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11월호

한국 닮아가는, 미국의 이념 내전

붉은 주의 나라<보수>와 푸른 주의 나라<진보>로 양분

  • 이종훈│시사평론가·정치학박사 rheehoon@naver.com

    입력2011-10-20 10:3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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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국은 요즘 전쟁 중이다. 아프가니스탄 등지의 대(對)테러 전쟁 이야기가 아니다.
    • 일종의 내전이다. ‘이념전쟁’ ‘계급전쟁’ 이다. 사사건건 보수와 진보가 부딪쳐 국론은 분열되고 사회는 문제해결 능력을 상실해가고 있다.
    • 그 결과 경제위기, 재정난, 사회갈등의 늪에 점점 빠져들고 있다.
    • 세계 초강대국 미국의 진짜 위기라고 아니할 수 없다.
    한국 닮아가는, 미국의 이념 내전

    10월6일 미국 로스엔젤레스에서 ‘월가 시위’에 참석한 여성이 연행되고 있다.

    반월가 시위대는 이렇게 말한다. 1%에 저항하는 99%를 대변한다고. 그들은 지금 상위 1%의 탐욕을 상징하는 월가를 점령하는 전투를 벌이는 중이다. 공화당과 보수 진영은 그들의 저항을 계급전쟁(Class warfare)으로 규정짓고 있다. 이 전쟁에서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민주당은 시위대 편이다. 공화당 출신의 뉴트 깅리치 전 하원의장은 “오바마가 내세운 계급전쟁의 자연스러운 산물이 이번 시위”라고 단언했다. 이 때문에 정부 여당이 시위에 편승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가운데 색깔 논쟁이 다시 불붙고 있다.

    공화당과 보수 진영은 이미 오래전부터 오바마 대통령을 ‘사회주의자’ 또는 ‘마르크스주의자’로 규정했다. 그가 상원의원 시절일 때부터 그랬다. 2010년 여름 보수 성향 유권자 모임인 티파티(Tea Party) 한 곳에서 오바마 대통령을 ‘아돌프 히틀러’‘레닌’과 비교한 내용의 옥외광고판을 설치해 논란이 된 바 있다. 대통령을 마르크스주의자로 형상화한 이미지 컷을 만나는 일은 미국 사회에서 이제 흔한 일이다.

    최근 대표적 보수매체인 ‘폭스뉴스TV’의 로저 에일즈 회장은 “오바마 대통령은 프랑스인이나 독일인도 감당하기 힘든 극좌 사회주의자라고 생각한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오바마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나는 열렬한 자유시장주의자인 동시에 친미주의자”라고 해명했지만 반대 진영의 시각이 바뀔 것 같진 않다.

    “오바마는 공산주의자”

    미국에서 사회주의자로 공격을 받은 대통령이 물론 오바마가 처음은 아니다.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과 트루먼 대통령도 공화당과 보수 세력으로부터 비슷한 공격을 받았다. 이른바 ‘수정자본주의’를 지지했던 민주당 출신들이다. 루스벨트 대통령은 국가의 개입을 확대해 대공황을 극복하려 했고 트루먼 대통령은 의료보험을 개혁하려 했다. 오바마 대통령의 의료보험개혁안 같은 것도 비슷한 노선이다.



    미국 사회에서 보수와 진보는 언제나 대립했다. 그러나 최근의 상황은 무척 심각하다. 한쪽에서 대통령에게 공산주의자라는 낙인을 찍는 사이 다른 쪽에서 자본주의의 근간인 월가를 공격하고 있다. 시위는 전국적으로 확산되고 있다. ‘성조기의 나라’ 미국이 붉은 주의 나라(보수 성향)와 푸른 주의 나라(진보 성향)로 양분되는 것 같은 양상이다.

