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8월호

기자 민병욱의 민초통신 33 外

  • 담당·송화선 기자

    입력2011-07-20 16:0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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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자가 말하는’내 책은…’

    기자 민병욱의 민초통신 33 _ 민병욱 지음, 나남, 324쪽, 1만5000원

    기자 민병욱의 민초통신 33 外
    이 책은 20세기 후반 한국인의 삶에 대한 기록이다. 그렇다고, “독재정치에 신음하면서도 세계가 놀랄 한강의 기적을 이루었다”는 식의 거시적 기록은 아니다. 신음하며 기적을 일구어내는 순간순간, 이 악물고 한국사회를 지탱해준 풀뿌리 백성, 그 민초들의 생활기록이다.

    나는 1976년부터 30년 동아일보 기자를 했다. 1970년대 사건기자 시절 얻은 별명이 민초(閔醋)다. “식초를 친 듯 시큼한 기사를 잘 쓴다”고 붙은 별명이지만 나는 민초를 ‘풀뿌리 백성’ 민초(民草)로 환치했다. 서민에 뿌리 둔, 서민의 편에 선 기자가 되겠다는 각오였다.

    그러나 각오가 평생 가는 걸 본 적이 있는가. 나 역시 어느새 이름 높고 잘난 사람만 취재하는 잘나가는 동아리에 섞여갔다. 유신, 신군부 독재에 재갈 물렸다는 핑계를 대며 찢어지게 슬프고 복장 터지게 가난한 서민의 삶은 애써 외면했다. 위수령 강제징집 요정정치 장발단속 기름밥 삥땅 등 오직 1960~80년대 한국사회에만 있던 단어가 생긴 속사정을 꼼꼼히 전한 것은 그때 못쓴 기사를 다시 쓰고픈 심정이 간절해서다.



    어떤 이는 책이 “새로 유행하는 복고풍에 기대 창고에 숨은 옛것을 꺼낸 일종의 추억장사 아닌지?” 물었다. 일정 부분 맞다. 애초 글은 나의 후배가 “쿠데타나 민주화, 압축 경제성장 등 20세기 한국사회 ‘거대담론’은 누구나 안다. 그것 말고 민초들이 살아온 모습을 재현해달라. 한국사회 미시사를 써달라”고 청탁해 비롯됐다.

    청탁을 받아들이며 나는 “한국인의 속살을 가능한 한 샅샅이 열어보자”고 다짐했다. 정말 풀뿌리 서민이 울고, 웃고, 앓고, 괴로워하던 얘기를 하리라 마음먹었다. 우리 기억에서 사라진 순간들, 그 조각난 편린을 하나하나 맞춰 내 부모 형제 친구의 오늘을 만든 DNA를 설명해주자 결심했다.

    그러니 추억을 되살려 ‘글 장사’하려는 것은 맞다. 하지만 우리의 역사 교수님들이나 언론인 선생님들이 어디 시시콜콜한 집안의 숟가락 하나까지 찾아내 기록해준 적이 있는가? 나는 그래서 ‘숟가락 하나 달랑 들고 감히 한국풍속사 밥상머리에 앉은’ 심정으로 글을 썼다.

    책 제목 속 33은 33개의 에피소드로 6780이야기를 시작해 붙였다. 우리의 6780서민사가 33개의 에피소드로 끝나지 않을 것임은 자명하다. 나는 지금도 계속 ‘민초통신’을 날리고 있다. 어쩌면 100개의 에피소드, 그 이상을 띄울 수 있을지 모른다.

    바람이 있다. 더 많은 사람이 우리가 살아온 기록을 더 많이 남겼으면 하는 것이다. 21세기 ‘신인류’처럼 살아가는 나의 자식, 손자들이 제 아비 할아버지는 어떻게 살며 어떻게 이 나라를 가꾸었는지 알 수 있게 해주자는 말이다. 민초통신은 여전히 진행 중이며 추억의 삶의 현장은 날개를 타고 계속 이어질 것이다.

