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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서령의 ‘여기 사는 즐거움’ ⑨

“사업에 실패하고 인간에 절망했을 때 구들이 날 살렸다”

열효율 높은 회전구들 전파하는 안진근 명장

  • 김서령| 칼럼니스트 psyche325@hanmail.net

“사업에 실패하고 인간에 절망했을 때 구들이 날 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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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자방과 상관없이 안씨는 이미 자기 나름의 새로운 구들을 개발해두고 있었다. 한 번 불을 때면 닷새 동안 방이 식지 않는 획기적인 구들이었다. 바닥을 평평하게 만드는 게 아니라 가마솥 바닥처럼 움푹하게 팠다. 그래서 연기가 지나가는 길을 여러 겹 회전하게 만들어 열기가 빠져나가지 않게 하는 방식이었다. 열기를 오래 잡아두기도 하지만 아궁이와 굴뚝에 잠금장치를 만들어 바깥으로 빠져나가는 열기를 아예 원천봉쇄했다.

‘한 번 불 때면 온기 5일 가’

“불을 때고 난 후엔 고래 안을 진공상태로 만들어버리지예. 그러니 열기가 빠져나갈 틈이 없어예. 전통 방식의 고래는 열기의 40~50%가 굴뚝으로 빠져나가버립니더. 회전 구들은 97% 이상이 구들 안에 머물러 있지예. 장작이 타서 열기가 한번 고래 안으로 들어가면 그 열이 밖으로 빠져나오지를 못하게 자꾸 뱅뱅 돌리는 겁니더. 그 열기가 공기 중에서 저절로 식을 때까지 한 5일은 유지되는 거지예.”

정말 획기적이지 않을 수 없다. 장작을 한 번 때면 구들돌이 뜨거워져서 5일을 간다면 한 달에 6번만 불을 때면 된단 말인가?

“물론 바깥 기온에 따라 차이가 나긴 하지예. 구들학교에서 배워간 학생들이 돌아가서 회전구들을 설치하거든요. 그들이 놓은 구들도 5일을 가는 걸 보면 과장하는 거는 아니지예. 전통 구들이 고래에 열을 많이, 오래 저장하고 있지 못하는 건 구조상 문제가 있기 때문이라예. 전통 구들의 고래는 보통 방의 길이에 비례하게 되어 있거든예. 전통 구들의 대부분은 일(一)자형인데 이런 구들은 아궁이와 굴뚝이 1개의 고래로 연결되어 있거든예. 아궁이에서 들어온 열기가 고래에 오래 머물지 않고 고래로 들어오자마자 곧바로 굴뚝으로 나가버리는 거지예. 이런 구조의 구들에서는 손실되는 열이 무려 60%나 됩니더. 회전 구들은 그걸 막으려고 고래의 길이를 최대한 늘렸어예.”



회전구들은 방의 아래쪽을 둥글게 파서 고래를 원형으로 돌려가며 만든다. 전통 구들의 고래가 4m 정도 된다면 회전구들의 고래는 40m가 넘는다. 이렇게 방 전체에 고래를 원형으로 조성할 경우 열기의 97%가 고래에 저장된다는 것이다.

“열효율이 가장 높다는 원자로의 열 이용률이 65%라예. 그렇다면 우리 구들이 가치가 월등히 높은 거 아입니꺼?”

구들은 원래 ‘구운 돌’에서 생겨난 이름이다. ‘온돌’보다 더 오래된 순 우리말이다. 초가집이나 기와집 같은 우리의 옛날 집에서 사용되던 바닥 난방시설 그 자체를 말하거나 이런 난방법을 이용한 방바닥 또는 방을 통틀어 가리킨다. 구들은 서양에서 흔히 보이는 대기난방 방식이 아니다. 거기서 몇 단계 진화한 난방법으로 세계 최초의 바닥 난방 방식이다. 취사와 난방을 겸할 수 있어 합리적이며 우리 민족만의 독보적인 난방법으로 이 때문에 신을 벗고 실내에 들어와 앉는 좌식문화가 생겨났다.

돌을 달구는 축열식 난방이라 서양 난방법에 비해 열에너지를 오랜 시간 저장할 수 있고, 연기가 실내로 유입되지 않는다. 구들의 장점은 더 있다. 바닥을 따뜻하게 만들어 더운 공기를 위로 올라가게 만드는 가열방식은 발을 따뜻하게 하고 머리를 서늘하게 만든다. 한의학이 말하는 두한족열(頭寒足熱)이다. 머리가 차고 발이 따뜻한 것은 건강의 기본요소로 수승화강(水乘火降)이란 한의학의 기본원리에 들어맞는다. 물기운은 위로 올라가고 불기운은 아래로 내려와야 생명의 순환이 일어난다는 철학인데 구들이 가져오는 두한족열이 바로 인체에서 수승화강을 끌어낸다는 것이다.

구들을 사랑하는 사람들

이렇게 말하면 구들이 최고의 난방법인 것 같지만 전통구들엔 상당한 약점이 있다. 바로 방이 빨리 식는다는 것이고 장작이 많이 든다는 것이고 구들 고래가 쉬이 내려앉는다는 것이고 추운 겨울 바깥에서 불을 때야 한다는 것이다.

나는 불 때는 아궁이를 가진 집을 여럿 이미 구경했었다. ‘여기 사는 즐거움’에 등장한 이들 중에도 아궁이 난방을 하는 이가 몇 있었다. 초은당 이성래 부부는 방과 거실의 높이를 달리해서 거실에 아궁이를 두는 방식을 써서 난로 겸용 난방을 했고 도적골 화가 부부는 아궁이 대신 화목 보일러를 써서 바닥을 뜨끈뜨끈하게 만들었으며, 지리산 햇살네 부부는 전통 구들과 아궁이를 그대로 쓰고 있었다. 그런데 안진근 선생이 만든 회전구들은 여기서 한 걸음 더 진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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