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11월호

스크린으로 돌아온 만인의 연인 송혜교

“누군가를 만나면 그 사람만 보여요”

  • 김지영 기자│kjy@donga.com

    입력2011-10-19 11: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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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제야 얼굴 근육 쓰는 법을 알게 됐어요”
    • “억울한 일 있어도 혼자 삭여요”
    • 드라마는 대본, 영화는 감독에 꽂혀
    • 긍정적이고 사려 깊은 ‘애늙은이’
    • “와인 석 잔만 마셔도 취해요”
    • 재충전의 묘약, 파리 여행과 ‘메디슨카운티의 다리’
    스크린으로 돌아온 만인의 연인 송혜교
    송혜교(30)를 만나려고 반 년 넘게 기다렸다. 지난 2월, 처음 섭외 전화를 걸었을 때 그녀는 영화 ‘오늘’을 촬영 중이었다. ‘오늘’은 이정향 감독이 ‘집으로’ 이후 9년 만에 메가폰을 잡은 작품. 약혼자를 죽인 중학생 소년을 용서한 다큐멘터리 PD 다혜(송혜교)가 자신의 용서가 뜻하지 않은 결과를 불러오면서 겪게 되는 혼란과 슬픔, 그 끝에서 찾아낸 찬란한 감동을 그렸다.

    개봉을 한 달 남짓 앞둔 9월28일, 그녀를 인터뷰하기에 앞서 이정향 감독을 먼저 만났다. ‘미술관 옆 동물원’과 ‘집으로’에 이어 이번에도 직접 시나리오를 쓴 이 감독은 “감독 데뷔 전 ‘리더스 다이제스트’에서 ‘용서도 때론 죄가 된다’는 한 칼럼 문구를 보고 용서에 관심을 갖게 됐다. 이 영화를 통해 남의 상처를 두고 함부로 용서를 말하지 말라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다”고 집필 동기를 밝혔다.

    “용서를 아름다운 미덕으로 여기지만 그 때문에 마음의 준비가 덜 된 상태에서 용서를 강요받는 경우가 많아요. 섣부른 용서는 자기 자신을 더 힘들게 하고, 주위에까지 악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것을 영화로 보여주고 싶었어요. 영화 ‘오늘’이 살인사건의 피해자들에게 소박한 위로가 됐으면 해요.”

    시나리오는 2005년부터 본격적인 조사와 검증, 집필 과정을 거쳐 2010년 여름에야 완성됐고, 영화 촬영은 그해 12월부터 4개월여 동안 진행됐다. 촬영 후까지 여운이 남을 정도로 송혜교는 주인공 다혜에게 흠뻑 빠져 있었다. 생애 처음으로 인간의 심리를 헤집는 섬세한 내면 연기에 도전해서일까. 그녀는 전보다 살도 빠지고 한결 성숙해 보였다.

    영화 ‘오늘’과의 인연



    ▼ 왜 ‘오늘’을 선택했나요?

    “배우이자 팬으로서 전적으로 감독님에 대한 호감으로 시작했던 것 같아요. 다작을 하시는 분도 아니고, 오랜만에 선보이는 영화잖아요. 여자 감독님이니 여자 캐릭터를 잘 표현해주실 거라는 생각이 들었고요. 처음 뵌 건 2009년인데 그때는 일 얘기는 안 하고 서로 살아온 날들과 자기 스타일에 대한 얘기만 했어요. 그러다 지난해 5월경 홍콩에 있을 때 처음 시나리오를 받았는데 느낌이 너무 좋았어요. 바로 전화해서 하고 싶다고 말씀드렸더니 의외라는 반응을 보이셨어요. 감독님은 어려운 캐릭터여서 안 한다고 할 줄 아셨대요. 감독님이 만들어준 다혜가 기대된다고 말씀드렸더니 감독님도 제가 어떻게 변할지 궁금하다며 손을 잡아주셨죠.”

    ▼ 다혜에게서 어떤 인상을 받았나요?

    “저랑 비슷한 면이 무척 많았어요. 지금까지 한 모든 캐릭터가 제 모습을 조금씩 가지고 있지만 다혜 캐릭터는 제 성격을 아주 많이 닮았어요.”

    이정향 감독도 송혜교를 처음 만났을 때 둘이 참 많이 닮았더라고 말했다. 그래서 송혜교에게 다혜와 혜교를 합친 ‘다혜교’라는 별명을 붙여줬다고 한다.

