남을 돕는 일에는 머리와 가슴이 명석하다.

    넷째, 자기의 명성을 선행에 활용하고 정당하게 구현한다.

    해나는 아버지의 자서전 ‘나비의 영혼’을 2004년에 집필했다. 그 내용은 부녀의 관계와 아버지의 영향 등에 관한 일화를 담은 것으로 이슬람 수피사상(수피즘)의 신비주의가 깔려 있다. 일찍이 기독교도에서 독실한 이슬람 신도로 개종한 알리는 코란에 계시된 정신적 내용을 깊이 명상하고, 수행을 통해 진리를 체득한다는 수피사상을 신봉하고 있다.

    나비의 영혼

    인도주의자의 아이콘으로 모습을 바꾸었지만 알리는 천생 권투 챔피언으로서의 인연을 이어간다. 지난 5월2일 영국 기사 작위를 받은 백인 복서 헨리 쿠퍼가 77세 생일을 이틀 앞두고 사망했다. 쿠퍼는 1963년 런던 웸블리 경기장에서 열린 세기의 흑백대결에서 알리의 턱에 왼손 훅을 명중시켜 알리의 권투인생에서 첫 다운을 빼앗은 명장면으로 이름을 올렸다.

    알리는 “나의 친구 헨리 쿠퍼 경의 죽음에 할 말을 잃었다. 2년 전 우리는 영국 윈저에서 열린 마술경기를 함께 보았다. 그는 나에게 언제나 따뜻하고 감싸 안는 미소를 보내주었다. 그는 위대한 파이터였고 신사였다”는 요지의 성명을 발표했다.

    51년 전에 그는 로마올림픽에 참가해 권투경기 라이트헤비급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열여덟 살이던 그는 캐시어스 클레이라는 본래의 흑인노예 이름으로 미국 국가대표 선수가 되어 출전했다. 올림픽 금메달 획득은 알리 권투역정의 화려한 출발을 알리지만, 동시에 흑인의 정체성을 자각하면서 더 크고 넓은 삶의 무대를 개척하는 계기가 되었다.

    2011년은 그가 3년 반의 유배생활을 거친 끝에 ‘정글의 혈전(더 럼블 인 더 정글)’이라는 이름을 얻은 경기를 치르고 35주년이 되는 해다. ‘정글의 혈전’은 그가 캐시어스 클레이라는 이름을 버리고 무하마드 알리라는 이슬람식 새 이름을 가진 후 아프리카의 자이레공화국 수도 킨샤사에서 벌인 세계헤비급통합선수권 결정전의 이름이다.

    흑인의 정체성을 되찾기 위해 저항하고 분투하던 그는 20대 철권인 무패의 챔피언 조지 포먼을 상대로 정글의 혈전을 펴는 권투 무대를 십분 활용했다. 그리하여 킨샤사를 자기 의지대로 아프리카인의 자존을 한껏 선양하는 거대한 캠페인 장으로 바꾸어 버렸다.

    2011년은 알리가 파킨슨병 진단을 받았다고 발표하고 27년이 지나간 해다. 불치병에 걸린 사실을 안 것은 한창 활동할 나이인 42세였다. 뇌 신경세포가 점차 소실되어 안정(眼睛) 떨림, 경직, 자세불안이 나타나는 신경계의 퇴행성 질환이 파킨슨병이다. 세상은 알리가 치명적인 불행 앞에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어 그의 시대는 종막을 고할 것이라고 여겼다.

    그는 일반의 상식을 뒤집었다. 불치의 질병을 의연하게 정면으로 받아들이면서 후기의 인생을 열어 나가기 시작한다. 알리는 한층 원대한 목표를 세워서 어린이를 아끼고 가난한 사람을 구조하고 평화를 사랑하는 봉사적인 일을 꾸준하게 실천하고 있다.

    올림픽 금메달을 딴 이래 반세기를 이어온 알리의 인생 대서사는 용기 있는 칠전팔기의 삶이 어떤 것인지 보여준다.

    삶의 대서사

    무하마드 알리는 젊은 시절 권투에 전념하면서 “나는 가장 위대한 사람이다(I am The Greatest)”라고 공언했다. 이 말은 허장성세가 아니었다. 그는 권투기술을 갈고 닦으며 챔피언의 길을 가면서 홍보 전략상 허풍 개그를 고안하고 심리 전략상 랩을 개발해서 스타덤에 오르는 데 활용했다. 권투전문가들은 그가 ‘정글의 혈전’에서 스스로 고안한 ‘로프 타기 기술’을 보여주자 놀라서 말했다. 미친 짓 아냐?

    그는 이처럼 사람들의 의표를 찌르며 세계헤비급 챔피언에 세 번이나 오르는 대기록을 세우고 미국 역사상 가장 위대한 챔피언이 된다. 알리는 미국 땅에서 흑인으로 사는 삶이 얼마나 불평등한지 깨닫자 자기가 믿는바 흑인성(네그튜드)을 되찾기 위해 온몸을 던져 투쟁했다. ‘정글의 혈전’은 알리에게 일생일대의 권투행사이자 흑인인권행사라는 상징성을 갖는다. 그는 흑인의 문화적 유산에 대한 자각과 자부, 흑인성을 되찾기 위한 선구자적인 투쟁을 통해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대중의 영웅’으로 떠오른다.

    오늘도 그는 중증으로 이행하는 파킨슨병과 하루하루 싸우고 있다. 병이 깊어서 이미 얼굴은 표정을 잃었고 몸은 행동력을 상실했지만 그는 어린이를 사랑하고 평화와 통합을 전파하는 박애주의자의 얼굴을 보여준다.

    2009년 여름에 알리는 조부의 뿌리를 찾아서 백인국인 아일랜드를 처음 방문했다. 그때 전담 사진작가로 일주일 동안 알리를 동반한 한국인 김명중씨는 한 인터뷰에서 알리가 어린이를 얼마나 좋아하는지, 실례를 들었다.

    “…약이라도 먹지 않으면 몸 떨림을 막을 수 없다는데도 그는 자기 힘으로 서 있으려고 했다. 게다가 제 아이들을 보고나선 그렇게 환하게 웃어줄 수 없었다. 두 살 난 내 막내딸을 무릎에 앉히고 10분을 쳐다보았다.”

    알리의 딸 라셰다 알리도 파킨슨병을 앓고 있는 아버지가 늠름한 자세를 결코 잃지 않았다고 증언한다.

    “아버지는 한 번도 ‘왜 내게 이런 병이…’ 하고 원망한 적이 없어요. 지금도 뚜렷한 자기 목표를 가지고 있지요.”

