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12월호

“성폭력 피해자 최소 30명 드러나지 않은 사건 여전히 많다”

‘도가니’ 피해자 상담·치료하는 신의진 연세대 의대 정신과 교수

  • 송화선 기자│spring@donga.com

    입력2011-11-23 11: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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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폭력 피해자 최소 30명 드러나지 않은 사건 여전히 많다”

    인화학교 성폭력 피해자들을 상담·치료하고 있는 신의진 연세대 의대 정신과 교수.

    영화 ‘도가니’를 통해 널리 알려진 광주 인화학교 성폭력 사건 피해자들이 이제껏 한 번도 정신과 상담 및 치료를 받지 못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에 따라 심각한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트라우마)’에 시달리며 일상생활에서 조차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11월 초 이들을 상담·진료한 신의진 연세대 의대 정신과 교수는 “우리가 가해자를 처벌하고 학교 법인을 해산하는 데 관심을 쏟는 사이, 피해자들은 남모를 고통에 신음하고 있었다”며 “피해자 중 상당수가 지금도 사건 당시의 기억 때문에 잠을 설치고, ‘이런 얘기 하면 선생님(가해자)이 잡으러 올지 모른다’고 할 정도로 공포를 느낀다. 그들의 머릿속에서 이 사건은 여전히 현재진행 중”이라고 했다.

    또 신 교수는 “정신과 진료를 위한 정밀 검사 과정에서 그동안 알려지지 않은 학교 내 성폭력 사건이 새롭게 드러났다”며 “전문가 없이 진행된 기존 조사 때 피해자들이 미처 떠올리지 못하거나 제대로 설명하지 못한 내용이 이제야 밝혀지고 있는 것”이라고 했다. 그에 따르면 새로 드러난 사건은 기존에 알려진 것보다 더 참혹하다. 피해자는 당초 10여 명을 넘어 최소 30명 수준이고, 그간 드러나지 않았던 가해자에 대한 증언도 나오고 있다는 게 신 교수의 설명이다. 그는 “새로 밝혀진 사건 내용에 대해 의료진뿐 아니라 검사에 동행한 인화학교대책위 관계자들까지 크게 놀랐다”며 “진작 전문적인 진료를 받았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모두 안타까워하는 상황”이라고 했다.

    이번 상담은 영화 ‘도가니’ 개봉 후 광주시가 피해자의 심리진단비, 입원치료비 및 수화통역비 일체를 지원하기로 결정하면서 이뤄졌다. 광주지방경찰청도 피해자와 보호자, 대책위 관계자 등이 경찰차를 이용해 서울을오가도록 배려했다. 신 교수가 이들의 진단과 치료를 맡게 된 건 오랫동안 어린이 성폭력 피해자 치료에 관심을 쏟아왔기 때문. 그는 2008년 일어난 초등학생 등굣길 성폭행 사건, 일명 ‘조두순 사건’ 때 피해자 ‘나영이’(가명)의 정신과 주치의를 맡기도 했다. 11월6일부터 닷새간 인화학교 성폭력 피해자를 대상으로 정밀 검사와 상담을 진행한 그는 현재 단계적인 치료 계획을 세우는 중이다. 11월 말 대책위와 공동 기자회견을 열고 정확한 진단명과 피해 내용 등을 밝힐 예정이다. 신 교수가 이에 앞서 기자를 만난 건 “그전에라도 이들이 현재 심각한 정신적인 고통을 겪고 있고, 그것을 치유하려면 사회적인 관심이 절실한 상황이라는 걸 알리고 싶은 마음”에서다. 신 교수는 “나영이를 비롯해 수많은 성폭력 피해자를 만나고 치료해왔지만 이번처럼 막막하고 가슴 아픈 적은 처음”이라며 입을 열었다.

    현재 진행 중

    ▼ 인화학교 사건이 재조명된 뒤 나영이 아버지가 인터넷 포털 사이트에 ‘아동 성폭력 범죄 공소시효 폐지 청원’을 올려 화제가 됐습니다. 요즘 나영이는 어떻게 지냅니까.



    “무척 잘 지냅니다. 원래 아주 밝고 똑똑한 아이였는데, 그 모습을 거의 되찾았어요. ‘나처럼 아픈 아이를 치료하는 의사가 되겠다’며 공부를 열심히 하고 있지요. 얼마 전에는 대중목욕탕에도 다녀왔다고 하더군요. 신체적·정신적인 상처를 많이 극복한 것 같아 마음이 놓입니다. 인화학교 사건 피해자들을 상담하며 가슴이 무너질 때마다 나영이 생각을 많이 했어요. 의료진과 사회가 최선을 다해 돌보면 이들도 언젠가는 나영이처럼 다시 일어날 수 있을 거라고 믿습니다.”

