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11월호

방위비 분담금 전용 미군기지 이전비용 對국민 기망, 대북정보 둘러싼 한미 갈등

위키리크스 통해 확인된 ‘신동아’ 특종

  • 황일도 기자 | shamora@donga.com

    입력2011-10-20 11:3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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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월26일(현지시간) 위키리크스가 공개한 2만5000여 건의 외교전문이 지구촌 곳곳에 안긴 충격은 컸다. 특히 한미관계의 이면을 드러낸 주한 미대사관발(發) 전문들은 국내 주요 언론의 헤드라인을 장식하며 양국 정부를 당혹게 하고 있다. 이 가운데는 그간 ‘신동아’가 다양한 특종기사를 통해 폭로한 두 나라 사이의 핵심 쟁점도 많다.
    방위비 분담금 전용 미군기지 이전비용 對국민 기망, 대북정보  둘러싼 한미 갈등
    9월 말 주요 언론은 위키리크스를 통해 공개된 2007년 4월2일자 주한 미국대사관의 외교전문을 인용해 “국방부가 방위비분담금을 미군기지 이전에 돌려 쓸 수 있도록 미국 쪽에 합의(양해)해주고도 국민에게는 ‘아직 협의가 진행 중’이라며 거짓 해명해온 정황이 드러났다”고 보도했다. 한국 정부가 그간 미군기지 이전 비용을 한미 두 나라가 절반씩 부담한다고 설명해왔던 것과 달리 미국 측에서는 이전 비용의 93%를 한국이 부담하는 것으로 파악했다는 내용이었다. 전문에 따르면 당시 주한미군과 미 대사관 측은 “자세한 정보를 국회에 알리고 그것이 한미 동맹에 중요하다는 입장을 견지하도록 권고”했지만 노무현 정부는 이를 사실상 묵살했다. ‘참여정부가 국민을 속였다’는 문장이 주요 일간지 헤드라인과 사설을 장식한 이유였다.

    2007년 4월이라는 시점에 왜 미 대사관은 이렇듯 민감한 전문을 작성했던 것일까. 사실 미국 측 외교전문을 통해 다시 확인된 것일 뿐, 주한미군의 방위비분담금 전용(轉用)과 그에 따른 기지 이전비용 한국 측 부담비율의 급격한 증가는 ‘신동아’의 2007년 4월호 보도를 통해 이미 공개된 내용이다. 당시 ‘신동아’는 “주둔비가 부족하다며 방위비분담금의 증액을 요구해온 주한미군사령부가 2002년부터 한국 정부가 지급한 분담금의 상당부분을 금융권에 예치해왔으며 그 총액은 8000억원에 달한다”고 보도한 바 있다. 다음 호에서는 “8000억원은 재(再)예금을 거쳐 대부분 미국계 금융회사인 뱅크오브아메리카(BOA) 서울지점에 예치돼 있으며, 여기서 나오는 매년 수백억원의 이자수익이 정산을 통해 미 국방부로 입금되고 있다”는 후속기사도 전했다.

    이 무렵 주한미군사령부는 축적된 방위비분담금을 영내 은행인 커뮤니티뱅크에 예치하고, 커뮤니티뱅크가 이를 다시 BOA 서울지점에 양도성예금증서로 예치했다. 커뮤니티뱅크는 ‘BOA 군사금융부문(military banking division)’이 미 국방부와 계약을 맺어 위탁경영하고 있는 기관. 커뮤니티 뱅크와 BOA 서울지점은 사실상 같은 계열사이므로 한국 국민의 세금으로 만들어진 방위비분담금이 미국 금융회사가 계열사끼리 주고받으며 막대한 운용이익을 남기는 ‘눈먼 돈’으로 변한 셈이었다. 이렇게 전용된 방위비분담금은 당초 미 측이 부담한다던 2사단 이전비용으로 쓰이고, 따라서 기지 이전 비용의 대부분을 결과적으로 한국 측이 부담하는 구조가 만들어진 것이다.

    이번에 공개된 위키리크스 전문이 작성된 2007년 4월2일은 ‘신동아’의 첫 보도가 나온 2주일 후다. ‘신동아’ 보도를 통해 방위비분담금의 축적과 이전비용 전용예정 사실이 공개되자 국방부는 해명을 통해 “미국과 한국이 이전비용을 반반씩 부담한다”는 기존 입장을 재확인했다. 문제의 전문은 이러한 한국 측 설명에 대응해 본국에 ‘진실’을 은밀히 보고하기 위해 작성된 것에 가깝다.