    “단적인 예로 전 싫어도 싫다는 말을 잘 못하는 성격이에요. 지금은 그마나 나아졌지만 이상한 상황에 몰려도 나만 참으면 되지 하며 감정을 억눌러요. 그게 쌓이고 쌓여 언젠가는 터져요. 사람 많을 때가 아니라 혼자 있을 때요. 다혜도 그런 캐릭터예요. 서로 닮아서 다혜에게 다가가기가 쉬웠어요.”

    ▼ 작품 준비를 어떻게 했나요? 이 감독은 관련 서적을 많이 읽었다고 하던데….

    “감독님이 저에게도 그 책들을 주면서 시간 날 때 가볍게 보라고 하셨어요. 미리 다 알고 촬영에 임하는 게 방해가 될 수도 있다면서요. 다혜는 처음에는 아무것도 모르다가 살인사건 피해자들을 인터뷰하면서 자신의 용서가 잘못됐음을 뒤늦게 조금씩 깨달아가거든요. 중국 촬영 때문에 감독님과 떨어져 있을 때는 ‘다혜의 일기’를 썼어요. 감독님이 시나리오를 보고 느낀 감정을 일기처럼 기록해보라고 하셨거든요. 다혜의 내면을 표현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되더라고요.”

    ▼ 만일 자신이 다혜의 상황에 놓인다면 소년을 용서했을 것 같나요?

    “전 쉽게 용서가 안 될 것 같아요. 다혜도 약혼자를 잃고 괴로워서 자살까지 하려고 했던 걸 보면 100%의 용서가 아니었을 것 같아요. 그러니까 나중에 진실을 알고 화가 났겠죠. 다만 가해자가 어리고 고의가 아니었다고 생각해 자기만 용서하면 모든 게 편해질 줄 안 거죠.”

    ▼ 촬영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점은 무엇인가요?

    “어떤 작품을 하든지 연기가 쉬운 적은 없어요. 이 작품도 매 순간 힘들었지만 얽힌 실타래를 풀어가는 재미가 있었어요. 감독님과의 작업도 좋았고요. 너무 추워서 육체적으로는 힘들었어요. 겨울에 크랭크인했거든요. 대사도 입이 얼어서 잘 안 될 때가 있었어요. 그 때문에 좀 고생했지, 다른 건 그다지 힘들지 않았어요.”

    다혜의 일기

    이정향 감독은 송혜교에 대해 “예쁘고 잘나가니 아무 고민 없이 사는 사람인 줄 알았는데 개념 있고 의젓하고 사려 깊었다. 무엇보다 인간성 좋고 예습을 철저히 해오는 성실한 면이 기특했다”고 평가했다. 그렇다면 송혜교가 현장에서 느낀 이정향 감독은 어떨까.

    “처음 뵀을 때 ‘감독님 무섭다는 소문을 많이 들었다’고 말씀드렸어요. ‘집으로’ 메이킹 필름을 봤는데 유승호군을 막 혼내는 장면이 나왔어요. 너무 무서웠어요. ‘그 장면이 안 잊힌다, 현장에서 무섭게 하시느냐’고 여쭈었더니 촬영장에선 날카로워진다고 하시더라고요. 피상적으로 보면 기분 나쁠 수도 있지만 배우를 위한 날카로움이었어요. 현장에서 배우가 컨디션을 최상으로 유지할 수 있게 배려해주느라고요. 스태프들은 서운했을지도 모르지만 현장 분위기는 무척 따뜻했어요.”

    ▼ 어떤 식으로 배려해주시던가요?

    “너무 놀란 것이 애교도 많고 표현을 참 잘하세요. 지민이가 저한테 ‘다혜 같은 언니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하니까 저희를 꼭 안아주셨어요. 중요한 신을 찍을 때는 다른 감독님처럼 예민해지시지만 정말 담백하면서도 디테일하게 감정처리하시는 것을 보면서 ‘역시나’ 하고 감탄했어요. 이 말하면 실례지만 참 귀여우세요(웃음).”

    ▼ 영화에 대한 아쉬움은 없나요?

    “작품 자체보다 홍보 영상이 슬픈 멜로 영화처럼 비치는 게 좀 아쉬워요. 성급한 용서가 잘못된 결과를 낳을 수 있다는 걸 보여주는 영화지, 억지 눈물을 강요하는 최루성 영화가 아니거든요.”

    ▼ 용서를 잘하는 편인가요?

    “지금까지는 누군가를 용서해야 할 만한 일이 일어나지 않은 것 같아요.”

