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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화민족 거부하며 실효적 지배 노려 중국 민주화가 독립의 변수

중국 소수민족의 앞날

  • 이종훈│시사평론가 rheehoon@naver.com

중화민족 거부하며 실효적 지배 노려 중국 민주화가 독립의 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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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중국 정부의 소수민족정책은 폭압적이다. 소수민족의 고유한 정체성, 문화, 표현의 자유를 뺏고 일자리마저 앗아간다. 인구 수가 많은 티베트, 위구르, 몽골족이 반기를 들고 있다. 이들은 이제 뼛속까지 ‘중국으로부터의 독립’을 원한다.
  • 현 소수민족정책은 임계점에 다다르고 있지만 중국 정부는 폭력을 고수하는 것 외에 달리 방법이 없다. 거대한 제방도 내부의 균열에 무너질 수 있다.
중화민족 거부하며 실효적 지배 노려 중국 민주화가 독립의 변수

지난 2009년 7월 무장한 중국 경찰이 위구르인 시위대를 진압하고 있다.

‘사천 요리’로 유명한 중국 쓰촨(四川)성에서 요즘 승려들이 연쇄적으로 분신(焚身)하고 있다. 11월3일에도 티베트족 시짱(西藏) 자치구 간쯔(甘孜)에서 치우샹이라는 이름의 티베트 여승이 분신했다. 올 들어서만 벌써 11번째다. 성불(成佛)을 위한 분신이 아니다. ‘종교의 자유’와 ‘달라이 라마의 귀환’을 요구하는 반정부 성격의 분신이다. 당연히 민심은 흉흉하고 애도가 시위로 돌변하려는 기운도 감지되고 있다.

2008년 3월처럼 승려의 시위가 짱족(藏族·티베트족과 같은 의미)의 시위로 번지는 상황으로 발전할 수 있다는 관측이다. 일본을 방문한 달라이 라마는 11월7일 “연이은 분신 사태는 중국 당국의 문화 말살 때문”이라고 비난했다. 11월4일 G20 정상회의가 열린 프랑스 칸 인근 니스에서도 티베트 독립 시위가 벌어졌다.

우리나라로 들어오는 중국산 고추의 원산지 가운데 하나인 신장(新疆) 웨이우얼(維吾爾·위구르) 자치구는 11월1일 발생한 규모 6.0의 지진으로 뒤숭숭하다. 이재민이 12만명이나 발생했다. 이곳에서는 테러가 급증세를 보이고 있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을 앞두고 10여 건의 테러가 발생한 데 이어 2009년 7월에는 한족(漢族)과 위구르족이 충돌한 유혈사태로 197명이 사망했다. 이어 8월 말부터 9월 초까지 자치구 수도인 우루무치에서는 한족 여성과 어린이를 겨냥한 주사 테러가 발생했다. 이후 한족들이 보복에 나서면서 계엄 상태로까지 사태가 악화된 바 있다. 2010년 8월 우루무치에서는 삼륜전동차 폭탄 테러가 발생했다.

티베트·위구르·몽골족의 반란

올해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지난 7월 경찰서 습격 사건이 발생한 데 이어 다시 계엄령 속에서 연쇄 폭발과 무차별 흉기 난자 사건이 터졌다. 10월에는 한족 학생과 위구르 학생 간 충돌로 수십 명이 부상했다. 이 사건은 한족 학생들이 위구르 학생들을 집단 폭행한 것에서 비롯됐다. 망명 위구르 단체인 ‘세계위구르회의’의 레비야 카디르 의장은 9월 “중국 당국이 2001년 이후 위구르족 7000명 정도를 수감했다”고 주장한다.

네이멍구(內蒙古)의 상황도 예사롭지 않다. 지난 5월 네이멍구 자치구 남부 츠펑(赤峰)시에서는 수백 명의 몽골인 학생과 유목민이 시위를 벌였다. 메르겐이라는 유목민이 석탄을 실은 트럭 행렬을 저지하려다 한족이 모는 트럭에 치어 숨졌는데 이에 항의하는 성격이었다. 평소 몽골 유목민들은 한족 탄광 노동자의 유입으로 생활터전인 목초지가 위협받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여기에 악의적인 살해까지 당하자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던 것이다. 이어 몽골 유목민 두 명이 광산업체의 한족이 모는 트럭에 치여 숨졌다. 6월 초까지 네이멍구 지역에서는 수천 명이 참여하는 항의 시위가 이어졌다. 중국 당국은 결국 네이멍구 자치구 여러 도시에 계엄령을 선포해야 했다.

중국은 56개 민족으로 이뤄진 다민족 국가다. 이 중 티베트, 위구르, 몽골족의 독립 요구가 거세다. 이들 종족이 이미 독립을 경험한 바 있기 때문이다. 티베트는 청나라 때 중국의 지배를 받았지만 18세기 영국과 러시아의 도움으로 분리를 시도한 데 이어 제2차 세계대전 직후 독립 국가를 건설했다. 그러나 1951년 중국 인민해방군의 침공을 받아 국가 주권을 상실했다.

신장은 청나라 건륭제가 새로운 영토라는 의미의 이름을 붙여준 지역이다. 그러나 신장도 1911년 신해혁명을 거치면서 독립을 한 바 있다. 1949년 인민해방군이 우루무치를 점령하면서 주권을 잃었다. 신장 위구르족은 인접 파키스탄과 중앙아시아 국가에 거주하는 위구르족과 힘을 합쳐 동투르키스탄 국가 건립을 추진하고 있다. 1933년 파미르고원 카슈가르에서 동투르키스탄을 건국했던 경험도 있다.

“중국에서 떨어져나가고 싶다”

이들 지역에선 자기민족 비율이 상대적으로 높다. 한족을 제외한 55개 소수민족의 중국 전체 인구 비율은 8.48%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이들 자치구 내 민족 구성은 달라서 쓰촨성 시짱 자치구에서 짱족의 비율은 전체의 94%에 달한다. 짱족은 중국 내 소수민족 중 가장 인구가 많아 1800만명 정도인데, 이 가운데 45% 정도가 시짱 자치구에 거주하고 있다. 위구르 자치구의 경우에는 위구르족 비율이 45% 선이다. 그 뒤를 41% 정도인 한족이 잇고 있다. 네이멍구에서는 인구 역전 현상이 나타났다. 한족이 79%를 차지하고 몽골족은 17% 정도다.

이들 종족이 중국의 국경선 부근에 주로 거주하는 점도 중국 당국에는 부담이다. 짱족은 중국 안팎의 국경지역에 주로 거주하고 위구르족도 파키스탄,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 타지키스탄, 투르크메니스탄과 인접한 국경 지역에서 산다. 몽골족 역시 같은 민족 국가인 몽골에 인접한 지역에 주로 분포하고 있다. 중국과 국경을 접하는 나라의 자기 민족과 서로 영향을 주고받을 가능성이 높다. 중국에서 떨어져 나와 민족국가를 결성하고자 하는 원심력이 작동할 수밖에 없는 위치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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