    민병욱 │백석대 교수·전 한국간행물윤리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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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발칙한 미국산책 _ 빌 브라이슨 지음, 강주헌 옮김

    기자 민병욱의 민초통신 33 外
    저자 이름만으로도 논픽션 애호가들의 눈길을 끌 만한 책. ‘나를 부르는 숲’ ‘거의 모든 것의 역사’를 쓴 빌 브라이슨이 이번에는 1951년 미국 중부 아이오와에서 태어난 자신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 풀어낸다. 지역 신문 스포츠 담당기자인 아버지, 자식들이 어느 계절에 태어났는지조차 곧잘 잊어버리는 어머니, 투철한 실험 정신 때문에 집을 통째로 날려버릴 뻔한 월러비 형제 등 등장인물 모두가 독자를 자신의 유년기 어느 날로 데려가는 힘을 발휘한다. 방사능 낙진이 몸에 좋다고 광고하는 정부를 풍자하고 공산주의자 색출 소동에 희생당한 보통 사람들의 이야기를 기록할 때는 마음 한구석이 묵직해지기도 한다. 영국 ‘타임스’ ‘인디펜던트’ 등에서 기자로 일한 그의 재기 넘치고 명철한 문체도 매력적이다. 부제는 ‘상상 그 이상의 시대였던 유년기 미국으로의 여행’이다. 추수밭, 350쪽, 1만4800원

    서울은 도시가 아니다 _ 이경훈 지음

    기자 민병욱의 민초통신 33 外
    서울은 왜 뉴욕이나 파리처럼 많은 이가 동경하는 도시가 되지 못할까. 국민대 건축대학 교수인 저자는 “서울이 도시답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서울에서 도시의 문제로 생각되는 것들은 대체로 자연 이데올로기가 문화의 영역과 주거와 생활의 문제에 침투한 것으로, 도시의 본질과는 무관하다. 서울은 푸른 녹지가 없어서가 아니라, ‘도시 되기’에 실패해서 생기는 문제가 훨씬 더 많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저자는 거리를 아름답게 만드는 것은 숲과 가로수가 아니라 상점이며, 사람들은 마을버스를 탈 것이 아니라 인도를 따라 걸어 다니며 사색하고 사랑하고 일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웃 주민들과 스쳐 지나가며 인사를 나누고, 카페가 거실이 되며 식당은 부엌이 되는 커뮤니티를 만드는 것이 행복하고 즐거운 도시적 삶”이라는 주장이 흥미롭다. 푸른숲, 260쪽, 1만3000원

    책에 미친 바보 _ 이덕무 지음, 권정원 옮김, 김영진 그림

    기자 민병욱의 민초통신 33 外
    ‘영처고’ ‘편서잡고’ 등의 저서를 남긴 조선 후기 실학자 이덕무의 글을 모은 책. 햇빛이 드는 곳을 따라 책상을 옮겨가며 책을 읽었고, 진귀한 책을 얻으면 뛸 듯이 기뻐했다는 이덕무는 ‘책에 미친 바보’라고 불렸다. 이덕무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은 역자는 평생 2만 권이 넘는 책을 읽고, 수백 권의 책을 필사했으며, 빼어난 문장가로 청나라에까지 이름을 알린 이덕무의 글 중에 책과 관련된 내용을 꼼꼼히 번역해 한 권으로 묶었다. “만약 나를 알아주는 한 사람의 벗을 얻는다면, 나는 망설임 없이 10년 동안 뽕나무를 심고 1년 동안 누에를 길러 손수 오색실을 물들일 것이다. 10일에 한 가지 빛깔을 물들인다면 50일이면 다섯 가지 빛깔을 물들일 수 있으리라”는 글을 남겼을 만큼 벗과의 교유를 즐겼던 이덕무의 서간문도 함께 실었다. 미다스북스, 382쪽, 1만3000원

    저자가 말하는’내 책은…’

    은퇴대국의 빈곤보고서 _ 전영수 지음, 맛있는책, 400쪽, 1만6000원

    기자 민병욱의 민초통신 33 外
    외부 기금 덕분에 오랜만에 일본에서 연구할 기회가 주어졌다. 지난 1년간 지켜본 현대 일본인의 모습은 과거와 적잖이 달랐다. 이를 곳곳에서 확인했다. 요약하면 ‘부자일본의 빈곤국민’이다. 남녀노소 불문하고 가난은 거대한 쓰나미처럼 열도 일본을 절망에 빠뜨렸다. 신뢰는 약화됐고 공동체는 파괴됐다. 살아갈 맛은 떨어졌고 살아갈 힘은 없어졌다. 원인은 결국 ‘돈’이다. 1990년대 이후 고착화된 경기침체에 기름을 부은 건 급격히 채택된 신자유주의적인 운영철학이다. 무한경쟁에 내몰린 구성원들은 적자생존·승자독식의 게임논리 탓에 사다리 밑으로 줄줄이 떨어졌다. 재기는 없다. 피해는 고스란히 열도 일본의 톱니바퀴인 보통사람들에게 집중됐다. 경제동물·회사인간을 자처하는 충성스러운 국민에게 리더십과 기득권은 좌절과 절망을 안겨줬다.

