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9월호

말초적 욕망 꿈틀대는 악마 같은 뉴스로 인류 중독시키다

‘미디어 황제’ 루퍼드 머독 이야기

  • 김동률|서강대 MOT대학원 교수·매체경제학 yule21@empas.com

    입력2011-08-22 16:3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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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말초적 욕망 꿈틀대는 악마 같은 뉴스로 인류 중독시키다
    어떤 사람은 그를 ‘미디어의 악마’라고 부른다. 또 어떤 사람은 그를 ‘더러운 광부’라고 한다. 그와 마찰을 빚었던 또 다른 미디어 황제 테드 터너는 그를 향해‘비열한 인간’‘위험한 인물’이라며 엄숙한 법정에서조차 고함쳤다. 그러면서 아예 사각의 링에 올라 글러브를 끼고 결판을 내자고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그는 루퍼드 머독이다.

    만일 두 미디어 황제의 시합이 성사된다면 세기의 시합인 무하마드 알리와 조 프레이저 매치를 능가하는 흥행이 될 것이다. 미국 대통령후보로도 곧잘 거론되는 ‘신사 중의 신사’ 테드 터너가 이 렇게 나올 정도이니 머독에 대한 평판은 사실 더 볼 것도 없다. 그래도 몇 마디만 더 들어보자.

    미국 ‘시카고’ 칼럼니스트인 마이크 로이코는 “욕심 많고 돈에 눈이 먼 데다 권력에 아부하는 인간”이라고 평가했다. 영국 정치가 해터슬리 경은 점잖게 “민주주의에 위험하고도 위험한 인물”이라고 했다. 물론 이들은 머독 가족이 보내는 크리스마스 카드를 기대하지 않는다.

    영국 ‘인디펜던트 선데이’는 사설에서 “아메리칸 약탈자 머독의 야망을 제지하려는 것은 마치 독수리에게 풀만 먹게 하려는 것과 같다”고 했다. 정상적인 언론인 대부분은 머독을 두려움과 혐오감에 가득 찬 시선으로 바라본다. 그러나 이들은 공통적으로 머독의 엄청난 존재감만큼은 인정한다. 미국 ‘워싱턴포스트’는 그를 “지구촌의 정보통신부 장관”이라고 말한다.

    여성 편력과 검소함의 기괴한 공존



    1931년 3월11일 호주 멜버른 출생, 1985년 미국 시민으로 귀화, 올해 1월 기준 순익 76억달러의 뉴스코퍼레이션(News Cor-poration)의 오너 겸 CEO. 자신의 왕국 내에선 이름보다는 KRM으로 불리는 루퍼트 머독(Keith Rupert Murdoch)의 간단한 신상명세다. 뉴스코퍼레이션에는 ‘월스트리트저널’‘더 타임스’‘폭스뉴스TV’‘20세기폭스’ 등 수십여 개의 신문, 텔레비전, 케이블네트워크, 위성방송, 영화사, 출판사가 소속되어 있다. 머독은 최근 자신 소유 영국 타블로이드신문 ‘뉴스 오브 더 월드’가 취재원을 상대로 저지른 도청, 해킹 사건으로 세계인의 주목을 받고 있다.

    영어권에서는 그를 ‘미디어 무굴(media mogul)’이라고 부른다. ‘무굴’이란 인도어로 ‘무굴제국 사람’이라는 의미다. 막대한 부와 영향력을 가진 거물을 비유적으로 표현하는 단어다. ‘미디어 무굴’이 우리나라에선 ‘미디어 황제’로 번역된 것이다.

    실제로 머독은 웬만한 나라의 대통령이나 총리를 능가하는 국제 사회의 거물이다. 그가 거느린 미디어 제국이 전세계 인구의 25%를 시청자와 독자로 확보하고 있으니 지극히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그는 미디어를 통해 세계 대중의 일상적 삶에 깊이 개입하고 있는 셈이다.

