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8월호

탈레반을 그리워하는 아프간 국민들

“연합군의 민간인 살상과 정부 부정부패에 민심이 돌아섰다”

  • 김영미│분쟁지역 전문 TV 저널리스트 gabjini3@hanmail.net

    입력2011-07-20 17: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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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탈레반, 한국군 주둔지에 올해만 12번 로켓 공격
    • 도로매설폭탄에서 요인 암살과 폭탄테러로 진화
    • “탈레반이면 어때. 이제 우린 전쟁에 지쳤다”
    • 아프간군과 경찰로 위장한 탈레반… 속수무책 당하는 연합군
    • 탈레반 인정한 미국, 평화협상은 이뤄질까
    탈레반을 그리워하는 아프간 국민들

    (왼쪽) 아프가니스탄의 탈레반. (오른쪽) 2008년 7월7일 아프가니스탄 수도 카불의 인도대사관 앞에서 탈레반의 소행으로 추정되는 차량 이용 자살폭탄테러가 발생해 최소 41명이 사망하고 140여 명이 다쳤다

    아프가니스탄에서 한국 지방재건팀(PRT) 차리카 기지를 겨냥한 로켓포 공격이 빈번해지고 있어 한국군의 안전이 위협받고 있다. 외교통상부에 따르면 현지 시각으로 7월6일 오전 1시47분 로켓포탄 5발이 차리카 기지 주변에 떨어졌다. 이렇게 우리군 기지가 공격당한 것이 올해 들어서만 12번째다. 5월 초 빈 라덴 사망 이후 두 달 동안 7번이나 공격을 받았다. 더군다나 이번 공격은 10발의 로켓이 영내와 영외로 쏟아져 횟수가 거듭될수록 공격 양상이 더욱 거세지고 있는 듯하다. 당시 차리카 기지 앞 쟝글바에 사는 주민은 “이번에는 10발이나 날아와 혹시 우리 마을에도 잘못 떨어질까봐 걱정을 했다. 10여 분간 교전하는 소리도 들었다. 아마 우리 마을 사람 모두 들었을 것이다”고 그날의 사건을 증언했다. 다행히 인명피해는 없었지만 공격이 잦아지면서 향후 한국군 기지의 치안 상황에 상당한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한국 정부는 현지 아프간 당국과 함께 PRT 기지를 공격한 세력과 공격 의도를 파악 중이라고는 하지만 지금껏 확실히 밝혀진 것은 없다. 공격 초기만 해도 경호업체 교체 과정에서 탈락한 일부 경호원의 보복공격으로 추정했으나 최근에는 탈레반 세력일 가능성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현재 이번 공격을 분석하는 것과 동시에 다시 미군이 있는 바그람 기지로 한국군이 철수하는 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익명의 국방부 관계자는 “아직 미군과 조율하지 않은 상태이고 막대한 공사비를 들여 우리 군이 차리카 기지에 주둔한지 채 몇 개월이 지나지 않아서 신중하게 고려 중이다. 하지만 안전이 최우선이라 바그란 기지로 들어가는 안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지난해 여름 한국군 파병 당시 아프간 북부 파르완주 차리카 기지는 아프간에서 상대적으로 안전하다는 이유로 주둔지로 선정된 곳이다. 그럼 안전하다고 했던 한국군 기지가 올 들어 왜 로켓 공격을 12차례나 받은 것일까?

    아프간 전역으로 퍼진 탈레반

    일반적으로 아프간에서 탈레반 강세 지역을 꼽으라면 칸다하르를 중심으로 한 아프간 남부지역이 거론된다. 과거 탈레반의 수도라 불리던 칸다하르는 대표적인 탈레반 장악 도시 중 하나다. 이 남부 지역에는 미군과 영국군, 그리고 캐나다군이 주둔하며 10년간 탈레반과 치열한 전투를 벌였다. 그 결과 그 3개국 군은 막대한 전사자를 냈다.

    그런데 연합군 전사자 대부분은 전통적인 교전에서 사망한 것이 아니었다. 탈레반은 대체로 드러내놓고 전면적인 공격을 하지 않는다. 탈레반이 연합국 병사들을 공격하는 방법은 주로 도로매설폭탄(IED)이었다. 군인들과 군용 차량이 다니는 도로에 폭탄을 매설해 그들이 지나가는 순간 원격 조종장치를 눌러 터지게 하는 것이다. 처음에는 약한 폭파력으로 차량에 불이 나는 정도였으나 점점 TNT 같은 강력한 폭탄을 터뜨렸다. 미국이 자랑하는 스트라이커 장갑차나 에이브러햄탱크도 순식간에 날아가 휴지가 됐다.



    탈레반이 도로에 묻어놓은 폭탄이 강력해질수록 연합군 전사자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탈레반의 숫자와 전력은 미군의 막강한 화력에 비해 약하고 보잘 것없어 보인다. 하지만 그들은 최소한의 화력으로 최대한의 연합군 희생을 노렸다. 탈레반이라고 해서 유니폼을 맞춰 입은 것도 아니다. 주민들 속에 섞여 터번을 두르고 있는 그들은 은밀하고 조용히, 그러나 강력한 공격으로 연합군을 무너뜨리고 있다. 미군에게 도로매설폭탄은 그야말로 공포의 대상이다.

