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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호기 교수가 쓰는 ‘시대정신과 지식인’ <마지막 회>

민주주의 희생해 산업화 성공시킨 독재자 박정희, 상식과 원칙 추구한 진보적 민주주의자 노무현

  • 김호기│ 연세대 교수·사회학 kimhoki@yonsei.ac.kr

민주주의 희생해 산업화 성공시킨 독재자 박정희, 상식과 원칙 추구한 진보적 민주주의자 노무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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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5·16을 어떻게 명명해야 할 것인지에 대해 논란이 있었다. 당시 쿠데타 주역들은 5·16을 ‘군사혁명’이라고 불렀다. 하지만 ‘지배계급 내의 일부 세력이 무력 등 비합법적 수단으로 정권을 탈취하는 기습적 정치활동’이 쿠데타라면, 5·16은 명백히 쿠데타다. 문제는 쿠데타가 낳은 결과다. 쿠데타에 성공한 박정희는 1963년 결국 대통령에 당선됐고, 산업화를 향한 강력한 드라이브를 걸었다.

두말할 나위도 없이 박정희 시대는 우리 산업화의 역사에서 일대 전환기였다. 구체적으로 1960년에 64%였던 농·어민이 1980년에는 31%로 감소했다. 또 중화학공업화가 진행된 1970년대에는 2차 산업이 1차 산업을 능가하고 중공업이 경공업의 비중을 추월하는 선진국형 산업구조를 갖췄다.

생활수준과 생활양식 역시 크게 변했다. 1961년 87달러에 불과했던 1인당 국민총생산(GNP)이 1979년에는 1597달러로 증가해 절대빈곤에서 벗어났다. 더불어 급속한 경제성장은 아파트·텔레비전 등으로 대표되는 도시적 생활양식을 보급했고, 팝뮤직·할리우드로 대표되는 미국문화의 유행을 가져오기도 했다.

‘국가와 혁명과 나’

개인적 경험을 돌아봐도 박정희 시대는 나의 유년과 청소년 시절을 차지한다. 1960년대에 전기조차 들어오지 않은 시골에서 자랐지만, 도시로 이주해 온 1970년대부터 본격적인 모더니티의 세례를 받았다. 경부고속도로를 타고, 포항제철을 구경하며, 지하철 1호선을 타보기도 했다. 동시에 어린 나이였지만 긴급조치와 남북 대립, 민주화운동 등을 목격하면서 당시 암울한 정치 현실을 어렴풋하게나마 깨닫기도 했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박정희 시대의 이러한 체험은 나의 사회적, 개인적 정체성의 원형을 이루는 것이기도 했다.



박정희의 저작 ‘국가와 혁명과 나’는 그의 시대정신을 집약하고 있다. 이 책은 1963년 당시 박정희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의 초고를 박상길이 정리한 것이다. 박상길에 따르면, 이 책은 박정희의 저작 가운데 철학에서부터 정치·경제·사회, 그리고 인생관에 이르기까지 그의 사상을 가장 정확하게 담고 있다고 한다. 공화당 대통령후보로 나서기 직전에 씌어진 만큼 이 책은 박정희의 정치철학과 시대정신을 선명하게 보여준다.

먼저 5·16쿠데타에 대해 박정희는 다음과 같이 규정한다. “이 혁명은 정신적으로 주체의식의 확립혁명이며, 사회적으로 근대화혁명이요, 경제적으로는 산업혁명인 동시에, 민족의 중흥 창업혁명이며, 국가의 재건혁명이자 인간개조, 즉 국민개혁혁명”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혁명 이념의 연장선상에 1960년대의 조국 근대화 전략이 놓여 있다. 박정희는 가난이 자신의 스승이자 은인이라고 말한다. 이 가난을 벗어나기 위해 그는 자립경제를 위한 산업화를 강조한다. 자립경제 건설은 “혁명을 통한 민족국가의 일대 개혁과 중흥 창업의 성패 여부를 판가름하는 문제의 전부이며, 그 관건”임을 주장한다. 자립경제에 대한 그의 열망은 앞서 지적했듯 19년이라는 짧은 시간에 고도 경제성장을 이루는 경이로운 결과를 가져왔다.

주목할 것은 이 책에서 박정희가 자신의 주요 이념의 하나로 민족주의를 표방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는 쑨원(孫文)의 중국, 메이지유신의 일본, 케말 파샤의 터키, 가말 압델 나세르의 이집트 등 민족주의가 두드러진 외국 사례들을 비교하고 있다. ‘퇴폐한 민족 동의와 국민 정기를 바로잡기 위하여 청신한 기풍을 진작한다’는 쿠데타의 공약은 5·16 군사정부의 민족주의적 지향의 일단을 보여준다.

현재의 시점에서 박정희 시대의 산업화정책을 어떻게 볼 것인지는 여전히 논란거리다. 이와 관련된 핵심 쟁점은 경제적 산업화에 권위주의 정치가 불가피한지의 문제다. 이는 권위주의가 경제성장에 효율적이라고 해서 민주주의를 유보하고 개발독재를 선택해야 하는지, 경제성장과 사회안정이 인권과 정치적 자유보다 중요한 것인지의 문제이기도 하다.

1960년대 당대의 시선에서 보면 박정희식 발전 모델은 상당한 지지를 얻고 있었다. 6·25전쟁에 대한 생생한 기억은 사회안정에 대한 희망을, 보릿고개의 암울한 현실은 경제성장에 대한 열망을 낳았으며, 이러한 희망과 열망은 위로부터의 국가적 동원을 통한 산업화에 유리한 토양을 제공했다. 개인적 체험을 돌아봐도 1970년에야 흑백텔레비전을 볼 수 있었던 나는 1979년 대학에 입학할 때는 이미 다양한 문명의 이기를 두루 누리고 있었다.

문제는 경제성장에 성공했다고 해서 박정희식 모델이 정당화될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중요한 것은 박정희식 모델이 경제성장과 민주주의를 결합하는 데 과연 얼마나 노력을 기울였는지에 있다. 1969년의 3선 개헌에서 1972년의 10월 유신에 이르는 절차적 민주주의에 대한 부정, 특히 유신체제의 암울한 독재는 이 시대가 얼마나 비민주적이었는지를 입증한다.

박정희 시대의 재평가

박정희식 모델은 경제적 산업화를 위해 정치·사회적 민주화를 희생시켰으며, 이를 정당화하고자 했다. 이 모델은 중앙정보부로 대표되는 물리적 폭력에 기반을 둔 정치적 지배를 획책했으며, 그 결과로 나타난 침묵의 사회는 박정희 시대의 또 다른 자화상이었다. 요컨대 박정희 시대는 그 명암이 뚜렷한 시대였다. 우리 사회를 농업사회에서 공업사회로 변화시키는 고도성장을 가져온 산업화의 시대였지만, 동시에 정경유착이 관행이 되고 인권탄압이 가해진 권위주의의 시대이기도 했다. 더불어 박정희 시대에 뿌리내린 성장지상주의와 군사문화는 아직까지 우리 사회 심층의식의 일단을 이루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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