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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사 에세이

정성을 다하는 요리사처럼

  • 이정향│ 영화감독

정성을 다하는 요리사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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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젊은이들이 선호하는 식당들을 가보면 깜짝 놀랄 때가 많다. 맛이 너무 없어서. 퓨전이란 명분으로 위장한 모호한 생김새의 요리, 그런 요리일수록 진한 소스가 쫙 뿌려져 있다. 재료의 신선함에 자신이 없고, 간을 예리하게 맞추지 못한 음식일수록 소스에 의존한다. 우리 때보다 훨씬 잘 먹고 자란 요즘 젊은이들이기에 우리보다 입맛도 더 예민하고 맛난 음식을 가려낼 줄 알았는데 어째 이런 음식에 만족하는지 이해가 어려웠다. 하지만 답은 오히려 단순했다. 수험 공부에 바빠서 엄마 손 음식보다는 외식이나 패스트푸드에 길들었기 때문이란다.

영양가 있는 음식일수록 맛이 간사하지 못하듯이 정서에 좋은 영화도 오락성이 떨어지기 일쑤다. 투자사도 배급사도 관객이 많이 몰릴 영화만 선택하고, 관객들은 거기에 화답하듯 그런 영화들만 찾는다. 그런 중에 ‘우리나라 영화는 죄다 오락물이야, 보고 나면 남는 게 없어’라는 볼멘소리도 나오지만 그 소리는 이내 묻혀버린다.

언젠가부터 캠코더가 가정마다 보급되고, 초등학생도 촬영이 가능한 시대가 되었다. 컴퓨터로 간단한 편집도 가능해져서 관심과 성의만 있으면 짧더라도 자기 작품을 만들 수 있게 되었다. 그런데 한 가지 문제가 있다. 이 학생들이 그전에 영화 감상법을 배울 수 있을런가? 좋은 영화를 선별하고, 자신의 자양분으로 삼고, 다른 이에게 추천하는 안목을 갖추는 것도 중요한 능력이며 이것은 하루아침에 길러지지 않는다. 영화를 제대로 감상하는 법을 배우지 않은 이들이 좋은 영화를 만들 수 있을까? 마치, 음식의 맛을 제대로 음미하고 좋은 음식을 가려내는 입맛을 훈련받지 않은 아이들이 좋은 요리를 만들 수 있을까라는 걱정처럼. 어쩜 그들은 보기에만 화려하고 영양가는 신경 쓰지 않는 음식을 만들면서 그러한 결함을 깨닫지도 못하는 건 아닐까? 더욱이 이 사회가 그걸 부추기는 건 아닐까?

“좋은 요리사 같은 감독이고 싶다”

난 요리사와 영화감독이 많이 닮았다고 본다. 좋은 요리사는 새벽 일찍 일어나 신선한 재료를 구하느라 발품을 팔고, 누가 보지 않아도 천천히 조심조심 요리를 한다. 조미료 한 번 치면 쉽게 끝날 것을 오래도록 우리고 정성을 들인다. 이유는, 먹는 이들을 자기 몸처럼 여기고 아껴서다. 나는 이런 요리사를 닮고 싶다. 정성을 다하는 감독이고 싶다.



사족이지만, 난 한때 요리사의 아내를 꿈꿨었다. 내 입맛에 딱 맞는 요리를 하는 남자라면 천생연분이란 생각이 들었으며 평생 존경할 수 있을 거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먹는 즐거움을 세상의 최고 낙으로 여기지만 불행히도 내 요리 솜씨는 바닥이다. 하지만 맛있는 음식만 먹게 해주면 하루 종일 설거지를 해도 행복해하는 종자다. 요리사의 아내가 되어 산처럼 쌓인 설거지를 하며, 또한 음식을 나르며, 그이의 맛난 음식을 먹으면서 행복해하는 손님들을 보는 게 꿈이었다.

정성을 다하는 요리사처럼
李廷香

1964년 서울 출생

1987년 서강대 불어불문학과 졸업

1988년 한국영화아카데미 졸업

2002년 제39회 대종상 영화제 최우수작품상, 시나리오상 등 다수 수상

영화 ‘미술관 옆 동물원’(1998), ‘집으로’(2002), ‘오늘’(2011) 각본 및 연출


내가 영화감독이 되고 싶었던 이유는, 영화로 인해 내 삶이 많이 행복했으므로 그 누군가에게도 내 영화로 행복을 주고 싶어서였다. 그처럼, 맛난 음식을 먹을 때 제일 행복하므로, 누군가를 음식으로 행복하게 해줌에 요리 솜씨 없는 내가 조금이라도 동참할 수 있다면 그건 설거지와 음식 나르기가 아닐까?

그런데 요리사들은 집에서 절대 요리를 하지 않는단다. 그들 또한 요리 잘하는 아내를 원한다는 것. 나는 그 꿈을 접을 수밖에 없었다.

신동아 2011년 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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