    지난해 2월 연합군 전사자가 계속 늘어가면서 미군은 아프간 남부지역에 대한 대대적인 군사작전을 전개했다. 미군은 마르쟈 지역을 점령하며 탈레반 세력을 몰아내는 데 성공한 듯했다. 하지만 이 군사작전은 오히려 탈레반의 활동반경을 전국으로 넓혀준 결과만 낳았다. 미군이 남부에서 탈레반을 몰아내자 이 탈레반들은 아프간 북부나 서부 지역으로 이동했다. 사실 탈레반 입장에서 굳이 남부 지방을 고집할 이유도, 미군의 강력한 화력을 상대할 이유도 없다. 탈레반이 퇴각했다기보다 쓸데없이 전력을 낭비하며 미군과 대적하지 않고 다른 지역으로 이동한 것이다. 이른바 풍선 효과다. 남부의 미군들이 약간 편해진 대신 탈레반이 이동한 지역, 특히 북서부 지역의 치안은 점점 위험해지기 시작했다.

    탈레반을 그리워하는 아프간 국민들

    지난해 6월15일 아프가니스탄의 재건에 참여하는 지방재건팀(PRT, Provincial Reconstruction Team)의 경호와 경비 임무를 수행할 한국군 파병부대인 오쉬노(Ashena) 부대 중 선발대 90여 명이 경기도 성남시 서울공항을 통해 아프간 현지로 출국했다.

    아프간 북부는 상대적으로 치안이 안정적인 지역이었다. 발크주의 마쟈리 샤리프나 쿤두즈나 파르완 지역은 탈레반이 많은 파슈툰족이 아닌 타지크족이 주로 사는 지역이다. 이 때문에 지난해 2월만 해도 우리 한국군이 파르완주 차리카 기지로 파병될 당시 우리 정부는 PRT 부지선정 사실을 발표하면서 차리카 기지 주변 치안이 전반적으로 아프간의 다른 지역에 비해 안전한 편이라고 밝혔다. 당시 송웅엽 주(駐)아프가니스탄 대사는 “카불 북쪽에 인접한 인구 70만명의 파르완주는 주민 대부분이 탈레반에 적대적인 타지크족으로 구성돼 있어 치안 사정이 비교적 양호하다”고 말했다. 마치 탈레반이 타지크족이 겁나 북부 지역에는 발을 못 붙일 것 같은 뉘앙스였다.

    하지만 결과는 탈레반이 남부에서 북부로 대거 이동하면서 한국군이 위치한 파르완주를 비롯해 북부 지역 대부분에 탈레반이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다. 올 들어 일어난 한국군 기지에 대한 12차례의 공격에는 이런 배경이 있다. 한국군이 아프간 북부지역이 안전하다고 생각하고 주둔을 시작했지만 지금은 절대 안전한 지역이 아니다. 한국군으로서는 아프간의 미래를 정확히 예측하지 못한 결과인 셈이다

    주민들과 융화하는 탈레반

    한국뿐만이 아니라 아프간 북부가 상대적으로 안전하다고 판단했던 또 다른 연합군 중 더한 운명에 처한 경우도 있다. 아프간 북부의 치안을 담당하며 쿤두즈주에 주둔한 독일군이다. 아프간 주둔 독일군은 현재 미국과 영국에 이어 세 번째로 많은 4800명 규모다. 쿤두즈주는 아프간에서도 최북단, 그러니까 타지키스탄으로 가는 길목에 있다. 외국과의 교류도 비교적 있는 곳이고 인구의 대부분이 타지크족이다. 그리고 이 쿤두즈도 아프간에서 손꼽히는 ‘상대적으로 안전한’ 지역이었다.

    독일군은 전투보다는 평화 재건 사업이나 보급품을 위한 수송에 치중했고 기지 밖으로도 잘 나오지 않는 조용한 군대였다. 그 때문에 전사자가 많은 미군이나 영국군으로부터 곱지 않은 시선을 받아야 했고, 연합군 군사작전에도 독일군은 가능하면 개입하지 않으려 했다. 그래서 아직도 독일군의 전사자는, 수백 명의 전사자를 낸 미국과 영국에 비해 상대적으로 적은 52명이다. 쉽게 말해 다른 연합군과 달리 독일군은 자국 병사의 희생을 막기 위해 몸을 사리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쿤두즈는 비교적 안정된 치안을 유지했다.

    하지만 2년 전부터 쿤두즈 위에 있는 타지키스탄이나 우즈베키스탄 등에서 외국인 무장 세력들이 유입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서서히 탈레반, 알-카에다, 그리고 하카니 조직을 포함한 다른 반군세력 전사들의 은신처로 변했다. 지난해부터는 탈레반이 북부로 북상하면서 쿤두즈주와 인접한 지역의 치안은 점점 불안해졌다. 쿤두즈 경찰도 지난해 여름 기자회견을 통해 아랍과 체첸, 타지키스탄 등 중앙아시아 국가 출신 외국인 무장 조직과 탈레반이 결합해 점점 커다란 세력으로 급부상하고 있음을 인정했다. 비교적 평화로웠던 쿤두즈에서도 북상한 탈레반과 이 외국 무장 세력들이 결합해 서서히 세력을 키워가고 있었지만 아프간 정부는 이를 인지하지 못하고 2007년부터 2년간 두 차례에 걸쳐 쿤두즈 경찰 병력을 30% 이상 줄였다. 아프간 남부에 비해 상대적으로 쿤두즈가 안전하다고 오판 한 것이다.