    ▼ 억울한 일을 겪은 적이 없나요?

    “사실과 다른 기사가 나오면 좀 억울하지만 혼자 삭이는 편이에요. 인간관계에서도 비슷해요. 상대방이 서운하거나 속상하게 해도 뭔가 이유가 있겠거니 하면서 이해하려고 노력해요. 근데 아무리 생각해도 ‘그건 심했어’라는 생각이 들 땐 그 사람을 못 보겠어요.”

    이 감독은 그런 그녀를 두고 “애늙은이 같다”고 표현했다. 하고 싶은 말이 있어도 30%밖에 꺼내지 않는다나. 그 말을 전했더니 송혜교는 “감독님이 절 빨리 파악하시긴 했다”며 맞장구를 쳤다.

    ▼ 상처를 잘 받는 편인가요?

    “일하면서 상처 받은 적은 있지만 본래 상처를 잘 받는 타입이 아니에요. 제 주변에는 상처 주는 사람이 거의 없어요. 인복이 있는 것 같아요.”

    ▼ ‘오늘’은 기존에 해온 작품과 색깔이 다르고 메시지가 강해서 좋은 자극이 됐을 것 같아요.

    “다른 사람은 느끼지 못할 수도 있지만 얼굴로 연기하는 법을 배웠어요. 얼굴 근육을 쓰는 법을 알게 됐다고 할까. 말수가 적은 캐릭터라 어떤 식으로든 감정을 나타내려고 얼굴 근육을 써보니 되더라고요. 예전엔 지문에 ‘생각 없이 읽는다’라고 적혀 있으면 정말 생각 없이 읽기만 했거든요. 표정연기 하는 재미를 느끼기 시작한 거죠.”

    ▼ 캐릭터에 빠지면 헤어나기가 힘들지 않나요?

    “장르에 따라 달라요. ‘풀하우스’ 같은 발랄한 로맨틱 코미디를 했을 땐 빠져나오기 쉬워요. 근데 ‘오늘’이나 ‘황진이’ ‘가을동화’처럼 감정 몰입이 필요한 작품을 하고나면 헤어나기가 힘들어요. 재충전 없이 다른 작품에 바로 들어가면 더 힘들었을 텐데 아직까지는 캐릭터를 떠나보낼 시간이 충분했어요.”

    “캐릭터보단 줄거리 봐요”

    화제를 바꾸려는 찰나, 그녀가 양해를 구하고 자리를 비웠다. 옷을 갈아입기 위해서다. 화보촬영용 원피스가 영 불편했는지 이번엔 캐주얼 차림이었다. 그 모습이 새내기 대학생처럼 풋풋했다. 테이블에 놓인 커피와 케이크를 권하자 그녀는 난처해하며 커피만 한 모금 마셨다.

    “단것을 좋아하지 않아서….”

    ▼ 최근 행보를 희한하게 보는 눈이 많더군요.

    “‘황진이’라는 영화를 끝내고 미국 독립영화와 노희경 선생님의 작품에 출연하면서 의외의 길을 간다는 말을 참 많이 들었어요. 상업적인 드라마를 많이 한 제가 비상업주의 작가로 알려진 그분 작품에 출연한 것이 뜻밖이었나 봐요. 근데 전 그런 거 안 따져요. 그저 제 마음에 꽂히는 작품을 해요. 드라마는 대개 대본에 꽂혀서 선택하고, 영화를 할 땐 감독님을 많이 봐요. 시나리오가 완벽하지 않더라도 감독님이 ‘아, 이 사람과 하고 싶다’ 그러면 거기에 꽂히거든요.”

    ▼ 캐릭터는 안 보나요?

    “보긴 하는데 줄거리가 전반적으로 재미있는지를 더 눈여겨봐요. ‘그들이 사는 세상’은 내용이 워낙 좋았고, 노희경 선생님 팬이라 망설일 이유가 없었죠.”

    ▼ 지금도 ‘순풍산부인과’ 때 이미지를 잊지 못하는 사람이 많은데 왜 그런 캐릭터를 하지 않는 건가요?

    “밝은 역할이 많이 들어오긴 하는데 연기하는 데 한계가 있어서요. ‘풀하우스’의 지은이 캐릭터와 비슷하다는 말이 분명히 나올 거예요. 로맨틱 코미디는 좀 더 나이를 먹은 후에 하려고요. 그때 가면 덜 귀엽겠지만 나이에 맞는 다른 캐릭터가 나오지 않을까요.”

