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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석주의 크로스(CROSS) 인문학 ⑫

한 해의 끝에서 생각한 산다는 것은?

  • 장석주| 시인 kafkajs@hanmail.net

한 해의 끝에서 생각한 산다는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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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은 것들의 정치’가 우리 삶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거대한 국가권력보다 중학생이 들고 나온 촛불 시위가 더 큰 반향을 일으킨 것처럼. ‘작은 것들의 정치’는 이제 세계적인 현상이 됐다. 이란, 예멘, 리비아, 이집트 등이 ‘작은 것들의 정치’로 변화를 맞았다. 박원순 서울시장의 당선도 같은 경우다. 모두 ‘커다란 정치’가 무능하고 부패했기 때문이다. ‘커다란 정치’ 속에 우리의 ‘의미 있는 하루’는 사라졌다. 누가 우리의 평화롭고 고요한 삶을 빼앗아갔을까.
한 해의 끝에서 생각한 산다는 것은?
물은 차고 기온은 떨어졌다. 유실수의 열매는 남아 있지 않고, 노랗고 붉게 물든 나뭇잎들도 다 졌다. 엽록소를 잃은 잎들은 나무에게 아무 쓸모도 없다. 여름 내내 왕성한 광합성 작용을 하며 나무의 성장과 생존에 일조하던 나뭇잎들은 쓸모를 다한 뒤에 나무 밑동으로 떨어져 썩어서 제 자양분이 나무의 뿌리에 돌아가도록 한다. 숭고한 헌신이다. 11월 하순이 지날 무렵부터 몸통과 날개의 푸른빛을 잃고 갈색으로 변해버린 사마귀들이 나타난다. 사마귀의 몸통은 굵고 통통하다. 여름의 날씬한 유선형 몸통을 가진 사마귀가 아니다. 그 움직임 역시 풍을 맞은 노인같이 눈에 띄게 느리다. 살 날이 많이 남아 있지 않다는 증거다. 얼마 지나지 않아 놈들은 마른 풀밭에서 생의 최후를 맞는다. 기온이 영하로 떨어질 무렵 무당벌레들은 살아남기 위해 필사적으로 실내에 들어오려고 한다. 욕조의 물 위에도 무당벌레가 뜨고, 온기가 도는 방바닥에도 무당벌레가 기어 다닌다. 이들은 용케도 살아남은 것들이지만, 많은 무당벌레가 문틈에 끼어 몸통이 으스러지거나 사람의 발밑에 깔려 죽고, 남은 것들은 말라 죽는다. 겨울은 곤충에게 혹독한 시련의 세월이다. 산란을 마친 곤충들은 덧없는 생을 마치고, 여러 해를 사는 뱀이나 곰들은 깊은 동굴을 찾아 동면을 취한다. 살아 있는 것들은 하나도 예외 없이 몸을 움츠려 에너지 손실을 적게 하면서 겨울의 혹독한 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해 생명의 최소주의에 기꺼이 타협한다.

경쟁은 생명의 본질

“생명은 경쟁이다.” 이 문장은 타이베이 출신의 작가 겸 화가인 류융의 책 ‘살아간다는 것, 경쟁한다는 것’을 읽다가 발견한 것이다. 잠시 이 문장을 앞에 두고 숙연해졌다. 경쟁의 궁극은 내가 살기 위해 남을 죽이는 것이다. 사람과 사람은 생명으로서 평등하고, 사람과 사물은 물(物)에 작동하는 중력의 계율 안에서 평등하다. 그러나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는 기어코 경쟁에 뛰어든다. 그게 상생과 상극의 이치 속에 있는 사람의 운명이다. 용케도 살아 있는 동안 모든 경쟁에서 이긴 사람이라도 결국은 자연 수명을 다한 뒤에는 죽는다.

“우리는 살아가야 하기 때문에 죽인다. 결국 이 우주에서 가장 거대한 살육의 주인공은 바로 나를 낳고, 나를 기르고, 나를 넘어뜨리고, 나를 데려가는 하늘이 아니겠는가!”(류융, ‘살아간다는 것 경쟁한다는 것’)

경쟁이라는 어휘는 이미 ‘장자’의 ‘제물론(齊物論)’편에 나타난다.

“쫓음이 있고 다툼이 있다. 有競有爭.”

먼저 ‘경(競)’은 ‘추구하여 쫓다’라는 뜻이다. 다음에 ‘쟁(爭)’은 ‘승부를 다투다’라는 뜻이다. 개인 간의 다툼은 싸움이고, 나라 간의 다툼은 전쟁으로 이어진다. 경쟁은 더도 아니고 덜도 아닌 생명의 본질이다. 경쟁에서 이겼다는 것은 먹히지 않고 먹었다는 뜻이요, 출세했다는 뜻이다. 그것은 일견 인생의 성공으로 비칠 수도 있다. 그러나 경쟁에 이겨 얻은 승리가 영구한 것은 아니다. 한 번 경쟁에 이긴 사람은 더 큰 경쟁에서 지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러니 지혜로운 사람은 그런 무한경쟁 속에 자신을 몰아넣어 마음을 황폐하게 만들지 않는 법이다. 노자도 도(道)를 깨달은 사람은 생명이 처한 경쟁의 굴레에서 홀연히 벗어난다고 적었다.

“오직 다투지 않으니, 천하에 그와 다툴 자가 없다. 옛날에 이른바 굽히면 온전해진다는 말이 어찌 허튼소리겠는가! 참으로 온전하게 도로 돌아가는구나. 夫唯不爭, 故天下莫能與之爭. 古之所謂曲則全者, 豈虛言哉! 誠全而歸之.”(‘도덕경’ 22장)

어느 날 작가는 사마귀 한 마리를 포획해서 ‘애완’으로 기르면서 먹이를 주고 병을 고쳐주고 짝을 찾아주면서 그 생태를 낱낱이 기록하기 시작했다. 그 많은 곤충 중에서 하필 사마귀라니! 사마귀는 다른 곤충들을 잔인하게 잡아먹는 ‘킬러’가 아닌가. 어쨌든 류융은 사마귀를 잡아 기른다.

“번개 같은 속도로 기습하고, 맛을 볼 때는 침착하게 조금씩 음미하고, 날카로운 침을 꽂은 뒤에는 산처럼 움직임이 없다.”(류융, 앞의 책)

그러면서 생물의 세계에 작동하는 ‘이치’들을 깨닫는다. 그 이치로 가 닿은 핵심이 “상생과 상극의 이치, 강한 자와 약한 자의 운명, 그리고 어쩔 수 없는 삶의 모습”(류융, 앞의 책)이다. 날이 갈수록 사는 일이 팍팍하다. 하루하루가 생존의 몸부림이라고 할 만한 고투(苦鬪)다. 그 고투는 대부분 경쟁의 형식을 취한다. 살아간다는 건 그런 경쟁 속에 내던져져 있다는 뜻이다. 그 경쟁이 늘 공정하게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더 많은 불공정한 경쟁 속에서 삶을 이어간다.

“사회는 겉으로는 대단히 점잖게 예교(禮敎)를 요구하지만, 그 밑바닥을 보면 정도(正道)를 벗어난 일들이 층층이 깔려 있다.”(류융, 앞의 책)

우리 삶이 팍팍하고 사는 게 고달픈 것은 바로 그런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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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석주| 시인 kafkaj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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