    이렇게 격화일로를 걷는 이유는 무엇일까? 본질적으로 돈 문제일 것이다. 미국 사회는 심각한 빈부격차를 겪어왔고 이제는 이를 감내하기 버거워하는 것이다. 2010년 크리스마스마스 이브에 ‘CNN’은 경제정책연구센터(EPI) 보고서를 인용해 “상위 1% 가구가 전체 가구 평균의 225배에 달하는 자산을 소유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1962년 125배를 기록한 이래 꾸준히 격차가 벌어져 빌 클린턴 대통령 재임 기간인 1995년에는 173배가 되었고 부시 대통령 재임 기간인 2004년에는 190배를 넘어선 바 있다. 시간이 지날수록 1%와 99%의 격차는 더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문제의 본질은 ‘빈부격차’

    ‘워싱턴포스트’는 지난 6월19일 “미국의 빈부격차가 1930년대 대공황 이후 가장 심각한 수준”이라면서 “상위 0.1%가 벌어들이는 개인소득이 전체 국민소득의 10%를 넘어섰다”고 보도했다. 이것은 영국 4%, 프랑스와 일본 2%에 비해서도 매우 높은 수준이다. 2008년 기준으로 미국 상위 0.1%의 평균소득은 1970년에 비해 385% 증가한 반면 하위 90%의 평균소득은 1970년에 비해 오히려 1% 줄었다.

    오바마 대통령 집권 동안 보수와 진보 간 논쟁은 의료보험 개혁, 국채한도 증액, 재정적자 감축, 부유층 감세(減稅) 연장, 부자 증세(增稅), 일자리 문제 등에서 사사건건 벌어졌다. 마치 굴비 엮이듯 주제에 주제를 이어가며 판이 커지는 모습이다. 이 모든 것의 출발점은 오바마 대통령이 당선 후 처음 내놓은 예산안이었다.

    ‘새로운 책무의 시대(A New Era of Responsibility)’라는 거창한 이름을 가진 2010 회계연도 예산안은 2009년 2월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자마자 이념전쟁의 불을 붙였다. 역사상 최대 규모 적자 예산, 부자 증세, 의료보험 확대가 핵심내용이었다. 적자를 감수하더라도 약속한 것은 해야 한다는 오기와 믿음이 묻어났다. 오바마 행정부는 향후 10년간의 비전을 담았다고 선전했다. 공화당과 보수 진영은 이에 경악했다. 판도라의 상자는 이렇게 열렸다.

    2009 회계연도 동안 미국의 재정적자 규모는 1조4200억달러 선까지 늘어나 있었다. 미국 국내총생산(GDP)의 12.3%에 달하는 수준이었다. 부시 정부로부터 물려받은 재정적자가 적지 않았던 데다 금융위기에 대처하면서 재정지출이 확대되었기 때문이다. 오바마 대통령은 2013년까지 적자를 5330억달러까지 축소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첫 달인 2009년 10월 재정적자가 1764억달러를 기록하면서 예측이 빗나가기 시작했다.

    특히 주목을 받은 것은 저소득층 의료지원 확대였다. 향후 10년간 의료보험 개혁에 6340억달러를 투입하겠다고 한 것이다. 문제는 재원인데 첫 번째 방법으로 제시한 것이 전쟁비용 축소였고 그 다음으로 제시한 것은 세제개편이었다. 먼저 부시 대통령과 공화당의 감세안을 폐기했다. 대기업에 대한 세금도 늘려 3534억달러의 세수(稅收)를 확충하기로 했다.

    오바마 대통령이 증세 대상으로 규정한 부자의 기준은 미혼인 경우에는 연간 20만달러 이상, 기혼인 경우에는 부부 합산 연간 25만달러 이상을 버는 사람이다. 260만명가량이 여기에 해당하는 것으로 추정됐다. 메릴랜드대 피터 모리치 교수는 이에 대해 “로빈후드 식”이라고 표현했다.

