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11월호

‘호주 한인 50년사’ 추은택 편찬위원장

‘늦었지만 제대로 기록하려 했다’

  • 시드니 = 윤필립 시인, 호주전문 저널리스트

    입력2011-10-25 17:4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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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호주 한인 50년사’ 추은택 편찬위원장
    고대 그리스의 잔해가 남아 있는 유적지에서, 기둥만 남아 있는 언덕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노인이 있었다. ‘예언자’ 집필을 위해 그곳을 방문했던 칼릴 지브란이 그 노인에게 무엇을 바라보고 있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그 노인이 대답했다.

    “삶을 바라보고 있소.”

    “오, 그것뿐입니까?”

    “그것이면 충분하지 않은가요?”

    온전한 인간이 되려면 자기 존재부터 확인해야 한다. 또한 사람은 개인으로만 존재할 수 없다. 나를 확대하면 자연스럽게 사회로 연결되고, 국가와 인류의 일원으로 살아야 하는 사회적인 동물이기 때문이다. 또한 과거의 잔해 속에서 삶의 의미를 깨닫고, 미래까지 조망하는 특성 때문에 인류가 만물의 영장이 되었는지 모른다.



    2008년 1월 호주 한인동포 사회는 숙원사업이던 ‘호주 한인 50년사’를 출간했다. 호주 한인사회의 존재를 알리는 동시에 공동체의식을 확인하는 노력의 일환이었다. 이 책의 편찬을 주도한 추은택 편찬위원장을 만났다.

    이민사 50주년, 한호 수교 50주년

    ‘호주 한인 50년사’ 추은택 편찬위원장

    추은택 편찬위원장

    추은택 위원장은 시드니 한인사회에서 항상 자신을 낮추는 부드러운 인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그가 살아온 삶의 궤적을 알고 나면, 그의 겸손한 자세 안에는 더 높은 곳을 지향하는 삶의 철학이 담겨 있음을 깨닫게 된다. 그는 ‘호주 한인 50년사’의 원만한 편찬을 위해 자신에게는 물론 편찬위원들에게도 역사를 대하는 진지함과 겸양의 자세를 주문했다. 다음은 추 위원장과의 일문일답.

    ▼ 2007년이 한국인 호주 이민역사 50주년이었고, 올해가 한호 수교 50주년이다.

    “호주 동포사회가 마침내 반백년의 나이가 됐다는 걸 실감하면서 지내고 있다. 개개인도 나이에 걸맞은 삶을 살아야 하며, 공동체의 경우는 더욱 그러하다. 이러한 측면에서 동포사회가 장년의 원숙미를 보여야 한다. 뭔가 원하는 바를 제대로 해볼 수 있는 연륜이 아닌가.”

    ▼ 한호 관계는 1961년 10월31일 정식 외교관계 수립에 관한 공동성명을 발표하면서 출발했다. 이번 호주 한인 50년사의 첫출발의 근거를 어디에 두었나?

    “편찬위원회 출범 당시에는 이민사의 첫출발에 대해서 모든 가능성을 열어놓았고, 이를 명확하게 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다. 다행히 양명득 편찬위원이 호주 정부가 발행하는 연감에서 1957년 한국인 한 명이 시민권을 취득했다는 사실을 확인한 다음, 진지한 논의 끝에 한인 이민사 50년을 공식화했다.”

    ▼ 책의 제목을 호주 한인 이민사가 아닌 호주 한인 50년사로 정했는데….

    “한인동포 차세대를 생각해서 그렇게 결정했다. 50년 이민사의 출발은 한국에서 건너온 1세대가 했지만 그 후로 수많은 차세대가 호주에서 태어나고 성장했다. 그들을 계속해서 이민자나 이방인 범주에 넣으면 안 된다고 판단했다. 한국계 호주인 (Korean Australian) 이기 때문이다. 후세대를 이민자로 가름하면 호주 원주민인 애버리진 말고는 호주 국민 전체를 이민자로 불러야 한다.”

    개체수만큼의 세계

    ‘호주 한인 50년사’ 추은택 편찬위원장

    2007년 호주 한인 이민사 편찬 기금을 마련하기 위해 기획된 ‘시드니빅쇼’관계자들이 공연을 마치고 한자리에 모였다.

    ▼ 철학자 니체가 “개체수만큼의 세계가 존재한다”라고 말했다. 한인동포 각각의 생애를 하나로 묶어내는 작업이 쉽지 않았을 것이다.