    위키피디아는 그의 화려한 여성 편력을 낱낱이 까발리고 있다. 그러나 위키피디아는 객관적으로 건조하게 기술하는 편이어서 그의 진면목을 파악하기는 힘들다. 머독을 칭하는 말은 미디어 무굴 외에도 식인 상어, 워커홀릭(일 중독자), 타고난 승부사, 언론 장사꾼, 저널리즘의 역사를 되돌린 사기꾼 등이 있다. 호평보다는 부정적인 평가가 주를 이루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그를 곁에서 지켜본 사람 중 일부는 그에게 쏟아지는 부정적인 평가에 대해 동의하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루퍼트 머독의 중국 모험기(Rupert Mur-doch′s adventures in china)’를 쓴 중견 언론인 브루스 도버(Bruce Dover)는 머독을 세상의 어떤 억만장자와도 동일시해서는 안 된다고 못 박았다. 자가용 비행기도 없고, 보좌관도 없고, 경호원도 없고, 명품 하나 가지지 않고, 그저 낡은 옷 입고, 낡은 가방 메고, 서류첩을 들고 다니는 소탈한 비즈니스맨이 바로 머독이라는 것이다. 할인율이 높은 유나이티드 에어라인을 주로 이용하는 머독은 공항에 마중 나온 승용차를 탈 때도 가능하면 뒷좌석에서 다른 사람들과 함께 끼어 앉는 것을 선호한다. 그만큼 그는 검소함이 몸에 배어 있다는 것이다. 화려한 여성 편력과 서민적 풍모를 동시에 가진 유명 인사를 만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머독은 또한 타고난 승부사다. 제롬 터쉴레의 저서 ‘머독’에서 머독은 다음과 같이 자신의 과거를 회상한다.

    “나는 신문쟁이 집안에서 자랐지요. 아마 나 스스로도 그 점에 흥분을 느끼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 삶의 방식을 가까이에서 보고 있었기 때문에 열 살이나 열두 살 무렵에는 다른 인생이라는 것은 생각조차 할 수 없을 정도가 되어버렸습니다. 보도의 세계, 특히 신문의 세계에서 살고 있노라면 사회에서 일어나는 모든 재미있는 사건의 한가운데에 있을 수가 있지요. 신문 이외의 인생에 저 자신을 바친다는 것은 생각할 수도 없습니다.……나의 아버지, 위대한 저널리스트였던 아버지는 원래 신문사를 소유하고 있었던 것이 아니며 나는 모든 것을 처음부터 다시 시작했습니다. 맨 처음에는 아버지가 애들레이드에서 시작한 보잘것없는 신문사가 하나 있었을 뿐입니다. 나는 여기에 족하지 않고 항상 커질 것을 생각하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1931년생으로 올해 팔순을 넘긴 머독은 타고난 신문쟁이다. 1953년 신문사를 경영하던 아버지가 사망하자 그는 22살의 나이에 미디어 사업에 뛰어들었다. 그의 아버지는 신문 제작에만 관심이 있었을 뿐 경영엔 무능해 사업에 실패했기 때문에 머독이 순조로운 출발을 한 건 아니다. 오히려 자수성가했다고 보는 게 옳을 것이다.

    말초적 욕망 꿈틀대는 악마 같은 뉴스로 인류 중독시키다

    2004년 11월 미국 대선 투표결과를 전하는 폭스뉴스TV의 대형스크린. 폭스뉴스는 ‘공화당보다 더 공화당답다’는 얘길 듣는다.

    머독은 애들레이드에서 호주 최대도시 시드니로 진출했으며 이어 영국, 미국, 아시아로 나아갔다. 물론 시련도 있었지만 그는 승승장구의 길을 걸었다. 그는 1986년 호주에서 아버지가 잃은 신문을 다시 차지하면서 이런 말을 한다. “이것이야말로 승부를 내는 보람이다. 멋진 흥분을 맛보게 해준다. 감정적인 것이 없다고 한다면 아마 거짓말일 것이다.”

