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11월호

‘스폰서 기자’의 은밀한 세계

타인 명의 법인카드로 후배기자 챙기기

  • 송국건| 영남일보 서울취재본부장 song@yeongnam.com

    입력2011-10-20 09:2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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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업인과 정치인이 특정기자 스폰서 자처
    • 정권 말기 ‘기자 관리’ 필요성 커져
    ‘스폰서 기자’의 은밀한 세계
    2010년 ‘스폰서 검사’ 사건이 우리 사회를 뜨겁게 달궜다. 그해 4월20일 MBC TV의 PD수첩이 ‘검사 성(性) 접대 의혹’을 다루면서 촉발됐다. 부산 건설업자인 제보자는 “57명의 전·현직 검사에게 금전, 향응, 성상납 등 스폰서 노릇을 해줬다”고 폭로했다. 실명이 거론된 한승철·박기준 당시 검사는 제보자의 발언에 신빙성이 없다며 스폰서 사실을 부인했다. 4월 22일 스폰서 검사 의혹 규명을 위한 진상규명위원회가 발족됐다. 6월16일 여야는 검사의 향응접대나 금품수수를 수사할 특별검사제를 도입키로 했다. 국민은 속속 밝혀지는 ‘스폰서 검사’의 실체에 경악했다.

    이번엔 ‘스폰서 기자’가 입방아에 오르고 있다. 신재민 전 문화체육관광부 차관이 기자를 하던 2002년부터 최근까지 이국철 SLS그룹 회장으로부터 수억 원을 받았다는 의혹이 터져 나왔다.

    이 회장은 “신 전 차관에게 한국일보 기자 시절에는 월 300만원에서 500만원씩, 조선일보 기자 시절에는 500만원에서 1000만원씩 줬다”고 폭로했다. 또 차관 재임 시절까지 현금과 법인카드를 제공했다고 주장했다.

    신 전 차관이 2008년 추석과 2009년 설날에 정권 실세와 언론인들에게 줘야 한다며 상품권 5000만원어치를 가져갔다는 내용도 있다. 그러나 신 전 차관이 실제로 거액의 상품권을 받아 기자들에게 나눠줬는지 여부는 확인되지 않고 있다.

    여기에다 역시 기자 출신인 김두우 전 청와대 홍보수석도 도마에 올랐다. 부산저축은행 로비스트로 활동한 박태규씨가 김 전 수석에게 로비를 했다고 검찰에서 진술한 것이다. 김 전 수석은 대통령실 기획관리실장이던 지난해 박씨로부터 부산저축은행그룹 퇴출 저지 청탁과 함께 1억원 안팎의 현금 및 상품권 등을 받은 혐의(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알선수재)로 구속됐다. 검찰은 박씨가 지난해 4월 서울 강남의 한 골프용품점에서 여성용 골프채 세트를 구입해 김 전 수석의 부인에게 건넸다는 진술도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아울러 김 전 수석의 딸이 올 1월 중형 승용차를 사는 데 박씨의 도움을 받았다는 의혹도 포착하고 있다고 한다. 박씨는 김 전 수석이 ‘중앙일보’ 정치부장으로 있던 2001년부터 알고 지낸 것으로 파악됐다.



    잇따른 추문에 기자사회 충격

    당사자의 진술이나 검찰 수사에 따르면 이국철 회장이 신 전 차관과, 박태규씨가 김 전 수석과 10년가량 친분을 쌓아온 것으로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신 전 차관과 김 전 수석을 동일선상에 놓을 수 없다는 지적도 있다. 신 전 차관은 기자 시절부터 꾸준히 금품을 받았다는 의혹을 받고 있지만 김 전 수석은 기자 때 후원을 받았다는 혐의는 없기 때문이다.

    최근 물의를 일으킨 기자 출신 인사와 함께 기자생활을 했던 K씨는 “이 인사는 언론사 중견 간부 시절 누구에게 받은 것인지는 모르나 본인 명의가 아닌 신용카드를 갖고 다닌 것으로 안다”며 “후배기자들과의 부서 회식 때 그 카드로 결제를 하곤 했다고 들었다”고 말했다. 이어 K씨는 “당시 다른 언론사 정치부장도 타인 명의 카드를 갖고 다니는 것을 봤다”고 했다. 선배기자가 후배기자를 챙기는 것으로 유명한 언론계 문화 속에서 특정인으로부터 신용카드나 현금 등을 지속적으로 후원받아 이런 선배 역할을 해온 언론인들이 있었다는 게 K씨의 이야기다.