    공화당 측은 “연소득 25만달러 이상 계층 가운데 절반가량이 자영업자와 중소기업인”이라면서 “이들에 대한 증세가 경제를 악화시키고 일자리도 축소시킬 것”이라고 반격했다. 큰 정부(Big government)로 되돌아가는 것에 대한 비판도 거세졌다. 공화당 하원 원내대표인 존 베이너 의원은 “민주당이 국민에게 큰 정부 유지를 위해 돈을 대라고 요구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공화당의 대선후보 경선 주자였던 프레드 톰슨 전 상원의원도 “오바마의 모든 정책이 성공하기를 원치 않는 게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거들었다. 공화당은 민주당의 ‘늘리고 키우는’ 행태에 늘 불만을 가져왔다. 이들은 “우리가 원하는 것은 개인의 자유가 늘어나는 것이지 정부의 자유가 늘어나는 것이 아니다”라고 말한다.

    2009년 4월4일 미국 하원과 상원은 2010 회계연도 예산안을 결국 통과시켰다. 그러나 공화당 의원 중 단 한 명도 찬성표를 던지지 않았다. 이때의 공화당의 반발과 냉소가 이념전쟁의 도화선이 된 것이다. 이들은 민주당이 재정지출을 늘리고 세금을 인상함으로써 마침내 재앙으로 가는 로드맵을 작성했다고 비난했다. 폭스뉴스의 라디오 프로그램 진행자이자 보수 논객으로 유명한 러시 림보도 “오바마 대통령의 임무가 자본주의와 개인적 자유를 부정하는 국가 재개조라면 그가 실패하기를 바란다”고 거들었다.

    미국 사회를 다시 한 번 떠들썩하게 만든 건 의료보험개혁 논쟁이었다. 이 역시 시작은 돈 문제였다. 재정적자를 가중시킬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었기 때문이다. 어떤 면에서는 곁가지로 불거진 이 논란은 법안으로 구체화되는 단계로 접어들면서 거세게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오바마를 땅에 묻자”

    2009년 9월12일 수도 워싱턴 DC는 의료보험개혁에 반대하는 수만 명의 시위대에 점령당하고 말았다. 시위대는 이렇게 외쳤다. “오바마를 케네디와 함께 땅에 묻자.” “사회주의를 원하면 러시아로 가라.” 당시 시위대로부터 적극적 호응을 받았던 보수 논객 글렌 벡은 이날의 시위를 성전(聖戰)으로 끌어올렸다. “우리의 신과 믿음이 공격받고 있다. 함께 맞서야 한다!” 러시 림보는 이때에도 “미국에서 여태까지 목격된 것 가운데 가장 심각한 정도로 자유를 강탈해가는 것”이라며 목청을 높였다.

    공공 의료보험에 강제로 가입하게 하는 개혁은 기본적으로 공산주의적 방법이라고 본 때문이다. 오바마 대통령을 조커로 패러디한 사진이 등장한 것도 이즈음이다. 당시 시위대의 분위기가 워낙 격앙되어 있어 백악관조차 오바마 대통령의 안전을 걱정했을 정도다. 취임 8개월 만에 오바마는 최대의 정치적 위기에 봉착하고 만 것이다.

    민주당 내에서 힐러리 클린턴 후보와 경선을 벌이던 시절 오바마는 단일 공공 의료보험을 주장했다. 우리나라의 ‘전 국민 건강보험’ 같은 것이다. 반면 힐러리 클린턴은 기존 민간 의료보험과 신설 공공 의료보험을 경쟁시키는 방식을 주장했다. 대통령이 된 후 오바마가 택한 방식은 후자였다. 자기 방식이 미국의 현실에서 너무 앞서가는 것이라고 판단해 수위를 낮춘 것이다.

    그러나 공화당과 보수 진영은 이마저 수용할 수 없었다. 오바마 대통령이 원하는 바는 ‘ 국민 누구나 부담 가능한 비용으로 이용할 수 있는 공공 의료보험 제도’였다. 4500만명이 넘는 의료보험 미가입자에게 의료혜택을 주자는 것이다.