    철인(鐵人)과 철인(哲人)의 획을 긋다

    알리는 모든 세대와 소통하는 ‘마법의 인물’이다. 파란만장한 인생역정은 너무도 극적이어서 ‘살아 있는 현상’으로 여겨진다. 알리는 승리와 좌절과 극복을 통해 여러 가지 인간상을 드러냈다.

    그는 챔피언이고 예능인이다. 그는 저항자이고 선구자다. 그는 우상(아이콘)이고 박애주의자다. 이렇게 다면적인 역할로 무하마드 알리는 살아 있는 전설의 인간이 되었다. 그는 권투라는 타격기에서 주먹 하나로 영웅적인 챔피언이 된 철인(鐵人)의 모습을 넘어서, 권투에 문화와 사상을 혼입해 마침내 박애주의자가 되는 철인(哲人)의 모습을 보여준다.

    알리는 패배할 줄 알고 패배를 통해 또다시 승리할 줄 아는 용기로 진정한 ‘삶의 챔피언’이 되었다.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은 그의 역정을 시간대에 따라서 올림픽 금메달 수상자-루이빌의 떠버리-건방진 챔피언-흑인 무슬림 개종-징집 거부-증오의 시간-순교-챔피언 재탈환-독점 행진(로드쇼)으로 이어진다고 정리했다.

    필자는 무하마드 알리의 삶을 따라가면서 그가 어떻게 대스타가 되고 서사적 영웅이 되고 흑인성의 선구자가 되었는지, 그리고 불치의 병마와 싸우면서 어떻게 평화를 향하는 박애주의자가 되었는지, 일련의 삽화와 사건을 찾아가며 서술하려고 한다. 연대기 순으로 알리의 권투역정과 인생행로를 풀어나가되, 그중에서 의미가 큰 부분은 획(劃)을 그어 강조하고 해석해나갈 것이다.

    이야기의 도입부는 아프리카 킨샤사에서 벌어진 ‘정글의 혈전’의 극적인 장면으로 카메라가 접근하며 확대하는 ‘줌 인’ 형식을 빌려서 서술할 것이다. 마침 필자는 ‘정글의 혈전’이 벌어지고 1년 반 뒤에 킨샤사에 가본 일이 있기에 현장 묘사에 그 경험을 혼입한다.

    주인공 이름은 성장 연대에 따라서 처음에는 캐시어스 클레이로 써나가다가 1963년 이름을 바꾼 후부터는 무하마드 알리로 표기하기로 한다.

    ‘로프 타기’ 신기술

    다들 이제 경기는 끝났다고 생각했어요.

    텔레비전으로 보면 포먼이 허덕이는 알리를 때려잡는 듯 보입니다. 알리는 로프로 가서는 안 됩니다. 그런데 거기 등을 기댄 거예요.

    내 기사에는 창밖으로 몸을 내밀고 지붕에 뭐가 있는지 보는 자세라고 썼지요. 그런 알리에게 포먼이 맹공을 가했어요. 곧 쓰러질 것처럼 보였습니다. 아주 빠르고 맹렬한 포먼의 공격이었어요.

    노먼한테 그랬죠.

    “걸렸어.”

    다운되는 건 시간문제였어요. 로프가 바닥까지 반쯤 내려갔어요.

    동굴에 웅크린 자세 같았죠.

    좀 어설프지만 아주 강력한 양 훅, 이게 마치 애들 싸움처럼 되어갔어요.

    그 라운드와 다음 라운드, 그 다음 라운드도 알리는 로프에 기댄 채 포먼에게 계속 뭐라고 했어요.

    별난 광경이었어요. 그 와중에 뭐 그리 할 말이 많은지.

    포먼은 스파링 파트너에게 하듯 줄기차게 강타를 퍼붓고,

    알리는 그네라도 타듯 출렁거렸죠.

    사방으로 몸을 미끄러뜨리면서 이따금 한 대씩 받아치면서 이랬죠.

    “조지, 실망이야. 생각보다 별로잖아, 조지. 이거 별로 안 세잖아, 조지. 이래서 팝콘이라도 깨겠어? 조지, 안 되지!”

    포먼은 격분했지요. 갈기고, 갈기고 또 갈겼어요.

    강펀치, 강펀치, 강펀치를!

    5회 중반까지 포먼은 펀치를 쏟아 부었지요.

    3개 회전에 걸쳐 내내.

    알리는 포먼이 강펀치를 먹이면 상체를 로프 밖으로 나갈 수 있을 만큼 한껏 젖히면서 상대 주먹의 힘을 약화시킨다. 흔들리는 갈대처럼 로프 타기로 에너지를 흡수한다. 상대 펀치가 얼굴에 들어오는 순간 옆으로 얼굴을 홱 돌려 힘을 흡수하는 이치와 같다.

    알리가 고안한 로프 타기 즉 ‘로프-아-도프’(원문 rope-a-dope)라는 신기술이었다.

    알리가 간간이 뻗어 치는 빠르고 강한 펀치와 상대의 주먹을 되받아치는 크로스 카운터로 포먼의 얼굴은 금세 눈에 띄게 부풀어 오른다. 오른팔을 뻗었을 때 왼팔로, 왼팔을 뻗었을 때 오른팔로 되받아 치는 것이 크로스 카운터다. 포먼은 수도 없이 많은 펀치를 던졌으나 알리에게 제대로 된 유효타를 먹이지 못했다.

    알리는 로프를 타며 다시 독설을 퍼붓는다. “때릴 수 있어? 넌 못 때려. 넌 밀고 있잖아!”

    알리의 ‘로프 타기’ 테크닉으로 포먼의 에너지는 점차 고갈한다.

    알리는 클린치로 엉킬 때마다 포먼에게 자기 체중을 전부 얹거나 기대거나 목을 붙들고 찍어 누르는 작전을 되풀이한다.

    정글에서 ‘로프 타기’로 철권 조지 포먼을 눕히다
    4라운드와 5라운드. 알리가 4라운드 초반에 던진 한 번의 콤비네이션(단발이 아니라 연속 다발의 펀치)과 5라운드 끝판에 던진 몇 차례의 콤비네이션으로 포먼은 비틀거렸다.

    “조지, 사람들이 네 펀치가 좋다던데! 조지, 네 펀치가 조 루이스만큼 강하다던데!”

    알리는 ‘갈색 폭격기’라는 별명을 얻으며 1937년부터 12년 동안 세계헤비급 선수권을 보유한 전설의 복서 조 루이스를 들먹이며 포먼을 조롱한다.

    KO승! 8라운드

    8라운드.

