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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아·서울대 HK문명연구사업단 공동기획 - 문명의 교차로에서 ⑫

“중국인들은 신의 하강을 원했다”

홍수전의 태평천국, 유학 가족주의가 만든 중국적 하느님

  • 이혜경│서울대 인문학연구원 HK연구교수·동양철학 ahoja@hanmail.net

“중국인들은 신의 하강을 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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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상제(上帝)는 기독교의 유일한 실체로서의 신이 아니라, 만물 가운데 최선의 상태에 있는 존재다. 중국 전통에서 이런 인물은 성인이라 불렸다. 성인은 인간이 꿈꿀 수 있는 최고의 경지에 있는 인물이었다. 성인과 평범한 사람이 본질에서 하나인 것처럼, 홍수전의 배상제회에서 신과 인간은 본질에서 하나다. 신과 인간은 동기(同氣) 이며 신과 인간 사이의 사랑은 동기간(同氣間)의 사랑이다.
  • 중국인들의 너무나 강한 현세중심적 사고는 하늘에 살던 신마저 지상으로, 인간 쪽으로 끌어내렸다. 유학에 뿌리를 내리고 자란 강한 가족주의는 하느님마저 한 가족으로 만들고, 그 하느님 역시 강한 가족주의 정서에 의해 움직이는 존재로 만들었다. 그 하느님은 자식을 위해 모든 편의를 돌봐주는 아버지로서 아들의 집을 수시로 드나든다. 하느님이 드나들며 보살펴주는 곳, 그곳이 바로 지상천국이었다.
“중국인들은 신의 하강을 원했다”

태평천국의 난을 배경으로 한 영화 ‘명장’.

우리는 날마다 수많은 사람을 스쳐 지나지만, 아무도 만나지 않은 채 며칠이 이어질 수도 있다. 스쳐 지나갔을 뿐 서로에게 어떤 변화도 일어나지 않았다면 우리는 만났다고 하지 않는다. 눈이 맞거나 마음이 맞거나 이해관계가 맞을 때 우리는 누군가를 만난다고 한다. 만남이 일어난 것은 수많은 조건이 맞아떨어졌기 때문이다. 모든 원소가 만나서 화학작용을 일으키는 것은 아니므로 만남이 이루어지는 데는 당사자의 특성이 무엇보다 중요할 것이다. 그러나 그에 필적하게 타이밍 또한 중요한 요소다.

기독교는 몇 백 년에 걸쳐 중국의 문을 두드리며 중국인과의 만남을 시도했다. 현재의 시점에서 그 노력의 역사를 보면 기독교의 선교 노력은 성공적인 결실을 보았다고 볼 수 없다. 그러나 그 가운데서도 기독교의 영향력이 가장 빛나던 시대가 있었다. 19세기 중반기에 중국을 풍미한 상제교(上帝敎)와 그 종교집단이 건설한 태평천국이라는 나라에서였다. 당시 선교사들도 그런 의견이었지만, 현대 기독교인들이 보면 ‘이건 기독교가 아니다’라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들은 성경을 받아들이고 유일신 하느님을 믿었으며 십계명을 지켰다. 사후 심판과 천당에서의 영생도 믿었다.

사대부 기독교와 농민 기독교

그런데 그들은 지상에도 천국을 건설했다. 천상 천국에서의 생활이 지상 천국에서의 생활과 그리 다른 것으로 그려지지도 않았다. 그들의 천국은 지극히 현세 중심적인 중국인들의 태도가 가미되어 빚어진 것이었다. 즉 이들의 기독교는 중국의 기독교였다. 또한 명(明) 말에 지식인들이 신도였던 기독교와 달리 농민이 신도였다. 기독교는 중국을 만나 본래의 모습과는 꽤 다른 모습으로 단장하고 중국 농민에게 다가갔다. 중국 농민의 기독교가 어떤 토양에서 싹트고 성장해서, 중국 농민들에게 어떤 길을 열어주었는지, 왜 지금은 그들의 모습을 볼 수 없는지 알아보자.