    그러나 노무현 정부는 ‘신동아’ 보도 이후 쏟아진 시민사회단체들의 비판이나 “국회에 사실을 투명하게 보고하라”는 미국 측의 권고에 아랑곳없이 주먹구구식 면피성 발언에 급급했고, 임기 말까지 이를 교정하기 위해 본격적인 노력을 기울이지 않았다. 관련 당국자 누구도 책임을 지지 않은 것은 물론 당초의 공언(公言)이 지켜지지 않은 데 대해 해명조차 없었던 것. 이명박 정부 들어서는 상황이 더욱 악화되어, 2008년 말 한국 측은 그간 쌓인 분담금의 이전비용 전용은 물론 2013년까지 같은 방식으로 축적할 수 있도록 해달라는 미국 측 요구를 수용하기에 이른다.



    위키리크스가 공개한 문제의 전문은 당시에는 확인할 수 없었던 구체적인 사항 또한 제시해주고 있다. 미군기지 이전에 관한 협상이 진행되던 2004년에 이미 “미국과 한국 정부 사이에는 방위비분담금을 기지 이전 계획과 관련된 건설비용에 사용할 수 있다는 양해(Under-standing)가 있었다”는 문장이 그것이다. ‘신동아’의 보도가 나왔던 2007년 당시 정부 당국자들은 “방위비분담금은 미국 측에 ‘줘버린’ 돈이므로 어떻게 쓰는지는 미국이 결정할 문제”라는 논리를 제시한 바 있지만, 그보다 3년여 전에 양측의 합의가 있었다는 것이다.

    방위비 분담금 전용 미군기지 이전비용 對국민 기망, 대북정보  둘러싼 한미 갈등

    2008년 4월8일 서울 국방부에서 열린 제17차 한미 안보정책구상(SPI) 회의.

    변명으로 일관하다

    거슬러 올라가자면 ‘신동아’는 미군기지 이전협상이 마무리된 2005년에 이미 이전비용의 한국 측 부담이 두 배 이상으로 늘어날 것이라고 지적한 바 있다. 그해 8월호를 통해 ‘신동아’는 미 ‘해외주둔위원회(Overseas Basing Commi-ssion)’가 대통령과 의회에 제출한 보고서를 인용해 전체 이전비용 가운데 미국 측의 부담은 26억달러(당시 환율 기준으로 2조7000억원 내외)에 불과하다고 전했다. 반면 한국 측의 경우 부지매입과 건설에 쓰일 직접비용만 5조4000억원, 이전지역 지원 같은 간접부담까지 포함하면 11조원으로까지 늘어날 것이라는 내용이었다. 올해 6월호의 후속보도를 통해서는 “방위비분담금 충당분과 한국 정부가 보증하기로 한 1조7000억원 규모의 미군 임대 가족주택을 결합하면, 총 14조원의 이전비용 가운데 96%를 한국이 부담하게 된다”고 전한 바 있다.

    방위비 분담금 전용 미군기지 이전비용 對국민 기망, 대북정보  둘러싼 한미 갈등

    2010년 6월27일 캐나다 토론토에서 열린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 참석한 이명박 대통령과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전시작전통제권 전환 시점을 연기하는 내용에 합의한 뒤 악수하고 있다.

    물론 위키리크스 전문에는 이후 한국 정부가 몇 차례에 걸쳐 방위비분담금 전용문제를 양국 회의석상에서 제기한 흔적도 남아있다. 미 대사관의 2007년 6월25일자 전문을 보면 한국 측은 전용 문제를 해결하는 대신 인건비와 군사건설비용을 대폭 부담해 전체적인 비용부담 규모를 기존 수준에 맞춰주겠다고 제의한다. 그러나 로버트 로프티스 당시 미국 측 방위비 협상대표는 “’한국 정부가 솔직하지 않아 생긴 문제를 왜 우리에게 떠넘기느냐”고 단칼에 거절했고, 리처드 롤리스 미 국방부 동아태담당 부차관은 방위비분담금의 전용을 양해한다는 기존 합의가 지켜지지 않으면 일부 주한미군을 철수할 수 있음을 내비치기까지 했다.