    알리의 빠른 라이트 잽에 포먼이 휘청한다. 뒤로 물러선다. 포먼의 라이트 훅. 알리의 라이트. 다시 연타당한 포먼. 포먼의 얼굴에서 땀이 흩날린다. 알리가 포먼의 펀치를 소진시키고 반격한다.

    조지 플림턴은 얼떨떨한 표정을 하고 있는 노먼에게 말한다.

    “포먼한테 악령이 들었나봐!”

    8회가 30초 남았을 때 알리가 터뜨린 최후의 콤비네이션 연속타.

    첫 번째 왼팔 훅이 포먼의 머리를 위로 젖히게 만든 순간 뒤이어 강력한 오른팔 스트레이트가 얼굴에 명중한다. 알리는 다시 라이트 어퍼컷을 가할 준비를 했지만 뻗을 필요가 없다.

    포먼은 비틀거리더니 빙글 돌아서 링 위에 등을 대고 떨어진다.

    주심 잭 클레이턴이 쓰러진 포먼을 향해 카운트에 들어간다.

    “…투, 스리, 포, 파이브, 식스, 세븐…” 에이트에 포먼이 가까스로 몸을 일으켰으나 때는 이미 늦었다.

    알리의 그 끝내기 한 방. 포먼이 쓰러지고 알리는 다가갔다. 알리는 다시 라이트 어퍼컷을 준비했지만 쓰지 않았다. 상대가 침몰하는 이 장관을 망칠 필요가 없었다.

    아나운서 1의 외침

    끝입니다! 경기가 끝납니다!

    무하마드 알리의 8라운드 케이오승!

    조지 포먼에게 케이오승을 거둡니다.

    이겼습니다! 무하마드 알리가 승리했습니다!

    무하마드 알리가.

    무하마드 알리가.

    아나운서 2의 외침

    갑자기 그 순간이 왔습니다.

    그건 ‘팬텀 펀치(거짓 펀치)’가 아니었어요.

    조지 포먼이 바닥에 누운 걸 보세요.

    팬텀 펀치가 아니라 진짜 펀칩니다.

    포먼이 다운됐어요. 아웃이에요!

    당초 알리의 심산은 달랐다. 킨샤사의 더위 때문에 포먼과 대결해서 내내 춤추는 권투를 할 수 없다는 점을 계산했다. 알리는 ‘로프 타기’ 전술을 써서 포먼이 자기를 몰아치다가 힘이 빠질 때를 노렸다. 알리의 코너맨들은 로프에서 떨어지라고 악을 썼지만 알리는 자기 전략을 7라운드까지 고집했다.

    마침내 8라운드. 알리는 로프에서 떨어져 나오기 무섭게 모두 전율할 넉 아웃 펀치를 포먼에게 날렸다.

    알리는 재빠른 발놀림에 의존해 춤을 추며 움직이는 본래의 복싱 기법을 깨끗이 버리고, ‘로프 타기’라는 색다른 전술을 응용했다. 이 변화로 알리는 다시 왕이 되었다.

    ‘정글의 혈전’은 헤비웨이트급 복싱 사상 최고의 경기였다.

    알리의 ‘아프리카 축가’

    경기가 막 끝나자 우기이던 킨샤사에 기다렸다는 듯이 장대비가 쏟아졌다.

    단 한 시간 만에 경기장의 라커룸이 물에 1m 이상 잠길 정도로 폭우가 내렸다.

    새벽인데 그 빗속에 알리의 승리 소식을 들은 수많은 아프리카 사람이 길에 나와서 펄쩍펄쩍 뛰었다. 알리는 그런 아프리카 사람들과 어울려서 흑인정신을 가다듬는 사상가로서 간결하면서도 멋진 말을 던졌다.

    아프리카계 아메리카인(미국 흑인)은 아프리카인인 당신들만 못하다. 더러는 부자도 있지만 가난한 당신들이 지니고 있는 긍지가 없다. 우리는 미국에서 망쳤다. 우리가 잃어버린 그 긍지를 아프리카인들은 반드시 지켜야 한다.

    우리에겐 많은 문제가 있지만 우리 스스로 풀어야만 한다.

    매춘, 마약, 패싸움.

    흑인들은 자신에 대해 아는 것이 없다.

    정신적으로 백인들처럼 길들어왔다.

    주로 백인들이 그렇게 만든 거다.

    자신을 알도록 가르치는 일, 스스로 뭉치고 굳게 결합하도록

    교육하는 일은 쉽지 않다.

    흑인들이 이제 백인처럼 되어버렸다.

    당장 생각을 개조해야 된다.

    자기 역사와 자기 언어를 가르치고 동족을 위해 이바지할 수 있도록.

    백인들한테 구걸해서는 안 된다.

    스스로 해나가야지.

    안병찬

    정글에서 ‘로프 타기’로 철권 조지 포먼을 눕히다
    경찰에 앞서 살인사건 2건을 해결해 이름을 날린 사건기자 출신. 한국일보 베트남 특파원 시절이던 1975년 남부 베트남 패망(베트남 통일)의 마지막 현장을 취재하고 탈출한 후 르포르타주 ‘사이공 최후의 새벽’을 발간해 서울시 문화상을 받았다. 한국일보 편집부국장·주불특파원·논설위원을 거쳤고 주간지 시사저널 편집·발행인을 역임한 후 경원대 언론학 교수로 자리를 옮겼다. MBC 시사프로 ‘안병찬의 일요광장’ 사회자·방송위원회 제1보도교양위원회 위원장·한국비디오저널리스트협회장·언론인권센터 이사장을 역임했다. 언론학박사로 현재 민영통신 뉴시스의 고정칼럼 ‘기자 49년차―안병찬의 영상르포르타주’(http://www.newsis.com)를 집필하고 소셜뉴스 위키트리의 개인 데스크 ‘안병찬 기자 49년차’(http://www.wikitree.co.kr)를 운영하며 언론인권센터 명예이사장을 맡고 있다. ‘신문 발행인의 권력과 리더십’ 등 저서 16권이 있다.


    정글에서 ‘로프 타기’로 철권 조지 포먼을 눕히다
    1장 / ‘정글의 혈전’

    1 콩고강 킨샤사로

    콩고 강.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강’이라고 한다. 모든 강을 집어삼킨다는 야성적인 강이다. 장장 4375㎞의 물줄기는 거대한 포물선을 그리며 아프리카 중부내륙의 광활한 자이르 국토를 흐르니, 지리적으로 콩고 강과 자이르는 일심동체를 이루고 있다.

    킨샤사.

    콩고 강 어귀 가까이에 있는 열대림의 수도다.