    그러나 언제 후원을 받았든 기자 출신으로서 권력 핵심부에 진입한 인물들이 줄줄이 비리 의혹에 휩싸이자 기자사회는 충격에 빠졌다. 기자협회보는 9월27일 ‘그들이 기자였다니…’라는 ‘우리의 주장’을 발표했다.

    “우리는 요즘처럼 기자라는 직업에 대해 부끄러움을 느낀 적이 없다. 많은 사람이 ‘기자들은 월급 외에도 저렇게 많은 부수입(?)을 얻는 직종인가보다’ 하면서 우리들을 쳐다보는 것 같기 때문이다. (중략) 수사가 진행되면 이들의 비리 여부가 명확히 드러나겠지만 일단 우리는 이들 세 명에 대해 ‘그들은 기자가 아니었다’고 주장하고 싶다. 우리는 그들이 과거 우리와 한솥밥을 먹던 동료 기자였다는 사실을 영원히 지워버리고 싶다.”

    이 성명처럼 기자사회가 술렁이고 있다. 기자 생활을 하다가 정치권이나 관가로 진출하는 이른바 ‘폴리널리스트’에 대한 논란이 많던 차에 이들이 권력형 비리의 핵심 인물로 부각된 데 따른 자괴감이다. 검사 대부분이 그렇듯 기자 대부분도 높은 사명감과 투철한 직업의식으로 정의를 구현하고 사회의 그늘진 구석을 살피려 하고 있지만 일부의 일탈행위가 마치 전체를 대표하는 양 매도되는 데 대해 망연자실하고 있다.

    스폰서 기자의 유구한 역사

    그렇지만 극히 일부에 해당되는 말이기는 해도 ‘스폰서 기자’의 역사(?)가 유구한 것 또한 사실이다. ‘무관의 제왕’이라고도 불리는 기자의 부끄러운 자화상이다. 아무래도 기자 중에서 정치부와 경제부에 오래 몸담았던 기자가 비위의 유혹에 노출되기 쉽다. 여론을 먹고사는 정치인들은 ‘언론 플레이’를 위해서, 실익을 챙겨야 하는 경제인들은 ‘홍보’를 위해서 기자의 스폰서 역할을 자임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이 회장과 신 전 차관이 처음 만난 것도 ‘기사 부탁’ 건 때문으로 보인다. 이 회장은 “2002년 가을 서울 강남 한 술집에서 한나라당 모 인사의 소개로 언론사에 있던 신 전 차관을 알게 됐으며 당시 내가 운영하던 회사에서 만든 전동차 홍보기사를 써준 데 대한 감사 표시로 현금 3000만원을 건네며 가까워졌다”고 말한다. 사실이라면 결국 기사와 연관된 돈 거래로 인연이 시작된 셈이다. 신 전 차관은 이런 의혹들에 대해 “내가 그 사람을 10년간 알고 있는 죄밖에 더 있느냐. 일방적인 주장일 뿐”이라고 반박한다.

    간혹 기업인들이 홍보성 기사를 써준 대가로 기자들에게 이른바 ‘촌지’를 건네는 경우가 있긴 하다. 하지만 액수는 그리 크지 않으며 이마저 받지 않는 기자가 많다. 한 중견 기자는 “이 회장이 기사와 관련해 촌지를 줬을 수도 있겠지만 3000만원이란 금액은 상당히 부풀려 얘기한 것 같다”고 했다.

    과거에 기자들이 기사와 금품의 맞교환을 은근히 제의하기도 했다고 한다. 주로 영세한 언론사에서 찾아볼 수 있는 사례로, 특정업체에 비판적이거나 악의적인 기사를 작성해놓고 싣지 않는 조건으로 광고를 요구하는 식이다. 대규모 통신업체에서 홍보업무를 총괄했던 한 경영인은 “그런 일이 다반사로 있다”며 “아무리 사실이 아닌 내용이고 독자 수가 적은 매체라도 일단 기사로 나가면 수습하기가 어려워지기 때문에 울며 겨자 먹기로 응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1990년대 기업체 홍보파트에서 경제지 기자를 주로 상대했던 한 관계자의 술회다. “어느 기자는 내 사무실 응접 테이블에 앉아 기사를 작성하곤 했다. 언젠가 그가 노트북 컴퓨터를 켜놓고 잠깐 나간 사이에 모니터 화면을 무심코 보다가 깜짝 놀랐다. 우리에게 매우 불리한 기사를 작성하고 있더라. 긴급히 상사에게 보고해 부랴부랴 막았다. 나중에 생각해보니 일부러 노트북을 켜놓은 채 닫지도 않고 슬쩍 나간 것 같더라.”