    ▼ 인화학교 피해자들의 상태가 그 정도로 심각한가요.

    “고통이 오래 누적됐기 때문에 굉장히 안 좋습니다. 이번에 15세부터 35세까지 피해자 8명을 만났는데, 그중 35세 피해자는 초등학교 2학년 때 성폭행을 당한 사람입니다. 인화학교 재판 때는 2000년부터 2005년 사이의 피해만 조사했기 때문에 당시 드러나지 않았던 사람이지요. 그 사이 결혼해서 아이를 뒀지만 여전히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걸로 나타났습니다. 부부관계를 할 때마다 고통스럽다고 해서 마음이 많이 아팠어요.”

    신 교수는 이들을 통해 들은 인화학교의 실태에 큰 충격을 받은 듯했다. 그는 “정치권 인사 중 한 명이 ‘공지영씨가 사건을 사실보다 과하게 묘사했다’고 말했다는데, 그가 과연 사실에 대해 아는지 묻고 싶다. 공지영씨에게 문제가 있다면 오히려 사건을 너무 축소했다는 점”이라고 했다.

    “아이들이 겪은 일은 일일이 묘사할 수 없을 정도입니다. 몇 명이 성폭행당한 수준의 일이 아니에요. 그 학교에서는 교사가 체벌 수단으로 아이들 입에 혀를 넣었다고 합니다. 이 진술을 한 명이 하는 게 아닙니다. 가해자도 한 명이 아닙니다. 교사가 아이들 다 보는 앞에서 자신에게 구강성교를 시켰다고 증언한 아이가 있습니다. 그걸 목격했다는 증언이 또 있습니다. 세 명을 불러다놓고 돌아가며 하도록 시켰답니다. 온 몸이 묶인 채로 성폭행을 당한 뒤 그대로 13시간 동안 방치돼 있던 피해자도 있습니다. 이들을 검사한 심리평가사는 오랜 임상 경험을 거친 잘 훈련된 분인데도 얘기를 듣다 말고 울었습니다. 남자 레지던트도 눈물을 흘렸습니다. 못할 말을 섞어서 얘기하면, 기숙학교 하나 차려놓고 말 못하는 아이들 모아다가 심심풀이 땅콩처럼 성폭행하고 성추행한 겁니다. ‘도가니’가 과장됐다는 얘기가 어떻게 나올 수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 가해자에게 정신적인 문제가 있는 건 아닙니까.

    “한두 명이면 그렇게 얘기할 수 있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이건 광범위하게 벌어진 일입니다.”

    소통의 단절

    신 교수는 2005년 허리케인 카트리나가 미국 뉴올리언스를 덮쳤을 때 해당 지역에서 아동 대상 성폭력이 급증해 사회 문제가 됐다는 이야기를 꺼냈다. 부모를 잃고 보호받지 못하게 된 아이들이 잇따라 피해를 당해 나중에는 자경단이 꾸려질 정도였다고 한다.

    “저는 인화학교가 당시의 뉴올리언스 같은 공간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이번에 상담받으러 온 8명 중 부모가 다 있는 정상적인 가정의 아이는 1명뿐입니다. 피해자들은 듣지 못하고 말하지 못할 뿐 아니라 보호자도 없습니다. 세상 어디에도 피해를 호소할 수 없는 아이를 보고 인간이 왜 그런 생각을 하게 되는지, 저는 정말 모르겠습니다. 앞으로 그에 대한 연구가 더 필요하겠지만, 분명한 건 이 사건이 인간이 저지를 수 있는 가장 끔찍한 범죄 중 하나라는 겁니다.”

    기자는 ‘나영이 사건’ 때도 신 교수를 만나 인터뷰한 적이 있다. 그때 그는 “아이가 겪은 상처가 마음에 와 닿아 참을 수 없다”며 “가해자를 가만두지 않겠다. 또 수사기관이 다시는 피해 아동을 두 번 세 번씩 불러 진술하도록 하지 못하게 하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하지만 이번엔 달랐다. 목소리가 계속 잦아들었다. 눈물이 흘렀기 때문이다. 그는 “내가 농아인에 대해 너무 몰랐다. 듣지 못하고 말하지 못한다는 게 그들을 얼마나 고통스럽게 하는 건지 전혀 몰랐던 게 미안하다”고 했다.

    ▼ 농아인을 상담한 뒤 새로 알게 된 게 뭡니까.