    머독의 승부사 기질을 빼놓곤 그의 미디어 제국을 이해하기 어렵다. 그는 전화로 자신의 미디어 제국을 관리한다. ‘일에 열심이다’‘지저분한 일도 마다하지 않는다’‘자기의 제국에 관한 모든 일에 스스로 관여한다’‘때때로 염치없지만 정직하고 솔직하다’는 평가도 나온다. ‘머독’의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확장하거나 아니면 죽거나”

    “머독은 전형적인 ‘일중독증’에 빠져 있다. 설령 이 단어가 예전에는 없었다 하더라도 그를 위해 조어를 해도 좋으리라는 생각이 들 만큼 딱 들어맞는다. 그는 멈출 줄을 모른다. 그의 일상은 갖가지 회합 외에 편집자, 은행원, 중역, 부장, 변호사, 정치가, 기타 요인들과의 전화로 가득 메워져 있다. 빈 시간 따위는 1초도 없다. 그는 그 각각에 삶의 에너지를 쏟는다. 그 지적인 힘은 권력자와 비슷할 뿐만 아니라 권력과 불가분의 요소이기도 하다. 그의 수면 시간은 4시간이라고 하는데 정말로 잠잘 시간이 있는지 의아할 정도로 빈틈이 없는 스케줄이다. 그의 경영 모토는 ‘확장하거나 아니면 죽거나(Expand or die)’이다.”

    그의 이 같은 성격에 딱 들어맞는 대표적인 예가 중국 진출이다. 승승장구하던 머독이 만난 가장 큰 난관은 중국이다. 중국 정부가 미디어 거물인 머독이 가까이 오지 못하도록 아예 빗장을 걸었기 때문이다. 소위 ‘문화 제국주의’의 침투에 대한 우려였다. 그러나 1993년 머독은 갖은 수단을 동원해 ‘스타TV’를 사들임으로써 빗장의 열쇠를 거머쥐었다. 이 과정에서 그는 38세 연하의 중국계 미국인인 웬디 덩과 결혼한다. 일각에서는 사업 확장을 위한 결혼이라는 추측도 있으나 확인할 길은 없다.

    머독은 뉴스도 ‘쇼’로 본다. 그리고 대중을 ‘보스’로 떠받든다. 따라서 대중의 욕망은 아무리 천박하더라도 존중되어야 하고 충족되어야 하는 대상이다. 머독을 설명하는 데 빠지지 않는 말이 센세이셔널리즘이다. 비슷한 용어로 먹레이킹 저널리즘(muckraking journalism)이란 말이 있다. 거름더미(muck)를 갈고리로 파헤친다(raking)는 의미로, 황색저널리즘보다 한술 더 뜨는 무책임한 폭로 위주의 선정적 보도 행태를 뜻한다.

    머독이 지휘하는 기자들은 시청자와 독자의 말초적 호기심을 충족해주기 위해 엄청난 노력을 기울인다. 취재원의 인격 따위는 무시하는 게 당연지사다. 이 같은 취재보도 행태는 많은 비난에 직면하지만 머독은 아랑곳하지 않는다. ‘뉴스 오브 더 월드’ 도청사태는 사실 이러한 머독 제국의 사상적 기반 위에서 자행된 측면이 있다.

    머독의 신문에 예외 없이 따라붙는 평판은 ‘극단적으로 선정적’이라는 것이다. 그의 신문은 일상의 삶에 바쁜 대중을 끔찍이(?) 배려해주기 때문에 ‘사진은 무조건 크게, 기사는 짧게’라는 원칙에 충실하다. 그는 1969년 영국의 그저 그런 신문이던 ‘선’을 인수한 뒤 대중의 관음증과 야합한다. 그래서 만든 게 ‘페이지 스리 걸(Page 3 girl)’이다. 즉, ‘선’은 첫 페이지 다음으로 주목도 높은 셋째 페이지에 매일 상의 가슴 단추를 풀어헤친 여자 모델 사진을 대문짝만하게 실은 것이다. 영국의 보수층은 도를 넘은 선정주의라며 난리를 쳤다. 의회에서는 ‘선’신문을 흔들며 “당장 처벌해야 한다”고 흥분했다.