    고령그룹은 현대 일본의 병폐에 온몸으로 맞서야 했다. 상위 1%가 하위 99%를 쥐락펴락하며 푼돈까지 털어낸 저질 범죄의 1차 피해자다. 이들에게 장수 대국은 축복보다 재앙에 가깝다. 돈은 없는데 살아갈 날은 길다. ‘근로격차→소득(자산)격차→소비격차→교육격차→건강격차→미래격차→희망격차’의 악순환이다. “주먹밥이 먹고 싶다”며 아사(餓死)한 사람마저 생겨났다. 2010년 여름엔 전기료가 없어 열사병에 사망한 고령자가 넘쳐났다. 이를 구원해줄 복지체계는 애초부터 기능부전. 기업복지란 미명 아래 정부는 복지책임을 기업에 미루고 입을 닦았다.

    그래도 이들이 고도성장의 인플레 과실을 독점하지 않았느냐고 반문할지 모르겠다. 일본 노인은 돈이 많다는 속설이 있다. 가계 금융자산(1500조엔)의 60%를 65세 이상이 갖고 있다는 통계를 근거로 한 것이다. 하지만 실상은 아닐 확률이 높다. 통계 함정 혹은 잡음 때문이다. 연금 대국이라지만 무연금·저연금으로 기초생활조차 힘든 빈곤노인이 매우 많다. 노인 절반은 모아둔 돈조차 없다. 돈을 좇던 부자나라의 슬픈 자화상이다. 일본사회가 무연(無緣)화하고 만혼(晩婚)화하며 폐색(閉塞)화하는 이유다. ‘돈 걱정’을 둘러싼 집단 우울이다.

    책은 현대 일본의 노인 빈곤 문제에 주목했다. 물론 문제 제기의 출발이 현대 일본의 노인 빈곤일 뿐 실상 그 흐름과 여파는 사회 전체를 관통하는 중대 이슈다. 어쩌면 노후 난민을 우려하는 청년 세대에게 한층 중대하게 여겨질 사회경제적인 현상이다. 지금 일본에서 벌어지는 자본주의의 치명적 딜레마와 그 충격을 고스란히 받는 중산층 이하 계층의 빈곤과 좌절 문제는 한국의 오늘·내일 이슈와 크게 다를 게 없다. 아직 목격되지 않았다고 안도할 수는 없다. 그야말로 순식간에 닥칠 파도이기 때문이다. 지금은 위기와 기회가 공존한다. 책이 일본의 위기를 한국의 기회로 바꾸고자 할 때 몇 가지 힌트를 제공할 수 있다면 개인적으로 뿌듯하겠다.

    전영수│한양대 국제학대학원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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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로마제국과 유럽의 탄생 _ 피터 하더 지음, 이순호 옮김

    기자 민병욱의 민초통신 33 外
    ‘세계의 중심이 이동한 천 년의 시간’이라는 부제가 붙은 책. 1세기 역사가 타키투스는 동유럽의 삼림지대를 보고 ‘인간의 형상을 했으되 몸과 사지는 짐승과 다를 바 없는’ 사람들이 사는 곳이라고 묘사했다. 그러나 1000년 뒤 세상은 변했다. 타키투스가 야만인의 땅이라고 정의한 곳에는 크고 건실한 신흥국들이 자리 잡았고, 기독교·문자·석재건축물 등으로 대표되는 지중해 지역의 문화 역시 북동부 유럽으로 대거 이동한 것. 동시에 새로운 국가 및 문화 구조가 지중해 중심의 세계 질서를 완전히 무너뜨렸고, 유럽 대륙은 문화·정치·경제적으로 한층 동질화된, 오늘날의 모습을 갖추게 됐다. 영국 런던대 킹스칼리지 역사학과 교수로, 제정 후기 로마와 중세 초 역사를 꾸준히 연구해온 저자는 베일에 싸인 이 시기 1000년의 역사를 ‘이주’와 ‘발전’이라는 키워드로 풀어나간다. 다른세상, 861쪽, 3만3000원