    미국 측의 이렇듯 강경한 태도에 한국 측은 별다른 대응책 없이 물러났다. 이를 지렛대 삼아 방위비분담금 협상에서 활용하는 대신 앞서 설명한 대로 정부가 바뀐 2008년 이를 양해하는 데 공식합의해준 것. 결과적으로 보자면 그간 ‘신동아’를 포함해 다양한 경로로 쏟아진 문제 제기에도 변명으로만 일관하다가 이번 위키리크스의 외교전문 공개로 인해 ‘국민을 속였다’고 비판받는 치명타를 입은 셈이다.

    위키리크스를 통해 확인할 수 있는 또 다른 특종으로는 대북 군사정보 공유 및 유출을 둘러싼 한미 간의 이견과 갈등이 있다. 청와대와 버웰 벨 당시 주한미군사령관 사이의 갈등을 다룬 ‘신동아’ 2007년 10월호 기사와 북한의 2차 핵실험 징후가 비등하던 시점에 벌어진 양국 군사당국 사이의 파열음을 다룬 2009년 5월호 기사가 그것이다.

    고해상도 군사위성과 고고도 정찰기 등 다양한 자산을 운용하는 미군에 한국 측이 북한의 군사동향에 대한 정보를 크게 의지하고 있음은 주지의 사실. 미국 측은 그간 ‘동맹의 신의’ 차원에서 한국과 공유한 이러한 정보가 한국 측 당국자들에 의해 공개되거나 언론에 흘러나가는 것에 대해 매우 예민한 반응을 보여왔다. 쉽게 말해 ‘미 국민의 세금으로 만들어진 정보를 왜 자기들 입맛에 따라 써먹느냐’는 항의였다. 여기에는 북한이 이를 종합, 분석해 미국 측 탐지수단을 속이거나 교란하는 데 활용할 수 있다는 우려도 깔려 있었다.

    항의 서한의 ‘거친 언사’

    ‘신동아’는 양국 군사당국의 핵심에서 벌어진 두 차례의 큰 정보 갈등을 단독으로 포착해 기사화했다. 2007년 기사에서는 그해 6월7일 북한의 단거리 미사일 발사와 관련해 청와대가 언론 브리핑을 실시하자 벨 사령관이 “미국 측 자산을 통해 수집된 정보를 한국이 임의로 공개했다”며 주한미군 정보참모부장을 한국군 합동참모본부로 보내 항의 친서를 전달하는 등 갈등의 수위가 비등점을 넘었다고 보도한 바 있다. 2009년 기사에서는 그해 2월 평양 인근 군수공장에서 무수단리 발사 시설로 미사일이 이동하는 위성사진의 존재가 국내외 언론에 흘러나간 데 대해 미국 측이 반발해 윌리엄 샤프 당시 주한미군 사령관이 공식 항의하는 등 상황이 심각하다고 전했다.

    그간 양국 정부 당국자 누구도 이러한 갈등을 공식적으로 인정한 적이 없지만, 위키리크스를 통해 공개된 전문은 정보공유를 둘러싼 양국의 감정악화가 어떤 수준까지 파급됐는지 뚜렷이 보여준다. 2009년 2월10일 작성된 주한 미대사관 전문은 이와 관련해 윌리엄 스탠튼 당시 부대사가 이용준 당시 외교통상부 차관보 앞으로 강력한 항의 서한(reftel demarche)을 보냈다고 기록하고 있다. “북한 미사일에 대한 위성사진 정보가 유출된 것에 특히 우려하는 것은 한국이 미국의 기밀정보를 (외부에) 알린 게 이번이 처음이 아니기 때문”이라는 내용이다. 이 차관보는 이에 대해 “우려를 충분히 이해한다”며 “유출은 아마도 국방부에서 시작됐을 것이므로 외교부 외의 다른 한국 정부기관에도 함께 항의해달라”고 요청하기도 했다.

    이튿날 작성된 전문은 더욱 구체적이다. 이날 이용준 차관보는 스탠튼 부대사에게 “유출자 색출작업을 시작하고 있으며, 유출은 절대로 정책적 고려에 따른 것이 아니라 허가받지 않은 개인적인 행동일 뿐”이라고 강조한다. 이 차관보는 미국 측 항의 서한에 담긴 ‘거친 언사(tough language)’를 언급하면서 조만간 방문할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이 이 사안을 거론할 것인지를 궁금해하기도 했다. 사안이 더 커지지 않을지 염려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그러나 한국 측의 바람은 이뤄지지 않았다. 같은 해 3월20일자 전문에 따르면 3월 초 한국을 방문한 데이비드 세드니 당시 미 국방부 동아태담당 부차관보는 청와대 참모진과의 면담에서 이 문제를 언급하며 재발 방지를 강력히 촉구한다. “(이러한 정보 유출이) 정책적 선택의 폭을 심각하게 제한한다”는 경고도 잊지 않았다. 이때 열린 한미안보정책구상(SPI) 회의에서는 세드니 부차관보는 물론 프랭크 팬터 주한미군사령부 기획참모부장도 나서서 성토를 이어가는 바람에 한국 측 대표인 전제국 당시 국방부 정책실장이 달래야 했을 정도였다.