    ▼ 앞으로 영화만 할 생각인가요?

    “아니요. 괜찮은 드라마가 있으면 할 거예요.”

    ▼ 송혜교에게 연기란…?

    “하면 할수록 어려운,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 같은 거죠. 예전엔 시간이 갈수록 연기가 편해질 줄 알았는데 그 반대더라고요.”

    “어릴 땐 디자이너 동경했어요”

    그녀는 1996년 교복 브랜드인 ‘스마트’ 광고모델로 연예계에 데뷔했다. 중3에서 고1로 넘어갈 무렵, SK의 전신인 선경 스마트 모델 선발대회에서 대상을 차지한 것이 계기였다. 원래 꿈이 연예인이었냐고 묻자 고개를 내저었다.

    “우연히 대회에 나갔다가 얼떨결에 연기자가 됐어요. CF를 찍고 얼마 후 방송국에서 연락이 와 오디션을 봤고 운 좋게 합격해 단막극부터 시작했어요. 이 길이 내 길이라는 확신이 없어서였는지 2004년 ‘올인’ 때까지도 연기 욕심이 별로 없었어요.”

    ▼ 그 뒤엔 연기 욕심이 생기던가요?

    “‘올인’ 끝나고 ‘햇빛 쏟아지다’라는 드라마에서 처음으로 억척스러운 연기를 했어요. 이전까지는 청순한 역만 하고, 상대 배우도 나이 차가 많은 오빠들이라 전 따라가기만 하면 됐는데 그 작품은 제가 끌고 가는 부분이 많아서 책임감이 생기더라고요. 근데 감독님과 대화할 줄을 몰랐어요. ‘풀하우스’의 표민수 감독님을 만나기 전까지는. 표 감독님은 부드러운 스타일이고, 제가 끌고 가야 하는 부분이 많다보니 자연스럽게 의견을 내게 되더라고요. 감독님도 흔쾌히 받아주셨고요. 제 의견이 반영되니 연기가 정말 재미있더라고요. 그때부터 감독님과 대화하는 방법을 알게 되면서 일 욕심이 생긴 것 같아요.”

    ▼ 원래 꿈은 뭐였나요?

    “절실하게 갈구하는 꿈은 없었어요. 그 나이 또래에 흔히 꿈꾸는 디자이너를 막연히 동경했죠.”

    ▼ 하이틴 시절 연기를 시작해 빠르게 성장했지만 얻은 만큼 놓친 부분도 있을 것 같아요.

    “또래 친구들처럼 학창시절 추억이 없다는 게 안타까워요. 학창시절부터 만나는 친구가 딱 세 명 있어요. 초중고를 같이 다닌 친구들이죠.”

    드라마 ‘주몽’으로 스타가 된 배우 한혜진은 그녀의 모교인 은광여고 동창이다. 학창시절 한혜진의 존재를 알았느냐고 묻자 송혜교는 “알고 지내는 사이는 아니었지만 예쁜 것으로 꽤 유명했다”고 회상했다.

    “전 당시 한별단에 속해 있었고 한혜진씨는 RCY 단원이었어요. 숙명여중, 은광여고를 나왔는데 저희 학교에 예쁜 친구가 많았어요. 특히 고등학교 때는 제가 좀 통통했기 때문에 ‘저렇게 통통한데 TV에 나오느냐’고 놀리는 아이도 있었죠(웃음).”

    스크린으로 돌아온 만인의 연인 송혜교
    ▼ 연예계에서 자연 미인으로 손꼽히는데….

    “자연 미인이라고 해도 믿지 않는 분이 계실 거예요. (성형수술) 해놓고서 거짓말한다고….”

    ▼ 그에 대한 피해의식이 있나요?

    “피해의식이 아니라 전 신경을 안 쓰는데 어떤 말을 하면 부정하니까 아예 말을 안 하는 게 낳겠구나 싶더라고요. 수술했다고 생각하는 분은 그렇게 생각하면 되고, 아니라고 생각하면 아니라고 여기면 되고. 제가 굳이 얘기해서 둘이 싸우게 할 필요는 없으니까요.”

    ▼ 엄마 닮았나요?

    “어릴 때는 아빠를 많이 닮았었는데 커가면서 엄마를 닮더라고요. 아빠 이목구비가 뚜렷한 편이에요. 어릴 땐 저도 쌍꺼풀이 짙었는데 점점 겹 쌍꺼풀이 되고 선이 좀 가늘어지는 것 같아요.”