    1976년 5월 초 나는 자이르 수도 킨샤사에 들어갔다. 한국일보 특파원으로서 아프리카 대륙 동부-남부-서부를 35일 동안 일주하며 ‘아프리카의 화맥(火脈)’을 취재하는 길에 기착한 곳이다. 세기의 권투챔피언 무하마드 알리가 주연한 ‘정글의 혈전’이 벌어지고 1년 반이 지났을 때였다.

    저녁 때 킨샤사 북쪽 강변에 나가 콩고 강을 카메라에 담았다. 열대우림 너머 서쪽 하늘은 석양을 받아 붉게 빛나고 흰 거품을 일으키며 흐르는 콩고 강 탁류는 수면에 그 장엄한 붉은 태양 덩어리를 담아서 길게 투영하고 있었다. 과연 아프리카의 야성과 생명력을 운반하는 대동맥다운 강이었다.

    그런데 보라. 석양녘의 콩고 강 기슭에서 흑인 모녀가 발가벗고 목욕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나는 아프리카의 적나라한 장면을 담으려고 두근거리는 가슴을 진정시키며 카메라를 겨냥했다. 처녀는 렌즈를 의식하자 스스럼없이 일어서서 풍만한 엉덩이를 드러내며 자기 몸매를 뻐기는 것이 아닌가.

    1년 반 전인 1974년 10월30일 킨샤사는 너무도 아프리카적인 동시에 너무도 아메리카적인 ‘뿌리의 제전’을 연출했다.

    혈전과 대축제

    이 정글의 도시에서 아프리카계 미국인(아프리칸-아메리칸 또는 아프리코-아메리칸)인 두 헤비급 권투선수 무하마드 알리와 조지 포먼이 ‘타이탄의 격투’를 벌였다. 그 챔피언 타이틀전에는 ‘정글의 혈전(The Rumble in the Jungle)’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대전 시각은 10월30일 새벽 4시.

    세계의 줌렌즈는 객석이 6만2800석인 킨샤사의 ‘5월20일 스타디움’(프랑스어 원명: ‘스타드 뒤 뱅트 메’·Stade du 20 Mai)에 초점을 맞추어 점점 다가가고 있었다.

    킨샤사에서 일어난 ‘정글의 혈전’은 단순히 세계헤비급 권투의 헤게모니를 다툰 승부의 한판이 아니었다. 아메리카 땅에 옮겨간 아프리카인과 아프리카 땅에 남아 사는 아프리카인이 만나서 연출한 아프리카 전통 문화의 대축제였고 아프리카의 뿌리와 아프리카의 정체를 찾는 상징적이고 역동적인 정치 쇼였다.

    ‘정글의 혈전’을 스포츠와 사상의 양면에서 절정의 축제로 이끈 주역은 아프리카계 아메리카인이자 이슬람교도(아프리칸-아메리칸 무슬림)인 무하마드 알리였다.

    2 희대의 흥행

    미국 뉴욕.

    1974년 어느 날 권투 흥행사 돈 킹이 기자회견장에 나타났다.

    그는 예상을 훌쩍 뛰어넘는 ‘타이탄의 대결’이 성사되었다고 발표한다. 오는 9월에 미국에서 멀리 떨어진 아프리카 킨샤사에서 도전자인 전 세계헤비급챔피언 무하마드 알리와 현 세계헤비급챔피언 조지 포먼이 맞붙기로 했다는 내용이다.

    돈 킹 : 자, 두 사람의 계약이 현실로 이루어졌습니다. 무하마드 알리와 조지 포먼이 자이르의 킨샤사에서 대결합니다. ‘럼블 인 더 정글’. 이것이 우리가 이번 챔피언전에 붙인 이름이오.

    기자 : 뭐요 돈 킹, 자이르라고요?

    돈 킹 : 그렇소, 자이르요.

    기자 : 이봐요, 왜 남극 같은 데서 열지 그래요?

    기자 : 뉴욕에서 열면 큰일 나요?

    돈 킹 : 여러분은 중요한 것을 놓쳤어요. 보시오. 나는 400년의 인종 차별을 극복하고 새로운 흑인 해방의 날 새벽을 여는 꿈을 꿔왔단 말이오. 이번 대전은 미국에 사는 우리의 정신을 선양해줄 것이고 희망을 채워줄 것이오. 우리 영혼을…우리 흑인 프롤레타리아의 포기할 수 없는 요구를 말이오. 무슨 말인고 하면 이번 대전은 게토라고 부르는 흑인 거주지에 가득한 실망과 낙담, 그리고 모욕감을 희망으로 바꿔줄 거란 말이오.

    기자 : 참 나, 돈, 돌지 않았어요?

    기자 : 돈, 당신은 사전의 어떤 항목을 몽땅 외워버린 사람처럼 유식하게 구네요.

    돈 킹의 말에 보도진은 기가 차다는 반응이다.

    위의 장면은 완벽주의를 고수한다는 할리우드 감독 마이클 만이 만든 영화 ‘알리(Ali)’의 도입부에 나온다.

    돈 킹은 ‘정글의 혈전’이 벌어지기에 앞서서 9월20, 21, 22일 사흘 동안은 킨샤사 경기장에서 아프리칸-아메리칸 최고의 가수인 제임스 브라운, 비비 킹, 스피너스 등이 참가해 역동적인 흑인음악을 공연하고 그 실황을 전세계에 중계방송한다고 설명했다. 아메리카 흑인음악을 ‘정글의 혈전’과 접목하고 뿌리가 같은 아프리카와 아메리카의 동족이 어우러져 거창한 잔치판을 펼치겠다는 말이다.

    알리의 랩 야유

    무하마드 알리는 오래전부터 미국 흑인들이 진정한 고향인 아프리카에서 정체성을 찾아야 한다고 생각해왔다. 돈 킹은 타고난 흥행사답게 그런 알리의 의중을 간파하고 흥행의 중요한 요소로 활용한다.

    기자회견장에 동석한 무하마드 알리는 목청을 높여 랩처럼 빠른 말을 쏟아냈다. 수시로 터져 나오는 허풍과 야유와 독설은 타고난 재능이다.

    이 싸움은 스포츠 역사상 유례가 없는 큰 제전이 될 거요. 모든 경기를 통틀어서 사상 최고의 경기요.

    아프리카계 아메리카인이 아프리카인을 만나는 기념비적인 첫 행사요. 거기에다 내가 조지를 박살내지. 조지 포먼을 박살내. 우리는 정글의 혈전장으로 가는 거요. 가자, 가자!

    얼마 후, 무하마드 알리는 뉴욕 맨해튼 파크 애비뉴에 있는 월도프 아스토리아 호텔에서 기자회견을 했다. 하늘색 와이셔츠에 블루진 바지를 입고 나온 알리는 입심 좋게 조지 포먼을 야유했다.