    이처럼 경비가 허술해진 틈을 타 탈레반과 외국 무장 세력 등이 급속도로 확대됐다. 쿤두즈에서 농사를 짓는 나사르씨는 “2년 전부터 탈레반이 우리 마을로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들은 동네 사람들에게 친절하게 대하며 도둑을 막고 질서를 유지하는 등 사람들과도 잘 지냈다”며 탈레반이 주민들과 융화하는 과정을 설명했다.

    이런 방법으로 주민 사이에 세력을 확장한 탈레반은 연합군을 위협하는 공격을 감행할 능력도 함께 갖춰갔다. 시간이 지나면서 탈레반과 연합군의 충돌이 시작됐다. 2년 전 탈레반 정권 붕괴 이후 처음으로 쿤두즈 인근 지역에 나토군의 야간 폭격이 잇따랐다. 무하마드 오마르 쿤두즈 주지사는 “카나바드 지구의 경우 인구가 35만명에 달하는데 경찰 병력은 고작 80명뿐이다. 또 차하르다라 지구에는 수백 명의 무장 세력이 존재하는데도 경찰은 56명뿐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쿤두즈의 치안 상황이 빠르게 악화하고 있다. 그 이유는 쿤두즈가 갖는 전략적 중요성에 비해 경찰 병력이 적기 때문이다. 우리 경찰은 모든 지역을 방어할 수 없다”고 토로했다.

    이렇게 치안 공백이 커지는 가운데 2009년 모하마드 카심 하임 부통령이 쿤두즈 지방에서 탈레반에게 습격을 당했다. 하임 부통령이 하미드 카르자이 현 대통령을 대신해 선거운동을 벌이다 탈레반의 공격을 받았고 하임의 경호원 한 명이 부상했다. 하임 부통령도 쿤두즈가 이렇게까지 위험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다. 다행히 하임 부통령은 무사히 탈출했지만 부통령의 안위도 보장하지 못할 만큼 쿤두즈 상황은 악화일로로 가고 있었다. 비록 미군이 증파를 통해 10만이라는 숫자가 아프간에 주둔하지만 쿤두즈 같은 사각지대를 간과하며 아프간 북부의 전체 치안이 흔들렸다. 탈레반이 연합군 치안 전선의 허를 찌른 것이다.

    독일군의 민간인 대량 살상

    그러던 지난해 9월 독일군에게 엄청난 시련이 닥쳤다. 쿤두즈에서 바글란을 잇는 고속도로에서 독일군 기지로 가던 독일군 석유 탱크로리 트럭 2대가 탈레반에게 강탈당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그 도로는 독일군이 수송을 위해 항상 이용하던 고속도로로 이 사건 이전에도 종종 탈레반에게 물품을 강탈당하곤 했다. 운전사들을 죽인 탈레반이 이 트럭 두 대를 직접 운전하던 중 한 대가 운전 미숙으로 강물에 빠졌다. 탈레반은 이 트럭을 끌어내려 애썼으나 여의치 않자 인근 주민들에게 석유를 그냥 가져가라고 했다. 주민 200여 명이 공짜 연료를 가져가기 위해 양손에 통을 들고 몰려들었다.

    이 광경을 위성을 통해 지켜보던 독일군 사령관은 독일군 기지에서 일하는 아프간 현지 통역에게 “이 주민들이 모두 탈레반이냐”고 물었고 현지 통역은 탈레반에 동조하는 사람들이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아마도 통역 미숙이 아니었나 추측되는 부분이지만 독일군 사령관은 대로해 미국 전투기를 출격시켜 공습 명령을 내렸다. 한밤중에 엄청난 폭격이 유조차 주변에 몰려든 주민들에게 가해졌고 결과는 100명가량의 민간인 희생을 불러왔다. 공짜 석유를 얻으려다가 몰살을 당한 것이다.

    탈레반은 즉각 성명을 내고 “우리는 전 세계 인권단체와 유엔 당국, 독립적인 국제기구와 정부들이 이번 사건을 냉철하게 조사해 비판하고, 재발 방지 대책을 세움으로써 인권적 윤리적 책임을 다할 것을 촉구한다”고 밝혔다. 성명은 이어 “나토군의 폭격으로 150명의 민간인이 죽었다. 희생자 가운데는 유조차에서 연료를 얻기 위해 모였던 어린아이들과 일가족 등이 포함돼 있다”고 주장했다. 공습을 요청했던 독일군은 50여 명의 탈레반이 숨졌으나 민간인 사망자는 없었고 공습은 정당했다고 반박했다. 이 사건의 사망자 숫자와 죽은 사망자들이 탈레반이냐 아니면 민간인이냐가 초미의 관심사가 됐다.

