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9월호

참 재밌는데, 어떻게 설명해야 하나?

골프 대중화 시대, 골프를 대신한 변명

  • 정연진│골프라이터 jyj1756@hanmail.net

    입력2011-08-19 15:2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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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 재밌는데, 어떻게 설명해야 하나?
    새벽안개 헤치며 곡예운전을 한 끝에 도착한 클럽하우스. 티업 시간까지의 여유는 겨우 20분이다. 밥이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 모른 채 식사를 마치고 1번홀 티잉 그라운드에 선다. 동반자들의 호기심 어린 시선을 뒤로하고 드라이버를 힘차게 휘두른다. 얕은 신음과 함께 슬라이스가 나면서 볼은 오른쪽 숲으로 사라진다. 오늘도 여지없이 첫 홀은 OB(Out of Bounds)로 시작한다. 동반자들은 안도의 한숨인지 아쉬움 때문인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짓는다.

    그러나 동반자들도 민망하기는 마찬가지. 한 사람은 OB 대열에 합류했고, 다른 한 사람은 좌측 러프에 빠진다. 나머지 한 사람이 그나마 페어웨이를 지키지만, 그린까지의 거리는 멀게만 느껴진다. 티업 시간에 간신히 맞춘 데다 몸까지 제대로 풀지 않아 결과가 좋을 리 없다. 첫 홀의 긴장감까지 더해 4명의 볼은 거의 산탄(散彈) 수준이다. 홀 아웃을 한 후 한 사람이 캐디에게 으레 그랬던 것처럼 외친다.

    “첫 홀이니까, 올 파로 하지? 이제 본격적으로 시작해보자고.”

    체면 불고하고 뛰어들고 싶은 녹색 물결과 눈이 부실 만큼 파란 하늘. 골프를 즐기기에 더없이 좋은 계절이다. 하지만 모든 골퍼가 즐겁기만 한 것은 아니다. 경기도 용인에서 개인사업을 하는 최상우(46)씨가 바로 그렇다. 김씨는 말 그대로 왕초보다. 정식 레슨은 아예 받아볼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라운드 횟수가 10번을 간신히 넘어 구력이랄 것도 없고, 핸디캡은 아예 계산이 안 된다. 티샷을 하기 전에 동반자들한테서 “OB 티에서 티샷을 하라”는 핀잔을 듣기 일쑤다. 이 산 저 산 뛰어다니다 보면 그린에 도달하기 전에 ‘양파’로 OK를 받는 경우도 허다하다. 라운드가 모두 끝난 뒤 골프장 전경은 둘째 치고 헐레벌떡 뛰어다닌 기억만 생생하다.

    마약에 비유되는 골프의 중독성



    손꼽히는 국내 보험회사 법인영업팀에 근무하는 김승원(44)씨는 주위로부터 ‘호타준족’이란 소릴 듣는다. 핸디캡 12의 준수한 실력에 카트를 타는 법이 없어 이런 별명을 얻었다. 그가 필드에서 항상 걷는 이유는 건강을 위해서가 아니다. 코스를 철저히 분석해놓았다가 내기에서 이기려는 속셈이다. 남다른 승부욕을 갖고 있는 그는 단돈 1000원이라도 자기 주머니에 들어와야 직성이 풀린다. 내기의 액수가 커지면 어금니에 은근히 힘이 들어간다. 그러니 자신을 스쳐 지나가는 청설모나 이름 모를 새에 눈길이 갈 리 없다.

    최씨와 김씨는 유별난 골퍼일까. 여유를 갖고 골프 자체를 즐기는 골퍼, 생각만큼 많지 않다. 주위를 둘러보면 쉽게 알 수 있다. 실력이 모자라 재미를 느끼지 못할 수 있다. 내기에 집중한 나머지 즐거움 자체를 잊을 수도 있다. 빡빡한 티업 간격으로 골프에 집중할 수 없는 환경도 핑계가 된다. 굳이 변명하자면 열 손가락이 모자란다.

    골프를 흔히 마약에 비유하곤 한다. 오죽하면 ‘바람 난 남편에게 골프채를 사주라’는 말까지 있을까. 그만큼 골프에는 말로 다 표현 못할 만큼 매력을 넘어선 ‘마력’이 있다는 뜻이다. 수도권의 모 골프장 헤드 프로는 골프 때문에 이혼까지 당했다. 그의 말을 들어보면 골프의 중독성이 어느 정도인지 짐작이 가고도 남는다.

    “일주일에 많게는 6~7번 라운드를 나갔다. 레슨 프로인 걸 감안해도 많은 수치다. 그러니 가정에 소홀할 수밖에 없었다. 아내가 갑자기 골프와 가정 중 하나를 택하라고 하더라. 난 잠깐의 고민도 없이 골프를 선택했다. 아내 없이는 살 수 있어도 골프를 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었다. 가정을 버린 날 모든 사람이 비난했다. 그래도 골프 약속이 잡히면 가벼운 흥분에 휩싸인다. 지금은 매일이다시피 라운드를 즐긴다. 아내에게 골프를 가르치지 않은 게 후회된다.”

    힘 빼는 데 3년 걸린다

    속내를 털어놓아도 좋을 동반자들과 함께 대자연에서 즐기는 여유로움. 골프의 묘미를 이 한 마디로 표현할 수 있다. 골프는 일정 정도의 비용과 시간을 투자하면 그 이상의 기쁨과 재미를 선사한다. 단, 전제조건이 따라붙는다. 욕심을 버리고 즐길 줄 아는 멘탈(Mental)이 필요하다.

