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8월호

베스트셀러 출판사들 줄도산과 선인세의 비밀

수억원대 베팅 경쟁에 번역서 몸값만 ‘껑충’ 마구잡이 출간에 독자 반응 ‘뚝’

  • 한기호|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장

    입력2011-07-20 17:5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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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기 작가 알랭 드 보통의 책을 많이 펴낸 출판사인 이레와 생각의나무가 최근 부도 처리돼 출판계에 큰 충격을 던졌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백야행’을 베스트셀러에 올린 태동출판사도 최근 부도가 났다. 이 같은 베스트셀러 출판사들의 줄도산 사태의 근본 원인이 과도한 선(先)인세 탓이라는 이야기가 설득력 있게 전해지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해외 인기 작가에 대한 선인세는 지난 10여 년 동안 그야말로 천정부지로 치솟았다. 도대체 왜 이렇게 오른 걸까. 그 액수가 얼마이기에 출판계를 이토록 위험에 빠뜨린 것일까.
    베스트셀러 출판사들 줄도산과 선인세의 비밀
    ‘선인세 100만달러나 주고 출판권 가져오다니….’

    동아일보 2009년 1월22일자에 실린 기사의 부제목이다. 이 기사는 문학수첩에서 6월경 출간할 예정인 댄 브라운(‘다빈치 코드’의 작가)의 신작 ‘솔로몬의 열쇠’(가제)의 선인세로 100만달러를 지급했다는 사실을 전하며 해외 번역서에 대한 의존도가 커진 한국 출판계가 ‘국제 출판시장의 호구(虎口)’로 전락해 돌이키기 어려운 지경에 이르렀다고 꼬집었다. ‘한국 출판계의 굴욕’이라는 제목이 의미심장했다.

    해외 번역서의 선인세는 1990년대까지만 해도 2만달러를 넘는 경우가 드물었다. 하지만 2000년대 들어 10만달러, 20만달러가 우습게 여겨졌다. 그러다가 2008년에 췌장암으로 시한부 인생을 선고받은 컴퓨터 공학 교수 랜디 포시의 ‘마지막 강의’가 64만달러를 기록하면서 곧 100만달러 돌파가 점쳐졌는데 이 기록을 댄 브라운의 신작이 보란 듯이 넘겨버렸다.

    필자는 그 기사에 “해외 작품에 선인세 10만달러 이상은 안 주는 것을 불문율로 여기고 지키는 일본 출판계와 비교된다”는 멘트를 달았다. 또 “100만달러면 한국의 작가 200명과 계약할 수 있는 금액”이기에 “출판사들이 국내 콘텐츠 생산력을 높이기 위해 국내 저자 발굴에도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고도 했다.

    선인세 100만달러짜리 책 발간 초기에만 반짝



    기사에서 언급한 댄 브라운의 ‘솔로몬의 열쇠’는 2009년 12월에 ‘로스트 심벌’이란 제목으로 출간됐다. 이 책은 잠시 베스트셀러에 올랐지만 별 힘도 쓰지 못하고 슬그머니 베스트셀러 목록에서 사라졌다. 이 책의 선인세는 매우 과도한 투자였다는 것이 확인된 셈이다.

    문학수첩은 전세계에서 64개 언어로 번역돼 4억 부가 팔려나간 조앤 K. 롤링의 ‘해리포터’ 시리즈의 번역본을 펴내 2000만 부 이상 판매한 출판사다. 원래 이 소설의 출발은 매우 미미했다. 중고 타자기로‘해리포터’의 최종원고를 타이핑한 조앤 K. 롤링은 원고를 복사할 돈이 없어 한 번 더 타이핑하는 수고를 감내해야 했다. 이 원고는 영국의 12개 출판사에서 거절당한 끝에 블룸스베리 출판사에서 받아들여졌고, 1997년 6월26일 첫 권‘해리포터와 현자의 돌’이 초판 500부로 출발했다. 하지만 1997년 볼로냐 아동도서전에서 미국에서 출간할 원고를 찾고 있던 스콜라스틱 출판사의 편집이사 아서 레빈의 눈에 띄면서 이 책은 마법에 걸린 책으로 거듭난다.

