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11월호

“김정은 권력승계 학점은 B+”

김정일 직책 이양, 숙청 속도, 대외정책 변화

  • 백승주│한국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장 bsj@mnd.go.kr

    입력2011-10-20 11:4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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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낙관파, “김정일 건강 호전되고 군부도 충성맹세”
    • 비관파, “광폭 외교활동은 선전용…잇따른 숙청은 갈등 암시”
    • 당 중앙군사위원장 물려주면 승계 속도 낼 것
    • 안정 세습 단기적으론 가능…승계 후 리더십 변화 없으면 실패
    최근 북한의 경제 사령탑 역할을 해온 홍석형(75) 노동당 계획재정부장 겸 경제비서가 숙청됐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홍석형은 2009년 11월 단행된 화폐개혁 실패의 책임을 지고 지난해 초 총살된 것으로 알려진 박남기의 후임으로 지난해 7월 당 계획재정부장에 기용됐다. ‘임꺽정’을 쓴 벽초 홍명희(전 내각 부수상)의 손자인 그는 중국의 첩자 혐의를 받고 숙청됐다는 후문이다. 또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손자로 알려진 김한솔(16)군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북한사람들이 굶주리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고 밝힌 사실이 알려지면서 김정은 후계구도에 대한 다양한 예측이 제기되고 있다.

    2010년 9월28일 북한 김정은이 공식적인 권력승계 예정자로 등장한 지 1년이 지난 시점에서 나타난 이러한 변수들은 그의 권력승계에 영향을 미칠까? 김정은의 권력승계 준비는 제대로 진행되고 있을까? 물론 이에 대한 평가는 북한 전문가마다 다르다.

    학생들에게 학점을 주는 교수는 아홉 단계 등급 중 하나를 준다. 즉 ‘매우 잘되고 있다’고 보면 ‘A+’를 주고, ‘매우 심각한 장애에 직면했다’고 보면 ‘F’학점을 준다. 그러나 김정은 후계예정자의 경우 답안지를 직접 확인할 수 없기 때문에 극단적으로 A+를 주는 경우와 F학점을 주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동시에 아홉 단계로 세밀하게 평가할 북한전문가도 없다. 북한 지도자 자신도 승계전망을 제대로 평가하기 힘들 것으로 본다. 그래서 전문가들은 “무난하게 승계 준비를 하고 있는 것 같다”고 평가하는 ‘패스(Pass) 교수’의 견해와, 약간의 불확실성을 안고 있다는 ‘페일러(Failure) 교수’의 견해로 크게 나뉜다. ‘패스 교수’는 북한 권력승계를 대체로 성공적으로 평가하는 사람을, ‘페일러 교수’는 반대로 평가하는 사람을 비유한 것이다.

    홈스, “후계자 지위 5년 유지하면 안정적 권력승계”



    냉전시대 사회주의권의 권력승계를 연구한 홈스(Holms)는 안정적 권력승계에 대해 권력승계 이후 5년간 권력을 유지했느냐 아니냐를 기준으로 분류한 바 있다. 그의 생각을 원용하면, 후계자로 지명된 이후 5년간 후계자 지위를 유지한다면, 비교적 안정적으로 권력을 승계한 것으로 판단해볼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지난 1년간 북한 내 승계자 지위가 강화되고 있기 때문에 전체적으로 승계 준비가 북한지도자의 의도대로 그럭저럭 진행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구체적인 평가요소를 중심으로 평가·전망해 보면, 승계 준비현황에 대해 보다 구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

    김정은의 안정적 권력승계와 관련해 가장 중요한 평가요소는 △김정일의 향후 생존기간 △군부 장악 △가족 간 결속 △정책을 통한 주민 만족도 제고 등으로 볼 수 있다. 먼저 ‘패스 교수’와 ‘페일러 교수’의 평가요소별로 나누어 살펴보자. ‘패스 교수’의 견해를 요약하면 이렇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건강이 과시되고 있다. 중국, 러시아를 방문하고 빈번하게 현장지도를 하고, 외빈을 접대하는 모습 속에서 김정일 위원장의 건강 회복이 확인되고 있다. 김정은이 권력승계를 담보받기 위해 준비하는 데 필요한 기간만큼 향후 김정일 위원장이 활동할 것으로 전망된다. 북한 군부의 분열이란 애초 없었다. 이미 군부도 이영호 총참모장을 중심으로 김정은에게 충성경쟁을 하고 있다.