    “그들에게는 일반인과 소통할 방법이 전혀 없다는 겁니다. 저는 필담을 통해 직접 대화할 수 있을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그게 안 됩니다. 단어는 알아보는데 문장은 해석을 못해요. ‘우울하니?’라고 쓰면 알지만, ‘어째서 우울하니?’ 하면 못 알아듣는 식입니다. 진단을 하고 평가를 내리려면 대화를 나눠야 하는데 큰 벽에 가로막히는 느낌이었습니다.”

    ▼ 언어능력이 떨어진다는 말씀인가요.

    “아니요. 수화로는 다 하는 얘기를 일반 언어로는 전혀 표현하지 못한다는 겁니다. 글씨를 읽을 수는 있지만 제대로 된 뜻을 모릅니다. 언뜻 보면 이해하는 것 같은데 실상은 그렇지 않아요. 그들에게 모국어는 수화이고, 우리말은 외국어를 넘어 거의 외계어 수준인 것 같았습니다. 제대로 배우지 못해서 그렇겠지요.”

    소설 ‘도가니’에서 청각장애 학생을 성폭행한 교장이 유일하게 구사하는 수화는 “다른 사람한테 말하면 죽는다”였다. 실제 인화학교 상황이 그랬다. 이 학교에는 사건 당시 수화를 제대로 할 줄 아는 교사가 한 명도 없었다. 국가인권위원회가 2006년 직권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다른 특수학교 상황도 다르지 않다. 당시 전국의 청각장애 특수학교 교사 548명 중 수화통역사 자격증을 소지한 이는 21명으로 3.8%에 불과했다. 수화를 할 줄 모르는 교사와 일반 언어를 이해하지 못하는 학생 사이에서 어떻게 교육이 이뤄졌을지 짐작하기란 쉽지 않다. 신 교수는 “아이들은 학교에서 사실상 방치돼 있었던 것 같다. 그렇다보니 수화가 아닐 경우 일상적인 질문조차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다”고 했다.

    ▼ 가해자들이 자신의 상황을 잘 설명할 수 없는, 지능이 떨어지는 아이만 골라 성폭행한 건 아닙니까.

    “그건 아니에요. 피해자를 대상으로 지능 검사를 한 결과, 3명을 제외하면 모두 정상 범위였습니다. 언어지능 부분에 핸디캡이 있는 걸 감안하면 비언어적인 지능은 일반인보다 오히려 높은 셈이지요. 성폭력 피해를 가장 많이 당한, 가장 지능이 낮은 아이의 인지능력도 7~8세 수준으로 검사됐습니다.”

    신 교수는 “아이들이 제대로 된 교육만 받았어도 좀 더 일찍 사건을 외부에 알렸을 것”이라고 했다가 곧 “아니, 아이들이 그럴 수 있었다면 교사가 이들을 함부로 대하지도 못했을 것”이라고 말을 고쳤다.

    ▼ 그럼 이번 상담은 어떻게 이뤄졌나요.

    “인화학교 사건이 알려졌을 때부터 아이들을 도와온 수화통역사가 모든 내용을 통역했습니다. 의료진의 말을 수화로 옮기고 수화를 다시 일반 언어로 옮기는 동안 모두 그분만 쳐다봤지요. 지난한 과정이었어요. 심리평가사 4명과 의사 3명이 투입됐는데, 긴 검사 시간 동안 아이들이 지치지 않도록 계속 다독이고 달래야 했습니다. 과연 경찰 조사 때도 이렇게 했을까, 아이들이 하고 싶은 말을 충분히 다할 수 있었을까 의문이 들더군요. 이번 일을 겪으며 의료진 모두 ‘수화를 배워야겠다’고 결심하게 됐습니다. 통역사분은 상담을 배우고 싶다고 하셨어요. 미국·유럽에는 수화를 할 줄 아는 상담전문가가 많습니다. 하지만 우리나라에는 전무한 형편이지요. 이 아이들을 치료하려면 앞으로 전문적인 상담을 해야 하는데 그건 또 어떻게 할지 막막한 상황이에요.”

    “푹 잘 수 있어요”

    신 교수는 “이번 일을 겪으며 정신과뿐 아니라 모든 병원에서 농아인은 철저하게 소외돼 있다는 걸 알았다”고 했다. 말이 안 통하는 환자를 진료할 수 있는 시스템이 없기 때문이다. 그들을 따라다니며 일일이 통역해줄 사람이 있다 해도 개인 병원이 막대한 시간을 들여 그것을 감수할 리 만무하다. 결국 농아인은 아파도 병원에 가지 못한다. 인화학교 피해자의 심리검사와 상담이, 사건이 세상이 알려진 뒤 6년이나 지난 후에야 이뤄진 것도 그 때문일 것이다.