    괴물 소니 리스튼이 모두 매트에 눕히니까 이제 아무도 상대할 사람이 없다고들 했지? 그런데 무명의 이 캐시어스 클레이가 소니 리스튼을 때려눕히지 않았나. 리스튼은 플로이드 패터슨을 두 번 때려눕힌 친구야. 그 녀석이 날 죽이려고 했다니까. 그래도 조지 포먼보다는 리스튼이 펀치가 세요. 조지보다 리치도 길고 더 잘난 복서가 리스튼이지.

    난 이제 소니 리스튼에게 달려들던 22살 애송이 때의 내가 아니란 말이오. 경력이 붙었지. 난 미국 악어와 씨름도 했어요. 미국 악어와 씨름을 했다니까!

    난, 고래하고도 싸우고 번개에 수갑을 채우고,

    벼락을 감옥에 가두고 지난주엔 바위를 죽이고,

    돌멩이에 부상을 입히고 벽돌을 병원에 보냈지,

    난, 빠르지 빨라 빨라 빨라.

    지난밤엔 침실 전등 스위치를 끄자마자 미처 불빛도 꺼지기 전에 침대 속에 뛰어들었다니까.

    그렇게 굉장히 빠르지, 빨라.

    조지 포먼을 꺾으면 모두 얼떨떨해서 나한테 굽실거릴 거야! 포먼을 혼내줄 거야! 내가 얼마나 위대한지 보여줄 거야!

    알리는 랩을 리듬에 맞춰 빠른 속도로 읊어대듯 입을 쉴 새 없이 놀리는 특별한 재주가 있다. 속사포같이 빠르게 험담을 쏟아내고 거침없이 자기 자랑을 해댄다. 자기가 시인이라고 자처하는 알리는 리듬 있는 입담으로 상대 선수의 약을 올리며 시선을 자기 쪽으로 끌어 모으는 홍보와 선전의 명수다.

    무하마드 알리는 캐시어스 클레이라는 본 이름으로 프로복싱계에 화려하게 등장할 때부터 자기가 고안한 랩 작전을 심리전과 선전전에 활용했다. 그의 거침없는 입담은 순발력이 있는 머리와 타고난 감각에서 나온 것이다.

    괴물 흥행주 돈 킹

    미국의 복싱 흥행사인 돈 킹(1931년생)은 아프리카 킨샤사에서 ‘정글의 혈전’을 성사시킨다는 흥행계획을 맨손으로 만들어낸 괴물이다.

    돈 킹은 처음에 무하마드 알리를 만나면서 권투업계에 발을 들여놓았다고 한다. 클리블랜드시 출신인 돈 킹은 지역병원에서 흑인 가수 로이드 프라이스가 나오는 자선쇼를 조직한 적이 있는데 무하마드 알리에게 시범경기를 해달라고 부탁하면서 알게 되었다.

    그 후 돈 킹은 무하마드 알리와 조지 포먼의 대전을 추진하겠다고 나서고 대전료로 한 사람에게 500만달러씩 지급하겠다고 장담했다. 무일푼인 킹은 후원자를 찾다가 국외로 눈을 돌려 자이르공화국의 절대 권력자 모부투 세세 세코 대통령을 물주로 잡는 데 성공했다. 교섭하던 끝에 마침내 모부투는 사상 최고의 대전료로 1000만달러를 내놓기로 약정했다. 모부투는 1974년에 헌법을 개정한 후 자기가 향유하는 절대 권력을 정당화할 홍보수단이 절실하던 참이었다.

    돈 킹은 모부투와 대회를 공동운영하기로 합의하고 파나마의 린스넬리아 투자회사와 영국의 헴데일 영화제작사, 배우 데이비드 헤밍스, 뉴욕 비디오테크닉 주식회사, 그리고 자신의 돈 킹 프로덕션을 묶어서 컨소시엄을 구성했다. 모부투 세세 세코는 스위스 회사를 통해 돈 킹에게 거액을 송금했다.

    돈 킹은 첫 사업으로 ‘정글의 혈전’을 성사시켜 일약 권투 흥행계의 대부가 되자 자기는 ‘영원한 힘의 앞잡이’라고 호언하고 다녔다.

    돈 킹이라는 풍운의 흥행사는 여세를 몰아서 다음해에는 필리핀의 독재자 마르코스 대통령을 설득해 무하마드 알리와 조 프레이저의 세 번째 대결인 ‘마닐라의 전율(Thrilla in Manila)’을 성사시켜 흥행의 황제로 입지를 다진다.

    정글에서 ‘로프 타기’로 철권 조지 포먼을 눕히다

    알리와 포먼의 ‘세기의 대결’을 성사시킨 프로모터 돈 킹.

    돈 킹은 거구에 격정적인 성품을 가졌다. 하늘로 솟구치듯 10㎝나 뻗쳐 오른 머리모양은 그의 전매특허다. 언제나 그는 요란한 장식이 달린 의상을 입는다. 당당한 자세로 대화를 이어가다가 틈만 보이면 순간순간에 말을 바꿔 상대를 설득하는 특출한 능력이 있다. 필요하다면 당장 격정의 눈물을 쏟아내는 데도 능숙하다.

    미국 작가 노먼 메일러는 돈 킹이 마법의 눈빛을 가진 천재이며 말주변이 뛰어나다고 평했다. 돈 킹은 자신이 흑인이라는 사실을 잘 인식하면서 눈빛으로 진정한 사랑과 거짓 사랑을 동시에 표현한다는 것이다.

    ‘돈 킹 프로덕션 프로모션’이 유치한 대회의 챔피언 명단에는 마이크 타이슨·에반더 홀리필드·줄리오 세자르 차베스·페릭스 트리니다드·래리 홈스·로베르토 두란·살바도르 산체스·리카르도 마요르가 같은 당대의 복싱 스타가 줄줄이 올랐다.

    돈 킹은 끊임없이 구설수에 올랐다.

    켄트주립대학을 중퇴한 그는 불법적인 마권도박업에 손을 댔다. 그는 두 건의 살인사건에 연루되었는데 강도를 등 뒤에서 쏜 첫 번째 경우는 정당방위로 인정받았다. 두 번째 경우는 600달러를 빚진 고용인과 싸우다가 살해했는데 ‘살의 없는 살인’으로 판결을 받고 4년간 복역했다.

    돈 킹은 이런 전과를 숨기려 하지 않고 감옥에서 보낸 일을 즐겨 얘기했다. 감옥에서 정신분석학자 지그문트 프로이트를 읽고 킨제이, 니체, 칸트, 마르크스도 읽었다고 허풍을 쳤다.