    라운드는 동반자들과의 관계를 한층 단단하게 엮어준다. 친한 사람과는 더욱 친밀하게 해주고, 서먹서먹한 관계도 금방 웃음을 짓게 만든다. 라운드하는 데만 소요되는 4시간 반 가까이 함께 걷고 얘기를 나누다 보면 친밀도가 높아질 수밖에 없다. 특히 라운드 끝에는 상대방의 알몸까지 보게 된다. 이렇게 공통의 관심사에 집중하면서 하루 종일 시간을 나누다 보면 원수지간도 친구가 될 수 있다.

    카트에 너무 의존하지 않는다면, 18홀을 돌면서 3~4㎞는 족히 걷는다. 샐러리맨에게 평소 이 정도 거리를 걷는다는 것은 굳은 의지가 아니고서는 힘든 일이다. 국내 골프장은 대부분 산악지형을 활용해 설계됐다. 건강에 그렇게 좋다는 삼림욕이 따로 없는 셈이다. 어디 그뿐인가. 클럽이 볼에 정확히 맞았을 때 손으로부터 전해오는 쾌감은 오르가슴에 비견된다. 이런 저런 이유로 목까지 치고 올라왔던 스트레스가 한 방에 날아간다.

    골프 실력이 조금 모자라면 어떤가. 내기에서 돈을 잃으면 또 어떤가. 골프만큼 ‘느림의 미학’이 잘 적용되는 스포츠도 없다. 샷과 샷은 물론 홀과 홀 사이에서 한껏 여유를 부릴 수 있는 스포츠가 바로 골프다. 잠시의 여유시간 동안 지난 홀을 복기할 수 있고, 자연과 호흡을 같이할 수 있다.

    그러자면 욕심부터 버려야 한다. 연습량과 실력이 꼭 비례하지 않는 게 골프다. 그렇다고 연습을 게을리 하면 눈에 띄게 표가 난다. 프로 골퍼도 수일간 클럽을 손에서 놓으면 스윙이 망가진다. 아마추어 골퍼가 처갓집 가듯 연습장을 찾으면서 보기 플레이어가 되기를 바라는 것은 망상에 가깝다.

    골프의 명언 중 ‘힘 빼는 데 3년 걸린다’는 말이 있다. 몸에서 힘을 빼는 데 무슨 3년씩이나 걸리느냐고 반문하는 사람도 더러 있다. 하지만 우리 주변에는 10년이 넘어도 힘을 빼지 못하는 사람이 많다. 연습 스윙을 할 때는 타이거 우즈 부럽지 않다가도 막상 볼을 칠 때면 온몸이 경직되어버린다. 뒤땅은 기본이고 맞았다 싶어도 거리와 방향이 들쭉날쭉이다. 볼을 멀리 보내야겠다는 과욕이 불러온 악몽이다. 결국 마음이 문제인 것이다.

    프로 골퍼나 전문가들은 ‘골프는 90%가 멘탈게임’이라고 강조한다. 이 말은 아마추어에게도 그대로 적용된다. 몸에서 힘을 빼고 볼을 정확히 맞히면 자신이 원하는 거리를 낼 수 있다. 몸에 힘을 잔뜩 주었을 때보다 방향성도 훨씬 좋아진다. 아마추어도 이 사실을 잘 알고 있다. 그런데도 성공하지 못하는 이유는 자신의 실력에 비해 더 멀리, 더 좋은 성적을 내려는 욕심 탓이다.

    실력 향상을 위한 손쉬운 방법

    해외 골프장에서 우리나라 골퍼들은 금방 눈에 띈다고 한다. 어찌나 빨리 치는지, 36홀을 돌고 나서도 해가 중천에 떠 있다. 국내에서 몸에 밴 습관과 한 홀이라도 더 돌려는 욕심에 앞만 보고 전진한다. 해외 골프장의 이국적인 풍광이 기억 속에 자리 잡기 전에 빠르게 스쳐지나갈 수밖에 없다.

    경기도 안산의 제일CC는 흐드러지게 핀 2만여 그루의 벚꽃으로 유명하다. 4월 골프장에서 열리는 벚꽃축제는 본격적인 골프시즌이 시작되었음을 알리는 신호탄이다. 강원도 삼척의 파인밸리는 울창한 삼림을 배경으로 계절에 따라 야생화가 아름다움을 서로 뽐낸다. 경기도 포천의 아도니스컨트리클럽은 골퍼들 사이에서 단풍나무로 명성을 얻고 있다. 가을이 깊어지면 출입구 양쪽에 빨갛게 물든 단풍이 장관을 이룬다.

    여유를 갖지 않고 스코어에 욕심을 내면 제일CC의 벚꽃과 파인밸리의 야생화를 온전히 내 것으로 만들 수 없다. 티업시간에 맞추기 급급해 가속페달을 밟으면 포천 아도니스의 단풍은 단지 조경을 위해서 심어놓은 나무에 불과하다.

    이제 골프를 있는 그대로 즐기자. 동반자가 연습스윙을 하는 동안 잠시 홀을 둘러보면 짙은 녹음이 눈을 맑게 한다. 카트를 타지 않고 조금 빨리 걸으면 자연의 싱그러움을 온전히 느낄 수 있다. 골프만이 전해주는 재미를 즐기고 매력에 빠지면, 실력은 덤으로 따라온다. 느림의 미학을 골프에 적용하면 좀 더 나은 스코어카드를 받아들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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