    1996년 데뷔 후 송혜교가 출연한 드라마는 대부분 좋은 반응을 얻었다. 특히 송승헌, 원빈과 주연한 ‘가을동화’를 비롯해 이병헌과 짝을 이룬 ‘올인’, 정지훈(비)과의 달달한 로맨스를 그린 ‘풀하우스’는 아시아 전역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그 덕에 송혜교는 대한민국을 넘어 아시아를 대표하는 스타로 자리매김했지만 자신을 한 단계 성장시킨 작품으로는 ‘그들이 사는 세상’을 꼽았다.

    ‘그들이 사는 세상’과 ‘호텔리어’

    이 드라마는 그녀와 현빈, 두 선남선녀가 처음 호흡을 맞춘 작품인데다 명콤비인 노희경 작가와 표민수 PD의 만남으로 방영 전부터 화제를 모았다.

    “연기하면서 그렇게 어려운 대사는 처음이었어요. 노희경 선생님 팬이 된 게 대사가 실제 말 같아서예요. 연기하기가 수월할 줄 알았는데 너무 어렵더라고요. 선생님의 글을 말로 표현하는 게 초반에는 버거웠어요. 연출을 맡았던 표민수 감독님이 조언을 해주시더군요.

    초반에는 잘하든 못하든 흠잡는 말을 듣게 마련이니 느긋하게 가라, 그런 말에 자꾸 신경 쓰면 네가 글을 데리고 가야 하는데 글이 널 끌고 간다고요. 딱 맞더라고요. 초반에 글을 따라갈 때는 너무 힘들었는데 5~6회부터 글에 익숙해지니까 매 신이 재미있고 뿌듯했어요. 그래도 끝까지 어려웠어요. 대부분의 드라마가 5~6회를 하고 나면 탄력 받아서 캐릭터대로 쭉 가요. 근데 노희경 선생님 작품은 1회부터 16회까지 다 어려워요.”

    ▼ 시청률이 한 자릿수여서 속상하지 않았나요?

    “전혀요. 다른 작품이었으면 시청률 때문에 기운 없고 하기도 싫고 그랬을 거예요. 저도 인간이니까. 스태프들도 마찬가지였을 거고요. 근데 마니아가 많았고, 다운로드 순위가 늘 1위여서 다들 신나게 했어요. 대본을 받을 때마다 연기에 빠져서 캐릭터 파악하고 분석하느라 시청률에 신경 쓸 시간도 없었고요.”

    ▼ 잘 맞지 않은 작품은 없었나요.

    “한 편 있었죠. ‘가을동화’ 끝나고 출연한 ‘호텔리어’라는 드라마요. 그 작품에서는 제가 할 게 없었어요. 작은 배역이라도 작품에 보탬이 되는 캐릭터면 신나서 할 텐데 존재감이 없고 계속 겉도는 거예요. 배우로서 속상하고 혼란스러웠어요. 현장에서는 제일 막내여서 짜증을 못 내고 같은 식구인 매니저들만 볶았던 것 같아요. 왜 이런 걸 시켰느냐고요. 정말 괜찮은 작품이 많이 들어왔었는데 당시 매니저와 감독님이 친분이 있었던 모양이에요. 감독님이 제 마음을 아시고 ‘너무 미안하다’고 책 선물까지 보내주셨죠. 감독님에 대한 기억은 좋은데 당시를 생각하면 지금도 짠해요.”

    ▼ 이후에는 작품 궁합이 좋았으니 전화위복이 된 건가요?

    “그런 셈이죠. 정말 남 얘기 듣고 작품을 선택하면 안 되겠다, 흥행이 되든 안 되든 간에 내가 하고 싶은 작품을 해야 후회가 없다는 걸 깨달았거든요.”

    ▼ 대사를 완벽히 외워오는 성실한 배우라고 칭찬이 자자하던 걸요.

    “당연히 대사를 외워야죠. 현장에서 바뀌는 경우도 있는데 바뀌면 바뀌는 대로 바로 외워요. 촬영 10분 전에 쪽 대본이 나온 적이 많아서 단련이 잘돼 있어요.”

    ▼ 쪽 대본이 잘 외워지던가요?

    “완전 집중할 때요. 대신 여유를 가지고 외운 대사는 한참 지나도 생각이 나는데 급하게 외운 것은 연기하고 나면 다 까먹어요(웃음).”

