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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승경의 ‘눈으로 듣는 음악’ ③

베르디아노가 되살리는 ‘오페라 거장’ 주세페 베르디

  • 황승경| 국제오페라단 단장·공연음악 감독 lunapiena7@naver.com

베르디아노가 되살리는 ‘오페라 거장’ 주세페 베르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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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01년 사망한 베르디의 장례식에는 20만명의 인파가 모여 거장의 죽음을 애도했다. 장례식장에는 조국통일의 염원에 불을 지른, ‘나부코’의 ‘히브리노예들의 합창’이 울려 퍼졌다. 그러나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베르디의 음악적 외침이 지금도 세계인의 심장을 떨리게 만들고 있다는 사실이다. 가난한 시골 농가에서 태어나 아내와 두 자녀를 잃은 슬픔 속에서도 그가 만들어낸 수많은 베르디아노(베르디가 창조한 오페라 인물)는 21세기에도 여전히 살아 움직이고 있다.
베르디아노가 되살리는 ‘오페라 거장’ 주세페 베르디

19세기 이탈리아의 대표적 오페라 작곡가 주세페 베르디.

이탈리아 작곡가 주세페 베르디(1813~1901)가 없었다면 세계 유수의 오페라극장은 시즌 프로그램 진행에 큰 어려움을 겪을 것이다. 그것은 베르디의 오페라처럼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서 많은 사람에게 사랑받는 명작을 찾기가 쉽지 않은 까닭이다.

이탈리아 오페라에 대해 성악가의 매혹적인 음성과 감성적인 멜로디에 집착한 나머지 이야기의 구성이 허술하고 철학적 사상이 없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아름다운 선율로 청중을 현혹하려 한다는 비판이다. 그런데 이 같은 비난은 베르디에게는 해당되지 않는다. 베르디는 인간이 추구해야 할 진실과 존엄성, 그리고 한계상황에 직면할수록 절박하고 치열해지는 고뇌를 예술로 승화시켰다. 이 때문에 베르디는 ‘음악의 셰익스피어’로 비유되곤 한다(베르디의 26개의 작품 중에서 ‘맥베스’ ‘오셀로’ ‘팔스타프’는 셰익스피어 희곡을 원작으로 하고 있다). 셰익스피어는 세상에 알려진 이야기들을 바탕으로 독보적인 예술적 가치를 가진 희곡작품을 썼다. 베르디 역시 사장될 수도 있었을 기존의 원작을 바탕으로 수많은 사람의 기억에 영원히 남을 오페라를 만들어낸 인물이다.

전통 위에 만들어진 베르디의 오페라

이탈리아 오페라 작곡가들은 모든 가창에 번호를 붙이는 습관을 가지고 있었다. 그것은 작곡가들이 극적 내용의 전개보다 노래의 순서에 따라 작품이 진행되는 ‘번호 오페라 형식’으로 작곡한 사실과 관련이 있다. 베르디 역시 자칫하면 극과 음악의 일관된 흐름을 끊을 수 있는 위험성에도 불구하고 마지막 두 작품을 제외한 24작품을 관객에게 익숙한 전통적인 번호 오페라 형식으로 작곡했다. 시대를 앞서가는 획기적인 새로운 양식의 시도보다는 익숙한 전통 안에서 자신의 천재성을 마음껏 발휘한 것이다.

베르디가 오페라에서 창조한 인물들은 극적 상황에 맞는 성격이 음성의 색과 가창기법 등 다양한 방식의 음악적인 이미지로 표현돼 현실감을 더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 창조된 인물들을 ‘베르디아노’라 불렀다.

베르디아노가 되살리는 ‘오페라 거장’ 주세페 베르디

한국오페라단과 공동으로 ‘춘희’를 공연하는 일본 후지와라 오페라단 공연 장면.

베르디는 주역 배우의 노래에는 고음 위주의 화려한 음색을 사용하던 관습을 깨고 저음의 성악 파트를 다채롭게 사용해 인물 사이의 관계를 다각도로 구체화했다. 예를 들어 ‘맥베스’에서 맥베스 부인 역을 맡은 당대 최고의 소프라노가 아름다운 음색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본능적으로 탐욕스럽고 악한 인간의 모습을 표현하는 데에는 적격이 아니라 생각해 교체했다. 그리고 맥베스 역을 저음 파트의 바리톤에게 맡겨 깊고 잔악한 인간의 본성을 더욱 극적으로 표현했다. 세계적인 성악 콩쿠르인 부세토 베르디콩쿠르는 베르디 작품으로만 진행하는데, 여기서 우승한 한국인 최현수, 김동규, 전기홍씨가 모두 바리톤이라는 사실을 상기한다면 베르디 작품에서 바리톤의 존재감을 충분히 유추할 수 있다. 이렇듯 베르디는 저음과 음색을 활용해 감정 표현을 차례로 폭발시켜나가는, 특유의 다이내믹한 에너지를 바탕으로 하는 연속적인 음악구도로 관객의 감성에 호소했다.

1600년경 이탈리아의 피렌체에서 오페라라는 장르가 탄생한 이후, 이탈리아에서는 매년 수많은 창작 작품이 쏟아져 나왔다. 그 결과 베르디까지의 200여 년 동안에 어떤 한 사람의 능력으로는 감히 바꿀 수 없는 음악 형식이 전통으로 존재했다. 그리고 이 전통은 작곡가들의 음악적 재능으로만 정착된 것이 아니라 청중의 지지와 반향에 따라 정착된 것이기도 했다.

‘개천의 용’ 베르디

이런 점에서 동년배로 항상 베르디와 비교대상이 되는 독일의 리하르트 바그너(1813~1883)는 사정이 달랐다. 바그너의 경우 독일 오페라라고 할 음악 전통이 아예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에, 자신의 철학적 사상과 미학적 이론을 손쉽게 새로운 음악 형식으로 탄생시킬 수 있었다. 같은 해에 태어났지만 바그너는 베르디보다 18년 먼저 세상을 등졌다.

베르디는 1813년에, 독일의 바그너보다 5개월 늦게 이탈리아 북부 파르마라는 소도시에서, 그것도 20가구 정도가 모여 사는 ‘롱콜레’라는 작은 마을에서 태어났다. 그의 집안은 푸치니처럼 대대로 내려오는 음악 집안도 아니었고, 바그너나 베버처럼 부모가 극장과 관련된 직업에 종사하는 집안도 아니었다. 그는 조그만 동네에서 포도주를 만들고 판매하는 지극히 평범한 집안에서 태어났다. 베르디는 음악을 좋아했고 재능은 남달랐지만 모차르트나 멘델스존이 어린 시절에 보여준 천재성에 견줄 정도는 아니었다. 또 그의 부모는 모차르트와 멘델스존의 부모처럼 아들의 재능에 날개를 달아줄 안목을 가지고 있지도 않았고 경제적 여유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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