    민간인 대량 살상은 미국과 연합국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말이다. 미군의 화력이 워낙 강해서 공중 폭격이 시작되면 웬만한 마을 전체가 초토화된다. 아프간 개전 초기, 벼룩 잡으려다 초가삼간 태운다고 탈레반 병사 몇 명을 잡겠다고 마을 전체를 폭격하다가 많은 민간인이 희생된 사건이 종종 발생했다. 이 민간인 대량 살상은 곧 아프간 민심으로 이어졌고 가족을 잃은 아프간 사람들은 탈레반에 협조하는 세력이 되어갔다.

    그래서 민간인 대량 살상이 있을 때마다 미국과 연합국은 정치적으로 수세에 몰리곤 했다. 독일군은 석유탱크 폭격이 정당했다고 열심히 주장했지만 현지 아프간 관리와 쿤두즈 주정부가 사망자 중에 어린이 등 민간인이 포함돼 있었다고 탈레반의 손을 들어줬다. 이로써 독일군은 아프간 민간인을 대량 살상한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여기에 미국 등 나토 회원국들도 독일군에게 등을 돌렸다. 당시 나토군 현장조사를 지휘한 아프간 주둔 미군의 그레고리 스미스 소장은 독일군의 현장 보존 노력이 미흡했다고 비판했고, 스탠리 매크리스털 아프간 주둔 미군 사령관도 독일군의 한발 늦은 대응에 비판적인 태도를 보였다. 베르나르 쿠슈네르 프랑스 외무장관도 “이번 공습은 중대한 실수로, 우리는 이번 사건을 조사해 관련자들의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말했다. 독일군은 이 사건 이후 아프간 사람들에게 미움의 대상이 됐고 그 책임을 혼자 져야 하는 외로운 신세가 된 것이다.

    4월 춘계공격

    한순간의 실수로 민심을 잃은 독일군은 그 후에도 탈레반의 엄청난 공격에 시달렸다. 최근에는 독일군 사령관마저 공격을 당했다. 5월28일 아프간 북부 타카르주 주지사 청사에서 자살폭탄 테러가 발생해, 아프간 북부 지역 경찰 사령관인 무함마드 다우드 다우드 장군 등 고위 경찰 2명을 포함해 6명이 숨지고 마르쿠스 크나이프 아프간 북부 지역 나토 사령관 등이 다쳤다. 사망자에는 다우드 장군 외에 타카르주 경찰총수인 샤 자한 누리와 독일군 2명이 포함됐다. 또 타카르주 주지사인 압둘 잡바르 타크와도 부상했다. 부상한 마르쿠스 크나이프는 독일군 사령관이자 북부지역 연합군 사령관이다. 2001년 아프간전 이후 연합군 장성이 부상당한 것도 그가 처음이다.

    사건은 이날 주지사 청사에서 열린 아프간 고위 관료들과 아프간 주둔 연합군 고위 장교들의 회의장에서 일어났다. 회의가 시작되자 경찰 제복을 입고 기다리던 탈레반 자살 특공대원이 현장에서 폭탄을 터뜨렸다. 충격적인 것은 나토군 고위 장성과 아프간의 최고위급 안보 관료들이 참석하는 회의의 철통같은 보안이 뚫렸다는 점이다. 탈레반은 이제 아프간 북부에서도 최고위급을 노릴 만큼 정보력과 인력을 갖추고 있다.

    이 사건에 앞서 이틀 동안 독일 해병대원 2명이 도로 매설폭탄에 의해 숨지고 6월2일에도 쿤두즈에서 남쪽으로 36㎞ 떨어진 곳에서 길가에 설치된 폭탄이 터지면서 이곳을 지나던 독일군 장갑차가 전복돼 독일군 한 명이 전사하고 5명이 부상하는 등 독일군에게 비보가 연일 날아들었다. 급기야는 독일 연방군 참모총장인 볼커 위커 장군이 7월2일 독일 국영 도이칠란드푼크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 “지난해 추가 배치된 500명의 병력을 감축할 방법을 찾고 있다”고 밝혔고 귀도 베스터벨레 독일 외무장관도 “아프간 북부에 주둔하고 있는 독일군을 올해 말부터 철군시키겠다”고 발표했다. 쿤두즈 상황이 독일군을 더 이상 버틸 수 없는 상황까지 몰고 간 것이다.

    독일군이 두 손 들고 쿤두즈를 떠나면 같은 아프간 북부에 주둔하고 있는 한국군에게도 여간 부담이 아니다. 가뜩이나 치안이 불안정한 상황에서 나토군 중 3번째 규모인 독일군이 빠져나간다면 당연히 북부에는 커다란 치안 공백이 예상된다. 독일군이 주둔하는 쿤두즈와 한국군이 주둔하는 파르완주는 같은 아프간 북부이고 거리도 그리 멀지 않다. 독일군이 겪은 일련의 과정이 한국군에게 남의 일만은 아닌 것이다.