    ▼ 최근 한예슬씨가 드라마 촬영 중 쪽 대본 등 제작 여건에 반기를 들고 미국으로 도피한 일이 있었는데 그 일을 어떻게 생각하나요?

    “작품이 끝나지도 않았는데 그렇게 행동한 것도 마음 아프고, 본인이 얼마나 힘들었을지 짐작이 가니까 그것도 마음 아팠어요. 잘했다고 할 순 없지만 드라마가 끝난 뒤에 항의하면 흐지부지 넘어갈 테니 촬영 도중에 한번 강하게 해보자, 그런 마음이었을 것 같아요. 좋게 이해해주셨으면 해요. 당시는 이성을 찾기가 힘들었을 거예요.”

    ▼ 송혜교씨도 그런 충동을 느낀 적이 있나요?

    “다행히 전 쪽 대본과 밤샘의 연속인 환경에서 일해본 적은 없어요. 스무 살에 윤석호 감독님의 ‘가을동화’를 찍을 때는 정말 힘들었어요. 3일 동안 메이크업도 못 지우고 뜬눈으로 새우다 이동할 때 잠깐 눈 붙일 정도로 강행군을 했거든요. 그때 단련돼서 ‘수호천사’라는 16부작 미니시리즈를 할 땐 전혀 힘들지 않았어요. ‘올인’ 때는 등장인물이 워낙 많아서 다른 배우가 촬영하는 시간을 이용해 잠을 잤고요. ‘햇빛 쏟아지다’ 때는 대본이 다 나와 있어서 그다지 힘들지 않았고, ‘풀하우스’와 ‘그들이 사는 세상’의 표민수 감독님은 배우를 안 재우면 컨디션이 나빠져서 좋은 연기가 안 나오는 걸 잘 아셨어요. 그래서 웬만하면 밤을 새우지 않고 어쩌다 아침까지 찍어도 잠은 재우셨어요.”

    ▼ 최근 몇몇 연예인의 탈세 문제가 도마에 올랐는데 그 문제는 어떻게 보나요?

    “자신이 직접 세금 문제를 처리하는 연예인은 거의 없을 거예요. 저만 해도 사무실에서 알아서 해왔고, 그걸 담당하는 회계사가 따로 있으니까요. 그분이 하라는 대로 세금을 낼 뿐인데, 뭐가 뭔지 알 턱이 있나요. 고의가 아니었을 텐데 상황이 좀 안타깝더라고요.”

    “사랑에 ‘올인’하는 스타일”

    어느덧 그녀도 16년차 배우가 됐다. 데뷔 후 줄곧 정상의 자리를 지켜왔지만 인기가 영원할 수는 없는 법. 그에 대한 두려움은 없을까.

    “전혀 두렵지 않아요. 인기가 늘 한결같을 수는 없으니까요. 좋은 작품 만나면 인기는 자연히 따라오기 때문에 그것에 연연하지 않아요.”

    ▼ 왕년에 톱스타를 만나보면 주연에서 조연으로 떨어질 때 우울증이 생길 정도로 힘들었다고 하더군요.

    “‘황진이’를 찍을 때 윤여정 선생님도 비슷한 말씀을 하셨어요. 늘 주인공일 순 없고 언젠가 조연이 되는데 그걸 잘 받아들여야 한다고요. 선생님도 주인공을 했지만 지금은 누구의 엄마나 할머니 역을 하시잖아요. 처음엔 그게 힘드셨는데 딱 한끗 차이로 받아들이느냐, 안 받아들이느냐에 따라서 어떻게 늙는지가 결정되더래요. 어떤 마음으로 받아들이느냐가 중요하다고요. 무슨 의미인지 어렴풋이 아는데 그런 상황에 대한 두려움도 없어요.”

    ▼ 연기생활에 만족하나요?

    “지금이 좋아요. 이제 연기를 좀 알게 된 것 같고 표현도 더 잘할 수 있을 것 같아서 20대 때보다 오히려 좋아요.”

    ▼ 20대와 30대의 차이가 있나요?

    “없어요. 똑같아요. 30대가 되면 우울증이 온다고 하던데 일에 몰두하다보니 어느새 나이가 이렇게 됐더라고요.”

    ▼ 성격이 무던한가봐요.

    “좀 그런 것 같아요. 긍정적이에요.”

    ▼ 주변에 좋은 가르침을 주는 선배 멘토가 있나요?