    첫 권이 발매된 지 불과 사흘 뒤 블룸스베리는 이 책의 미국 내 판권을 입찰에 부쳤는데 레빈은 전례 없이 높은 가격인 10만5000달러에 판권을 사들였다. 출판을 철저하게 비즈니스로 대하는 미국인들은 무명 저자를 띄우기 위한 방편으로 높은 선인세를 주고 이를 홍보하기도 하는데 ‘해리포터’가 바로 그런 경우였다. 스콜라스틱은‘해리포터와 현자의 돌’이라는 제목이 너무 무겁다는 이유로‘해리포터와 마법사의 돌’로 이름을 바꿔 1998년 8월 초판 5만부를 발행했다. 이후 이 시리즈는 세계 최초의 신화를 써나간다.

    스콜라스틱이 10만5000달러나‘질렀다는’사실이 국내에 알려지자 한국의 출판사들도 눈독을 들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일곱 권이나 되는 이 책의 선인세가 걸림돌이었다. 당시 권당 선인세가 1만5000달러였으니 10만5000달러를 한꺼번에 지불하는 것은 위험한 모험으로 판단됐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름만 대면 알 만한 국내의 명망 있는 출판사들도 모두 망설일 수밖에 없었다. 이때 이 책의 판권을 확보한 출판사는 뜻밖에도 어린이 책을 펴낸 경험이 전혀 없는 문학수첩이었다. 문학수첩의 편집자가 다섯 번이나 사장을 설득해 결국 허락을 받아냈다고 하는데 그 편집자는 바로 문학수첩 김종철 사장의 딸이었다.

    ‘해리포터’ 신화 꿈꾸며 빅 타이틀에 눈멀어

    베스트셀러 출판사들 줄도산과 선인세의 비밀

    한국어판 ‘해리포터와 죽음의 성도들’이 불티나게 팔리고 있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몇 년의 침체 끝에 이런‘신화’가 탄생하자 국내 출판사들은‘블록버스터’에 눈독을 잔뜩 들이기 시작했다. 그즈음부터 ‘부자 아빠 가난한 아빠’(로버트 기요사키 외),‘누가 내 치즈를 옮겼을까?’(스펜서 존슨) 등 한국, 중국, 일본에서 모두 밀리언셀러가 된 책들이 자주 출현했다. 때마침 미국의 자기계발서가 주목을 받자 국내 출판사들의 판권 확보 경쟁은 과열 양상으로 번졌다. 한국의 베스트셀러 순위는 어느새 미국의 베스트셀러 순위와 크게 다르지 않을 정도로 변했다.

    2004년에는 댄 브라운의‘다빈치 코드’가 팩션(팩트와 픽션을 합친 신조어로 역사적 사실에 상상력을 가미한 새로운 장르) 붐을 선도하며 베스트셀러 1위를 달렸다. 전 세계를 휩쓴 이 소설은 국내에서만 400만 부 이상 판매됐다. 출판의 전 분야에 걸쳐 외국의 빅 타이틀이 국내 시장을 관통하자 출판기획자들은 ‘아마존 강가’(미국의 최대 온라인서점인 아마존닷컴)에서 놀면서 ‘수석’을 고르기 시작했다. 잘생긴 돌 하나 잘 주워서 언론에 홍보가 잘되면 대박 신화를 쓸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일간신문의 출판담당 기자들도 번역서가 출간되면 아마존의 순위부터 확인해 높은 순위일수록 대서특필할 정도였다. 이즈음 문학수첩이 댄 브라운 신작에 대한‘선인세 지르기’를 감행한 것이다.