    근대 한국, ‘제국’과 ‘민족’의 교차로 _ 임지현, 박노자 등 지음

    기자 민병욱의 민초통신 33 外
    “이 책의 제목은 식민지 지배의 경험이 식민자와 피식민자를 어떻게 연결시키고 또 어떻게 상호 영향을 주었는지를 모색한다는 의미를 안고 있다. … 제국으로부터 식민지로의 문화적 전이 … 주변부 민족주의와 서구중심주의의 인식론적 공모관계 등 제국과 식민지가 주고받는 상호 관계는 근대의 세계사적 전개라는 큰 맥락에서 고찰할 수밖에 없다.” 임지현 한양대 비교역사문화연구소장, 박노자 노르웨이 오슬로대 교수 등 13명의 저자는 이런 관점에서 그동안 한국을 제국주의의 피해자로만 인식해왔던 시각을 버리고 민족주의에 내재된 제국주의적인 속성을 밝히려 한다. 한양대 비교역사문화연구소가 건국 60주년을 ‘반(反)기념’하기 위해 2008년 8월 개최한 국제학술회의 ‘Modern Korea at the Crossroads between Empire and Nation’의 결과물을 수정·보완한 것이다. 책과함께, 398쪽, 2만원

    법가 절대 권력의 기술 _ 정위한 푸 지음, 윤지산·윤태준 옮김

    기자 민병욱의 민초통신 33 外
    중국의 고대 학파 ‘법가’는 진시황 때 잠시 각광받았다가 사라진, 사실상 폐기된 사상으로 여겨져왔다. 중국 베이징대를 졸업하고 미국 미시간주립대, 스탠퍼드대 등에서 연구 활동을 해온 저자는 이러한 통념이 잘못된 것임을 지적한다. 법가는 ‘진시황부터 마오쩌둥까지’ 중국 정치사 전반에 영향을 미쳐온 사상이고, 심지어 현대 중국의 집권당인 공산당조차 이 유산을 계승하고 있다는 것이다. 법가가 꿈꾼 것은 군주 한 사람을 중심으로 일사불란하게 조직화된 전제 국가였다. 저자는 2000여 년에 걸친 중국 역사가 황제 한 명을 정점에 둔 사회 시스템 속에서 유지된 것, 서양에서 유래한 공산주의가 20세기 중국 사회에 부드럽게 안착할 수 있었던 것은 법가가 구축한 사회 체계와 정치의식이 중국인들에게 뿌리박혀 있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돌베개, 224쪽, 1만2000원

    저자가 말하는’내 책은…’

    궁궐 장식 _ 허균 지음, 돌베개, 240쪽, 1만8000원

    기자 민병욱의 민초통신 33 外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는 경복궁을 창건하고 근정전 어좌에서 남쪽을 바라보고 앉아 요순시대 재현의 원대한 꿈을 만백성에게 고했다. 그것은 옛날 요·순 임금이 몸을 공손히 하여 북을 등지고 남을 향해 앉아 세상의 문명을 밝힌 것과 다르지 않았다. 정궁인 경복궁을 필두로 한양 땅에는 창덕궁·창경궁·경희궁 등의 이궁이 속속 들어섰고, 뒤이어 덕수궁도 대열에 참여했다. 이들 궁궐은 지금도 조선 왕조의 경천애민(敬天愛民) 정신과 왕실 문화의 정수를 체험할 수 있는 역사의 현장으로 우리 곁에 남아 있다.

    궁궐은 일부 사람들이 잘못 생각하고 있듯 도시공원이 아니다. 귀중한 민족 문화 유산이며, 역사와 문화적 전통을 배우고 익힐 수 있는 교육의 장으로 큰 가치를 지닌다. 그런데 궁궐을 관람하는 이가 각종 전각과 문에 얽힌 역사를 알지 못하면 그것은 단순한 집이요 문에 지나지 않을 것이며, 도처에 베풀어진 장식물이나 문양들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 못하면 그것은 볼거리 이상 아무것도 되지 못할 것이다.

    옛사람들은 궁궐에 나무 한 그루를 심어도 뜻을 두었고, 장식물 하나에도 깊은 의미를 부여했다. 궁궐은 신비한 기호들로 가득 찬 거대한 상징 세계다. 상징은 겉으로 보이는 것 이상의 많은 것을 표현한다. 예컨대 정전 천장 중앙을 차지한 황룡은 제왕의 권위를 나타내고, 봉황은 하늘이 내린 상서의 징표로 존재한다. 그런가 하면 황룡의 황색은 색채의 차원을 넘어 만물과 방위의 중심이라는 의미를 가진다. 또한 전각이나 문의 칸수는 그냥 수치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 천·인·지(天人地) 등 우주적 이미지를 나타내기 위한 방편으로 적용된 것이다.

