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9월호

류가헌

호젓하게, 노래하듯이

  • 글·송화선 기자 | spring@donga.com | 사진·홍중식 기자

    입력2011-08-24 08:5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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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류가헌
    한 장의 사진처럼 기억되는 순간이 있다. ‘서촌’이라 불리는 서울 통의동 한옥 마을의 좁은 골목 끝, 갤러리 ‘류가헌(流歌軒)’의 나무문을 밀고 들어서며 깨달았다. 지금 눈앞에 펼쳐진 정경을 오래도록 잊지 못할 거라는 걸. 묵직하고 따스한 나무문의 빛깔과 마당 위에 점점이 놓인 판잣돌, 반들반들 잘 닦인 툇마루와 기와지붕 위로 펼쳐진 서울 하늘까지. 류가헌을 이루는 모든 요소가 한꺼번에 들어와 박혀 잠시지만 선 자리에서 움직일 수 없었다.

    류가헌은 1940년대 한옥을 고쳐 만든 갤러리다. 지난해까지 70대 노인들이 살던 집 두 채를 이어 지었다. 오른쪽 집은 전시공간, 왼쪽 집은 프리랜서 기자인 박미경 관장과 공동 운영자 이한구 사진작가의 작업실이다. 마당을 사이에 두고 마주 보는 두 한옥 사이에 통유리 벽을 세워, 구별되면서도 상호 개방적인 공간을 만들었다.

    한옥 갤러리 아이디어를 처음 낸 사람은 이한구 작가다. 2008년 통의동 한옥에 작업실을 꾸민 그는 미닫이문만 열면 거대한 회랑으로 변하는 집 구조에 매력을 느꼈다. 전시를 위해 준비했던 작품을 벽에 걸고 지인들을 초대했다. 반응이 좋았다. 그의 작업실에서 조촐한 사진전이 열린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사진 애호가들도 하나 둘 통의동을 찾기 시작했다. 그러던 차에 골목 하나 건너, 류가헌 자리에 한옥 두 채가 매물로 나왔다. 전시 공간 구하기 힘든 작가들을 위해 갤러리를 열면 어떨까, 지금의 작업실처럼 소박하지만 따뜻하게. 그것이 류가헌의 출발점이었다.

    류가헌
    시간이 멈추는 풍경

    갤러리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 서까래가 그대로 드러나 있는 15평 남짓한 공간. 새하얀 벽 위에 김민곤 사진가의 작품 27점이 걸려 있다. 류가헌의 운영 철학은 ‘사진 위주’다. 사진전만 여는 건 아니지만 모든 작업 가운데 사진을 ‘으뜸’으로 삼는다. 그중에서도 사실 기록에 충실한 다큐멘터리 작품을 ‘우대’한다. 사람과 세상을 향한 따뜻한 시선이 담긴 성남훈 작가의 집시 사진전, 김흥구 작가의 좀녜(해녀) 사진전 등은 잔잔한 화제를 모았다.



    다큐멘터리 특유의 소박하지만 큰 울림은 한옥 공간과 잘 어울리는 면이 있다. 화려한 현대식 한옥이 아닌, 세월이 느껴지는 낡은 기왓장과 들보를 여러 번 덧댄 흔적 등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류가헌과는 더욱 그렇다. 박 관장은 “자연스럽고 따뜻한 갤러리를 만들고 싶었다. 옛 주인이 마루에 칠해놓은 니스를 일일이 밀개로 밀고 손톱으로 떼어 벗겼을 만큼 작은 부분까지 신경을 썼다”고 했다. 그래서 류가헌은 편안하다. 차 한 잔 손에 들고 툇마루에 앉으면 그대로 시간이 멈출 것 같다.

    마당 한편에 나무 탁자 몇 개로 조촐히 차린 카페에 들러도 좋겠다. 경남 하동군에 사는 박 관장의 친척이 재배한 매실로 만든 ‘못난이 매실차’ 등 류가헌만큼이나 소박하고 향기로운 음료를 마시며 책장 빼곡히 꽂힌 사진 관련 책을 읽을 수 있다. 류가헌은 ‘흐르면서 노래하는 집’이라는 뜻이다. 때로는 호젓하게 흘러가듯이, 가끔은 노래하듯 설레는 마음으로 찾을 만하다.

    ● 위치 | 서울 종로구 통의동 7-10

    ● 운영시간 | 오전 10시30분~오후 6시30분(매주 월요일 휴관)

    ● 문의 | 02-720-2010

    류가헌
    류가헌
    1. 2. 음료를 마시며 비치된 사진 관련 책을 읽을 수 있는 류가헌 북카페.

    3. 4. 1940년대 한옥을 개조해 만든 갤러리 류가헌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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