    선인세가 갈수록 치솟는 것은 당연히 판권 확보를 위한 과열경쟁 때문이다. 일부 저작권 회사는 빅 타이틀은 어김없이 공개입찰에 부친다. 심지어 규모가 작은 출판사가 어렵사리 좋은 원고를 발굴해서 저작권 계약을 요구해도 시장성이 있다고 판단되면 일방적으로 경쟁 입찰에 올려버린다. 그러다 보니 빅 타이틀의 경우 10~15개의 출판사(요즘은 그 숫자가 다소 줄었다고 한다)가 노름판에서처럼 판돈을 놓고 막가파식 경쟁을 벌이게 된다. 하지만 그 속사정이 시원하게 알려진 적은 없다. 그 사실을 세상에 알렸다가 저작권 회사들의 눈 밖에 난 출판사들은 저작권 회사로부터 입찰에 응할 기회조차 원천봉쇄당하기 때문에 후환이 두려워 모두 입을 다물었다.

    과도한 선인세 논란은 2009년 무라카미 하루키의 ‘1Q84’에서 재현됐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국내에 마니아 독자만도 10만명이 넘는 작가다. 그가 2004년 ‘애프터 다크’ 이후 5년 만에 새로 선보이는 장편소설이었으니 주목받지 않을 수 없었다. 더구나 ‘1Q84’는 일본의 신초샤(新潮社)가 초판으로 1권 20만 부, 2권 18만 부를 발행할 예정이었다가 사전 주문이 쇄도하는 바람에 세 차례에 걸쳐 10만 부씩 증쇄해 초판발행부수가 68만 부나 되었다. 그렇게 해서 2009년 5월29일에 발행된 ‘1Q84’는 12일 만에 100만 부를 돌파하고 9월에 이미 230만 부를 넘어설 정도였다.

    베스트셀러 출판사들 줄도산과 선인세의 비밀
    ‘1Q84’ 판권의 국내 공개입찰은 그해 6월 초에 있었다. ‘1Q84’의 판권 경쟁이 워낙 치열해 13억원을 쓴 출판사가 떨어졌다는 소문이 나돌면서 선인세가 무려 15억원을 넘어섰을 것으로 추정되기도 했다. 일부 언론에서는 그것을 기정사실화하며 보도했다. 하지만 외국의 출판사 선정에 직접 개입하는 무라카미 하루키가 선인세 액수뿐만 아니라 자신의 문학적 위상을 키워줄 수 있는 출판사를 선호했다는 후문이다. 그래서 실제로는 선인세가 10억원 정도에 머문 것으로 확인됐다.

    ‘1Q84’는 지금까지 180만 부 이상 팔렸으니 지급해야 할 인세가 20억원이 넘는다. 그러니 비즈니스로서는 매우 성공했다고 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치솟은 선인세의 후유증이 적지 않았다. 무라카미 하루키가 10억원을 받았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일본에서 신드롬 현상까지 일으킨 추리작가 히가시노 게이고가 자신은 3억원은 받아야 하지 않느냐고 말했다는 사실이 공공연하게 떠돌았다. 실제로 그가 그런 말을 했는지 여부는 확인되지 않았지만 그의 신작이 3억원에 계약됐다는 소문이 나돌기도 했다. 책의 반응이 워낙 시원찮아서 그런지 그 건에 대한 이야기는 슬그머니 사라졌다. 하지만 그의 신작은 이제 적어도 1억원 이상을 ‘지르지’ 않고는 판권을 확보할 수 없다는 말이 정설처럼 떠돌고 있다.

    일본 소설 선인세 10년 동안 10배 이상 뛰어

    2005년에 번역 출간된 나오키상 수상작 ‘공중그네’로 밀리언셀러 작가 반열에 오른 오쿠다 히데오는 한때 한국에서 가장 잘 통하는 일본 작가였다. 이후에 내놓은 ‘남쪽으로 튀어’가 25만 부, ‘인 더 풀’이 20만 부 이상 팔렸다. 주가가 치솟은 그의 소설 판권을 확보하기 위한 국내 출판사의 경쟁은 더 치열해졌다. 최근 그의 신작 에세이에도 1억원 이상을 줬을 것이라는 소문이 나돌았지만 그의 신작들은 이제 국내 독자에게서 큰 반응을 얻어내지 못하고 있다. 출판사들이 작가를 키우려는 노력을 기피하는 데다 워낙 경쟁이 심해 국내 독자의 욕구나 시의성을 고려하지 않고 마구잡이로 출간하면서 독자의 ‘신뢰’를 급격하게 잃었기 때문이다.