    그는 알리를 비롯해서 헤비급 챔피언 출신인 마이크 타이슨, 래리 홈스 등 여러 선수에게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당했다. 마이크 타이슨은 돈 킹이 1달러 때문에 어머니도 죽일 수 있는 악한이며 무자비한 인간이라고 비난한 적이 있다. 돈 킹은 또 이탈리아 이민자 출신 조직범죄 두목인 존 고티와 연계된 혐의로 미국연방수사국(FBI)의 수사를 받고 상원 청문을 받았으나 오히려 자기를 욕하는 사람들을 인종차별주의자라고 비난했다.

    돈 킹은 미국에 대한 뜨거운 애국심을 유난히 과시한다. 특히 2001년 ‘9·11사태’ 이후에는 인터뷰를 하면서 성조기를 열심히 흔드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배후인물 ‘검은 태양왕’

    자이르를 통치하던 44세의 절대 권력자 모부투 세세 세코 대통령은 돈 킹과 ‘정글의 혈전’을 주관한 물주(物主)다.

    모부투는 세계에서 일곱 번째 거부라는 소리를 들었다. 전용기로 보잉 747기와 맥도넬 더글러스 DC-10기를 소유하고 있었다. 사람들은 그가 엄청난 부정축재를 했기에 ‘정글의 혈전’ 대전료로 1000만달러의 거액을 기꺼이 투자했다고 보았다.

    그는 본래의 프랑스식 이름인 조셉 데지레 모부투라는 이름을 버리고 종족의 위대한 전사이자 예언자였던 ‘모부투 세세 세코 엔쿠쿠 응벤두 와 자 방가’의 이름을 그대로 복사해서 자기 이름으로 썼다. ‘승리에 승리를 거듭하는 전지전능한 전사·조타수·정복자·혁명의 아버지’를 모두 합친 존재가 된 것이다. 그는 태양왕이요 신이 선택한 구원자였다.

    그가 지배하는 자이르 국토는 한국의 23.7배나 된다. 작가 노먼 메일러는 자이르가 유럽의 프랑스·이탈리아·스페인 ·포르투갈·영국·벨기에·오스트리아·덴마크·동서독·스위스를 합친 만큼이나 크다고 비유하고 있다.

    모부투는 1967년에 민족주의와 자이르 정통성을 교리로 삼은 이른바 모부투주의(모부티즘)를 내세워 통치체제를 다졌다.

    모부투는 그해 1974년에 1인 체제를 다지기 위해 헌법을 개정한 터여서 흑인 흥행사 돈 킹이 찾아가 ‘정글의 혈전’과 ‘흑인 솔 음악 페스티벌’을 열자고 제안하자 호재 중의 호재라고 생각했다. 킨샤사에서 떠들썩한 국제적 매체행사(미디어 이벤트)를 벌인다면 자이르 국민과 세계인의 이목을 가리기 십상이라는 생각에 기꺼이 ‘정글의 혈전’ 주최자가 되기로 동의했다.

    3 킨샤사 도상에서 생긴 일

    ‘정글의 혈전’은 당초 1974년 9월25일로 날짜가 잡혔다.

    레온 게스트의 다큐멘터리 카메라는 대결의 주인공인 알리와 포먼의 모습을 항공기 안과 파리에서 잡아서 대비한다.

    알리가 탄 비행기가 아프리카 북쪽 사하라 사막 위를 날 때, 조종실에 나가 앉은 알리는 동승한 레온 게스트 감독의 카메라를 향해 신이 나서 소리친다.

    아프리카 여객기에 아프리카 스튜어디스들, 아프리카 조종사들. 오래간만에 처음으로 해방감을 느껴요. 참 나, 흑인 조종사들이 모는 비행기에 타고 있다니, 모두 다 흑인 승무원이고. 미국 검둥이한테는 낯이 설어요. 꿈도 못 꿨지!

    텔레비전이 보여주는 것은 기껏해야 타잔과 정글의 검둥이들이지. 아프리카 사람들의 머리가 그 이상이란 건 말도 안하지.

    아프리카 사람들은 영어와 프랑스어에 아프리카 말까지 하네. 우린 영어도 겨우 하는데….

    셰퍼드 끌고 간 포먼

    킨샤사로 가던 길에 파리에 기착한 챔피언 조지 포먼은 짤막하게 기자회견을 마친다.

    수행원 40여 명을 대동한 포먼은 애견인 독일산 셰퍼드 한 마리를 킨샤사까지 데리고 가는 길이다. 그가 회견장 마이크 앞에 셰퍼드를 앉히고 “한 마디 해봐, 어서” 하고 명령하자 개는 “컹컹컹” 하고 하늘을 보고 짖는다.

    기자가 물었다.

    “조지, 당신 경력에 알리와의 대전이 험한 장애가 될 것 같나요?”

    알리와는 생판 다르게 말수가 적은 조지 포먼이 눈을 끔적거린다.

    “아마, 그럴 수도…. 아마 그럴 수도….”

    점잖게 말하며 경찰견을 이끌고 회견장을 나간다.

    모부투는 ‘정글의 혈전’에 집착했다. 알리가 킨샤사 공항에 도착하자 오토바이 부대를 동원해서 요란하게 호송했다. 그는 킨샤사에서 32㎞ 떨어진 콩고 강 상류의 대통령궁에서 두 챔피언 알리와 포먼을 따로 접견했는데, 포먼은 크고 사나운 사자 한 마리를 모부투에게 선물했다고 전해진다.

    그런데 킨샤사에 도착한 후 조지 포먼에게 뜻하지 않은 일이 벌어진다. 연습경기(스파링)를 하다가 상대선수의 팔꿈치에 오른편 눈 위가 찢어지는 부상을 당했다. ‘정글의 혈전’은 무산되는 위기를 맞았다.

    모부투는 대전 예정일을 일주일 앞두고 포먼이 부상했다는 보고를 받자 심기가 매우 사나워져서 화를 냈다. 알리와 포먼 양측이 조정한 끝에 대전 일을 6주 후인 10월30일로 연기하자 모부투는 두 대전자가 킨샤사를 떠나지 못한다고 명령했다. 모두 남아서 대기하고 있다가 ‘정글의 혈전’을 치러야 한다는 말이다.

    혹시 출국해서 돌아오지 않는 날이면 거액을 투자한 요란한 대행사가 무산될지 모른다고 모부투는 의심했다.

    알리, “헬기로 포먼을 감시해!”