    백인 중산층의 분노

    2010년 3월21일 오바마 대통령의 의료보험개혁 법안이 의회를 통과했다. 상원과 하원이 3개월여 동안 절충한 뒤였다. 이로써 선진국 중 유일하게 전 국민 건강보험 제도를 갖지 못한 국가라는 오명을 씻게 된 동시에 100년 숙원사업을 해결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때도 공화당 의원은 아무도 찬성표를 던지지 않았다. ‘월스트리트저널’의 페기 누난은 이때 이미 오바마 대통령과 국민 사이에 ‘단절(disconnect)’이 시작되었다고 진단했다.

    의료보험개혁 법안의 통과로 오바마가 승리했을까? 그렇게 보기는 힘들다. 혜택을 보는 쪽은 흑인 등 소수민족계열이나 저소득층이다. 반면 미국 사회의 주류인 백인 중산층 중 상당수는 실익은커녕 부담만 늘어난다고 판단하고 있다. 소송도 잇따랐다. 법안 통과 바로 다음 날 10개 주의 검찰총장들이 “헌법 위반일 뿐 아니라 각 주의 주권을 침해하는 조치”라며 위헌 소송을 제기했다. 지난 9월 말 26개 주의 검찰총장들이 위헌 소송을 추가로 냈다. 판결도 제각각이어서 일부 주에서는 합헌 판결이 나오고 일부 주에서는 위헌 판결이 나온다. 여전히 이 문제로 나라가 둘로 갈리고 있다. 연방대법원의 최종 판결이 나오는 시기는 아마 2012년 대통령선거 시즌이 될 것이란 예상이다.

    공화당은 이 법안의 폐지를 추진했다. 의료보험개정법 폐지안은 2011년 1월 공화당이 다수 의석을 차지한 하원에서 가결됐다. 만약 2012년 연방대법원이 위헌 판결을 내린다면 또는 공화당이 상원까지 장악한다면 이 법안의 폐지는 불보듯 뻔하다.

    2010년 11월2일 상원의원 37명, 하원의원 435명 전원, 그리고 주지사 37명을 뽑는 중간선거가 실시됐다. 이 중간선거는 보수 세력이 재결집하는 계기가 됐고 공화당은 하원에서 무려 61석이 늘어난 239석을 확보하면서 4년 만에 다수당으로 복귀했다. 1938년 중간선거 이후 집권당이 당한 최악의 참패였다. 민주당은 상원에서 51석을 확보해 겨우 과반 의석을 지킬 수 있었다.

    이 선거의 최대 쟁점은 오바마 대통령이 추진한 부자 증세였다. 부시 대통령이 실시했던 25만달러 이상 고소득자에 대한 잠정적인 세금인하 조치를 연장할 것이냐 마느냐를 놓고 벌어진 논쟁이다. 티파티는 증세 문제를 미국 사회의 핵심 의제로 끌어올리는 역할을 했다. 이것이 중간선거 공화당 승리의 결정적 계기가 됐다. 티파티는 1773년 12월16일 영국 국왕의 과도한 세금징수에 저항해 홍차를 버린 유명한 ‘보스턴 티파티’에서 이름을 따왔다고 하는데, 티파티의 TEA에는 ‘이미 충분한 세금을 냈다 (Taxed Enough Already)’는 의미도 담겨 있다고 한다.

    보스턴 티파티 사건이 미국 독립전쟁의 계기가 되었듯 티파티의 응집력과 활약상은 대단했다. ‘작은 정부’를 내세우면서 오바마 행정부의 금융시장 개입에 반대하는 대규모 집회를 오바마 대통령의 정치적 고향인 시카고에서 개최했다. 공화당 기성 정치인들을 경선에서 낙마시키면서 이른바 티파티 출신 새로운 공화당 의원들을 의회에 진출시키는 데 성공했다. 2012년 대선 당내 경선에서 누가 티파티의 지지를 얻느냐에 따라 당락이 갈릴 것이라는 이야기가 나온다.

