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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석주의 크로스(CROSS) 인문학 ⑧

반값 등록금 투쟁보다 학벌주의 타파 운동이 먼저다

  • 장석주| 시인 kafkajs@hanmail.net

반값 등록금 투쟁보다 학벌주의 타파 운동이 먼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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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값 등록금 투쟁보다 학벌주의 타파 운동이 먼저다

지난 6월13일 국회에서 열린 교육과학기술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야당 의원들이 노트북에 ‘반값 등록금 약속 지켜라’는 문구를 붙여놓고 회의를 하고 있다.

“한국사회에서 학벌은 사회적 차별과 불평등의 기제이다. 여기서 사회적 불평등의 기제란 사람들 사이의 차이를 차별로 고착시키는 구분원리, 즉 차별과 불평등의 규정근거(Bestimmungsgrund)를 뜻한다.”(김상봉, 앞의 책)

학벌이 계급적 차이를 만든다는 것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진실이다. 학벌의 서열화 정점에 서울대가 있고, 그 아래에 연세대·고려대가 있다. 정진상은 이 대학 서열체제에 두 차원이 있다고 말한다.

“하나는 서울대를 정점으로 형성되어 있는 ‘대학간판’ 서열이고, 다른 하나는 전문적 일자리가 보장되는 학문, 예컨대 자연 계열의 의대, 한의대, 약대 등과 인문사회 계열의 법대, 경영대, 사범대를 상위에 두는 학문 서열이다.”(정진상, ‘국립대 통합네트워크―입시 지옥과 학벌 사회를 넘어’)

학벌사회를 떠받치는 것은 강고한 대학 서열체제다. 서울대는 대학 서열의 피라미드에서 최상위를 차지한다. 서울대 출신들이 정치, 경제, 언론, 학문 등의 분야에서 독점적 지배 권력을 누리는 까닭이다. 서울대 학벌은 죽을 때까지 따라다니는 사회적 신분의 징표다. 어느 분야에 있든 학벌주의라는 연줄을 타고 기득권을 쉽게 손에 거머쥔다. 시인 박노해는 이렇게 시에 적는다.

“서울대 연·고대 출신끼리는 보수 진보 가릴 것 없이 인맥을 타고 / ‘우리가 남이가’ 끌어주고 키워준다면서요.”(박노해, ‘사람만이 희망이다’)



학벌의 연고에 따라 끌어주고 밀어주기는 어느 조직에나 있는 관행이다. 학벌에 따라 공공연하게 ‘숨은 구별짓기’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 아래 연세대나 고려대와 같은 차상위 집단의 졸업자 역시 권력과 재산을 취득하는 경쟁에서 유리한 위치에 선다는 것은 공공연한 사실이다. 학벌에 따라 권력·돈·명예가 따라오고, 사회적 차별과 불평등 구조가 고착화된다.

노무현은 왜 실패했는가? 그의 취약점은 ‘학벌’의 빈곤함, 더 넓게는 아비투스(habitus)의 부재에 있었다. 아비투스를 사회구조와 개인의 실천 행위 사이의 인식론적 단절을 넘어서는 매개적 메커니즘으로 이해하고 개념화한 학자가 피에르 부르디외다. 부르디외는 ‘구별짓기’에서 행동과 인지, 감지와 판단의 성향체계로서 개인의 역사 속에서 내면화되고 육화된 메커니즘을 ‘아비투스’라고 설명한다.

“학벌을 통한 지배 헤게모니는 대중매체를 통해 전파되어 계층별로 일종의 ‘아비투스’를 성립한다.”(김동훈, ‘한국의 학벌, 또 하나의 카스트인가’)

노무현은 명문으로 꼽히는 부산상고 출신이다. 그러나 그에게는 대학 졸업장이 없었다. 사법고시를 거쳐 변호사로, 인권운동가로, 국회의원으로, 장관과 대통령으로 입신양명하지만, 그에게 따라붙는 ‘상고 출신’이라는 꼬리표는 떼지 못했다. ‘고졸’ 출신은 아무리 발버둥치고 애를 써도 우리 사회의 지배계급을 형성하는 서울대나 연·고대 출신들이 갖는 학력자본, 문화자본, 사회자본에서 배제될 수밖에 없는 근본적 한계에 놓인다. 노무현에겐 학벌에 따른 ‘인맥’도 ‘아비투스’도 없었고, 그에 따라 권력의 핵심에 있으면서도 권력에서 배제되는 기이한 현상과 마주쳤던 것이다.

노무현의 교양 없음

내 주변에서 노무현을 대놓고 비난하던 사람들은 흔히 그 비난의 근거로 노무현의 ‘교양 없음’을 들었다. 이때 ‘교양’이라는 것은 지식도 아니고 문화와 예술에 대한 이해력도 아니다. 우리 사회의 지배 권력 집단을 이루는 사람들의 인식이나 화법과 노무현의 그것이 크게 다르다는 뜻이다. 노무현은 확실히 달랐다. 그의 화법은 일체의 가식이나 ‘잘난 척함’ 없이 솔직하고 대담했다. 그는 고등교육을 받은 자들의 징표인 ‘교양’이 없었다. 사람들은 그 다름을 싫어했다. 그는 학벌사회의 부조리함, 즉 ‘구별짓기’에 의해 ‘왕따’를 당하고 내쳐진 것이다. 고졸자가 대졸자에 비해 차별을 받고, 같은 대졸자도 지방대나 비명문대 출신이 명문대 출신에 비해 차별을 받는다면, 이런 사회는 ‘학벌사회’다. 김동훈은 ‘학벌이라는 집단적 편견’이 사회의 전 부분에 스며들어 ‘문화적·심리적 갈등’을 빚어내 ‘갈등사회’를 낳는다고 말한다. 학벌사회의 본질은 변형된 신분사회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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