    ▼ 상담을 받은 뒤 피해자들 반응은 어떻습니까.

    “많이 편안해하는 것 같습니다. 그동안은 자기들끼리도 사건에 대한 얘기를 거의 안 했나봐요. 재판 과정에서 한번 아픔을 털어놓았는데 흐지부지야 넘어간 뒤로 상처가 덧날까 덮어두기만 했던 거지요. 이번 검사 과정에서 ‘아무도 우리를 안 믿는다’ ‘분하다’ 같은 얘기를 하며 우는 피해자가 많았습니다.”

    신 교수는 이것을 “사건 자체로 인한 정신적 상처와 구별되는 2차 피해”라고 했다. 신 교수에 따르면 ‘나영이’도 그랬다. 당시 초등학교 3학년이던 아이는 참혹한 성폭행을 당한 뒤 수사기관의 실수로 수차 같은 진술을 반복하고, 가해자가 범행을 부인하는 바람에 법정에까지 나가야 했다. 지난 10월 법원은 나영이가 이 과정에서 추가적인 정신적·육체적 피해를 당했다며 “국가는 나영이와 나영이 어머니에게 1300만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신 교수는 이 재판 때 법정에 제출한 나영이의 정신과 진단서를 썼다. “아이가 성폭행만 당했으면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 정도로 끝났을 텐데, 이후 정신적 상처까지 더 입어 심각한 우울증을 앓게 됐다”는 내용이었다. 신 교수는 “처음 병원에 찾아왔을 때 나영이는 밥 먹기를 거부할 정도로 자포자기한 상태였다. 사건이 일어난 후 직접 경찰에 신고하고, 중환자실에서 범인을 정확히 지목했을 만큼 똑똑한 아이인데도 ‘세상 모두가 내 말을 믿지 않는다’는 생각에 무너져 내린 것”이라며 “정신과에서 2차 피해는 그만큼 무섭다”고 했다.

    ▼ 인화학교 피해자도 정신적인 피해에 대한 배상을 받을 수 있을까요.

    “이번 검사를 통해 정신질환 진단이 내려진 만큼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형사재판은 끝났지만, 민사소송은 또 별개의 문제라고 해요. 인화학교 피해자를 돕기 위해 꾸려진 변호인단이 여러 가능성에 대해 검토하고 있습니다.”

    ▼ 이미 오랜 세월이 흘렀는데, 이들의 정신적인 상처가 성폭력 때문이라는 걸 증명할 방법이 있나요.

    “물론입니다. 이번 심리 검사를 통해 피해자들이 성폭력으로 인한 트라우마를 겪고 있음이 드러났어요. 한 피해자는 남자를 그려보라는 주문에 바지 앞쪽 지퍼를 과장될 만큼 선명하게 그렸습니다. 성폭행 피해자의 전형적인 모습입니다. 다른 피해자도 부리부리하게 큰 눈부터 그리거나, 손을 아예 그리지 않는 등 자신이 겪은 사건을 연상시키거나 회피하는 방식으로 남자를 표현했습니다. 또 다른 피해자는 언어 검사에서 거의 모든 단어를 성폭력과 연결지었습니다. ‘경멸하다’라는 단어의 뜻을 물으면 ‘성폭행을 당해서 경멸당한다’라고 대답하는 식입니다.”

    가해자 무릎 꿇려야

    신 교수에 따르면 이번 검사와 상담은 피해자들에게 집단치료와 같은 시간이었다. 사건 이후 거의 처음으로 마음을 열고 서로의 아픔을 공유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검사를 마친 뒤 한 피해자는 “사건 이후 처음으로 잠을 푹 잤다”며 고마움을 표시했다고 한다.

    “그렇다고 지금껏 아이들이 제대로 보호받지 못했다는 뜻은 결코 아닙니다. 피해 아이를 가해자로부터 격리하고 그룹 홈을 운영하면서 돌봐준 분들은 대단히 훌륭한 일을 하신 겁니다. 그분들 덕분에 피해자들이 이렇게나마 버틴 거지요. 사건 당시 열한 살이던 한 남자 피해자는 상담 과정에서 ‘학교 안에 있을 때 늘 무섭고 힘들었다. 그룹 홈에 간 순간 모든 것에서 해방된 느낌이었다’고 했습니다. 다만 그분들이 전문적인 치료의 효과에 대해 모르셨던 거예요. 피해자 중 증세가 심각한 몇 명은 진단 후 바로 약물치료를 시작했습니다. 그러면서 벌써 조금씩 나아지고 있어요.”