    ‘궁궐 장식-조선왕조의 이상과 위엄을 상징하다’는 궁궐을 구성하는 유·무형 요소들을 상징적 관점에서 바라보고 그것이 내포한 뜻을 밝혀낸 책이다. 정치와 공식 행사가 벌어지는 정전과 편전, 그리고 왕족의 사생활이 펼쳐지는 침전 등에 베풀어진 것은 물론, 굴뚝·담벼락·다리·계단·의자 등 자칫 지나쳐버리기 쉬운 곳에 새겨진 문양 등 세세한 것에 이르기까지 궁궐의 모든 장식물의 배후를 추적했다. 또한 전각의 배치와 좌향, 적용 칸수와 같은 건축 뒤에 숨은 음양오행사상과 성리학 등 정신적 배경에 대해서도 살펴보았다.

    늘 보던 것도 다시 보면 달리 보인다. 장식이라는 형상 뒤에 감춰져 있는 뜻을 찾아내면 진면목이 드러나고, 진면목을 알면 그것을 만든 사람과 인식을 공유할 수 있는 길이 열린다. 궁궐을 답사하고 유·무형의 사물과 현상들이 가진 상징적인 의미를 해석하는 일은 선인들의 정신세계를 바르게 인식하는 첩경이다. 그 길을 따라가다 보면 우리의 정체성이 무엇인지를 다시 한 번 되짚어 보는 계기가 마련될 것이라고 필자는 굳게 믿고 있다.

    허균│한국민예미술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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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호 세상을 논하다 _ 강명관 지음

    기자 민병욱의 민초통신 33 外
    ‘성호 이익의 비망록, 성호사설을 다시 읽다’라는 부제가 붙은 책. 조선 영조시대 실학자였던 성호는 경전과 문학은 물론 당대의 정치·경제·관직제도·외교 등 사회 전반에 대한 생각을 담은 글 3007편을 남겼다. ‘성호사설’이다. 부산대 한문학과 교수인 저자는 이 가운데 조선의 사회상을 선명히 보여주는 글을 골라 ‘서얼, 똥구덩이 속의 사람들’ ‘수탈은 어떻게 정당화되는가’ ‘조선 시대의 홈리스’ ‘부패한 자가 왜 출세하는가’ ‘부자 감세는 가난한 백성을 괴롭힌다’ 등 38개의 주제 아래 풀어놓았다. 성호 스스로 ‘한가할 적에 재미삼아 쓴 글을 모은 것’이라고 했을 정도로, 문체는 일정한 체계나 목적 없이 자유로워 보인다. 하지만 그 속에서 선명하게 드러나는 조선시대 지식인의 사회에 대한 문제의식이 현대를 살아가는 이들에게 생각할 거리를 던져준다. 자음과모음, 287쪽, 1만7900원

    문학에서 경영을 만나다 _ 이재규 지음

    기자 민병욱의 민초통신 33 外
    한국드러커협회 대표인 필자는 “피터 드러커의 통찰은 문학에서 나왔다”고 믿고 문학과 경영학을 접목할 방법을 찾았다. 세계 유명 작가의 작품 속에서 그들이 관찰한 각 시대의 산업과 경제, 그리고 기업과 경영자들의 모습을 분석하기 시작한 이유다. 저자에 따르면 ‘주홍글씨’의 작가 너새니얼 호손은 세관원이었고, 노벨문학상 수상자 윌리엄 포크너는 막노동을 한 뒤 남은 에너지를 글쓰기에 쏟아 부었다. ‘황무지’를 쓴 T.S. 엘리엇은 은행원이었고, 버나드 쇼도 한때 전화 회사에서 일했다. 작가들의 이런 경험은 그들의 작품에 여러 방식으로 등장한다. “각 시대의 기업 활동과 경영자의 모습을 … 예리한 눈을 가진 작가들이 어떻게 관찰하고 인식했는지를 보여주고자 했다”는 저자의 말처럼 작품 속에 등장하는 다양한 시대 산업사회의 풍경이 흥미롭다. 사과나무, 415쪽, 1만5000원

