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신동아 로고

통합검색 전체메뉴열기

해외 이슈

중화민족 거부하며 실효적 지배 노려 중국 민주화가 독립의 변수

중국 소수민족의 앞날

  • 이종훈│시사평론가 rheehoon@naver.com

중화민족 거부하며 실효적 지배 노려 중국 민주화가 독립의 변수

2/4
중화민족 거부하며 실효적 지배 노려 중국 민주화가 독립의 변수

민속공연을 하고 있는 짱족.

조선족의 경우 민족 문제를 야기할 조짐이 없다. 조선족은 같은 민족국가인 북한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 연변 조선족 자치주에 주로 거주하고 있다. 그러나 인구 비율 면에서 과반을 넘지는 못해 자치주 전체 인구의 37%에 지나지 않는다. 한족 비율은 이미 60%를 넘어선 상황이다. 이 와중에 조선족의 한국 취업 등 해외 이주나 중국 내 다른 대도시 이주가 늘고 있다. 연변 조선족 자치주의 조선족 비율은 지속적으로 낮아지는 추세다.

중국 내 민족 갈등은 세계적 관심사다. 인도주의적 차원에서도 그렇지만 이해관계 관점에서도 그렇다. G2로 성장한 중국이 부담스러운 미국과 주요 선진국은 ‘중국의 분열’을 원한다. 1995년 미국 국방부는 덩샤오핑 사후 2년 안에 중국이 구소련과 비슷하게 분열될 가능성이 높다는 정책보고서를 내놓은 바 있다. 이 보고서는 덩샤오핑 이후 상황전개 시나리오로 기존 노선 유지, 좀 더 적극적인 자유화 개혁 추진, 구소련과 유사한 분열 직면으로 진단 내린 다음에 각각의 가능성을 30%, 29%, 50%로 내다봤다. 그만큼 분열 가능성을 높게 본 것인데, 이것은 미국 정부가 중국의 분열을 원한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아마 일본 역시 마찬가지 기대감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중국의 분열을 원한다는 점에서는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다. 너무 크고 강한 중국이 부담스럽기도 하고, 남북한 통일을 하는 데에도 유리할 듯하며 나아가서 고토 회복도 노려볼 수 있기 때문이다. 중국 내에 같은 민족이 소수민족으로 존재하는 우리의 심정이 이렇다면 중국 주변의 다른 나라도 마찬가지다. 티베트도, 중앙아시아 각국도, 몽골도 우리와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을 것이다. 역으로 바로 이 점이 중국 정부를 더 경계하게 만드는 요인이기도 하다.

대륙에 살면 성격도 대륙적이다?

흔히 땅덩어리가 넓은 나라는 땅에 대한 욕심이 적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또 대륙에 사는 사람은 성격도 대륙적일 것이라고 여긴다. 그러나 현실은 정반대인 경우가 많다. 부자가 한 푼이라도 더 벌기위해 아등바등하듯이 중국도 마찬가지 행보를 보여왔다. 언제나 땅을 더 넓히려고 애써왔고 그것을 지키는 데에 한 치의 양보도 없었다.



현 중국 공산당 정부는 소수민족의 협력을 자양분으로 집권할 수 있었다. 대장정 때나 국공내전에서 승리할 때에 소수민족의 도움이 컸다. 항일전쟁 기간 중 화북지역 전투의 최전선을 책임졌던 국민혁명군 제8로군에는 다수의 조선인이 포함돼 있었다.

사회주의 혁명 이후 중국 정부의 소수민족정책은 이런 역사적 배경을 근거로 형성됐다. 그래서 민족 평등, 민족 구역 자치, 불가분리를 기본원칙으로 했다. 문제는 불가분리의 원칙이다. 본래 이 원칙은 타이완을 겨냥해서 설정한 것이다. 타이완 인구의 84%를 타이완족이 차지하는 상황에서 민족의 분리를 허용한다면 통일도 물 건너간다고 본 것이다. 이 원칙에 따라 다른 소수민족에게도 분리를 허용하지 않겠다는 것이 중국 정부의 방침이다. 이 원칙은 소수민족정책 중에서도 최우선으로 받아들여진다.

우호적인 분위기로 출발했지만 시간이 갈수록 갈등을 유발하고 있는 것이 중국의 소수민족정책이다. 중화인민공화국 설립 초반은 분위기가 좋았다. 민족 간 평등과 자치를 보장하는 원칙하에서 조선족자치주 등 소수민족 자치구(주)가 속속 만들어졌다. 민족교육을 허용하는가 하면 자치구에 대한 경제적 지원에도 적극적이었다.

그러나 채 10년이 지나지 않아 변화가 찾아왔다. 1958년 대약진운동 이후 동화(同化)정책으로 급격히 전환됐다. 소수민족 출신 간부에 대한 숙청이 이어졌다. 당연히 소수민족 관련 기관들의 활동도 정지됐다. 그러면서 등장한 단어가 ‘민족융합’이었다. 1966년 문화혁명에 접어들면서 상황이 더 나빠졌다. ‘4구(구 사상, 구 문화, 구 풍속, 구 습관) 파괴’라는 미명 아래 소수민족의 언어 교육과 방송이 중단됐다. 소수민족 문화예술은 봉건주의고 자본주의이며 수정주의라는 비판을 받았다. 소수민족에게 암흑기가 도래한 것이다. 이때부터 소수민족은 중국 당국의 폭압에 신음해야 했다.

암흑기가 끝난 것은 개혁개방 이후다. 1978년 무렵부터 소수민족 출신 간부에 대한 복권이 이뤄졌고 소수민족 문제를 다루는 기관들도 정상화됐다. 민족구역 자치기관의 민족대표 선출도 허용됐고 소수민족 간부 양성도 재개됐다. 자치구에 대한 경제적 지원도 다시 이뤄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한번 잃은 인심이 회복될 기미는 없다. 소수민족들은 중국 정부에 속은 뒤라 정부가 하는 일은 의심의 눈초리로 본다.

중화민족 vs 대한족주의

당근과 채찍! 중국 정부도 소수민족에게 당근과 채찍을 함께 사용해왔다. 민족자치를 허용하면서도 분리 독립 움직임에 대해서는 선제적으로 또는 압도적으로 제압하는 것이 그것이다. 이를 통해 중국 정부가 궁극적으로 이뤄내려 하는 것은 ‘중화민족(中華民族)’의 구현이다. 중국 정부는 중국 내 모든 민족을 포괄하는 개념으로 중화민족이라는 명칭을 쓴다. 중화 속에서는 모든 소수민족이 하나의 민족이라는 논리다. 중화민족 개념을 뒷받침해주는 이론적 근거로 ‘중화민족 다원일체론’이나 ‘통일적 다민족국가론’ 같은 것이 개발되고 있다.

2/4
이종훈│시사평론가 rheehoon@naver.com
목록 닫기

중화민족 거부하며 실효적 지배 노려 중국 민주화가 독립의 변수

댓글 창 닫기

2019/08Opinion Leader Magazine

오피니언 리더 매거진 표지

오피니언 리더를 위한
시사월간지. 분석, 정보,
교양, 재미의 보물창고

목차보기구독신청이번 호 구입하기

지면보기 서비스는 유료 서비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