    최근 들어 한국군 기지에 날아든 로켓 공격들은 이런 아프간 북부의 치안 상황을 반영하는 것으로 보인다. 또 다른 이유는 탈레반의 춘계 공격으로 추정된다. 탈레반은 해마다 4월부터 춘계공격을 시작하고 통상 12월 즈음이면 공격횟수를 줄인다. 그것은 겨울이 오면 탈레반 병사들이나 지도자들이 고향으로 돌아가 4월까지 휴가를 즐기기 때문이다. 가족들도 만나고 조직 라인도 정비하며 눈 덮인 겨울을 나고 봄이 오면 다시 모여 공격을 시작하곤 한다.

    필자는 2006년 겨울 아프간 남부 가즈니주에서 탈레반 병사의 가족들을 취재한 적이 있다. 사마칸이라는 이름의 이 병사에게는 아내와 세 아이가 있었다. 그는 주로 아프간 남부 헬만주에서 활동하고 겨울이 오면 집으로 돌아온다고 했다. 그는 “나뿐만 아니라 지도자급 탈레반들도 대부분 집으로 가서 휴식을 취하고 몇몇 지도자는 파키스탄 탈레반을 방문하는 출장을 가기도 한다. 그리고 내년의 사업에 대해 구상을 하고 세상 돌아가는 사정도 알아보곤 한다. 봄이 되면 그들에게 복귀하라는 연락이 올 것이고 나는 다시 헬만주로 돌아가 전투를 계속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렇게 모인 탈레반은 봄이 되면 다시 전투를 벌인다. 4월이 되면 으레 탈레반 대변인이라 불리는 인물이 춘계 공격을 시작한다고 성명을 연례행사처럼 낸다. 그 성명이 끝나면 탈레반의 공격 횟수가 급속도로 늘어나고 한여름이 되면 더욱 거세진다. 연합군 사상자도 이것과 비례한다. 그래서 한국군 기지에 로켓공격이 잦아졌던 시기도 이와 비슷하다. 만약 그 공격이 탈레반에 의한 것이라면 춘계 공격의 하나로 볼 수 있다. 이런 모든 상황을 종합해볼 때 한국군 기지에 대한 공격은 단순한 공격이 아니라 아프간 치안 상황에 따른 영향이라 추정된다.

    탈레반의 가공할 전투력

    최근 탈레반의 공격 양상도 많이 변하고 있다. 과거에는 도로매설폭탄이 주 공격방식이었다면 요즘에는 아프간 군대나 경찰에 섞여 위장하는 방법을 많이 쓴다. 탈레반 요원들이 일정한 시간 동안 군대나 경찰로 들어가 있다가 결정적인 순간에 폭탄 테러를 하거나 암살을 시도한다. 지난 4월27일 아프간 수도 카불 국제공항의 공군기지에서 훈련을 받던 아프간 공군 장교가 미국인 교관 등 9명에게 총기를 난사해 미군 8명과 미국인 민간 계약업자 1명 등 모두 9명이 숨지는 사건이 발생했다. 아미드 굴(48)로 밝혀진 이 아프간 공군 장교는 조종사였다.

    사건 직후 보도 자료를 낸 탈레반 대변인 자비울라 무자히드는 이 조종사에 대해 “군 간부로 위장하고 있었고, 공군기지 내 다른 탈레반들이 공항에 들어가도록 도왔다”며 “우리는 모든 보안시설에 침투할 수 있으며, 모든 곳에 잠입해 있다”고 덧붙였다. 이제 탈레반은 마음만 먹으면 어느 군사시설이라도 자유롭게 드나들고 위장할 수 있다는 것이다. 아프간에서 단일 사건으로 미국인 9명이 한꺼번에 숨진 것은 2005년 6월 탈레반의 로켓 공격으로 미군 헬기가 추락해 미군 16명이 숨진 이후 처음이라 미군들을 당황하게 했지만 정작 더욱 심각한 것은 연합군 주변에는 언제든 위장한 탈레반이 총을 들고 있을 수 있다는 이야기다.

    이 사건뿐 아니라 4월16일에는 아프간군이 미군에게 수류탄을 던져 미군 6명이 사망했고 그 다음 주에도 아프간 군복을 입은 탈레반 동조자가 아프간 국방부 건물에서 총기를 발사해 2명이 숨졌다. 앞서 설명한 독일군 사령관과 아프간 고위 장군들의 회담장 폭탄 사고도 아프간 군인으로 위장한 탈레반 요원들이 저지른 것이다. AP통신 보도에 따르면 2009년 3월 이후 지금까지 아프간군이나 아프간 경찰로 위장한 탈레반이 저지른 테러는 20건이며, 이로 인해 나토군 36명이 사망했다.

