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11월호

케빈 러드 호주 외교장관

“FTA 올해 안에 타결 희망”

  • 윤필립 시인, 호주전문 저널리스트 phillipsyd@daum.net

    입력2011-10-25 17:5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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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케빈 러드 호주 외교장관

    이명박 대통령이 지난해 11월 청와대에서 케빈 러드 호주 외교장관을 접견하고 있다.

    케빈 러드(54) 호주 외교부 장관은 한호 수교 50주년을 맞은 올해 안에 자유무역협정(FTA) 협상이 타결되기를 바라고 있다. 지난 4월 자신의 지역구가 있는 브리즈번에서 “한-호 FTA는 큰 틀에서 보면 합의된 사안이다. 언제 끝날지 예측할 수는 없지만 올해 안에 타결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이명박 대통령과 줄리아 길라드 총리가 성공적인 타결을 약속했기 때문에 담당 장관으로서 협상 타결 일정이 앞당겨지도록 노력하는 중”이라며 “한국은 제조업, 호주는 에너지광물 차원에서 접근해왔지만 금융, 의료, 서비스 분야에도 혜택이 많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지난 3월4일 시드니 노보텔호텔에서 월드옥타(World OKTA) 시드니지부 주관으로 열린 ‘한-호 FTA 체결 촉진대회’에 참석한 호주 측 협상대표도 필자에게 러드 장관과 똑같은 의견을 피력했다. 그는 “세계경제의 급박한 흐름이 빠른 타결을 요구하는 상황이어서 협상이 막바지 단계에 접어들었다”고 말했다.

    줄리아 길라드 호주 총리 역시 지난 4월 한국을 공식 방문해 “경제협력 강화를 위해 한-호주 간 FTA가 조속히 타결되어야 한다”고 언급했다. 한국 정부도 최근 호주산 쇠고기에 대한 관세를 단계적으로 철폐하는 방안을 내놓았고, 호주 측이 한국산 자동차에 대한 관세를 철폐하는 등 반대급부를 내놓으면 한호 FTA 협상이 빠르게 진척될 수 있다. 이런 상황에 대해 한국 축산업계가 우려를 표하고 있지만 FTA는 양국 정부가 강하게 원하고 있어 올해 안 타결도 예상된다.

    엄숙한 표정보다는 친근한 미소로 대중과 언론을 대하고, 유연한 태도와 외모에서 풍기는 분위기 때문에 ‘해리 포터’라는 별명을 얻은 케빈 러드 장관. 그는 2007년 총선을 승리로 이끌어 대망의 총리에 오른 다음 2년 넘게 70% 이상의 지지율을 기록해 ‘미스터 70%’라는 새로운 별명을 얻었다.



    호주 일간지‘디 오스트레일리안’2011년 2월6일자는 “케빈 러드 장관이 약 5개월 동안 무려 65일이나 해외로 나가서 ‘케빈 747(항공기)’이라는 새로운 별명 하나를 더 얻었다”고 보도했다. 러드 장관은 파키스탄, 미국의 뉴욕과 워싱턴, 이집트, 요르단, 브라질, 칠레, 인도네시아의 발리, 아랍에미리트, 카자흐스탄, 바레인, 중국, 한국, 일본, 벨기에, 이탈리아 등을 방문했다.

    ‘해리 포터’ ‘미스터 70%’ ‘케빈 747’

    케빈 러드 호주 외교장관

    케빈 러드 장관.

    호주 언론은 총리 재임 당시 그의 줄기찬 해외순방을 소개하면서 직업 외교관 출신인 러드 장관이 국내 업무에 집중해야 하는 총리보다 외교장관에 더 적합한 인물이라는 평가도 곁들였다. 당초 계획대로 그가 유엔 사무총장에 도전했다면 지금쯤 어떤 상황일지 궁금하다는 요지의 칼럼을 게재하기도 했다.

    러드 장관의 친화력은 외교 현장에서 큰 장점으로 작용한다. 특히 총리 재임 당시, 이명박 대통령과 경제 및 안보 분야에서 일치된 견해를 보여서 두 정상은 ‘미들파워 국가의 쌍두마차’로 불렸다. 한 언론은 “2008년 금융위기를 타개하면서 한국과 호주가 비교적 일찍 위기에서 탈출한 것도 두 정상의 공조 덕분이었다”고 보도했다.

    러드 장관은 총리 시절 런던에서 열린 G20 회의에 참석해서 이명박 대통령과의 잘 조율된 공조를 언급한 바 있다. 그는 “호주를 국빈 방문한 이명박 대통령과 심도 있는 대화를 나눴다. 한국과 호주가 G20에서 선진국과 신흥국을 잇는 가교 구실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당시 호주 언론은 “오랫동안 G7, G8 등으로 거드름을 피웠던 미국, 일부 유럽국가, 일본 등의 경제선진국과 새롭게 부상하는 G20 신흥국 사이에서 한국과 호주가 주도적인 역할을 맡았다는 것은 의미심장한 사안”이라고 보도했다.