    2009년 일본 서점 대상 수상작인 미나토 가나에의 ‘고백’은 국내에서 좋은 반응을 얻었다. 이 소설이 국내에서 좋은 반응을 얻자 그의 소설들도 선인세가 치솟기 시작했다. 이제는 300만엔을 주지 않고는 판권을 확보하기 어렵다는 소문이 나돌지만 그의 소설에 대한 국내 반응은 싸늘하게 식어가고 있다.

    일본 소설에 대한 선인세는 2000년대 초만 해도 보통 수십만엔 이하에 머물렀다. 하지만 요즘은 웬만큼 유명세를 얻은 작가의 작품은 300만엔 이상을 넘어선다고 한다. 적어도 10배 이상 뛴 것이다. 하지만 이런 무리한 행보는 결국 출판사의 경영을 압박하게 마련이다. 무리한 선투자를 하고도 판매가 지지부진하면 출판사가 버틸 재간이 없다. 그래서인지 요즘 일본소설 자체에 대한 관심이 식어가고 있다. 20년 이상 일본소설을 번역해 이름이 알려진 한 중견 번역가마저 올해 초 3개월 동안이나 단 한 건도 번역 의뢰가 들어오지 않아 미래에 대한 심각한 불안을 느꼈을 정도라고 말했다. 실제로 요즘 공식적인 일본소설의 출간 종수는 줄지 않았지만 출판사를 옮겨 재출간하는 일이 많아지고 시리즈물이 늘어난 점 등을 감안하면 신간소설에 대한 관심이 크게 줄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선인세 높은 번역서, 출판사 재정 압박

    베스트셀러 출판사들 줄도산과 선인세의 비밀

    ‘다빈치 코드’의 저자 댄 브라운.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의 알랭 드 보통도 우리 출판시장에서 결코 ‘보통’이 아닌 작가다. 그의 책은 20여 권이나 번역 출간될 정도로 인기가 높다. 그래서 그의 신작은 이제 선인세로 최소 2억원은 줘야 한다는 소문이 나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최근 보통의 책을 많이 펴낸 두 출판사가 부도가 났다. ‘불안’ ‘여행의 기술’ ‘일의 기쁨과 슬픔’ ‘행복의 건축’ ‘동물원에 가기’ 등을 펴낸 이레와 ‘키스하기 전에 우리가 하는 말들’ ‘프루스트를 좋아하세요’ ‘드 보통의 삶의 철학 산책’ ‘젊은 베르테르의 기쁨’ 등을 펴낸 생각의나무다. 또 히가시노 게이고의 ‘백야행’을 베스트셀러에 올린 태동출판사도 최근 부도가 났다.

    출판계에서는 이 출판사들이 과도한 선인세 경쟁으로 결국 도산에 이르렀다고 보는 시각이 없지 않다. 맞다. 아무도 그 사실을 부정할 수는 없다. 물론 세 출판사가 도산한 원인이 비단 선인세 경쟁에만 있는 것은 아니지만 과도한 선인세 경쟁이 큰 요인인 것만은 분명하다.

    알랭 드 보통의 연애소설 3부작이 대단한 인기를 얻은 후부터 보통의 책들이 일정한 판매부수를 기록하더라도 장기적인 비전을 갖고 작가에 대한 투자를 계속하지 않았으니 작가의 생명이 계속 유지되기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두 출판사가 경제적 위기를 겪으면서 판권기한이 만료된 책들은 다른 출판사로 판권이 넘어가고 있었다. 같은 책이 제목이 바뀌고, 발행 출판사의 이름도 바뀌면서 보통의 인기도 점차 하락했다.