    “다양한 역사연구 및 서술 방법을 채택했다. 우선 1부는 시대에 따라 연대기적 기술 방식으로 구성했다. 2부는 정치 경제 종교 복지 교육 언론 등 문화사적 접근, 3부에서는 각 지역 한인회의 모습을 담는 지역사적인 접근을 시도했다. 그리고 4부는 각 단체 활동을 그리는 생활사적인 측면이 강하다.

    이러한 노력 가운데에서 편찬위원회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부분은 호주 전체 한인사회의 모습을 자료에 의거해서 충실히 서술함으로써 공식사료의 면모를 갖추는 것이었다. 자료가 없는 부분들은 관련 인사들을 교차 인터뷰해 객관성을 검증하면서 서술해야 했다. 수많은 개체가 녹아들어 하나가 되는 의미 있는 작업이었다.”

    ▼ 그래도 엄격한 기준이 없었다면 뒷말이 생길 수밖에 없다.

    “위에서 말한 다양한 서술 방식을 택함으로써 비교적 다양한 기준을 가지고 작업할 수 있었다. 단일한 기준을 가지고 서술함으로써 생길 수 있는 오류를 결정적으로 막을 수 있었다. 실제 편찬위는 자료에 의거해서 호주 전체를 충실하게 서술한다는 기준 이외에는 특별하게 무언가를 내세울 필요성을 느끼지 않았다.”

    ▼ ‘호주 한인 50년사’ 때문에 소송을 당한 적은 없나?

    “솔직히 그런 것을 심각하게 걱정해본 적은 없다. 그러나 살아 있는 인물들에 대한 역사 서술인 만큼 문장 하나, 단어 하나 선택에도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또한 편찬위 활동을 대부분 공개했고, 3회에 걸친 공청회 그리고 출간 직전에 공개열람을 통해 역사적인 평가나 서술의 측면에서 발간 후의 논란과 오류를 줄이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다행히도 3년이 지난 지금까지 소송을 언급한 사람은 아무도 없고, 이민사의 흐름이나 분석에 대해서 심각한 반론이 제기된 바도 없다. 일부 중요한 역사적 사실들이나 인물들이 누락되었다는 지적은 받은 바 있다.”

    주한 호주대사관에서 출판기념회

    ▼ 이 책 출간에 참여한 사람들은 어떤 이들인가.

    “호주 한인사회 전체의 관심과 열의 덕분에 672페이지에 달하는 책을 출간할 수 있었다. ‘충실하게 쓴 공식 호주 한인 역사’라는 작은 소망이 있었고, 출간 후 국사편찬위원회를 비롯해 호주 관련 학자들로부터 제대로 된 이민사가 나왔다는 평가를 받았다. 편찬위원 한 사람, 한 사람 노력의 결과이기도 하지만 특히 편찬위원의 반수가 박사학위를 가진 학자들이라 이 책이 일정 수준 이상임을 담보할 수 있었다.”

    ▼ 50년사가 호주 전 지역의 한인사회를 망라했는데, 어떻게 그게 가능했는가?

    “편찬위는 처음부터 호주 전 지역을 망라하겠다는 목표를 갖고 시작했다. 대단히 어려운 작업이었다. 자료도 부족하고 특히 개인에 따라 상충되는 평가를 내려 편찬위가 곤혹스러운 입장에 처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러나 각 주의 한인사회도 이번 작업을 통해 자기 지역의 역사를 정리해냄으로써 나름의 통합된 의견(consensus)을 갖게 되었다고 생각할 것이다.”

    ▼ 발간 후에 배포하는 일도 만만치 않았을 것 같다.

    “재외동포재단의 협조를 통해 전 세계 한인회와 국내 도서관 800여 군데에 보냈다. 특히 40여 개국 국립도서관에 보내는 것은 책 무게 덕분에 경비도 만만치 않았지만 보람을 느끼고 있다.”

    ▼ 주한 호주대사관에서 출판기념회를 열었다는데….

    “호주 한인 50년사 출간 직후 책 몇 권을 들고 피터 로위 당시 주한 호주대사를 만난 적이 있다. 그가 흔쾌히 출판기념회를 주최하겠다고 제안했다. 호주 한인 50년사가 태어나 첫 대접을 호주 정부 측으로부터 받았다는 것은 꽤 의미 있는 일이었다. 한 달 후, 시드니 한인회에서 주최하는 출판기념회가 시드니 한인회관에서 개최됐다. 짧게는 2년 반 동안의 편찬 작업이었지만, 길게는 20년 동안 본인의 마음속에 담아두었던 숙제를 마무리하는 자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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