    이제 미군과 연합군은 아프간 군인들과 경찰들마저 믿기가 힘들어졌다. 그들 중 누가 위장한 탈레반인지를 전혀 가려낼 수 없기 때문이다. 익명의 미군 장교는 “연합군이 아프간군과 협력해 군사작전도 나가야 하고 군사 정보도 공유해야 하는데 이들 중 누군가가 느닷없이 총을 쏘거나 폭탄 테러를 할 것이라고 생각하면 아프간 군인이 옆에 있는 것도 사실 두렵다”고 말했다. 탈레반이 이렇듯 쉽게 군과 경찰에 침투할 수 있는 것은 연합군의 점진적인 철군을 위해 아프간이 자체 군인 모집에 열을 올리기 때문이다. 아프간에서 철군을 하려면 아프간 군인들이 자신의 나라를 지킬 수 있어야 한다. 그래서 연합군은 아프간 군인 모집과 훈련에 열성이다.

    군인이 되기 위해 모인 아프간 사람들 중에는 글자를 모르는 문맹자가 많다. 하지만 무조건 뽑아서 제식훈련을 시킨다. 일자리를 구하기 쉽지 않은 아프간에서 군인이 된다면 적어도 월급을 받을 테니 17세 어린 청소년부터 70세 할아버지들까지 아프간 군인에 지원한다. 당장 머리 숫자가 아쉬운 연합군과 아프간 정부는 이들을 대부분 받아들인다. AP통신 보도에 따르면 지난 한 해 동안 아프간 군대 규모는 15만명으로 두 배나 증가했다. 미군이 철군한다는 2014년까지 아프간군이 안전을 책임질 수 있도록 계속 모집을 늘릴 계획이다. 이 틈에 탈레반 병사들이 위장을 하고 아프간 군인이 되는 것은 아주 쉽다. 선진국처럼 전산화가 잘되어 있지 않은 낙후된 아프간에서는 병사의 과거 전력에 대해 확인할 방법도 없다.

    지난 5월18일 아프간 고위급 장군의 표지판인 ‘A’를 단 차량이 카불에 있는 국방부 입구에 다가섰다. 차량에는 특별 출입증이 붙어 있어 경비원들은 신속히 차를 통과시켰다. 그러나 국방부 안으로 진입한 이 차량에서 갑자기 아프간군 제복을 입은 남자가 뛰어내려 국방부 건물로 들어가 총격을 가해 아프간 병사 2명이 숨졌다. 이 사건은 아프간 경찰과 군인으로 가장한 사람이 저지른 사건으로 밝혀졌다. 지난 4월 아프간 국방부 청사 내 자살폭탄 사건도 일어났는데 이것은 당시 아프간을 방문 중인 제라르 롱게 프랑스 국방장관을 표적으로 한 공격으로 드러나면서 파장이 컸다. 당시 차량을 국방부 안으로 운전했던 남성은 아프간 장군의 조카였다고 AP통신이 익명의 정부 관리를 인용해 전했다.

    압둘 라힘 와르다크 아프간 국방장관도 최근 의회에서 “적이 아프간 군 조직에 침투하려고 노력하고 있다”며 우려를 나타냈다. 이 같은 탈레반의 전술 변화는 아프간 정부에 대한 불신을 높이고, 아프간군을 와해하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미군과 아프간 동맹군에 맞서 공격 규모는 작지만 자살폭탄이나 암살, 침투 등의 방법을 사용해 공격 효과를 최대화하는 것이다.

    12살 소년의 자살폭탄 공격

    또한 탈레반이 요원 침투와 더불어 요인 암살을 주도하는 것도 최근 달라진 공격 양상이다. 5월12일 미 해병대 중령과 하사 등 두 명이 아프간 남서부 헬만드주에서 사망했다. 아프간 주둔 미군에 따르면 ‘아프간 국가 민정경찰(ANCOP)’소속 병사 한 명이 경찰서를 방문한 이들에게 총격을 가한 것이다. 마찬가지로 탈레반이 경찰로 위장하고 있다가 이들을 노린 것이다. 물론 그들이 경찰서를 방문한다는 정보도 아프간군이나 경찰로 위장한 탈레반 요원들이 입수했다. 이에 대해 카불 통신의 나사르 라흐만 기자는 “경험이 많고 노련한 미군 해병대 중령이 그렇게 쉽게 당한 것은 탈레반이 아프간 경찰과 군인 사이에 조직적으로 섞여 있기 때문이다. 미군을 비롯한 나토 연합군이 훈련시킨 경찰이지만, 사실은 탈레반이었던 것이다. 그들은 기회를 노리고 있다가 결정적인 순간에 외국군의 주요 인사를 사살한다. 이것이 최근 탈레반 공격 방식이다”고 말했다.

    이런 공격방식으로 독일군 사령관도 부상했고 아프간 고위 관료들도 예외는 아니었다. 이로 미루어 만약 한국군이 회의를 위해 주 청사나 경찰서를 방문한다면 이 사실이 누설되지 않을 재간이 없는 것이다. 보안이 아무리 철통같더라도 아프간 군경에 섞여 있는 탈레반을 따돌리기가 쉽지 않다. 더군다나 PRT 사업은 아프간 군인들과 경찰의 협조가 필수이다. 한국군뿐만 아니라 미군을 비롯한 다른 연합군들도 입장이 난처하기는 마찬가지다. 아프간 군경이 제대로 돌아가야 그들도 아프간에서 발을 빼고 치안 유지를 아프간 정부에 맡길 수 있는데 현재 상황에서는 쉽지 않다.