    전체적으로 번역서의 비중도 다소 떨어지고 있다. 교보문고의 연간 베스트셀러 30위권 중 번역서가 차지하는 비중은 2001년 11종이었지만 2002년 13종, 2003~04년 15종, 2005~07년 16종으로 점차 상승했다. 반면 일본은 2001년 9종이었다가 2002년 7종, 2003년 4종, 2004년 5종, 2006년 1종으로 줄어들었고 2007년에는 급기야 완전히 사라졌다. 한국은 2008년에 10종, 2009년 12종, 2010년 9종으로 다소 줄어드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미국산 자기계발서가 맥을 못 춘 결과다. 이에 비해 미국발 경제경영서의 영향력이 커진 일본은 2008년에 9종, 2009년에 6종, 2010년에 10종으로 비중이 크게 높아졌다.

    밀리언셀러 ‘정의란 무엇인가’의 교훈

    베스트셀러 출판사들 줄도산과 선인세의 비밀
    최근 선인세 경쟁이 스테디셀러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외국서적의 경우 5년 기한으로 저작권 계약을 하고 특별한 문제가 없으면 자동 연장하는 것이 관례였다. 유명 저자가 위력 있는 신간을 펴내는 경우 그 저자의 신간과 구간을 패키지로 묶어 재판매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미 마케팅 비용을 들여 일정한 시장성을 확보해놓은 책을 일방적으로 빼앗기는 경우가 많아 출판업계의 원성이 높아지고 있다. 이런 사례가 늘어날수록 출판계의 위기는 심화될 수밖에 없다. 이런 일이 늘어날수록 출판사는 책에 대한 장기투자를 기피할 수밖에 없다. 그것은 모두가 망하는 지름길로 치닫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어떤 경우라도 결국 저작권 확보는 자금력 싸움이다. 이 때문에 대형 출판사로 더 많은 기회가 쏠리면서 출판계 양극화가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 하지만 요즘 대형 출판사들의 처지도 녹록지 않다. 과도한 선인세 경쟁으로 확보한 책들의 판매가 시원치 않아 경영이 악화되는 회사가 늘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들어선 높은 선인세를 지불한 책이 많이 팔렸다는 소식을 거의 들을 수 없다. 오히려 수만달러밖에 지불하지 않은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김영사)가 인문서임에도 11개월 만에 밀리언셀러에 올라 부러움을 샀다. 물론 ‘정의란 무엇인가’의 성공 이후 샌델의 신간은 무조건 15만~20만달러의 선인세를 요구한다는 풍문이 나돈다.

    이런 와중에 올해 초 한 출판사가 선인세를 1000만달러까지 올렸다는 소문이 돌아 출판계를 아연실색하게 만들었다. 자초지종은 이렇다. ‘뉴욕타임스(NYT)’ 1월16일자에서는 아이폰과 아이패드의 열풍을 몰고 온 애플 창업주 스티브 잡스가 ‘타임’ 편집장 출신인 월터 아이작슨과 손잡고 자신의 생애를 조명한 전기를 출간하려고 한다는 사실을 보도했다. 스티브 잡스는 그동안 자신의 전기를 펴내는 것을 완강하게 거부해왔다. 와병설이 돌던 그가 출간하겠다는 전기는 출판인들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다. 그런 책을 한 신생 출판사가 국내 저작권 회사를 거치지 않고 원 저작권을 가진 에이전트에게 1000만달러까지 내놓을 수 있다고 호기를 부린 것이다. 이 일이 와전돼 해프닝으로 끝났지만 씁쓸함을 남긴 것만은 분명하다.