    스피노자는 왜 라이프니츠를 몰래 만났나 _ 매튜 스튜어트 지음, 석기용 옮김

    기자 민병욱의 민초통신 33 外
    1676년 11월, 당대 가장 촉망받던 철학자 라이프니츠는 탁월한 지성과 신성모독적인 발언으로 유럽 지식계에서 사실상 파문 상태였던 스피노자를 찾아갔다. 두 사람이 몰래 만난 사실은 훗날 세상에 알려졌지만, 이들이 어떤 대화를 나눴고 그것이 각자의 철학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는 끝내 밝혀지지 않았다. 영국 옥스퍼드대에서 철학박사학위를 받은 저자는 근대성이 싹트기 시작한 이 시기, 다양한 철학적 논의가 이뤄지던 토대 위에서 두 사람이 어떤 대화를 나눴을지 ‘있음직한’ 이야기를 덧붙여 재구성했다. 세상에는 ‘신(神)’이라는 단 하나의 실체만 존재한다는 스피노자의 철학과 무수히 많은 실체 즉 ‘모나드(monad)’들로 이뤄져 있다는 라이프니츠의 철학이 한 편의 잘 쓰인 추리소설 같은 이야기 속에 흥미진진하게 소개된다. 교양인, 632쪽, 2만7000원

    저자가 말하는’내 책은…’

    한국인의 심리코드 _ 황상민 지음, 추수밭, 296쪽, 1만5000원

    기자 민병욱의 민초통신 33 外
    우리는 스스로 질문하는 것에는 서툴고, 사지선다형 문제에서 정답을 찾는 데는 꽤 익숙하다. 이 책은 한국 사람들이 자신의 삶을 잘 이해하고 이 세상을 더 잘 파악해 자신의 삶에 질문을 던질 수 있었으면, 동시에 자기만의 답을 발견할 수 있었으면 하는 마음에서 출발했다. 읽는 내내 독자에게 질문을 던지거나 독자 스스로 자신에게 질문을 던지도록 했다. 한국 사회에서 일하는 심리학자가 한국인의 마음을 탐색해 한국인 스스로 자신에 대해 이해할 수 있게 하기 위한 장치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얻어갈 것이 별로 없는 책이다.

    심리코드는 우리 각자가 이 세상을 인식하는 마음의 틀, 프레임이다. 나의 심리코드가 다른 사람과 다르면 그 사람이 보는 세상이 낯설고 잘 이해되지 않을 수 있다. 이 책은 한국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공통으로 보이는 행동이나 생각을 심리코드로 유형화해서 보여준다. 한국인의 심리코드를 알면 사람들은 자신이 막연히 의문을 가져왔던 일들이 왜 그렇게 나타나는지 이유를 찾을 수 있다. 이 책의 시작은 한국인의 정체성에 대한 내용이다. 어느새 선진국 수준의 경제력을 갖춘 나라에 살면서도 행복하지 않다고 느끼고, 계속 돈만 있으면 모든 것이 해결될 것이라고 믿는 우리의 심리를 파악하려 한다. ‘성공과 출세’ ‘부와 부자’의 심리코드를 다루는 장에서는 한국인이 그토록 성공과 돈을 바라는 게 어떤 심리 때문인지 설명한다. 한국인은 이것이 가능하도록 만드는 수단을 교육이라고 믿고 있다. 교육 문제는 교육을 바라보는 시선, 즉 심리코드에 따라 이해하지 않으면 제대로 된 해법을 찾을 수 없게 된다.

    ‘리더십’ 편에서는 이순신 장군·세종대왕·칭기즈 칸·박정희 등 위대한 인물에게 있다고 여겨지는 ‘영웅적 리더십’은 현실에서 우리가 발휘하는 리더십이 아니라는 것을 알려준다. 누구나 자신이 가장 잘하는 행동 방식이 무엇인지 알기만 하면 자기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다. 리더십은 개인의 스타일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한국 사람은 성공을 간절히 원하고 좇으면서도 성공하지 못할 것 같은 불안을 느낀다. 심지어는 남의 눈에 성공했다고 보이는 사람조차 자신의 성공에 만족하지 못한다. 우리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스스로를 어떻게 믿고 있느냐다. 나는 어떤 사람인가, 나는 내 삶을 어떻게 생각하고 무엇을 추구하는가다. 나의 삶은 다양한 삶의 모습 가운데 하나일 뿐이다. 남과 다른 나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을 때, 내 삶이 의미를 가진다. 어떤 독자는 ‘나는 이 책에 나오는 어떤 심리코드에 해당되지?’ ‘이 유형은 수긍이 가는데, 다른 것은 나와 잘 맞지 않아’라고 반응할지도 모른다. 자신이 가진 믿음을 파악하려 하기보다 뭔가 외부에서 정답을 찾고 평가하는 입장이다. 그러면 이 책을 읽어도 이 책의 메시지를 읽지 못하게 될 것이다.