    가족 간 결속도 김정은을 승계자로 지명하기 이전에 이미 정리됐다. 김정은의 경쟁자로 주목받던 김정남은 이미 북한 내에 세력 기반이 없었고, 간신히 중국 정부의 도움을 받아 유랑생활하고 있다. 더 이상 김정남의 영향력을 논의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북한의 새로운 권력실세인 장성택(김 위원장의 매제), 김경희(김 위원장 여동생으로 장성택과는 부부), 김옥(김 위원장의 네 번째 부인)도 생존을 위해 김정은을 중심으로 단결할 수밖에 없다. 좋은 경제정책을 통해 북한주민의 만족도를 단기간에 끌어올린다는 것은 기대할 수 없고, 북한주민들은 경제정책의 실패 책임을 김정은에게 추궁하지도 않을 것이다. 추궁해야 하는 이유도 모를 것이다. 2012년을 위해 북한당국이 현재 비축하고 있는 식량 등 경제자원을 단기간에 분배할 경우, 김정은에 대한 주민들의 충성심을 일시에 끌어올릴 수 있다. 유럽에서 유학한 경험을 살려 중장기적으로 개혁·개방을 확대할 것이고 중국, 러시아와 경제협력 추진도 그러한 시각에서 봐야 한다. 한마디로 1년간 후계수업을 받은 김정은의 학점은 B+를 줄 수 있다. 공식적으로 등장할 당시의 기대보다 김정은의 권력인수 준비는 제대로, 정상속도대로 가고 있다.”

    김한솔 ‘페이스북’ 등장은 가족 간 분열 의미

    반면 ‘페일러 교수’의 견해는 다르다.

    “김정일 위원장의 광폭 외교활동과 건강을 과시하는 동영상을 믿어서는 안 된다. 건강하게 보이는 동영상, 사진만 선별적으로 공개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김 위원장의 광폭활동은 오히려 승계준비를 서두르는 모습의 반영이고, 자신의 건강이 여전히 자신 없기 때문에 서두른다고 봐야 한다. 건강이 획기적으로 개선될 가능성이 많지 않다. 김일성이 김 위원장에게 보장한 30여 년의 후계준비 보장기간과 비교할 때, 김정은에게 주어진 준비기간은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권력기반 강화와 관련해서는 조금 더 지켜봐야 한다. 김일성-김정일 승계기간에 진행된 ‘곁가지 숙청’의 역사를 잘 아는 장성택 등 가족들은 실각에 대비해 권력자원을 관리할 것이다. 보위부의 류경 부부장이 올해 초 간첩죄로 처형되고, 주상성 인민보안부장과 리태남 부총리 등이 비리 연루혐의로 해임됐다. 이러한 숙청은 권력 내부의 갈등존재를 상징하는 것이다. 권력기반을 강화하는 조치에 따른 반작용이 권력갈등으로 이행될 가능성도 있다. 김 위원장 일가의 단합에도 문제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최근 김 위원장의 장손인 김한솔이 북한체제에 대한 불만을 ‘페이스북’에 게시한 것은, 가족 간에 분열이 있음을 의미한다. 더욱 중요한 것은 좋은 정책을 통해 주민들의 충성심을 제고하는 것인데, 탈북행렬은 멈추지 않고 있고 경제난은 심화되고 있다. 통제경제 체제를 강화하려던 화폐개혁 실패도 후계 문제에 나쁜 영향을 줄 것이다. 중동발(發) 정치혁명도 북한 주민들에게 스며들 것이다. 그래서 1년 승계수업 학점을 B학점 이상 줄 수 없다.”

    “김정은 권력승계 학점은 B+”

    페이스북의 ‘김한솔(Hansol Kim)’ 계정에 담긴 사진. 김한솔은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손자 추정된다.

    유일지도의 수령영도체제에서 권력 승계 문제란 당연히 수령의 교체 문제를 말한다. 북한에서 후계자 선정이란 혁명과업의 완성이라는 수령의 대업을 이어갈 지도자를 찾는 작업으로 볼 수 있다. 혁명과업은 완전무결한 수령의 영도 아래서만 가능하기 때문에 대를 이어 수행해야 하며, 수령의 대를 이어 일할 수 있는 후계자가 필요하다는 주장을 펼친다. 북한의 후계자란 곧 수령의 역할을 이어받을 미래의 또 다른 수령을 의미하는 것이다. 북한에서 수령이 되기 위해서는 몇 가지 자질을 갖추어야 한다.

    그것은 첫째, 수령에게 무한히 충실해야 한다. 수령의 혁명사상에 충실하지 못하면 중도에서 변질될 수 있다는 이유 때문에 ‘충실성’을 최우선으로 하는 까닭이다.

    둘째는 수령의 탁월한 영도력, 고매한 공산주의 덕성을 그대로 체현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혁명과 건설에서 이룩한 업적과 공헌으로 인해 인민들 속에서 절대적인 권위와 위신을 지녀야 한다.