    여야 초당적 대처는 옛말

    3년 연속 1조달러 적자행진이 이어지는 가운데 2011년 5월16일 미국 연방정부의 채무는 ‘법적 부채한도(statutory debt limit)’인 14조2940억달러를 넘어서고 있었다. 미국 재무부가 8월2일까지 부채한도를 높여주지 않는다면 ‘디폴트(default·채무불이행)’가 불가피하다고 고백하기에 이른다. 부채한도를 높여야 한다고 공화당에 요청을 해보지만 냉담하기만 했다. 시한에 임박해서야 협상은 시작되었지만 지지부진했고 공화당은 완강했다. 드디어 시한을 이틀 앞둔 7월1일 가까스로 합의에 도달했다. 일단 올해 말까지 부채상한선을 9000억달러로 높인 뒤 내년 초 추가로 상한선을 높이기로 한 것이다.

    그러나 협상 과정에서 민주당과 공화당은 또 한 번 극한투쟁 양상을 보였다. 과거 국가적 이해관계가 걸린 문제에서 초당(超黨)적 대처를 하던 것과 사뭇 다른 양상이다. 부채상한 증액 논쟁은 사실 4월 초부터 시작됐다. 부채상한을 늘리자는 데 이견이 있는 건 아니었다. 재원을 어떻게 조달할 것이냐, 부채를 앞으로 어떻게 줄여나갈 것이냐가 문제였다.

    오바마 대통령은 세금을 늘려 향후 10년 동안 4조달러의 부채를 줄이자고 주장했고 공화당은 증세 없이 재정지출 감축만으로 2조달러를 줄이자고 맞섰다. 7월25일 오바마 대통령은 텔레비전 연설에서 공화당에 대한 비난을 쏟아냈다. 이에 질세라 공화당 출신 존 베이너 하원의장은 즉각 반박에 나섰다. “오바마 대통령이 6개월 전에도 백지수표를 달라고 하더니 오늘 또다시 백지수표를 달라고 한다”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는 내용이었다. 주먹다짐만 없었을 뿐 양측 발언의 수위는 도를 넘어선 것이었다.

    ‘USA투데이’의 7월 여론조사 결과 오바마 대통령과 의회가 국가적 현안을 전임자들보다 잘 처리하고 있다는 응답은 13%에 그쳤다. 49%는 전임자들보다 못하거나 훨씬 못하다고 답했다. 응답자의 3분의 2는 민주, 공화 양당 모두 국가적 이익보다는 당파적 이익에 매몰돼 있다고 비판했다.

    ‘뉴욕타임스’와 ‘CBS뉴스’의 공동 여론조사에선 의회에 대한 미국 국민의 불신비율이 무려 82%에 달했다. 부채상한 증액 협상과 관련해 72%가 공화당에 불만을 표시했고, 66%가 민주당에 불만을 표시했다. 네거티브전을 벌인 공화당에 대해 불만이 조금 더 많았지만 정치권 전반에 대한 불신이 높아졌다는 데에 방점을 둬야 할 것이다.

    상위 1%의 반격

    2010년 중간선거 패배로 절치부심하던 민주당과 진보 세력에게 드디어 기회가 온 것일까. 9월17일 청년 수백 명이 ‘월스트리트를 점령하라(Occupy Wall Street)’는 구호 아래 시위를 시작한 이후, 반(反)월가 시위는 점차 세대와 지역을 뛰어넘어 전체 미국 전역으로 퍼져나가고 있다. 반(反)월가 시위는 ‘신자유주의’를 비판하는 진보 코드다. 정치적으로 1%의 지지를 얻을 것인지 아니면 99%의 지지를 얻을 것인지를 묻는다면 답은 뻔하다. 민주당과 오바마 대통령은 일단 99%에 몸을 맡겨보기로 한 모습이다.