    탈레반의 자살 폭탄 테러도 양상이 많이 바뀌었다. 과거에는 혈기왕성한 젊은이들이 이 자살 폭탄을 주도했다면 지금은 여자와 어린아이들까지 자살폭탄 테러에 동원된다. 아프간과 파키스탄 접경 지역인 팍티카주 바르말의 한 시장에서는 최근 12살 난 소년이 시장에서 입고 있던 폭탄 조끼에 불을 붙여 민간인 4명을 숨지게 했다. 영국 가디언지에 소개된 누르 모하마드라는 14살 소년은 결혼식장에서 휴대전화를 훔쳤다가 탈레반에게 걸려 자살 테러범으로 훈련을 받았다. 폭약이 매달린 자살폭탄 조끼를 걸치고 기지로 진입하면 조끼에 매달린 2개의 끈을 잡아당겨서 되도록 많은 군인과 함께 죽어야 한다는 가르침도 받았다. 순교자 차림으로 훗날 다른 소년 테러범들을 모으는 데 활용될 ‘홍보용’ 촬영까지 마쳤다. 하지만 모하마드는 거사 직전 그 폭탄 조끼를 벗어버리고 미군 기지에서 모든 사실을 털어놓았다.

    이처럼 어린이 자폭테러범이 느는 것은 성인 지원자보다 의심을 덜 받고 목표물에 접근할 수 있다는 장점 때문이다. 탈레반이 사용하는 폭탄조끼는 더욱 강력하게 진화했다. 자살폭탄은 최대한 많은 인명살상을 목표로 한다. 그래서 폭약과 더불어 못이나 볼트, 너트 같은 작은 금속물질을 폭약과 섞어 조끼 안쪽에 최대한 많이 넣는다. 터지는 순간 이 물질들이 사방으로 튀어 사람 몸을 뚫고 지나가며 많은 인명이 희생되는 것이다.

    하지만 이 자살조끼가 터지기 전까지 누가 테러를 하는지 알기가 쉽지 않다. 더군다나 아이들이나 부르카를 쓰고 있는 여성들이 자살조끼를 입고 있으면 눈치 채기가 더 어렵다. 탈레반은 이런 점을 노려 아이들까지 이용해 자살폭탄을 감행하는 것이다.

    정부 위협하는 탈레반

    이제 탈레반은 아프간에서 도저히 무시할 수 없는 세력으로 부상했다. 2001년 아프간 전쟁이 시작될 때 제대로 된 공격도 못해보고 뿔뿔이 흩어졌던 그들이 다시 수면으로 나온 것이다. 현재 아프간 정부는 무능하기 짝이 없다. 아프간 대통령이 아니라 카불 대통령으로 불리는 하미드 카르자이 대통령에 대해 아프간 국민들의 불신은 아주 높다. 더군다나 서방 세계에서 지원한 원조금을 착복하기 바쁜 정부 관료들은 아프간 미래에 관심조차 없다.

    만약 2014년 미군의 완전 철군이 아프간에서 이루어진다면 현재의 아프간 정부보다는 탈레반이 다시 정권을 창출할 수도 있는 상황이다. 그 이유는 아프간 민심이 정부와 연합군보다는 탈레반에 많이 기울어져 있기 때문이다. 가난한 서민들은 전쟁 후 나날이 힘들어지는 아프간 경제 상황에 일자리도 희망도 없다. 카불에서 고등학교 교사를 하는 오마르 샤(30)는 ‘탈레반 정부가 다시 들어선다면’이라는 필자의 질문에 “아프간 미래가 암울하다. 사람들은 일과 돈이 없어 너무 힘들다. 이 모든 것이 미국과 우리 정부 때문이라고 사람들은 불만이 많다. 탈레반 정부가 다시 들어선다면 적어도 2001년 이전으로는 돌아갈 것 아닌가. 그때는 이렇게까지 우리가 못살지는 않았던 것 같다. 그래서 차라리 탈레반 정부를 원하는 사람들은 계속 늘고 있다”고 대답했다. 아프간 북부 마쟈리 샤리프에서 가게를 하는 상인 압둘 파라(45)는 “탈레반이면 어때요? 그저 우리 같은 서민은 굶기지 않고 아이들 키울 수 있다면 탈레반이 대수인가요? 이제 우리 아프간 사람들은 전쟁에 지쳤습니다. 미군과 외국군보다는 탈레반이 더 나을 수도 있습니다”고 말했다.

    물론 이 두 사람의 의견이 아프간 국민 전체를 대변하는 것은 아니지만 최근 아프간 전역에서 일어나는 크고 작은 시위가 이 사실을 방증한다. 한국군이 주둔하고 있는 파르완주도 주민 시위가 일어나는 등 민심의 동요가 커지고 있다. 지난 4월18일 파르완주 청사에서 동맹군에 협조하는 주지사를 비롯한 이 나라의 지도자들을 상대로 200∼250명이 무력시위를 벌였다. 아프간 현지 주민에 따르면 시위는 샤비르라는 이슬람교 성직자가 파키스탄에서 배워온 폭발물 제조법을 주민에게 가르쳤다는 혐의로 미군에 체포되자 미군과 연합군에 협조적인 살랑기 주지사에게 항의하는 과정에서 벌어졌다. 미군과 주정부는 이 시위가 탈레반과 연계된 시위라고 하지만 현지 시민들의 이야기는 다르다.