    승계수업 1년여 동안 김정은이 수령론에 적합한 인물임을 북한권력 내부에 확인하는 데 성공했다고 볼 수 있다. 김정은은 북한을 방문한 외빈을 접대하는 행사에 배석하기도 했고, 김정일의 외유 기간 동안에 북한 내부를 장악하는 능력도 보여주었다. 북한의 최고 원로로 볼 수 있는 최태복, 김기남(비서국 비서)이 김정은을 깍듯하게 수행하는 모습을 담은 사진을 공개하는 등 김정은이 세대를 초월해 북한권력의 새로운 중심으로 위상을 과시하고 있다.

    권력승계 진행과 관련해 우리가 최우선적으로 관심을 가질 사항은 “후계자 김정은이 김 위원장의 지도자 타이틀 중 하나를 언제 차지할까”의 문제다.

    “김정일 공식 직위 이양하면 승계 완성”

    김정일은 노동당 정치국 상무위원, 비서국 총비서, 당중앙위원회 위원장, 국방위원회 위원장, 최고사령관 직책으로 북한을 통치하고 있다. 김일성 사망 전에 김정일에게 물려준 최고 직책은 최고사령관이었다. 김정일은 1991년 12월24일 당중앙위원회 제6기 19차 전원회의에서 조선인민군 최고사령관으로 추대되었고, 1992년 4월20일에는 원수로 취임해 김일성 유고를 대비한 군권 장악을 확립했다. 1992년 개정헌법은 국방위원장 직을 국가주석 직으로부터 분리함으로써, 김정일이 국가주석 직을 승계하기 전에 국방위원장 직을 맡을 수 있도록 준비했으며, 실제로 김정일은 1993년 국방위원회 위원장에 선출됐다.

    김일성 사후 김정일은 3년여 동안 과거 김일성이 가지고 있던 노동당 총비서, 주석 등의 공식직함을 승계받지 않았다. 김일성이 사망한 지 3년3개월이 되는 1997년 10월8일에 김정일은 노동당 총비서에 ‘추대’됐다.

    따라서 김정은이 공식 타이틀 중 하나를 차지한다면 승계구도는 거의 완성되었다고 봐야 한다. 북한의 승계프로그램을 만들고 진행하는 연출자 입장에서 보면, 김정일이 가지고 있는 타이틀 중에서 최고사령관 직책을 가장 먼저 이양할 가능성이 높다. 좀 더 신속하게 진행하려면 당 중앙군사위원회 위원장을 물려줄 가능성도 있다.

    또 하나 중요한 점은 향후 권력숙청이 어느 정도 폭과 속도로 진행될 것인지의 문제다. 최고 실세였던 보위부 류경 부부장이 올해 초 간첩죄 혐의를 받고 처형됐고, 주상성 인민보안부장이 해임되는 등 권력정비가 진행되고 있다. 권력기반 다지기 노력이 장성택의 기반에까지 영향을 미치느냐가 중요한 관전 포인트다. 아울러 김한솔의 ‘페이스북 사건’으로 상징되는 가족 간의 분열을 어떠한 방식으로 봉합하고 단결을 과시해나가느냐도 지켜볼 필요가 있다. 권력기반을 강화하는 과정에서 장성택의 측근 상당수가 고초를 받았다는 정보도 있다. 장성택과 김정은 간 충돌이 일어나는 시기도 권력승계 속도와 향방에 영향을 미칠 것이다.

    끝으로 정책변화에 대한 문제다. 북핵문제, 남북관계, 시베리아 가스관 건설, 북중 경협문제, 북미관계 정상화 문제에 대해 북한은 새로운 접근을 모색하고 있다. 이러한 노력들은 김정은의 정책능력에 대한 내외의 신뢰를 만드는 데 중요한 영향을 미칠 것이다. 아울러 중동발 정치혁명을 이끈 휴대전화가 이집트 회사를 통해 북한 내에 공급되고 있다. 휴대전화에 대한 김정은의 정책도 관심 있게 지켜볼 필요가 있다.

    북한체제의 특징과 준비현황을 고려할 때 현 상황에서 김정일의 승계학점은 B+에 가깝다. 그래서 필자는 김정은의 안정적 권력세습이 단기적으로 가능할 것으로 본다. 그러나 중장기적으로 승계된 권력의 리더십, 정책의 방향이 체제유지 기간에 중요한 영향을 미칠 것이다. 북한 주민의 정치의식이 변하고 있고, 국제사회의 압력도 북한 국내정치에 관여하는 방향으로 진행될 것이다. 김정은이 권력을 승계한 이후 현재와 같은 리더십을 유지한다면 북한의 권력승계는 종국적으로 실패할 가능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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