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11월호

이명박 정권의 진보 성향 신문 괴롭히기

  • 김동률│서강대 MOT대학원 교수·매체경영학 yule21@empas.com

    입력2011-10-20 09: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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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명박 정권의 진보 성향 신문 괴롭히기
    2000년 미국 대통령선거 유세장에서 부시 공화당 후보가 ‘뉴욕타임스’ 기자를 발견하곤 딕 체니 부통령 후보에게 말했다.

    “저기 메이저리그 급 머저리가 왔네.”

    체니도 맞장구를 친다.

    “맞아, 일만 저지르고 다니는 놈이지.”

    두 사람은 마이크가 켜져 있는지 몰랐다. 대화 내용은 그대로 유세장에 울려 퍼졌다. 파문이 일자 부시 측 대변인은 “공정치 못한 뉴욕타임스 기사를 두고 한 말”이라고 해명했다. 대통령이 된 부시는 집권 내내 ‘뉴욕타임스’와 각을 세웠다.



    2007년 12월18일 ‘뉴욕타임스’는 A섹션 13면에 부시 대통령을 조롱하는 만화를 전면광고 형식으로 게재했다. ‘워싱턴의 풍자극’이라는 제목의 이 4컷 만화는 부시 대통령이 칼 로브 백악관 수석고문과 통화하는 설정으로 되어 있다. “로브가 생각하면 부시가 그대로 행동한다”는 메시지다.

    “기자는 메이저리그 급 머저리”

    미국 대통령과 언론의 불편한 관계는 유서가 깊다. ‘위대한 소통자 (Great Communicator)’라는 찬사를 들었던 레이건 대통령도 1986년 기자들 질문에 시달린 끝에 “선 오브 비치(son of bitch)”라고 중얼거리다가 곤욕을 치렀다.

    오바마 대통령도 지난 6월 “한 TV가 정부를 공격하는 데 전념하고 있다”고 불만을 터뜨렸다. 취임 이래 오바마 정부를 줄기차게 비판해온 보수 성향의 ‘폭스뉴스TV’를 겨냥한 발언이다. 비서실장을 비롯한 참모들도 독설을 쏟아낸다. “‘폭스뉴스TV’는 진정한 의미의 언론이 아니다”라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다.

    오바마 정부의 ‘폭스뉴스TV’ 공격은 앞서 부시 정부의 ‘뉴욕타임스’ 공격과 닮아 있다. 부시는 재임기간 내내 ‘뉴욕타임스’의 테러 관련 보도를 “수치스러운 뉴스”라고 비난했다. 백악관은 “다른 신문은 따라 보도하지 말라”고 했다. 2003년엔 정권에 불리한 기사를 쓴 ‘뉴욕타임스’ 여기자가 취재원 공개를 거부하다 옥살이까지 했다.

    카터 대통령은 미 대통령 최초로 ‘스핀 닥터(spin doctor·정치홍보전문가)’를 영입해 언론 다독거리기에 나섰다.

    이처럼 언론의 자유가 만개한 미국에서도 정치권력과 언론 간에는 긴장이 흐른다. 그래서 권력과 언론은 불가근불가원(不可近不可遠)이라고도 한다. ‘애증이 교차하는 관계(love-hate relationship)’라는 근사한 말로 표현되기도 한다.

    우리 정치권과 언론도 김영삼 정권 때는 비교적 사이가 좋았지만 김대중·노무현 정권 때에는 긴장이 극에 달했다. 이명박 정부도 진보 성향 언론과 불편한 관계다. 최근 국회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원회 국정감사에서 나온 수치로 보면 중앙 국가기관으로부터 언론중재위원회 조정신청(정정-반론보도 신청)을 가장 많이 받은 언론사는 ‘한겨레’와 ‘경향신문’이었다.

    언론중재위로 재갈 물린다?

    그뿐만 아니라 정부 중앙부처(청와대, 국무총리실 포함)의 조정신청은 2008년 17건에서 2009년과 2010년에는 각각 35건으로 늘었고 올해는 지난 8월까지 36건이었다. 정부 부처는 총 123건의 조정신청을 제기했다 45건을 취하했다.

    이런 조정신청이 많으면 언론보도가 위축되는 것은 뻔한 이치다. 소송이나 조정이 귀찮아서 보도를 꺼리게 되는 이른바 위축효과(chilling effect) 가 당연히 나타난다.

    그래서 비판론자들은 언론에 재갈을 물리려는 의도라고 반발하고 있고 정부로서는 악의적인 보도를 막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다고 반박하고 있다. 문제는 불리한 보도가 나오면 먼저 조정신청부터 해서 언론사를 압박했다가 나중에 슬그머니 취하하는 경우가 종종 있어 언론중재위 제소를 통해 언론을 통제하려 한다는 인상을 주고 있는 점이다.

    중재위원회의 친(親)정부 성향도 문제다. 2011년 9월 현재 언론중재위원 75명은 판사·변호사 31명을 포함해 전직 언론인, 교수, 교사로만 구성돼 있다. 언론 소비자인 독자와 시청자의 권익을 대변할 수 있는 적절한 사람이 전혀 없다. 중재위원 대다수가 행정부에 의해 임명되는 점도 비판 대상이다.

    혹자는 정권보다는 언론의 힘이 더 크다고 강변할 것이다. 그러나 여러 소소한 사례를 보더라도 정권의 힘은 작지 않다. 나라가 들썩거릴 큰 사건이 아니라면 정권의 힘은 일상적으로 언론 보도에 영향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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