    스타디움에서 흑인음악 축제를 보다가 이 소식을 듣자 알리는 독설의 랩을 퍼붓는다.

    “실은 포먼이 자해를 한 겁니다. 뻔하지 않아요? 이 알리한테 깨질 것 같으니까 자해를 한 겁니다. 시합 일자를 정해도 안 나올 게 뻔해요.”

    그는 기자회견장에서 더욱 소리를 높였다.

    “포먼을 헬기로 감시하세요. 모든 개인 비행기와 보트와 공항을 감시해요. 모부투 대통령과 낙하산 군대까지 포먼이 도망가지 못하게 감시해요. 미심쩍은 배들이 포먼을 빼돌릴지 몰라요. 버스정거장, 네 거기도 감시해요. 코끼리가 끄는 교통수단을 이용해서 빼돌릴지도 몰라요….”

    서로 신경전을 벌이며 조정과정을 거친 끝에 대전 날짜를 6주간 연기하기로 합의했다.

    새로 잡은 날짜는 10월30일. 흥행주 돈 킹은 흑인음악 콘서트는 예정대로 9월20일부터 3일간 연다고 발표했다.

    포먼은 킨샤사에 머물러 있기가 싫었으나 달리 방도가 없어서 인터콘티넨탈 호텔에 틀어박혀 지냈다.

    알리는 오히려 킨샤사에서 대기하는 시간을 긍정적으로 활용했다. 자이르 사람들 속으로 찾아 들어가 아프리카의 뿌리를 강조하고 “알리, 보마예!”를 합창하게 만들며 아프리카 현지인의 마음을 흔들었다. ‘알리, 보마예!(Ali Bomaye!)’는 현지 아프리카어로 ‘알리야, 박살내!’라는 뜻이다.

    4 ‘줌인’ 킨샤사

    아프리카 킨샤사 시각으로 1974년 10월30일 새벽 4시.

    드디어 무하마드 알리 대 조지 포먼의 세계헤비급타이틀전이 열리는 킨샤사는 흥분과 열광으로 가득 차 있다. 미국 시청자들이 텔레비전 위성 중계방송을 보도록 미국의 황금시간대(프라임타임)에 맞춘 시각이다. 조지 포먼의 부상으로 6주간을 기다렸다가 열리는 만큼 모두가 대전 시작의 종소리를 침 마르게 기다린다.

    “알리가 패배한다”

    알리는 포먼과 대전할 자이르 수도 킨샤사에서 아프리카 대중의 힘을 한데 끌어 모으는 데는 성공했다. 아프리카 사람들은 알리를 향해 환호하고 부르짖었다. 그러나 권투도박사들은 알리가 3대1로 약세라고 점쳤다. 알리의 주치의인 페르디 파체코는 시합이 끝나자마자 알리를 스페인의 신경정신과병원에 급송할 수 있도록 제트비행기를 대기시켜 놓았다.

    미국 ABC방송 스포츠 기자 하워드 코셀은 알리를 젊은 시절부터 취재해온 고참 전문기자다. 알리와 친분이 두터운 그는 알리의 패배를 단언했다.

    무하마드 알리와 작별할 시간이 온 것 같습니다.

    조지 포먼에게는 안 될 거라는 게 솔직한 생각입니다.

    기적이라도 바라겠지만 조지 포먼을 상대로?

    그 젊고 강한 무적의 상대에게?

    조지 포먼의 적수들이 하나 둘 3회도 못 가서

    나가떨어지지 않습니까?

    마법을 부릴 수는 없습니다.

    이 경기를 끝으로 알리는 은퇴할 겁니다.

    한 시대를 기념할 만한 복서였습니다.

    묘한 매력과 사교성을 지녔고

    때로는 무자비했고 본래 가정적이었던 알리.

    이제 그 머릿속에 뭐가 있는지 알게 될 겁니다.

    알리를 밀착 취재한 미국 작가 노먼 메일러는 레온 게스트 감독의 다큐멘터리 ‘우리가 왕이었을 때’에 출연해서 혈전을 눈앞에 두고 무겁게 내려앉은 알리 진영의 분위기를 전했다.

    알리 네 라커룸은 영안실 같은 공기였어요. 최후의 만찬장같이 말이지요. 알리가 말하더군요.

    “왜 모두 그리 불안해? 대체 모두들 무슨 일이야?”

    알리 측 사람들은 모두 패배를 기정사실처럼 여기고 겁을 내고 있었어요.

    ‘자존심 때문에 최악의 상황을 무릅쓰고 나간 것이지만 이제 무참히 깨지고 말 것이다. 불구가 되거나 죽을지도 모른다.’ 이런 생각을 하는지 아주 침울했어요. 알리 앞이라 차마 말들은 못하고. 하여간 그런 공기였어요.

    잠시 뒤 알리가 트레이너인 분디니를 보고 말했어요.

    “오늘 밤 춤 한번 추는 거야!”

    그제야 사람들은 일제히 “그래, 춤추는 거야!”하고 합창했지요.

    무하마드 알리가 되물었어요.

    “내가 무엇을 한다고?” 다들 입을 모아 “춤을 춰!” 했지요.

    알리는 “그래, 춤춘다고, 춤! 춤! 춤! 그런데 왜들 이 모양이야? 신나게 춤출 건데.”

    모두 울먹이면서 “그래, 춤출 거야!”

    이러는 동안 분위기가 진정됐지요.

    미국 작가 조지 플림튼 역시 알리 측 사람들이 “마치 교수대로 가는 사람 보듯 알리를 보는 것 같았다”고 말했다.

    공 울리다

    킨샤사의 ‘5월20일 스타디움.’ 관중이 6만2800석을 꽉 메웠다.

    미국 중계방송 아나운서가 흥분해서 목청을 높인다.

    “괴력의 조지 포먼이냐, 다양한 기술의 무하마드 알리냐.

    노장이냐, 신예냐.

    뒤쪽에서 밴드가 연주를 합니다.

    알리가 링으로 가고 있습니다. 무하마드 알리의 모든 것이 걸린 시합입니다.

    역사적인 경기입니다.

    무하마드 알리의 마지막 시합이 될지도 모릅니다.

    알리가 은퇴한다면 지금 보시는 장면은 역사에 남을 것입니다.”

    새벽 4시 직전에 헤비급세계챔피언 조지 포먼이 등장한다.

    붉은 가운을 입은 포먼이 일행과 함께 링으로 뛰어서 나오고 있다. 자이르 대통령 모부투 세세 세코의 거대한 초상화가 경기장 높이 중앙에 걸려 있다. 모부투는 경기장에 나오지 않았다. 대통령궁에서 폐쇄회로 화면으로 대전을 지켜보기로 했다고 한다. 암살 기도의 위험을 피하려는 조치라고들 했다.