    뉴스도 ‘쇼’다

    그러나 머독은 초지일관, 얼굴에 철판을 깐 사나이답게 끄떡도 하지 않았다. 1년 뒤엔 토플리스(topless·상의 없이 하의만 걸친 차림) 사진을 게재하기 시작했다. 쏟아지는 비난에도 그는 당당하게 대꾸했다. “껌을 팔든, TV를 팔든, 누구나 과장을 한다. 중요한 건 많이 파는 것”이라고 말이다. 부수는 폭발하듯 늘어 1년 만에 발행부수가 두 배로 증가했다. 한 해 500만달러 이상 적자를 보던 ‘선’은 흑자로 돌아섰다. 결국 영국의 신문들은 물론 전세계 신문들이 이 신문을 다투어 베꼈다. ‘황색저널리즘의 우등생’의 완벽한 승리였다.

    머독은 가끔 센세이셔널리즘의 대명사인 미국의 신문왕 윌리엄 랜돌프 허스트와 비교되곤 한다. 하지만 머독은 그런 비교를 좋아하지 않았다. “허스트는 소년 시절부터 응석받이였고 제멋대로였습니다. 그러나 나는 엄격한 장로회 교회에 속해 있으며 칼뱅주의자이지요.”

    도청 취재한 사실이 드러나 창간 168년 만에 폐간된 ‘뉴스 오브 더 월드’만 하더라도 자매지인 ‘선’ 이상의 자극적인 기사로 주가를 올려왔다. 그 덕에 한때 900만부라는 세계 최대 발행부수를 자랑하기도 했다. 불법도청을 용납하지 않는 영국 사회의 분위기 탓이지만 순순히 폐간한 데에는 방송 사업을 염두에 둔 머독의 경영적 계산이 깔려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취재원 인격, 무자비하게 무시하라”

    머독의 또 다른 특징은 지나치게 뻔뻔하다는 점이다. 사람들은 웬만큼 돈을 벌면 체면을 차리게 마련이며 특히 품위 있는 지식산업인 미디어 업계 리더의 경우 더욱 그러하다. 그러나 머독은 한결같다. 언론인은 낮은 지위에 있든 높은 지위에 있든 체면을 차리지 말고 ‘무자비하게’ 대중의 호기심을 채워줘야 한다고 본다.

    머독 밑에서 일하는 한 신문사 간부는 이렇게 말한다. “머독은 대중의 취향에 명령하지 않는다. 대중이 무엇을 보고 싶다고 그에게 말하면 그것을 제공한다.” 여기에 더해 적대적 인수 합병과 노조 파괴는 자본주의의 법칙이므로 윤리적 잣대로 평가하지 말라는 게 머독의 생각이다. 그는 자신의 이념을 따르지 않은 임직원에게는 가차 없이 떠나라고 압박한다. 2007년 밴크로프트 가문으로부터 ‘월스트리트저널’을 인수할 당시 편집진을 건드리지 않겠다고 공언했지만 인수 직후 대대적인 물갈이 인사로 심복을 요직에 심었다.

    머독 이전의 ‘월스트리트저널’은 자타가 인정하는 세계적인 권위지였다. 그러나 머독 이후 상업지로 완전히 바뀌었다. 밴크로프트 가문은 영국 ‘가디언’과 한 인터뷰에서 “‘월스트리트저널’ 매각을 후회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머독은 “‘월스트리트저널’의 독자들은 신문이 더 좋아졌다는 점을 알 수 있다. 해외뉴스는 더 탄탄해졌고, 주말판은 더 실용적이 됐으며, 디지털 배달망은 더 확장됐다”고 했다. 그러나 ‘월스트리트저널’을 과거와 같은 정론지라고 보는 사람은 점점 줄어들고 있다.