    황상민│연세대 심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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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금비율의 진실 _ 마리오 리비오 지음, 권민 옮김

    기자 민병욱의 민초통신 33 外
    ‘황금비율이란 과연 무엇이고, 언제 인류사에 처음 등장했으며, 어떤 전파 경로를 거쳐 오늘날 전 지구적인 열광을 받게 됐을까.’ 책은 이 질문에서부터 출발한다. 사람들은 피라미드, 모나리자가 아름다운 이유를 ‘황금비율’에서 찾는다. 그러나 미국 존스홉킨스대 우주망원경과학연구소 수석천문학자로 허블 우주 망원경을 운용하는 저자는 역사적으로 황금비율이 이처럼 널리 ‘숭배’되다시피 한 것은 얼마 전부터라고 말한다. 고대부터 현대까지, 수학부터 물리학·천문학·생물학·인류학·어문학·음악·미술·건축까지 종횡무진 넘나들며 황금비율의 비밀을 들려주는 이 책으로 그는 2003년 페아노상(우수한 수학 대중서에 주는 상), 2004년 국제피타고라스상·미국도서관협회 추천 ‘우수학술도서’ 상 등을 받았다. 부제는 ‘완벽을 창조하는 가장 아름다운 비율의 미스터리와 허구’다. 공존, 432쪽, 2만원

    스팀덥 _ 데이비드 톰슨 지음, 이지선 옮김

    기자 민병욱의 민초통신 33 外
    오랫동안 야근하며 준비해온 프레젠테이션 전략이 갑자기 수정돼 처음부터 모든 일을 다시 시작해야 한다면? 분명 머리끝까지 화가 치솟을 것이다. 하지만 성급하게 감정을 앞세우는 것은 상황을 악화시킬 뿐이다. 경영사상가이자 커뮤니케이션 전문가인 저자는 사회생활 도중 화나는 일을 겪을 때 한 걸음 물러나 생각을 정리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 구체적으로 설명한다. “화를 돋우는 e메일을 읽었을 때 그 다음 반응이 뭐였죠? 바로 답장을 써서 보내버리는 것이었잖아요. 그런 답메일은 노골적이고 감정적일 수밖에 없어요. … 때로는 서로 감정을 나누는 것이 아주 강력한 커뮤니케이션 방법이 될 수 있어요. 하지만 그런 경우라도 결코 e메일을 통해서는 그렇게 되지가 않아요”와 같은 식이다. 제목 ‘스팀덥(Steamed-Up)’은 ‘화난, 몹시 흥분한’이라는 뜻이다. 동아일보사, 136쪽, 1만2000원‘

    줄리언 어산지 _ 앤드루 파울러 지음, 배현 옮김

    기자 민병욱의 민초통신 33 外
    폭로 전문 웹사이트 위키리크스 설립자 줄리언 어산지의 평전. 호주 ABC 방송 시사프로그램 객원기자이면서 시사전문신문 ‘오스트레일리안’ 해외 담당 총편집인인 저자는 호주인 어산지가 영국에서 체포되기 훨씬 전 그를 만났다. 이때의 인터뷰에 옛 여자친구 등 여러 관계자에 대한 취재 내용을 보태 한때 세상을 뒤흔든 어산지와 위키리크스의 실체를 선명히 보여준다. 저자에 따르면 어산지는 “불의는 폭로될 때에야 해결할 수 있다. 지적인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실제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알아야만 한다”고 믿었다. 저자의 결론은 “어산지와 그의 동료들이 한 행위는 분명한 저널리즘이며, 여기에 의심의 여지는 없다. 언론의 가장 중요한 임무는 다른 이들이 감추려고 하는 사실을 발굴하여 사람들에게 알리는 것이다. 그들은 분명 그러한 일을 했다”는 것이다. 멜론, 415쪽, 1만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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