    기업인의 대관(對官) 업무와 윤활유

    그러나 이런 사례들은 극히 부분적이고 언론계 풍토가 많이 정화된 최근에는 찾아보기 어려운 일이다. 또 설령 홍보성 기사와 금품의 교환이 이뤄지더라도 이것이 ‘스폰서 기자’로 바로 연결되는 것은 아니다. 스폰서란 ‘지속적 관계 속에서의 후원’ 뉘앙스가 있는데 이런 사례들은 주로 ‘단발성 거래’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특정 기업이나 정치인이 지속적으로 기자를 관리하는 경우다. 기업인이 언론인을 상대로 지속적인 후원을 하는 사례는 이국철 회장 의혹 사건 이전에도 있었다.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의 후원자로 알려진 박연차 전 태광실업 회장도 기자 로비에 열성적이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특히 사업 근거지인 부산·경남에서는 박 회장과 직·간접적으로 교류했던 기자가 많아 ‘박연차 게이트’ 때 지역 언론계가 바짝 긴장했다고 한다.

    스폰서 문화가 가장 활발한 곳은 역시 돈이 많이 도는 경제 쪽이다. 그중에서도 기업체를 담당하는 산업부나 유통부가 주 타깃이 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직접 금품이 오가는 경우가 빈번하다는 게 아니라 간접 지원을 받는 기회가 더 많다는 의미다.

    기자가 고급정보를 얻어 특종을 하려면 공식적으로 배포되는 보도 자료에 의존하지 않고 개별 취재를 해야 한다. 그러자면 취재원과 점심이나 반주를 곁들인 저녁 식사를 하고 간혹 유흥업소도 함께 가게 된다. 이때 가장 많이 접촉하는 취재원은 출입처의 홍보담당자다.

    홍보담당자는 자기 기업을 담당하는 수십 명의 기자에게 공평하게 정보와 편의를 제공해주어야 할 책무를 지닌다. 그렇게 하지 않을 경우 차별받은 언론에 의해 자기 기업에 비판적인 기사가 나가게 되고 이것은 홍보담당자의 문책사유가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홍보담당자는 자기와 코드가 맞는 특정 기자들을 특별히, 은밀하게 챙기기도 한다. 이들 기자에겐 ‘진짜 이야기’를 해준다. 경쟁사를 흠집 낼 수 있는 고급정보나 심지어 자기 회사 내부 정보, 예컨대 후계구도 같은 것을 흘리기도 한다. 물론 기사의 논조는 홍보담당자 및 그의 윗선인 최고경영자가 원하는 논조와 거의 일치한다. 이와 함께 홍보담당자는 이들 기자의 스폰서 역할을 하기도 한다. 모 대기업 홍보담당 임원은 “월 법인카드 사용한도가 2000여만원인데 대부분 기자 관리에 쓰고 있다”고 말한다.

    ‘스폰서 기자’의 은밀한 세계

    신재민 전 문화체육관광부제1차관이 2010년 8월 문화부 차관 후보로 인사청문회에 나선 모습.

    기업인은 대관(對官) 업무를 원활하게 하기 위해 기자를 활용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기업인이 고위 공직자나 유력 정치인을 단독으로 만나면 구설에 오를 수 있다. 상대도 부담스러워한다. 그러나 중간에 기자가 끼면 사정이 달라진다. 기자가 일종의 윤활유 역할을 한다. 한 경제 담당 20년차 기자는 “고위 공직자나 유력 정치인은 기자가 기업인과의 자리를 만들어주면 저항감을 훨씬 덜 느낀다. 기자가 끼여 있으니 구설에 오를 염려가 없다고 보고 자리에 참석한다. 기업인도 기자 덕분에 대관 업무가 원활해지는 셈”이라고 말한다. 이런 만남을 통해 기업인, 기자, 유력 정치인(고위 관료) 간 스폰서 관계가 형성될 수 있는 토양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출입기자 월사금으로 관리