    신 교수는 “제대로 짜인 스케줄에 따라 상담치료를 받으면 더 빨리 좋아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회복 속도를 빠르게 하기 위해 또 한 가지 할 일은 가해자가 아이들 앞에 찾아와 사과하게 하는 것이다. 이 역시 보호자들은 하지 못한 일이다.

    “대책위 분들은 그동안 가해자를 처벌하는 데 온 힘을 기울였어요. 그것도 굉장히 중요한 일이지요. 하지만 정신적인 상처를 치유하려면, 가해자의 처벌 못지않게 사과가 필요합니다. 인화학교 피해자들은 그 사이 많이 자랐고 성인이 된 이도 많습니다. 하지만 성폭력을 당했을 때의 작고 무력한 아이에서 채 벗어나지 못하고 있어요. 아직도 ‘밖에 나가서 이런 얘기 하면 가만두지 않겠다고 했는데, 내가 여기서 얘기한 거 알고 선생님이 찾아오면 어떡하냐’고 걱정하고, 울고, 몸을 떱니다. 이런 상처는 가해자가 찾아와 무릎 꿇고 ‘내가 잘못했다. 다시는 너를 괴롭히지 않겠다’고 약속하기만 해도 상당부분 치유됩니다. 최소한 가해자가 다시는 나를 찾아오지 못할 것이라는 확신이 생겨야 해요.”

    ▼ 그걸 법제화할 방법이 있을까요.

    “앞으로 함께 찾아가야겠지요. 인화학교 사건에 충격받은 사람들이 해야 할 일이 참 많습니다. 얘네 불쌍하다, 가해자 나쁘다 하며 눈물 흘리고 분노한다고 해서 뭐가 달라지겠어요.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농아인이 사람답게 살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합니다. 특히 중요한 건 이들을 위한 교육과 의료 시스템을 구축하는 거지요.”

    신 교수는 인터뷰를 하면서 몇 번 눈시울을 붉혔다. “화만 낼 게 아니라 할 일을 해야 한다”고 얘기하며 또 그랬다.

    사회적인 합의

    “계속 눈물이 나는 건, 제가 이런 상황에 놓였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 때문입니다. 모든 걸 다 알고, 모든 고통을 다 느끼는데 나를 보호해야 할 사람들이 나를 장난감처럼 갖고 논다면 어떨까 생각하면 마음이 무너져요. 뻔히 눈앞에 있는 사람에게 그 얘기를 할 수 없고 그저 안으로 고통을 삭여야만 한다면 어떨까요. 농아인은 정신지체장애인이 아닙니다. 말하지 못할 뿐, 말할 수 없는 건 아니지요. 제가 당장 수화를 배워야겠다고 생각한 건 그 때문이에요. 앞으로는 의대에서 수화 가능자를 특별전형 등을 통해 선발하고, 일정 규모 이상의 병원에는 반드시 수화 통역자를 배치하도록 해야 한다는 생각도 합니다. 특수학교에서는 농아인이 사회에서 소외당하지 않도록, 일반인의 말을 읽고 쓸 수 있도록 가르쳐야 할 겁니다.”

    신 교수는 “이번 경험을 통해 나는 삶이 바뀌었다”며 “뜻을 같이하는 사람들과 함께 농아인의 삶을 개선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했다. “이번 일에 마음 아파한 이들이 5년만 함께 뜻을 모으면 세상이 확 바뀔 것”이라는 게 그의 생각이다. “이 문제가 조용히 끝나지 않고, 사회 변화를 위한 시작이 되면 좋겠다”는 신 교수는 “이 일에 앞장서는 동시에 지금 나를 찾아온 인화학교 피해자를 치료하고 재활시키는 데도 힘을 쏟을 것”이라고 했다.

    “당장은 상담치료 방법부터 찾아봐야지요. 일주일에 한 번씩 상담을 해야 하는데 광주와 서울을 오가며 진행하는 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해요. 이번에 도와주신 수화통역사의 도움을 받아 화상 장치를 이용해 원격 상담하는 방법 등을 고민 중입니다. 다행스러운 건 피해자들이 치료받고 싶어하고, 행복하게 살고 싶어한다는 점이에요. 한 명은 나중에 네일숍을 열고 싶다고 하고, 또 한 명은 바리스타가 되고 싶다고 합니다. 치료가 끝나고 정신적인 상처가 극복되면 이들이 사회에서 우리와 더불어 살아가도록 끝까지 돕고 싶습니다. 그리고 이번에 올라오지 못한, 남은 피해자들도 치료를 원한다면 함께 도울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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