    전작권 전환 연기의 진짜 이유

    위키리크스 전문은 한미 군사당국 사이의 오래된 쟁점인 C4I(지휘통제자동화체계) 문제의 심각성도 엿볼 수 있게 해준다. 전시작전통제권 전환을 앞두고 양국군의 C4I 체계를 통합해 연동할 수 있는 준비가 마무리돼야 하지만, 이러한 작업이 속도를 내지 못해 미국 측이 불안감을 표했다는 사실이 수년간 여러 전문을 통해 확인되는 것. 특히 한국군의 C4I체계 구축작업이 당초 일정에 따라 진행되지 못하는 데 대한 지적이 자주 등장한다.

    ‘신동아’는 2010년 8월호 기사를 통해 전작권 전환 일정이 당초의 2012년에서 2015년 말로 연기된 것과 관련해 정부가 대외적으로 설명한 ‘안보불안 해소’ 외에 숨은 이유가 있다고 분석한 바 있다. 해당 기사에서 전작권 전환 연기의 가장 큰 이유로 지목한 것은 다름 아닌 양국의 C4I 연동 미비와 한국군 C4I 체계 구축 지연 문제. ‘신동아’가 2004년 12월호와 2007년 12월호를 통해 폭로했던 북한 장사정포 대응임무(대화력전) C4I 체계의 불안함은 이와 관련한 우려에서 가장 큰 몫을 차지한다.

    방위비 분담금 전용 미군기지 이전비용 對국민 기망, 대북정보  둘러싼 한미 갈등

    2007년 9월7일 호주 시드니에서 열린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 참석한 노무현 대통령과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의 한미 정상회담.

    주한 미대사관이 2009년 3월20일자로 작성한 전문에는 이 시기 열린 SPI 회의에서 C4I 문제가 매우 심각하게 거론됐음을 보여준다. C4I 연동을 위해 필수적인 한국 측의 연합지휘통제체계(AKJCCS)가 당초 예정대로 구축되지 못하고 있음이 드러났다는 것. 당시 회의에 참석한 주한미군 고위관계자는 “이 문제는 전작권 전환을 위한 가장 핵심적인 전투 이슈(most critical warfighting issue)”라고 강조하면서 한국 정부가 AKJCCS 구축사업에 배정한 예산이 210만달러에 불과하다고 불만을 표시한다. 미국 측 대표였던 세드니 부차관보는 “전작권 전환이 예정대로 진행되려면 이 사안이 ‘노란색’에서 ‘초록색’으로 옮겨가야 한다”며 해결방안을 제시하라고 요구하기도 했다.

    한미정상회담을 통해 전작권 전환 연기가 공개된 2010년 6월 무렵, 국방부와 합참은 “그간 군의 전환준비가 미비했던 탓 아니냐”는 비판에 대해 발끈하고 나섰다. “연기는 북한의 2차 핵실험 등 안보환경의 변화 때문이지 우리 군의 능력은 충분하다”는게 골자였다. 그러나 ‘신동아’가 당시 지적했던 바와 같이 두 나라의 전환 연기 결정에는 C4I 문제가 해결되지 못한 데 대한 우려가 깊숙이 작용했다는 사실이 이번 위키리크스 문서공개를 통해 재확인되기에 이른 것이다.

    국방부, 미국 힘 빌려 청와대에 맞섰나

    출범 직후 청와대와 안보부처를 뜨겁게 달궜던 이명박 정부의 국방비 효율화 논쟁도 위키리크스 전문을 통해 이면을 들여다볼 수 있는 사안 가운데 하나다. 이 대통령 당선이 결정된 직후인 2008년 1월호부터 ‘신동아’는 안보 분야 참모 성향분석을 통해 ‘경영적 합리성에 따른 국방예산 효율화’가 MB정부의 군사 분야 핵심이슈가 될 것이라 전망한 바 있다. 이후에도 ‘신동아’는 2009년 5월호와 2010년 1·3·6월호 관련기사를 통해 이 문제를 놓고 청와대와 국방부 사이에 빚어진 갈등의 추이를 연속해서 추적 보도했다.

