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쥬얼리 리더에서 배우로 거듭난 박정아의 솔직 토크

“힘겨웠던 20대를 견디고 나니 나 자신을 사랑할 수 있게 됐어요”

  • 김지영 기자│kjy@donga.com

쥬얼리 리더에서 배우로 거듭난 박정아의 솔직 토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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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감독에겐 욕먹지 않았나요.

“부족한 것에 대한 꾸짖음, 가르침이 있었죠. 욕은 이번에 많이 먹었어요. ‘웃어라 동해야’ 하면서요(웃음).”

▼ 촬영하다 울기도 했나요.

“서러워서 운 적은 없어요. 우는 장면이 계속 있어서 한 신 걸러 울었어요. 속상하면 우는 신에서 풀곤 했어요. 제작진은 저 친구가 힘들 텐데 촬영장에서 얼굴 붉히지 않고 열심히 한다며 기특해하셨죠.”

“나는 가수 겸 연기자다”



박정아는 자신을 ‘가수 겸 연기자’라고 소개했다. 이런 정체성을 찾기까지 꼬박 10년이 걸렸다. 2001년 쥬얼리의 맏언니로 가요계에 입문한 후 그녀의 활동 영역은 무대를 넘어 예능과 라디오 프로그램, 영화, 드라마 등으로 광범위해졌다. 하지만 그 안에서 그녀는 남모르는 방황을 거듭했다.

“10년 동안 가수생활 하면서 안 해본 장르가 없어요. 뭐 하나 특출하게 잘한 건 없지만 그래도 맡겨놓으면 마음 편한 사람이긴 했거든요. 그러다 보니 예능프로그램에 출연할 기회가 많아졌고, 생방송 MC도 하고, 별밤지기 같은 DJ로도 활동했는데 경력이 쌓일수록 혼란스러웠어요. 내가 도대체 뭘 하는 사람인가 싶어서요. 연예계생활을 견뎌내기엔 너무 여려서 정말 심각하게 그만둘 생각도 했어요. 2006년부터 2009년 초까지는 그만둬야지 하는 생각을 수도 없이 했어요. 연예인이 제 성격에는 안 맞는 것 같았어요.”

▼ 왜 그렇게 생각한 거죠?

“강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는 곳이니까요. 연예인은 자신의 끼와 재능을 알리고 밖으로 표출하는 직업인데 전 그걸 숨기려들었고, 인터뷰도 병적으로 싫어했어요. 내가 아무리 얘기해봤자 내 진심과는 다르게 나오는 경우가 많았고, 좀 즐겁고자 강렬한 멘트를 하면 세부적인 내용은 다 사라지고 그것만 부각되기 일쑤였거든요. 그런 상황을 견뎌내지 못하니까 난 너무 여린가 보다, 이겨내기에는 역부족이라고 생각했던 거죠. 주변 사람들이 ‘넌 좀 변해야 해. 변했으면 좋겠어’라고 얘기할 때도 ‘내가 왜 그래야 하지. 이게 박정아고, 이게 난데, 왜?’ 그랬었는데 지금은 많이 변했어요(웃음).”

▼ 박정아씨가 어떻게 바뀌길 바란 건가요.

“좀 더 계산적이고 여유로워졌으면 한 거죠. 얼굴은 여자답게 생겼는데 하는 짓이 너무 털털하니까 조금만 자제하면 더 잘될 거라는 말도 자주 들었어요. 그땐 이해가 안 돼서 혼란스러웠는데 데뷔 10년차가 되니 조금은 알겠어요. 지금은 조금씩 진화하는 중이에요.”

그녀가 오랜 방황에 종지부를 찍은 건 2009년 3월, 에티오피아로 6박7일간 봉사활동을 다녀와서다. 빈민구호단체인 월드비전의 홍보대사인 그녀는 이전부터 에티오피아 어린이들을 후원하고 있었다.

“아이들을 보면서 많이 반성했어요. 제 자신이 부끄러웠어요. 힘들고 어려운 현실을 탓하지 않고 웃으며 열심히 사는 아이들 앞에선 욕심이라는 개념 자체가 덧없이 느껴지더라고요. 비록 짧은 시간이었지만 에티오피아를 다녀온 후 많은 것이 변했어요. 자존감도 생겼고 절 사랑하는 법도 배웠어요. 그전에는 저 자신을 내몰고 괴롭혔는데 지난 10년을 돌아보니 참 대범한 아이였더라고요. 힘들게 여기까지 왔으니 끝을 보자, 이 직업을 갖고 있으면 좋은 일을 많이 할 수 있으니 정말 열심히 살아야겠다, 그렇게 다짐했죠.”

▼ 많은 깨달음을 얻었군요.

“예, 한국에 오니까 세상이 정말 달라 보였어요. 평소에 무심히 지나치던 모든 것이 의미 있게 느껴졌어요. 물론 이후로도 힘들 때가 있었지만 그 스트레스를 가슴속에 끌어안고 있는 시간이 차츰 줄어들더라고요.”

▼ 나름의 스트레스 해소법이 있나요.

“무조건 푹 자요. 잠자는 것을 워낙 좋아해 취미도 잠자기예요(웃음).”

혈구지도(矩之道)

시간을 거슬러 그녀가 가수라는 직업에 매력을 느끼기 시작한 고교시절로 가 보자. 당시 그녀는 악기를 다루는 친구들과 카피밴드를 결성했을 정도로 록음악에 심취해 있었다. 그녀의 포지션은 보컬, 애창곡은 미국의 싱어송라이터 보브 딜런의 ‘노킹 온 해븐스 도어(Knokin‘ on heaven‘ door)’와 혼성 4인조 포 넌 블론즈의 ‘왓츠 업(What‘s Up)’이었다.

“노래를 곧잘 하는 아이였어요. 정식 밴드는 아니었지만 친구들이랑 모여서 좋아하는 노래를 따라 불러보고 얘기도 많이 나누고 참 열심히 했어요. 그 멤버들 중 아직 연락하는 친구가 있어요. 죽마고우인 친구도 있고요.”

▼ 원래 꿈이 가수였나요.

“어릴 때부터 노래가 삶의 일부였지만 미친 듯이 연예인이 되고 싶었던 건 아니에요. 지금도 간혹 연예인을 하고 있는 자체가 신기해요. 가수가 된 건 우연이에요. 고등학교 때 아무로 나미에라는 일본 댄스가수를 좋아했는데 그분이 다국적 프로젝트 그룹을 만든다는 기사를 보고 오디션을 봤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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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영 기자│kj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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