    베스트셀러를 만드는 진짜 비결

    국내 출판의 번역서 출간 종수 비중은 대체로 30% 선에 머문다. 하지만 베스트셀러만 한정해놓고 보면 번역서가 판매부수의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 그러다 보니 많은 출판사가 번역서에 치중하느라 국내 저자 발굴에 소홀해졌다. 그뿐만 아니라 대학교수들이 학술진흥재단(현 한국연구재단)의 프로젝트를 수행하면서 교양서 집필을 꺼려 교양서 저자의 기근현상마저 나타났다. 시장성 있는 국내 저자도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 국내 작가들이 한 출판사에서 꾸준히 책을 내는 것이 아니라 여러 출판사를 전전하는 바람에 문학출판사들이 장기 비전을 갖고 작가에게 투자하기도 어려워졌다. 그 결과 신간이 10만 부 이상 판매되는 작가는 손으로 꼽을 정도로 줄었다. 이와 같은 출판사들의 기획력 저하가 전반적인 출판매출 저하로 이어지면서 출판시장의 위기감이 커지고 있다.

    그렇다면 대안은 무엇인가. 이 글을 읽은 눈치 빠른 독자는 이미 정답을 찾아냈을 것이다. 교보문고의 2009년 소설 판매결과 분석에 따르면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작가’는 국내의 모든 작가를 제치고 베르나르 베르베르가 차지했다. 번역가 이세욱씨의 소개로 1993년 6월에 첫 출간된 ‘개미’부터 2010년 3월과 11월에 각기 출간된 ‘파라다이스’와 ‘카산드라의 거울’에 이르기까지 과학을 ‘도구’로 하여 창작된 그의 소설을 보자. 이 작품들은 모두 출간 즉시 어김없이 베스트셀러 상위권에 올랐고 대부분이 밀리언셀러가 됐다. 그러니까 이 책들을 펴낸 출판사 ‘열린책들’이 해마다 밀리언셀러를 낸 셈이다.

    열린책들은 팔리는 작가에만 집중하지도 않는다. 지금은 국내 시장에서 1000~2000부 판매가 어려운 작가들의 전작을 출간할 계획을 세워놓고 있다. 열린책들 홈페이지에는 베르나르 베르베르, 파트리크 쥐스킨트, 움베르토 에코, 장 자끄 상뻬, 폴 오스터, 루이스 세풀베다, 로베르토 볼라뇨, 아멜리 노통브, 조르주 심농 등의 ‘작가의 방’이 따로 존재한다. 열린책들은 작가의 전작을 출간하며 작가의 미래에 출판사의 운명을 맡기기 때문에 이렇게 작가들의 홍보에 주력한다.

    이 출판사는 번역에도 신경을 쓴다. ‘개미’의 성공 이후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국내 번역본의 번역은 거의 대부분 이세욱씨가 했다. 그것도 인세 계약이다. 100만 부가 팔리는 줄 뻔히 알면서 출판사가 번역가와 매절이 아닌 인세 계약을 하는 경우는 국내에서 찾아볼 수 없다. 역자는 시간을 충분히 갖고 번역하면서 원작의 무대를 다녀오기도 하고 작가와 만나 교감하는 등 제2의 창작자로서 제대로 활약한다. 이렇게 작가와 출판사, 그리고 번역자의 유대가 결국 베르베르를 한국에서 가장 신망받는 저자로 키운 것이다.

    글로벌 경쟁이 일반화된 지금 우리 것만 보호하자는 국수주의적인 주장을 하고 싶진 않다. 지적인 노력의 중요한 성과물은 제값 주고 들여오고 우리 저작도 좋은 값에 파는 것이 중요하다. 미국 시장에서도 베스트셀러에 오른 신경숙의 ‘엄마를 부탁해’(창비)를 보라. 우리도 선인세 7만5000달러를 받고 우리 문학작품을 세계 시장에 당당하게 내놓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지 않았는가. 이 소설은 미국 시장에서 베스트셀러에 오르면서 이미 28개국에 저작권이 수출됐다. 앞으로 40~50개국으로 늘어날 수도 있을 것이다. 만화나 영상과 연결된 소설들은 동남아에서 여전히 인기다. 그러니 상호 시장성에 맞는 거래를 적절하게 할 줄 아는 노하우를 키울 필요가 있다. 마치 도박판에서 레이스를 하듯 선인세를 올리는 일만은 결코 하지 말아야 한다.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그것은 모두가 공멸하는 길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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