    한편 러드 장관은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의 친분도 각별해서 서로 ‘마음이 통하는 사람(soulmate)’으로 부를 정도다. 더욱이 그는 중국어를 자유롭게 구사하는 보기 드문 서방 지도자여서 후진타오 중국 국가주석으로부터 융숭한 대접을 받는다. 러드가 총리 직에서 물러난 다음에도 계속해서 별도로 접견하기도 했다.

    한반도 평화 위해 북한 압박

    케빈 러드 호주 외교장관

    케빈 러드(왼쪽) 장관이 지난해 9월 유엔본부에서 반기문 사무총장을 면담하고 있다.



    케빈 러드 장관은 이렇듯 친화력 높은 정치인이지만 북한의 핵실험과 세습 독재체제에 관해서만은 독설을 서슴지 않는다. 북한이 두 차례 핵실험을 강행했을 때 그는 누구보다 강한 어조로 북한 당국을 비난했다. 직분에 관계없이 러드 장관은 일관되게 북한 핵실험을 강하게 비판했다. 2006년 10월 첫 핵실험 당시엔 야당 리더였고, 2009년 5월의 2차 핵실험 때는 현직 총리였다. 북한의 첫 핵실험 후에 존 하워드 정부는 “북한 외교관을 추방하지는 않겠지만, 앞으로 북한사람들의 호주 입국을 금지하겠다”고 북한에 통보했다. 그러자 러드 야당 당수도 지지의사를 밝혔다.

    그 후 노동당이 집권했고, 하워드 정부의 당시 북한 제재조치는 변함없이 유지되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북한 핵개발에 영향을 줄 수 있는 기업과 개인의 대북송금을 중단한다”는 내용의 대북금융제재조치는 5년이 지난 지금까지 고수되고 있다. 이렇듯 핵실험과 테러 등 국가안보 문제에 관해서는 여야가 따로 없는 나라가 호주다.

    러드 장관이 유독 북한을 강하게 압박하는 이유는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 유지가 호주를 포함한 아시아태평양 지역 안보에 직결된다는 현실에 있기도 하지만, 이면에는 1999년과 2003년에 북한을 방문했던 그의 개인적 체험에서 비롯된 측면도 있다. 북한에서 비참한 현실을 목격하고 충격을 받은 것이다.

    그래서인지 러드 장관은 김정일 국방위원장 이름을 거론할 때마다 표정이 굳어진다. 또한 기회 있을 때마다 영양실조에 시달리는 북한 어린이들을 거론하면서 김일성 부자를 ‘국제사회의 무법자(international outlaw)’라고 질타한다.

    북한 위협은 추상이 아닌 현실

    9월28일 워싱턴을 방문한 러드 장관은 “북한의 핵과 미사일은 실질적 위협으로 더 심각해지고 있다. 북한과의 대화에 신중해야 한다”고 경고했다. 또한 호주에서 발행되는 같은 날짜 ‘데일리텔레그래프’에 “북한의 핵 위협이 우리 모두에게 영향을 미친다”는 내용의 기고문을 실었다.

    러드 장관의 이 같은 경고는 최근 들어 남북, 북미 간 회담을 통해 6자회담 재개를 위한 대북 대화 분위기가 이어지는 가운데 나왔다. 그는 기고문을 통해서 “이런 대화 분위기에서도 북한 정권이 핵과 미사일로 무장한 위험한 전체주의 국가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러드 장관은 “호주를 포함한 국제사회가 모든 수단을 동원해서 북한의 도발을 막고 북한 정권에 대한 제재를 강화하는 한편 무기 개발을 저지해야 한다”며 “북한의 위협이 추상적이 아니라 실질적인 위협으로 치닫고 있어 국제사회의 악몽이 될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러드 장관은 지난 7월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열린 동아시아정상회의(EAS)에서도 “북한의 핵미사일은 곧바로 호주에 당도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 북한의 핵이 호주에도 직접적인 위협이 된다”며 “스탈린주의를 고집하고 있는 북한은 현실과 동떨어져 있고, 미국과 한국에 의해서 한반도 안보 불안이 조성되고 있다는 북한의 주장은 터무니없다”고 주장했다.

    그럼에도 러드 장관은 북한을 인도적으로 돕는 일에는 적극적인 편이다. 2006년 첫 핵실험 당시 그는 “북한을 제재하는 것과는 별도로 식량위기를 맞은 북한주민들을 도와주어야 한다”며 “북한을 강력하게 제재하다보면 인도적인 지원까지 중단하게 되어 호주가 도덕적인 딜레마에 빠질 수 있다”고 우려를 나타냈다.