    지연이나 학연은 기업인과 기자의 관계를 더욱 공고하게 해주는 아교풀과 같다. 만약 기업인과 기자가 고교 동창이라면 기업인은 이 기자에게 더 자연스럽게 회사의 민원(民願)을 이야기할 것이고 스스럼없이 기자의 스폰서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한 경제부 기자는 “실제로 고교동창 관계인 모 대기업 오너와 한 언론사 중견간부의 밀월 관계는 한때 언론계에서 아는 사람은 다 아는 이야기였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관료사회와 정치권에서도 기자 스폰서 문화가 존재할까? 과거에 비해 현저히 줄었지만 이에 해당되는 사례가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닐 것이다. 정부 부처 공보관이나 정당의 대변인은 기업의 홍보책임자에 해당한다. 그러나 기업의 홍보책임자와 달리 공보관은 자기 조직 내 위상이 그리 높지 않다. 접근할 수 있는 고급정보도 제한적인데다 내부 정보 누출이 문제가 될 수 있어 특정 기자에게 고급 정보를 주는 것이 쉽지 않다. 또한 공보관이 사용할 수 있는 예산은 대기업의 공보 예산에 비해 그리 넉넉지 않다. 따라서 정부 부처의 공보관은 기자 스폰서가 될 가능성이 별로 없다.

    전문 직업관료보다는 정치인이 주로 기자와 은밀한 관계를 맺는 편이다. 스폰서 기자와 관련해서도 여러 가지 소문이 이어져오고 있다. 그중 일부는 확인된 사실이지만 와전되거나 과장된 내용도 많다. 지금으로선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지만 1980년대 후반 한 유력 정당은 출입기자들에게 이른바 ‘월사금’이란 것을 나눠주며 우군으로 만들었다. 매체 등급과 기자 직급에 따라 금액에 차등을 뒀다.

    1990년대에도 유력 정치인이 국회의원들을 관리하는 ‘계파정치’가 성행했다. 특정 계파를 전담하는 정치부 기자들도 마찬가지로 관리 대상이 됐다. 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은 호남 출신을 중심으로 소수정예의 우호적인 언론인 집단을 관리했다. 소위 ‘동교동 기자’들은 비교적 노출되지 않았지만 주로 DJ의 동교동 자택 같은 곳에 인사를 가는 형식으로 모임을 가졌다. 지금도 DJ와 동교동 자택에서 독대를 할 수 있었던 기자들의 이름이 정가에 나돈다.

    김영삼 전 대통령(YS)은 비교적 공개적으로 기자들을 대했다. YS는 기자를 숨어서 만날 이유가 없다고 보는 스타일이었다. 그러나 DJ는 좀 달랐다. 호남 출신 언론인이 상대적으로 적기도 하지만 당시 분위기에서 ‘동교동계 기자’로 간주되는 것이 결코 기자 개인에게 이롭지 않았던 까닭이다.

    이 시절엔 ‘허주계 기자’ 도 있었다. 고(故) 김윤환 전 의원의 아호인 ‘허주(虛舟)’에서 따온 명칭으로 조선일보 기자 출신인 김 전 의원이 관리하던 기자들이었다. 허주가 민자당 사무총장 시절인 1991년 어느 날 당 출입기자들과 간담회를 하고 있던 자리에 허주계로 불리던 A기자가 뒤늦게 들어왔다. A기자는 모여 있던 기자들을 둘러보면서 한마디 했다. “이게 모두 허주계야?” 순간 분위기가 싸늘해졌다고 한다.

    허주의 별명 중 하나는 ‘정거장’이었다. 기업이나 지인들로부터 많은 정치자금을 받았지만 결코 축재를 하지 않고 야당 의원이나 기자들에게도 나눠줬기 때문이다. 허주계로 통하는 기자들은 적지 않은 ‘월사금’을 받았던 것으로 전해진다.

    이후 어느 정치부 기자가 중진 국회의원에게 수시로 정보 보고서를 제출하고 금전적인 후원을 받은 사실이 드러나 언론계를 발칵 뒤집어놓은 사건도 있었다. 또 DJ의 핵심 측근이었던 박지원 현 민주당 의원에게서 금품을 수수한 기자가 공개돼 해당 언론사에서 징계를 받은 적도 있다.