    “윤여정 선생님도 개인적으로 좋아하고 ‘풀하우스’ 때 시할머니로 나왔던 김지영 선생님도 좋아해요. 김지영 선생님에게는 지금도 할머니라고 부르는데 막상 만나면 연기 얘기는 잘 안 하세요. 그냥 사는 이야기를 해주시는데 너무 재미있어요.”

    ▼ 나이 차가 많은 선배와도 잘 어울리나봐요.

    “배우들은 다 똑같아요. 아무리 나이가 많아도 소녀 감성이 있어요. 좀 죄송한 말씀이지만 그게 너무 귀여워요. 무서울 땐 되게 무서운데 전 선생님들이랑 같이 있으면 재미있어요. 제가 몰랐던 옛날이야기를 해주시니까.”

    ▼ 슬럼프가 있었나요?

    “없었던 것 같아요.”

    ▼ 사람들이 다 아는 사랑을 두 번 했는데 아픔일 수도 있고 추억일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어느 쪽인가요?

    “아픔은 아니고 추억에 가까운 것 같아요. 유별나게 특별한 걸 한 것도 아니고 남 다 하는 연애를 한 것이니까요.”

    ▼ 공개 연애를 한 것이 후회되진 않나요?

    “연애 자체를 후회하진 않아요. 다만 할리우드나 홍콩에서는 공개 연애가 흔한 일인데 우리나라에서는 공개하는 경우가 많지 않다보니 단 두 번의 공개가 마치 여러 사람을 만난 것 같은 인상을 주나 봐요. 그게 좀 속상해요. 제가 드라마를 할 때마다 사랑에 빠진다는 말을 하더라고요. 왜 그렇게 보는지 곰곰이 생각해봤어요. 드라마 속 커플을 좋아하는 팬들은 둘이 잘됐으면 좋겠다는 말을 많이 하는데 그런 식으로 연결하다보니 오해가 생기는 것 같더라고요.”

    ▼ 사랑관이 궁금해요. 사랑에 빠지면 어떤 스타일인가요?

    “완전히 ‘올인’하는 스타일이에요. 조건을 따지기보다 그 사람과 대화가 되고 뭔가 같이 통하는 게 있으면 좋아지고 그러는데 일단 누군가를 만나면 그 사람밖에 몰라요. 그 사람밖에 안 보여요. 주변 사람들이 저한테 ‘너도 네 자신을 좀 사랑하라’고 할 정도로요. 제 사전에 바람은 절대 없어요. 헤어질 때도 둘의 문제로 헤어졌지 다른 누군가가 얽힌 적은 없어요.”

    ▼ 이상형이 있나요?

    “그런 거 없어요. 어릴 때부터 이상형이 없었어요. 첫눈에 반하는 스타일도 아니에요. 얘기도 하고 오래 보고 나서 만나는 편이지 바로 딱 내 스타일이네, 그러지 않아요.”

    ▼ 사랑이 두렵지 않나요?

    “아뇨. 앞으로도 전 사랑을 할 거예요. 하하하.”

    오해와 진실

    송혜교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들이 있다. 이것은 편견일 수도 있고 오해일 수도 있다. 지금부터 그에 관한 진실게임을 시작해보자.

    ▼ 술이 세다?

    “못하진 않아요. 좀 더 어릴 때는 잘했던 것 같은데 지금은 와인 석 잔만 마셔도 취해요. 술보다 술자리를 좋아해요. 얘기하면서 스트레스 풀기 좋잖아요. 전 제가 술을 잘하는 줄 알았어요. 술자리에 오래 있어서요. 나중에 친한 언니랑 둘이서 술을 마셔보니 넉 잔에 ‘녹다운’되더라고요.”

    ▼ 독특한 술버릇이 있나요?

    “술이 들어가면 말도 많아지고 약간 목소리 톤이 높아진다고 하더라고요. 좀 더 있으면 자고요. 울진 않아요. 즐겁게 떠들고 놀다가 그냥 자요. 하하하.”

    ▼ 잘 논다?

    “잘 놀진 못해요. 가라오케 같은 데를 안 좋아해요. 노래방도 별로예요. 1년여 전에 영화팀하고 간 것이 마지막이었어요.”

    ▼ 그럼 취미가 뭔가요?

    “시간 나면 영화 보거나 여행 가요. 일 없을 때는 대체로 집에 있어요. 감명 깊게 본 영화가 여럿 있는데 지금도 심심할 때 한 번씩 보는 건 ‘메디슨카운티의 다리’예요. 여행지로는 파리가 가장 좋더라고요. 되게 많이 갔는데도 늘 새로워요.”

