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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층분석

영화 ‘도가니’ 현상의 사회심리학적 고찰

소시민의 피해의식 일깨운 불편한 진실

  • 황상민│연세대 심리학 교수 swhang@yonsei.ac.kr

영화 ‘도가니’ 현상의 사회심리학적 고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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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공지영의 원작 소설을 영화화한 ‘도가니’가 전국을 강타했다.
  • 광주의 한 청각장애학교에서 벌어진 성폭력 사건을 소재로 한 이 영화는 10월10일 개봉한 지 보름 만에 전국에서 300만 이상의 관객을 불러 모으며 흥행 대세를 이어가고 있다.
  • 개봉 후 학교장과 교사에게 성을 무참히 짓밟힌 청각장애아들의 무언의 절규는 객석을 분노와 오열로 들끓게 했고, 가해자들에 대한 솜방망이 처벌은 범국민적인 공분을 샀다.
  • 이 때문에 학교의 폐교 조치와 사건 재수사가 추진되는 등 후폭풍이 거세다.
  • 이 같은‘도가니’ 현상의 면면을 사회심리학적 관점에서 되짚어봤다.
영화 ‘도가니’ 현상의 사회심리학적 고찰

영화 ‘도가니’ 열풍에 힘입어 원작인 공지영의 소설이 최근 베스트셀러 1위에 올랐다.

영화 ‘도가니’를 봤다. 굳이 보려고 작정해서 본 것은 아니다. 사실 이 영화를 볼 생각이 전혀 없었다. 영화 내용이 장애아 성폭력 사건을 소재로 했다는 것을 아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너무 불편해졌기 때문이다. 아니, 우리 사회 이곳저곳에서 일어나는 아동 성폭력 문제에 대해 제대로 된 문제인식이나 해결책을 전혀 찾을 수 없다는 무력감을 느끼고 있었기 때문이다. 사건이 발생할 때는 온 사회가 냄비처럼 들끓지만 곧 무관심해지고 마는 현실 자체를 거부하고 싶은 마음이었다.

도가니 사건은 여기에 장애아동의 이슈까지 더해졌다. 우리 사회의 야만성과 비인간성의 극치를 가장 센세이셔널하게 보여주는 사건이다. 그것을 굳이 영화로까지 보는 것은 너무나 폭력적으로 느껴졌다. 그래서 그냥 이것이 2005년에 세상에 알려진 광주 인화학교 장애아동 성폭행 사건이라는 것, 공지영씨가 소설로 그려낸 ‘도가니’를 원작으로 만들어진 영화라는 것, 즉 사건 개요만을 알면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심지어, 아동 성추행을 한 학교장과 교사들이 제대로 처벌도 받지 않고 풀려났다는 결말도, ‘그러면 그렇지’하고 그냥 체념하려 했다. 우리 사회의 치부, 인간들의 몰염치와 비인간성을 드러낸 사례 중 하나, 이 사회에서 일어나는 범죄행위의 하나 정도로 그냥 받아들이려 했다.

그런데 조금 의아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것은 바로 이 영화와 관련된 언론 기사와 사람들의 반응이었다. 국회에서 ‘도가니법’을 추진하겠다는 말이 나왔다. 일하지 않고 싸우기만 한다는 인식을 주는 국회의원들이 이 문제와 관련해 직접 법안을 발의하겠다고 나섰다는 것이 뜬금없게 들렸다. 여기에 경찰에서도 영화 ‘도가니’와 관련해 광주 인화학원 사건을 다시 수사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렇다면 그 동네 사람들도 과거의 수사가 잘못되었거나 문제가 있음을 알고 있다는 이야기인지, 아니면 잘 몰랐는데 영화를 보니 이제 뭔가 잘못되었음을 알게 되었다는 것인지 혼란스러웠다.

수상한 움직임은 또 있었다. 국무총리실장과 교육과학기술부, 법무부, 보건복지부 등 관계부처 관계자들이 정부종합청사에서 장애인 성폭력 방지 및 피해자 보호 대책을 발표한 것이다. 무슨 사회적 이슈가 있을 때마다 발 빠르게 대책을 발표하는 것이 우리 공무원들의 주요 업무 방식이긴 하지만 말이다. 여기에 이명박 대통령까지 참여했다. 청와대에서 이 영화를 보시고 국민의 의식 변화도 필요하지만 법과 제도의 개선이 더 필요하다는 말씀까지 하셨다. 아마 공무원의 발표는 이런 대통령의 ‘한 말씀’을 보완하는 ‘법, 제도 개선’ 대책의 일환일지도 모른다.

정부의 순발력

영화 ‘도가니’ 현상의 사회심리학적 고찰

영화 ‘도가니’의 주인공을 맡은 공유가 청각장애 학생에게 수화로 칭찬하는 장면.

어떤 영화이기에 이렇게 소위 우리 사회에서 권력 있고 힘 있는 분들이 갑자기 각종 대책을 발표하고 또 새삼 조사를 하겠다고 나서는 것일까? 그런 와중에 이 시대의 우상으로 부각된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마저 공지영씨의 초청으로 이 영화를 보았다고 한다. 그는 영화를 보고 기자들을 만나 ‘도가니’는 “한국 사회의 축소판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소감을 밝혔다. “굉장히 깊은 슬픔을 느끼게 하는 영화다. 많이 미안하고 아프다”며 “누구의 눈물을 먼저 닦아줘야 할지 생각해봐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결국, 예상치 않게 영화를 보게 되었다. 사실 큰 기대는 없었다. 단지 어떤 불편한 사건을 내 눈으로 생생하게 확인하게 된다는 부담감을 어떻게 덜 것인지로 머리가 복잡할 뿐이었다. 영화를 보는 동안 나의 이런 부담감은 점점 어떤 명료한 기시감에 자리를 내주었다. 왜 이 사건에 대해 국회, 정부, 청와대 등 우리 사회 높은 분들이 허겁지겁 재수사, 대책 강구를 언급했는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영화는 장애아에 대한 성폭력 사건을 소재로 했지만, 그 안에는 바로 우리 사회의 높은 자리에 있는, 소위 돈 많고, 많이 배우고, 잘난 기득권층의 모습이 생생하게 드러나 있었기 때문이다.

7년 전과 달리 공분하는 이유

영화 속에서 묘사된 무진시는 광주광역시에 속해 있으며, 이 사건은 2005년 11월1일 MBC TV ‘PD수첩’의 고발 보도로 처음 알려졌다. 당시 PD수첩 팀은 ‘은폐된 진실, 특수학교 성폭력사건’편을 통해 인화학교 여중생이 일부 교사와 간부들로부터 상습적인 성폭행을 당해온 사실을 보도했다. 영화 ‘도가니’ 속의 실제 주인공인 교사 최사문씨는 2011년 9월30일 전남도교육청에서 열린 광주시교육청 국정감사에 참고인 자격으로 출석해 “당시 시교육청, 교육부에 탄원서를 보내는 등 이를 알리려고 동분서주했지만 관계기관의 반응은 냉담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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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상민│연세대 심리학 교수 swhang@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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