    머독은 이념적으로 보수성향이지만 종종 자신을 ‘민주화 투사’ 내지 ‘시대를 앞서는 프런티어’로 여긴다. 그는 미국 시장 진출 초기 박대당했다. 매체 인수에 자신의 호주 국적이 문제가 되자 미국 국적을 취득하기도 했다(미국 연방통신위원회(FCC)는 방송사 소유자를 미국 국적자로 제한하고 있다). 그는 에드워드 케네디 상원의원과 치열하게 싸웠으며 근래까지 CNN의 전 회장 테드 터너와도 대립했다. 1997년 테드 터너가 장악하고 있는 미국 최대의 케이블TV 시장인 뉴욕에 자신의 폭스뉴스TV가 진입하지 못하고 법원이 테드 터너의 손을 들어 주자 머독은 ‘자본주의 사망론’을 역설했다.

    ‘업계의 프런티어’를 자임하는 그는 2005년 미국 신문편집인협회 초청 강연에서 “종이 신문은 2040년까지는 유지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신문은 인터넷을 두려워하거나 무시하지 말고 디지털 혁명을 적극 수용해야 한다”고 했다. 활자매체가 온라인에 뛰어들라는 주문이었다.

    머독의 폭스뉴스TV는 미국 TV 중 거의 유일하게 극우보수 논조로 유명하다. 미국 민주당과 진보 시민단체들은 “폭스뉴스의 글렌 백(오후 5시 토크쇼 진행자)이 나오면 TV를 끄세요”라는 슬로건을 내걸기도 했다. 머독은 미국의 강경보수 인사들이 폭스뉴스에서 마음껏 뛰어놀도록 하고 있다.

    흥미로운 점은 폭스뉴스가 민주당 정권인 오바마 집권기를 맞아 오히려 영향력을 넓히고 있다는 점이다. 이 TV는 오바마 대통령이 추진하는 방대하고 야심 찬 개혁 어젠다에 못마땅해 하는 사람들의 구심점 역할을 자임한다. 오바마 대통령 당선 이후 폭스뉴스의 시청률은 계속 상승 중이다. 중도성향의 CNN과 진보성향의 MSNBC가 오바마 집권기에 영향력을 확장할 것이라는 관측은 빗나갔다. 폭스뉴스와 다른 케이블 뉴스 채널 간의 시청률 차이는 더 벌어지고 있다. 누적시청자 수(cumulative audience·6개월 등 일정한 기간 한 번 이상 본 사람의 총 수) 기준으로는 여전히 CNN이 업계 선두이지만 일반적인 시청률 집계에선 폭스뉴스가 압도적 1위다. 이 모든 흐름의 장막 뒤에 머독이 버티고 있음은 물론이다.

    지난 미국 대선 당시 오바마나 힐러리 클린턴은 폭스뉴스 불참 방침을 발표했다. 폭스뉴스에 대한 적대감을 노골적으로 드러낸 셈이다. 당시 민주당 지지자들은 폭스뉴스가 공화당에 유리하게 편파 보도를 한다고 주장했다. 반면 공화당 지지자 사이에서 폭스뉴스에 대한 ‘충성도’는 CNN과 MSNBC에 비해 세 배 이상 높다. 또한 민주당 지지자 가운데 폭스뉴스를 보는 사람이 공화당 지지자 가운데 CNN이나 MSNBC를 보는 사람보다 조금 더 많은 것으로 나타난다.

    폭스뉴스는 다른 주류 언론이 거의 무시한 ‘티 파티’(Tea Party·오바마 정부의 세금 및 재정 정책에 반대하는 일련의 보수 성향 집회)를 집중 보도하면서 보수층의 대변자 역할을 자임했다. 이어 오바마가 건강보험료 체계 개혁을 추진하자 개혁반대파를 대변하는 보도와 논평을 대폭 확대했다. 언론 전문가들은 “오바마 정부 비판 집회를 보도할 때 다른 언론은 누가 집회를 주최했는지에 중점을 둔다. 반면 폭스뉴스는 집회 참가자들의 의견과 관심사항을 대변해주는 데 초점을 둔다”고 분석한다.

    공정하고 균형 잡힌? 풋!