    링에 오른 알리가 관중을 향해 아프리카 말로 구호를 외친다.

    “알리, 보마예! 알리, 보마예! 알리, 보마예!”

    두 선수는 링 한복판에 선 흑인 주심 잭 클레이턴 앞으로 나가 마주 선다. 포먼은 미국 성조기 무늬의 트렁크를 입었다. 무하마드 알리가 조지 포먼에게 뭐라고 떠들고 있다.

    “넌 기저귀를 찬 어린애니까, 내 소문을 들었을 거다. 넌 어릴 때부터 날 봤을 거야. 이제 임자와 딱 맞닥뜨렸어, 넌 끝장이야!”

    알리의 쉴 사이 없는 야유에 포먼은 눈을 끔적대며 약간 놀란 표정. 나이는 알리가 33세, 포먼이 24세다.

    알리와 포먼이 각자 코너로 물러난다. 알리는 앞뒤로 재빠른 발놀림을 해보인다.

    선제 라이트 잽

    1라운드.

    알리는 가볍게 좌우로 움직인다. 서서히 다가서는 조지, 알리의 번개 같은 첫 라이트 펀치 한 방이 챔피언 포먼의 안면에 적중.

    선제 라이트를 낼 때는 좌우 어깨 사이에 상당한 간격이 생기므로 상대의 레프트 훅에 노출되기 쉬워서 경험자는 좀처럼 쓰지 않는다. 지금까지 감히 포먼에게 선제 라이트를 쓴 상대는 없다.

    포먼은 개의치 않고 묵묵히 접근한다. 포먼이 알리를 코너로 몰아넣고 레프트 어퍼컷으로 몸통을 가격한다. 알리는 속도와 기교가 뛰어나지만 포먼과 근접전을 하면 강타 한두 대로 아찔한 상태에 몰릴 수 있다. 포먼이 절대로 유리하다.

    알리가 포먼의 머리를 껴안는다. 다시 눈 깜빡할 순간에 잽보다 훨씬 빠르게 알리의 라이트가 포먼에 적중한다. 알리는 12차례 확실한 선제 라이트를 맞힌다. 포먼은 알리의 라이트에 다소 당황한 표정. 포먼은 약이 올랐다. 라이트 두 방이 알리 얼굴을 가격한다. 가슴을 철렁하게 만드는 강한 라이트.

    포먼은 링을 차단해서 도망치는 알리를 잡는 방법을 연습했다. 그러나 알리는 전술을 바꾸었다. 알리는 비밀 계획을 감추고 있다. 알리가 곤욕을 치를 때 공이 울린다.

    작가 노먼 메일러는 1라운드가 끝난 후 기자석은 알리의 오른팔 공격을 얘기하느라 시끄러웠다고 저서인 ‘더 파이트(The Fight)’에 쓰고 있다.

    어떻게 알리가 감히? 놀라운 라운드다. 노먼은 자기가 권투를 좀 안다고 자처해온 자만심을 버렸다고 했다. 알리가 신통해서 달나라 여행이라도 시키고 싶은 심정이었다고 한다. 그가 보기에 알리는 상대의 전체를 보며 싸우는 예술가 같았다.

    2라운드에 들어가기 직전, 알리는 다시 관중석을 향해 팔을 흔들며 외친다.

    “알리, 보마예! 알리, 보마예!”

    아프리카 관중이 우렛소리로 합창했다. “알리, 보마예!” “알리, 보마예!”

    2라운드 공이 울리자마자 알리는 로프로 후퇴한다. 그는 포먼을 공격할 생각은 하지 않고 포먼이 펀치를 날리도록 허용한다. 로프에 기댄 알리는 간헐적으로 포먼의 얼굴에 스트레이트 펀치를 먹일 뿐 적극적으로 맞받아치거나 저항하지 않는다. 기자석에서 노먼 메일러와 나란히 관전하던 스포츠저널리스트이자 작가인 조지 플림턴. 그는 후에 레온 게스트 감독의 카메라 앞에 출연해서 알리의 ‘로프 타기’를 이렇게 묘사했다.

    모부투 절대권력의 흥망

    정글에서 ‘로프 타기’로 철권 조지 포먼을 눕히다
    1970년대 중반 아프리카 대륙은 신생국의 고질병인 쿠데타의 악순환에 빠져 있었다. 정치폭력의 시발은 1960년의 콩고사태였다. 아프리카 민족주의의 젊은 기수이던 루뭄바가 벨기에 식민세력의 앞잡이인 촘베에게 무참하게 살해당하는 혼란 속에 1960년 9월 미국을 등에 업은 총사령관 조셉 데지레 모부투 중장이 전권을 장악한다.

    나는 서부 아프리카 케냐에서 86세의 국부인 무지 조머 케녀터 대통령이 잡다한 종족을 하나의 민족주의 기치 아래 묶어나가는 ‘하람베 운동’을 보았다. 백인 독재 국가인 남아공과 로디지아는 신생 흑인국가들 속의 고도(孤島)에서 무력으로 완강히 버티고 있었다.

    말라위는 남아공화국과 유일하게 수교한 내륙국으로 1인 통치자의 공식 직함은 ‘말라위의 종신 대통령 응와지 닥터 카무즈 반다 각하’였다. 응와지는 전지전능하다는 뜻이다.

    지난 4세기 동안 콩고 강은 ‘식민의 수로’였다. ‘정글의 혈전’이 벌어지고 내가 ‘아프리카의 화맥’을 취재하던 1970년대 중반에 콩고는 신생 아프리카의 중심점에서 부글부글 끓고 있었다. 미국을 등에 업고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모부투는 1971년 10월에 국명인 콩고민주공화국을 자이르로, 수도 레오폴드빌(식민국 벨기에의 국왕 이름을 땀)을 킨샤사로 바꾸었다.

    그의 공식 칭호는 거창했다. ‘자이르공화국 대통령, 혁명인민운동의 창설자이며 안내자 모부투 세세 세코 엔쿠쿠 응벤두 와 자 방가’. 킨샤사는 이 1인 절대권력자가 창안한 단조로운 국민체조 ‘활기의 율동(아니마숑)’에 휩싸여 있었다.

    킨샤사의 모부투 대통령은 1인 체제로 자이르를 32년간 통치했다. 1997년 르완다전쟁의 불씨가 자이르로 튀어 제1차 콩고전쟁이 일어나자 그는 실각해 해외로 도망친다. 그의 지배가 끝나자 자이르라는 국명은 지워지고 콩고민주공화국이라는 본래 이름이 회복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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