    ▼ 사진을 잘 찍는다?

    “친구들끼리 찍는 건 좋아하는데 특별한 관심은 없어요. 사진 찍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 워낙 많으니까 오히려 관심이 안 가더라고요.”

    ▼ 어딜 가든 대접받으려고 하는 스타의식이 강하다?

    “그런 건 전혀 없어요. 지금도 막 데뷔한 친구들을 만나면 존대를 해요. 저보다 나이가 엄청 어려도 처음 보는 사람에게는 말을 놓지 않아요.”

    ▼ 외로움을 많이 탄다?

    “무남독녀라서 어릴 적에는 참 외로웠는데 하도 혼자 있다보니 이젠 누가 옆에 있는 게 불편해요.”

    ▼ 연예인 친구가 많다?

    “어릴 땐 이 사람 저 사람 많이 사귀었어요. 저도 연예인이지만 연예인이 신기해 보이더라고요. 상대가 날 알아보는 것도 신기하고요. 근데 이제는 연예인 친구보다 평범한 언니들, 이쪽에 종사하지만 연예인이 아닌 언니들이랑 더 가깝게 지내요. 연예인 친구는 가까워지는 데 한계가 있더라고요.”

    ▼ 친한 연예인 친구가 누군가요?

    “요즘에 마음 맞는 친구가 모델 겸 배우 김민희씨예요.”

    ▼ 주변의 시선을 많이 의식한다?

    “그렇게 비칠 수 있을 것 같아요. 새침데기로 보더라고요. 근데 전 주변의 시선에 그다지 신경 쓰지 않아요. 오히려 매니저 언니가 주변을 많이 의식하죠.”

    그녀는 현재 매니저와 2005년부터 함께해왔다. 한번 인연을 맺으면 오래가는 편인데 전제가 따른다.

    “마음이 맞고 딱 내 사람이다 싶으면 오래가요. 예전에는 다 정을 줬는데 이제는 내 사람에게만 정을 주는 것 같아요.”

    “친구 같은 모녀예요”

    ▼ 까칠하다? 아니면 털털하다?

    “둘 다인 것 같아요. 상황에 따라 달라요. 상대방이 공격적으로 나오거나 불편하면 까칠해지는 것 같고, 정말 편하고 거리낌 없는 자리에서는 완전히 풀어놓는 스타일이에요. 까칠할 때는 할 말만 하니까 가만히 있으면 주변에서 긴장하더라고요. 기분 나쁘거나 화나서 아무 말 안 하고 있으면 무섭다고 그래요.”

    ▼ 효녀다?

    “엄마에 대한 감정이 각별해요. 식구가 엄마밖에 없으니까요. 부모님이 일찍 이혼하셨어요. 엄마와 많은 시간을 함께해왔고, 엄마가 절 열심히 키우느라 애쓰는 것을 옆에서 느꼈기 때문에 정말 각별하죠. 지금은 저도 나이를 먹고 일을 스스로 알아서 하니까 엄마는 이제야 자기 인생을 사는 것 같다며 놀러 다니고 그러세요. 이제는 제가 엄마를 부양해야죠. 엄마는 성격이 외향적이고 밝아요. 어릴 때부터 저희 모녀는 친구 같았어요. 저한테는 최고의 엄마죠.”

    ▼ 배우가 천직이다?

    “아직 ‘천직이다’까지는 모르겠고 그건 좀 더 있어봐야 알 것 같아요. 근데 제가 할 줄 아는 것이 연기밖에 없어요. 어릴 때부터 했으니까. 천직이었으면 좋겠어요.”

    ▼ 다시 태어나도 배우가 되고 싶은가요.

    “다시 태어나면 배우 안 하고 싶어요. 한번 해보았으니까 딴 거 하고 싶어요. 미술 쪽도 되게 해보고 싶고요. 음악을 잘했으면 좋겠어요. 악기나 노래에 소질이 전혀 없거든요. 악기를 잘 다루거나 노래 잘하는 사람을 보면 너무 부러워요. 다시 태어나도 공부는 하기 싫을 것 같아요. 하하하. 머리 아파요.”

    송혜교는 최근 3년 동안 두 편의 영화를 더 찍었다. 강동원과 연인으로 호흡을 맞춘 다국적 옴니버스 영화 ‘카멜리아’는 11월, 중국에서 촬영한 왕자웨이 감독의 신작 ‘일대종사’는 내년에 국내에서 개봉할 예정이다. ‘오늘’은 10월27일 뚜껑이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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