    인기도와 신뢰도는 다르다. 폭스뉴스는 ‘우리는 전달만 하고 당신이 결정한다’(We Report, You Decide), ‘공정하고 균형 잡힌’(Fair and Balanced)’이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내걸고 있다. 그러나 사람들은 이런 캐치프레이즈에 “풋!”하고 웃음을 터뜨린다. 조사 결과 폭스뉴스가 ‘믿을 만하지 않다’고 응답한 사람은 41%로, ‘믿을 수 있다’는 응답자 34%를 압도했다. 18~29세 시청자 82%는 폭스뉴스를 안 본다고 답한다.

    머독의 제국에서 근무하는 기자들은 머독을 KRM이라고 부른다. 언론자유와 인권이 만개한 미국의 언론사이지만 어떤 직원도 그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지 못하는 것이다. 고위 임원조차 KRM이라고 언급할 뿐이다. 머독의 직원들은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머독에게 공포감을 느낀다고 한다. 그가 두려움으로 직원들을 다스린다는 사실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루퍼트 머독 성공에 감춰진 10가지 비밀’의 저자 스튜어트 크레이너에 따르면 머독은 비즈니스를 위해서라면 지옥도 마다않고 뛰어들 사람이다.

    그는 새로운 미디어를 인수하면 자신의 충성스러운 심복들로 구성된 점령군을 파견한다. 그래서 단시간에 조직을 휘어잡는 것이다. 누구를 좌천시키거나 해고하는 경우에도 망설이지 않는다. 인간적인 면은 아예 고려대상이 아니다. 언제든 즉시 행동으로 옮긴다. 신기하게도 이런 경영스타일로 인해 회사를 스스로 그만두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머독 연구자들조차 그 이유를 명쾌하게 설명하지 못한다.

    1956년 머독은 항공기 승무원인 패트리샤 부커와 결혼해 2년 뒤 첫아들을 낳았으나 1967년 이혼한다. 같은 해 자신 소유 신문사의 새내기 기자 애너 토브와 재혼한다. 둘 사이에 세 아이가 태어났다. 머독은 1999년 애너 토브와 이혼했는데 12억달러라는 천문학적인 위자료를 지급했다. 이혼 17일 만에 머독은 68세의 나이로 중국 출신 미인 웬디 덩과 결혼했다. 당시 그녀는 30세로 미국 예일대 경영대학원을 졸업했으며 결혼 경험이 있었다. 이번 영국 의회 청문회에서 머독에게 위해를 가하려는 방청객에게 강펀치를 날린 바로 그 여성이다. 머독은 결혼 직후 웬디 덩을 STAR-TV의 부회장에 임명했다. 웬디 덩과는 현재 두 명의 아이를 두고 있다.

    이번 도청 사태로 머독의 미디어 제국이 흔들리면서 후계구도도 복잡해지고 있다는 관측이다. 올해 초까지만 해도 두 번째 부인인 애너 토브 사이에 둔 셋째 아들 제임스 머독(38)이 유력한 후계자로 자리 잡는 듯했다. 그러나 제임스의 입지는 도청 사건 대응 과정에서 흔들렸다는 평이다. ‘뉴욕타임스’는 최근 “머독이 BskyB 지분 100% 인수를 철회한다고 선언한 배경에는 부자간 갈등이 숨어 있다”고 전했다.

    12억달러 위자료와 후계구도

    2003년 30세의 나이로 뉴스코퍼레이션이 39%의 지분을 보유한 BskyB의 CEO가 되면서 일약 차세대 주자로 떠올랐지만 최근 후계구도에서 탈락할지 모른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는 것이다. 대신 지난 3월 뉴스코퍼레이션에 합류한 제임스의 누나 엘리자베스가 부상 중이다. 여기에 청문회에서 머독을 위해 몸을 날려 세계인에게 깊은 인상을 준 셋째 부인 웬디 덩(42)도 후계구도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됐다. 머독 말고는 아무도 앞으로의 전개과정을 모른다.

    머독은 여전히 진행형이고 말썽을 일으키는 언론인이다. “전세계 신문과 방송을 쓰레기로 만들었다” “저널리즘의 역사를 1세기 뒤로 돌렸다”는 비판을 받고 있지만 수십 억 명이 머독이 생산한 쓰레기 미디어에 탐닉하면서 머독의 호주머니를 두둑하게 채워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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