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8월호

‘더반의 여신’ 평창유치위 나승연 대변인

  • 손영일 기자 scud2007@donga.com

    입력2011-07-22 11:3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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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더반의 여신’ 평창유치위  나승연 대변인
    7월6일 남아프리카공화국 더반에서 열린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총회. 2018 동계올림픽 개최지 선정 투표를 앞두고 평창의 마지막 ‘프레젠테이션(이하 PT)’이 시작됐다. 평창유치위원회 나승연(38) 대변인이 단상에 올랐다. PT 내내 그는 미소를 잃지 않은 채 평창동계올림픽의 비전과 개최 당위성을 차근차근 설파했다.

    “이번 경연은 지리적인 위치에 대한 것이 아닙니다. 꿈과 사람의 가능성에 대한 경연입니다.”

    이날 평창 PT는 명분과 내용에서 경쟁도시인 독일의 뮌헨과 프랑스의 안시를 압도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특히 PT의 서두와 마지막을 장식한 나승연 대변인은 유창한 외국어와 빼어난 외모로 일약 ‘더반의 스타’로 떠올랐다.

    ‘자고 일어났더니 유명해졌다’는 말처럼 나 대변인에 대한 국민의 관심은 가히 폭발적이다. PT 직후 그의 이름은 각종 포털사이트 검색어 1위에 올랐으며, 그의 발표 장면만을 편집한 동영상이 수십여 개 만들어졌다. 7월11일 인천공항에 모습을 드러낸 그는 “아주 훌륭한 팀의 일원이었을 뿐인데…”라고 고개를 숙였다.

    귀국 직후 쏟아지는 언론의 인터뷰 요청에 한때 휴대전화기를 꺼놓기까지 했던 그는 어렵게 이뤄진 기자와의 통화에서 담담하게 소감을 밝혔다.



    “국민의 관심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가족이나 친지들에게 전해들어 알고 있었지만 이정도일 줄은 몰랐어요. 갑작스러운 관심이 부담스럽기도 하지만 감사해하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이 그의 PT를 두고 최고였다고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지만 그는 “실수를 많이 했다”며 겸손해 했다. 백조가 우아하게 물에 떠 있기 위해선 수면 아래에서 처절한 발길질이 있어야 한다. 나 대변인의 능수능란한 PT 뒤에도 남모를 노력이 배어 있다. 그의 말을 빌리자면 마지막 PT는 적어도 100번은 더 연습했다고 한다.

    이런 노력이 있었기에 성공의 과실이 더 달콤했는지 모른다. 자크 로게 IOC 위원장의 입에서 ‘평창’이 발표되는 순간, 나 대변인은 눈물을 펑펑 쏟았다.

    “심장이 터지는 것 같았습니다. 눈물도 많이 나왔지만 그냥 꿈이 이뤄졌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10년 동안 응원해준 국민들 생각에 감정이 복받쳐 올랐습니다.”

    나 대변인은 외교관인 아버지를 따라 어린 시절 12년 동안 해외에서 머물면서 자연스럽게 외국어를 익혔다. 고등학교 때 한국에 돌아온 뒤에는 이화여대에서 불문학을 전공했고, 이후 한국은행에 입사했다. 하지만 1년 만에 그만두고 나와 아리랑TV에서 기자와 앵커로 활동했다. 평창유치위에서 일하기 전 여수엑스포와 한일월드컵을 유치하는 과정에서도 활약했다.

    그는 마지막까지 남아 모든 절차를 마무리 짓고 오느라 다른 관계자들보다 며칠 늦게 귀국했다. 당분간 소홀했던 가정생활에 최선을 다할 계획이다. 특히 다섯 살 난 아들에게 못다 한 엄마 노릇을 톡톡히 할 생각이다. 평창올림픽조직위원회 대변인을 맡을 거냐는 질문엔 그는 “그런 논의는 시기상조지만 제의가 온다면 일하고 싶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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