    ‘4전 5기 신화’의 주인공

    케빈 러드 장관은 ‘해리 포터’라는 별명이 붙을 만큼 젊음이 넘치는 외모와 매사에 최선을 다하는 ‘범생이’로 소문났다. 그는 말투가 부드러우면서도 결코 호락호락하지 않은 결단력으로 젊은 층과 여성 유권자에게 인기가 높다.

    러드는 1957년 퀸즐랜드에서 출생했다. 11살 때 교통사고로 아버지를 여의고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낸 그는 ‘데일리텔레그래프’와의 인터뷰에서 “고등학교 시절에 나는 쓸모없는 존재(I was nerd)였다”고 토로했다. 그러나 러드는 학생대표를 맡았을 뿐만 아니라 토론그룹 리더로 활동한 수재였다.

    보수정당이었던 지방당(Country Party) 소속 당원이던 아버지가 갑자기 세상을 떠나자 그의 가족들은 차 안에서 잠을 자야 하는 극빈한 시절을 보냈다. 그는 “불우한 어린 시절에 경험한 일들이 사회 정의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만들었다”고 회상했다. 보수당 출신 아버지를 둔 아들이 진보정당인 노동당에 합류하게 된 속사정을 털어놓은 것.

    러드는 외교부 공무원과 퀸즐랜드 지방정부 관리를 거쳐 1988년 하원의원에 당선되어 정계에 입문했다. 그는 호주국립대(ANU) 중국어과 출신으로 만다린어를 능숙하게 구사한다. 그는 시드니에서 후진타오 중국 국가주석과 만다린어로 대화를 나누어 중국인들을 깜짝 놀라게 했다.

    러드는 호주 기자클럽 연설에서 “호주가 중국 경제의 빠른 성장으로 예상치 않은 지하자원 붐을 맞았고, 그 덕분에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국가 중에서 (드물게) 지속적인 경제호황을 누리고 있다”며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빈부의 격차가 더 커지는 상황이다. 그 해결책은 교육혁명을 통한 기회균등을 부여하는 길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이명박 대통령과 케빈 러드 전 총리는 같은 해에 집권했다. 2008년 새해에 취임한 한국과 호주의 두 지도자는 미국발(發) 국제금융위기라는 예상치 못했던 난제를 맞아 악전고투하면서 집권 첫해를 보냈다. 똑같이 OECD 가입 국가이면서 G20에 포함된 한국과 호주의 경제는 크게 흔들렸고 미래 또한 예측 불가능한 상태였다.

    그런 상황에서 ‘시드니모닝헤럴드’가 여론조사를 실시했다. “러드 총리가 국제금융위기에 잘 대처한다고 생각하느냐?”고 물은 것. 결과는 놀랍게도 응답자의 76%가 “그렇다”고 답변했다. 러드의 정책에 찬성한 76% 중에는 그를 지지하지 않았던 전통적 보수 계층의 찬성표가 59%나 포함됐다.

    ‘미스터 70%’ 그가 돌아올까?

    그런데 2010년 6월24일 호주에서 일종의 정치적 ‘쿠데타’가 일어났다. 호주 역사상 두 번째 헌정 중단사태였다. 국민이 선거로 뽑은 총리를 ‘쥐들(Rats·호주 언론의 표현)’이 몰아낸 것. 노동당(ALP) 소속 우파 의원들과 노동조합 우파 리더들이 그 당사자들이었다.

    잘나가던 사람이 위기를 맞으면 더 허둥댄다. 위기관리 능력이 부족했던 러드 총리는 쿠데타를 진압하지 못했다. 그의 부인 테레사 레인은 “뒤에 숨어있는 노동조합 중진들이 국민이 뽑은 총리를 쫓아내면 어떻게 하느냐?”고 항변했지만 상황이 끝난 다음이었다.

    그러나 쿠데타에 힘입어 집권한 줄리아 길라드 총리의 1년 남짓한 결산은 참혹하기 그지없다. 12년 집권의 하워드 정부를 완패시켰던 노동당은 지난 총선에서 과반 의석을 얻지 못해서 녹색당과 무소속의 도움을 구걸해 간신히 ‘소수정부’를 구성했다. 최근에 발표된 여론조사에서 호주노동당은 역사상 가장 낮은 지지율을 기록했다.

    10월12일자 ‘시드니모닝헤럴드’는 러드 장관을 “미스터 퍼퓰러(Mr. Popular)”라고 칭하면서 “그가 호주에서 가장 인기 높은 정치인(The most popular politician in the country)”이라고 보도했다. 그뿐만 아니라 바닥을 기는 지지도 때문에 위기를 맞고 있는 노동당의 ‘메시아(he is some sort of messiah)’일지 모른다고 덧붙였다.

    한호 간 FTA가 조속히 타결돼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는 케빈 러드 장관이 총리로 복귀한다면 FTA는 급물살을 탈 것이다. 그렇게 되면 수교 50주년을 맞이한 양국 관계도 새로운 차원으로 도약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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