    앞서 박정희·전두환 대통령 시절에도 박해받았던 언론인이 많았지만 그에 못잖게 음으로 양으로 혜택을 본 언론인도 꽤 있었다. 당근과 채찍 정책의 결과다. 물론 그 시절에도 그렇고 이후에도 특정 정당이나 YS, DJ, 허주는 물론 다른 정치인들이 건네는 돈을 한사코 사양한 기자도 매우 많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야당 정치인 시절부터 기자들과는 줄곧 적대적, 혹은 긴장관계였다. 청와대에 입성한 이후에도 참모와 공무원들에게 “기자들과 소주파티하며 기사 로비 하지 말라. (DJ의) 국민의 정부를 봐라. 기자들 밥 사주고, 술 사주고 해도 물어뜯기기는 마찬가지 아니더냐”고 했다고 한다.

    스폰서를 찾는 이직 구조

    그러나 어떤 정권이든 정무직 고위 공직자는 기자와 은밀한 관계를 맺으려 하는 편이다. 언론을 우군으로 삼는 것은 음으로 양으로 본인의 진로에 큰 이익을 안겨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들은 정무적 판단에 의해 고급 정보를 기자에게 리크(leak·누출)하기도 한다. 또한 직·간접적으로 기자의 스폰서가 되어주기도 한다.

    노무현 정권 때 청와대를 출입한 한 기자의 진술에 따르면 노무현 정부 시절에도 일부 청와대 수석비서관이나 비서관은 자기의 기업인 스폰서를 특정 기자들과 ‘공유’했다. 이들 수석비서관이나 비서관은 기업인 스폰서, 특정 기자들과 자주 어울렸다. 이때 기업인 스폰서는 이들 기자의 스폰서도 되어주었다. 이 출입기자는 “노(盧) 정권 말기로 갈수록 일부 핵심 측근들은 ‘기자 관리’의 필요성을 더 절감했다. 특정 기자들을 데리고 스폰서와 회동하는 일이 빈번했다”고 말했다.

    2006년 말~2007년 초 여러 기자는 언론계를 떠나 이명박 캠프나 박근혜 캠프로 옮기는 문제를 심각하게 고민했다. 실제로 신재민 전 차관을 포함한 다수의 기자가 실행에 옮겼다. 당시 이들에게 상당히 현실적인 문제가 놓여 있었다. 대선후보 경선 캠프로 옮겨 특보 직함 등으로 대선운동을 하는 경우 거의 1년 이상 고정 수입 없이 생활을 지탱해야 하는 점이었다. 월급만으로 살아온 기자로선 모험이 아닐 수 없었을 것이다. 그렇다고 캠프에 늦게 합류한다면 대선 후의 논공행상에서 후순위로 밀릴 게 틀림없었다.

    따라서 이들 중 일부는 1년여의 수입 공백기를 메워줄 방안을 찾아봤을 것이다. ‘스폰서를 두는 것은 어떨까’라고 생각해볼 수 있는 이직 구조인 것이다. 스폰서의 처지에서도 어려울 때 도와주면 나중에 정권을 잡아 실세가 되었을 때 훨씬 많은 혜택을 볼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신재민 전 차관은 캠프 시절 이국철 회장으로부터 고액의 생활비를 받았다는 의혹에 휩싸여 있다. 이런 사건이 결코 우연히 나온 것이 아닌 셈이다. 문제는 내년 대선을 앞두고도 여러 언론인은 유력 후보 캠프로 옮기려 할 것이므로 이런 상황이 똑같이 반복될 수 있다는 점이다. 기자가 스폰서를 발굴해 주고받기 관계를 유지하는 것은, 기자 개인의 관점에서 보더라도 한순간에 나락으로 떨어질 위험을 안고 살아가는 일일 수밖에 없다.

    “사회지도층 윤리의식 낮아져”

    한 언론사 정치부 기자는 “이명박 정부 들어 사회지도층 사이에서 도덕윤리의식이 저하되는 현상이 뚜렷하다. 언론인도 이런 추세에 쉽게 편승하게 될 개연성이 있다. 비록 극히 일부의 문제이기는 하지만 스폰서 기자 문화 근절 등 직업윤리를 다잡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과거에도 각종 ‘게이트’나 ‘로비스트’ 파문이 터질 때마다 언론인들의 이름이 거론되곤 했다. 하지만 이번처럼 실명이 공개되면서 구속까지 된 사례는 극히 드물다. 2010년에 터진 스폰서 검사 파문이 검찰에 준 충격 못지않다. 이번 일을 계기로 언론계가 자정(自淨)운동을 펼쳐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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