    반월가 시위가 워싱턴에 진출한 10월6일 오바마 대통령이 입을 열었다. “시위대가 분노하는 것은 우리 금융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기 때문”이라면서 “공화당 대선후보들의 주된 경제 공약은 ‘월가의 악습을 막기 위한 경제 개혁을 없애자’일 것”이라고 했다. 시위대에 공감을 표시하면서 공화당을 월가 비호세력으로 몬 것이다.

    낸시 펠로시 민주당 하원 원내대표도 “가족을 부양할 수 없거나 미래가 어떻게 될지 알 수 없는 것보다 더 화나는 일은 없다”고 거들고 나섰다. 조 바이든 부통령은 한발 더 나갔다. “이번 시위는 미국 좌파의 티파티 운동이라고 할 수 있다”면서 “미국인들은 현 경제 시스템이 공정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언급했다.

    민주당은 이번 시위를 계기로 공화당의 티파티에 대항하는 진보 티파티가 활성화하기를 기대하는 눈치다. 그러나 정부가 사회체제 부정 시위의 반사이익을 노린다는 인상을 주는 것이 정상적인 모습은 아니다.

    공화당은 반월가 시위를 관망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이번 시위가 반공화당 정서로 비화하지 않을까 우려하는 모습이다. 그냥 당할 수는 없는 법! 사전 공세에 나선 인물도 없지 않다. 공화당 대선 주자인 밋 롬니 전 매사추세츠 주지사는 시위대가 ‘계급투쟁’ 수위에 이르고 있다고 비판했다. 또 피자 체인 창업자 출신의 공화당 대선주자인 허먼 케인은 “이번 시위대가 반자본주의자이고 반시장주의자”라면서 “백악관이 비밀리에 시위를 조직하고 있다”고 했다. 상위 1%의 반격이 시작되면서 공화당 내에서도 강경론이 고개를 드는 형국이다.

    그러나 아직까지 반월가 시위는 특정 정파를 지지하는 것 같지 않다. 정치권 전반에 대한 혐오감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봐야 한다는 지적도 없지 않다. 실제로 시위대는 오바마 행정부가 월가에 대규모 구제금융을 쏟아 붇는 것에 비판적이다. 오바마 대통령이 월가로부터 정치자금을 받았다는 점에 대해서도 차가운 반응이다. 반월가 시위의 향배에 따라 2012년 미국 대선의 판세가 결정될 가능성이 높아진 것은 분명하다.

    반월가 시위에서 좀 더 눈여겨보아야 할 대목은 개인주의로 유명한 미국 시민들이 행동으로 나서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특히 진보 진영의 적극적인 참여와 개입이 눈에 띈다. 이번 움직임이 진보 티파티로 귀결된다면 냉전의 끝! 열전의 시작을 의미한다. 티파티는 공화당 내에서도 극단파에 속한다. 반월가 시위는 반대편의 극단일 것이다.

    한국 닮아가는, 미국의 이념 내전
    이종훈

    성균관대 정치학 박사

    국회도서관 연구관

    前 CBS 라디오 ‘이종훈의 뉴스쇼’ 진행자

    現 아이지엠컨설팅(주) 대표

    現 시사평론가

    저서 : ‘정치가 즐거워지면 코끼리도 춤을 춘다’ ‘사내정치의 기술’


    미국의 암울한 미래?

    중간지대의 위축과 양 극단으로의 쏠림이 어떤 결과를 낳을지는 충분히 상상할 수 있는 일이다. 그렇다면 티파티와 반월가 시위가 과연 미국의 해법이 될 수 있을까? 대공황 시절 수정자본주의에서 돌파구를 찾았듯이 미국은 새로운 돌파구를 찾아야만 하는 절체절명의 순간을 맞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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