    시위에 참석했던 한 시민은 “샤비르는 존경받는 성직자다. 파르완주의 주민들 사이에 명성이 자자하다. 그런 그를 증거도 없이 미군이 폭발물 제조법을 가르쳤다고 잡아갔다. 그는 파키스탄에서 우연히 들은 이야기를 나누었을 뿐이다. 그래서 그의 석방을 요구하러 갔을 뿐이다. 하지만 우리 주지사는 그런 문제를 들으려 하지도 않았다. 그래서 사람들이 더욱 화가 났다. 그는 시민들에게는 관심이 없고 오로지 돈과 명예만 생각하는 부패한 정부 관리일 뿐이다”고 말했다. 그 결과 시위군중이 주지사를 공격하는 사태까지 벌어진 것이다.

    시위대 중 5명이 사망하고 많은 사람이 부상했으며 주지사는 경호원에게 둘러싸여 간신히 도망갔다. 시위대가 주지사를 공격한 것은 그가 미군·연합군과 친하며 민심에는 전혀 관심이 없는 부패한 인사이기 때문이라는 주민들의 의견이 지배적이다. 시위대가 공격했던 주지사는 압둘 바시르 살랑기 파르완 주지사다. 그는 한국을 방문했으며 한국군에게도 우호적인 인사로 알려져 있다. 혼란과 시위로 얼룩진 아프간 상황은 탈레반이 아프간 정부보다 더 민심을 더 얻을 수 있는 기반이 됐다.

    탈레반이 낫다

    그래서 최근 미국은 탈레반과의 평화협상을 추진 중이다. 미국도 이제는 탈레반의 존재를 더 이상 묵과할 수는 없는 것이다. 처음 공식적으로 미국과 탈레반간 평화협상을 밝힌 것은 하미드 카르자이 아프간 대통령이다. 그는 6월18일 기자회견에서 “평화협상이 그들(탈레반)과 이미 시작됐고, 잘 진행되고 있다”고 밝히면서 “외국군, 특히 미국이 이 협상에 앞장서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로버트 게이츠 전 미 국방장관과 힐러리 미 국무장관도 탈레반과의 평화협상이 고위 인사들에 의해 본격화되고 있음을 밝혔다. 이는 미국이 더 이상 탈레반을 적으로 규정하지 않고, 협상을 통해 수면으로 끌어올리려는 전략을 택했음을 의미한다. 그리고 알-카에다와 탈레반을 분리해 그동안 치른 10년간의 전쟁을 마무리하려는 의도도 보인다.

    하지만 아직 탈레반 측의 공식적인 입장은 나오지 않고 있고 이 평화협상이 제대로 진행될 수 있을지는 장담하기 힘들다. 미국의 평화협상 기대와는 상관없이 탈레반은 북부와 서부에서 새로운 전선을 형성하고 동부 지역에서 공세를 강화하고 있다. 미군은 탈레반에 맞서 작년 한 해만 5465개의 폭탄과 헬파이어 미사일을 아프간 마을에 퍼부었다. 그만큼 아직 아프간은 치열한 전선이다.

    이 전선 안에는 어려운 문제들이 여전히 존재한다. 뇌물수수와 부정부패가 아프간 정부의 최고위층에 이르기까지 만연해 있어 아프간 국민을 보호하고 서비스를 제공해야 할 정부는 국민에게 불신의 대상이다. 미국과 연합국을 가장 옥죄는 민간인 살상문제도 여전하다. 지난 5월에도 연합군의 민간인 공격에 대항하는 시위가 유혈충돌로 번져 10명이 숨지고 30명이 부상했다. 시위대는 이날 연합군이 아프간 북부 타하르 탈루칸에서 여성 2명 등 민간인 4명을 죽인 데 대해 비난하는 시위를 벌였다. 이와 관련, 연합군은 “전날 사상자들은 무장반군이었다”며 “탈레반 반군이 시위대를 선동해 ISAF(국제안보지원군)를 공격하도록 했고 이 과정에서 교전이 발생했다”고 주장했다.

    민간인이 죽어도 무장반군이었다고 주장하는 연합군의 태도에 분노하는 것은 아프간 국민이다. 아프간 이슬람 통신의 파칼 암미르 기자는 “바로 그런 아프간 사람들의 분노가 탈레반을 키우고 있다. 미국이 끝까지 아프간 국민에게 해줄 수 없는 것은 이 분노를 가라앉히는 것이다. 그들이 아프간 하늘에서 공중 폭격하는 전투기를 보는 한은 말이다”고 말했다. 이제 10년 아프간 전쟁은 막바지에 이른 듯하다. 미국과 연합군은 하루 빨리 아프간에서 떠날 수 있는 날을 기다리고 마지막 박차를 가하지만 쉽지 않은 과정이다. 아직 탈레반이 그들의 발목을 잡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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