중국에 처음 소개된 기독교는 당나라 때 들어온 경교(景敎·Nestorianism)로 알려져 있다. 200여 년간 중국인 신자를 보유하며 존속했다고 하는데, 사료의 부족으로 자세한 상황은 알 길이 없다. 그 다음의 선교는 명나라 말기, 예수회에 의해서 이루어졌다. 중국에 파견된 예수회 선교사 마테오 리치(Matteo Ricci· 1552~1610)는 중국에 20년 동안 거주하면서 한문과 중국어를 익혔다. 명나라 황제는 그가 진상한 자명종에 반해 북경에 정주하는 것을 허락하고, 나아가 교회를 세우는 것도 허락했다고 한다. 당시 마테오 리치는 사대부들을 대상으로 선교활동을 했으며, 그가 중국어로 편역한 ‘천주실의(天主實義)’ 역시 유가적 세계관과 교양을 가진 사대부를 대상으로 한 책이었다.

“중국인들은 신의 하강을 원했다”

예수회 선교사 마테오 리치는 물아일체의 성리학적 세계관을 선교의 걸림돌로 보고, 인간은 신에 의해 심판받는 비자립적 존재라고 역설한다.

당시 중국 사대부를 지배한 것은 정주성리학(程朱性理學)적 세계관이었다. 정주성리학은 세상을 이(理)와 기(氣)의 결합으로 설명한다. 이 세상의 모든 존재는 기의 흐름이며 기의 응결이다. 그 기가 각각의 개별자로 존재하는 것은 이가 그 기에 깃들어 있기 때문이다. 이는 그 개별자를 개별자로 만들어주는 존재의 원리다. 그런데 개별자의 원리일 뿐 아니라 그 원리의 총체이기도 하다. 정주성리학은 이와 기를 태양과 그릇에 비유해서 설명한다. 이는 보편적인 것이므로 하나다. 그 보편적 이가 각각의 그릇에 갇힘으로써, 현실에서 개별자들은 각각 다른 모습으로 드러난다. 이 개별자의 윤리적 의무는 자신이 품고 있는 태양이 굴절 없이 그 빛을 발산하도록 자기 그릇을 닦는 것이다.

이 세계관은 세상의 모든 존재가 기라는 동일한 근원에서 나왔다고 설명한다. 물론 보편원리인 이의 존재가 있지만, 이 보편원리조차 이 기와 별개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기에 깃드는 것으로서, 개별자 외부에 있는 것이 아니며, 이 현실을 벗어나 있는 것이 아니다. 논리상으로 모든 개인은 이라는 보편원리를 자신의 그릇 속에 간직하고 있는 완전체다. 이들은 본성적으로 선하기 때문에, 밖에서 선을 구할 필요도 없고 타자에게 자신의 구원을 요청할 필요도 없다. 이들은 도덕적으로 자족할 수 있는 존재다. 이 세계관 안에서 자신의 도덕적 성장을 위해 노력하는 인간은 종국적으로는 만물일체의 경지를 꿈꾼다. 자신의 본성을 어떤 장애도 없이 실현한다면 만물과 내가 하나가 되는 경지가 열린다.

성리학적 세계관이 선교의 걸림돌

마테오 리치는 기가 모든 존재의 근원이라는 이 사고, 그리고 보편원리인 이가 현실의 개별자에 내재한다는 사고가 선교의 걸림돌이라는 것을 재빨리 알아차렸다. 이런 세계관이라면 인간 세상과 다른 차원에 있는 신의 존재를 납득시킬 수가 없다. 그는 이성영혼이라는 것은 만물이 아니라 인간의 본질임을 역설함으로써 인간을 만물에서 떼어내고, 그 인간 역시 신에 의해 심판받아야 하고 신에 의해서만 구원받을 수 있는 비자립적인 인간으로 규정한다. 리치는 공을 들여 만물일체 이론을 부정하고, 영혼과 육체, 정신과 물질의 대립을 무화시키는 기 개념을 부정한다. 만물일체의 세계관을 부정하는 한편에서 그는 또한 성선론의 전통 안에서 스스로의 도덕성에 대한 믿음을 간직하고 있는 사대부들에게 영합하기 위한 노력도 한다. 즉 신의 구원을 강조하는 대신에, 인간은 본성적으로 선하며 인간은 악을 선택하는 자유의지 외에도 선을 선택하는 자유의지 역시 갖고 있다고 강조한다.

이러한 노력으로 마테오 리치는 한정된 숫자이긴 했지만 어느 정도의 사대부 신도를 얻을 수 있었다. 마테오 리치가 사망한 당시에 그 신도 수는 2000명에 달했다고 한다. 그러나 왕실을 비롯해 사대부들이 그들과 가깝게 지냈던 데에는 기독교보다는 그들이 들고 온 지도나 역법, 혹은 천문이나 수학에 관한 지식에 매료되어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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