    위키리크스 전문은 미국 측 또한 이러한 갈등의 추이를 예의 주시하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2008년 3월25일자 현안자료 문서가 옮긴, 그해 3월12일 이명박 대통령과 이상희 당시 국방부 장관의 면담 모습이 대표적이다. 배석한 청와대 보좌진이 “청와대는 국방부의 장난감을 사주기 위한 수표를 써주지 않을 것(writing checks for MND toys)”이라고 강하게 경고했고, 이 대통령 역시 말없이 이 발언에 동의를 표했다는 내용. 면담 자리에 참석한 인사로부터 직접 전달받은 것으로 보이는 생생한 묘사다.

    흥미로운 것은 이 전문이 당시 청와대의 예산 효율화 방안에 대한 국방부 관계자들의 불만을 꼼꼼히 전하면서 수차에 걸쳐 ‘국방부 소식통(MND sources)’을 인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전문의 전체적인 기조는 청와대의 국방예산 감축기조가 글로벌호크 등 미국 기업이 생산하는 주요 전략무기 판매에 어떤 악영향을 미칠지 우려하는 내용. 이렇게 놓고 보면 당시 한국 국방부 관계자들이 청와대의 예산 감축 기조에 맞서기 위해 미 대사관 측과 접촉해 ‘워싱턴의 힘’을 활용하려고 시도한 것 아니냐는 의구심을 낳기에 충분하다.

    이후에도 주한 미대사관은 2008년 4월28일자와 5월30일자, 2009년 3월5일자 전문 등 청와대의 국방예산 감축 분위기를 여러 차례 강도 높게 비판한다. 특히 ‘한국의 2009년도 국방예산이 국방개혁에 미치는 함의(The 2009 OK Defense Budget Implication For Defense Reform)’라는 제목의 2008년 5월30일자 전문은 A4 3쪽 분량 전체를 이 문제에 할애했다. 한국 정부 인사들 가운데 이러한 기조를 주도하는 인물로 김병국 당시 대통령실 외교안보수석을 지목하며 “글로벌호크처럼 (전작권) 전환을 위한 대부분의 무기체계 도입에 반대하고 있다”고 적시하고 있는 것. 미 대사관 측은 이 전문을 통해 “(청와대의 이러한 분위기는) 전임 노무현 정부의 2012년 전환 합의를 폄훼하려는 관점에서 나온 것”이라고 비판하기도 했다.

    도적처럼 다가온 ‘심판의 날’

    이외에도 위키리크스 전문은 안보정책이나 한미관계와 관련해 그간 ‘신동아’가 보도해온 다양한 쟁점의 이면을 확인해주고 있다. 2010년 4월호를 통해 비판한 아랍에미리트 원전 수주와 군사협력 양해각서(MOU) 문제, 2010년 1월호를 통해 최초 공개한 전작권 전환 대비 신(新)연합작전계획 5012 관련 논의 내용, 2005년 1월호와 2007년 1월호를 통해 제기한 주한미군 전략적 유연성 문제에 관해 양국이 빚은 견해차 등이 그것이다.

    이렇듯 ‘신동아’ 지면을 통해 주요 쟁점의 가려진 실체가 폭로될 때마다 정부의 대응은 놀랄 만큼 흡사했다. “사실과 다르다”는 변명이나 근본적인 해결과는 거리가 먼 미봉책 남발, 묵묵부답 무대응으로 일관해온 것이다. 그러나 위키리크스 전문을 통해 정부 측 해명이 거짓이었음이 드러났고, 해결되지 못한 문제점은 한미관계의 뇌관으로 남아 최근까지 갈등과 파열음을 증폭시켜왔다.

    “한국 정부가 심판의 날(days of reckoning)을 미루고 있다.” 미군기지 이전비용과 관련해 주한 미대사관이 작성한 2007년 4월2일자 전문의 결론이다. 결국 ‘심판의 날’은 전혀 뜻하지 않은 방식으로 찾아온 셈이지만, 이들 사안에 관여했던 전·현직 당국자들은 여전히 “위키리크스 문서와 관련해서는 대응하지 않는 것이 원칙”이라는 말만을 반복하며 진실을 회피하고 있다. 흙 속에 머리를 파묻은 꿩 같은, 이 슬픈 코미디를 과연 언제까지 지켜봐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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