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1월호

세금도 안 내고 장사한다?

  • 김규수│법률사무소 행복세상, 재단법인 행복세상 전문위원 cpa5183@hanmail.net

    입력2011-12-21 15:5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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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화점 사업으로 유명한 국내 한 대기업 L사가 ‘세금도 안 내고 장사한다’는 제목의 언론 기사로 지역사회의 비난을 산 적이 있다. L사가 대형 건축물을 건축하고도 등기부 등재를 하지 않아, 납부해야 할 등록세를 내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많은 국민은 그 기사를 보고 “나쁜 놈들! 월급쟁이도 매달 꼬박꼬박 세금 내는데 대기업이 세금도 안 내고 장사하다니!”라고 비난했다. 이후에도 L사에 대한 같은 내용의 기사가 가끔 보도되었으며, 한번은 L사 관계자가 “세금을 납부하는 방안을 검토해보겠다”라고 ‘죄인처럼’ 말하는 것이 보도되기도 했다.

    하지만 국민에 대한 세금 부과는 법률에 근거해야 한다는 조세법률주의 관점에서 볼 때 그 대기업은 안 내도 될 세금을 안 낸 것일 뿐이어서 아무 문제가 없다.

    만약 내야 될 세금을 내지 않고 있다면 세무당국이 세금을 추징하면 될 일이다. 탈루세금도 조사해서 추징하는 것이 세무당국의 임무이니, 언론에까지 보도된 사안에 대해 조사도 않고, 세금 부과도 않는다면 세무당국의 임무해태일 것이다. 실제로 많은 기업이 세무조사 후 세액을 추징받아 세금을 납부하고 있다. 만일 세금이 체납되면 재산을 압류·공매 처분해 충당하면 된다.

    L사가 건물을 신축하고 난 뒤 등록세를 납부하지 않는 데에는 다음과 같은 법률적 이유가 있다. 건물에 대한 부동산등기는 소유권 보존등기와 소유권 이전등기로 구분된다. 소유권 보존등기는 존재하지 않던 부동산이 새로이 생겨났을 때 하는 등기를 말하는데, 가령 건물을 신축해 등기하는 경우다. 그리고 소유권 이전등기는 매매 등으로 기존의 부동산을 타인에게 이전할 때 하는 등기를 말한다.



    그런데 우리 부동산등기특별조치법에는 기존 부동산을 제3자에게 이전할 경우 즉 소유권 이전 시에는 그 부동산에 대한 등기 의무가 있지만(소유권 이전등기를 하지 아니할 경우에는 등록세의 약 5배 이하의 과태료 처분을 받도록 규정되어 있다), 부동산이 새로이 생겨났을 때 하는 등기인 소유권 보존등기에 대하여는 등기 의무가 규정되어 있지 않다. 등록세는 등기라는 행위가 있어야 부과되는 세금이다. 이는 법인이든 개인이든 마찬가지이다. 물론 소유권 보존등기 없는 부동산을 타인에게 팔 때는 원 소유자가 소유권 보존 등기를 한 뒤 팔아야 한다. 그런데 다른 사람에게 부동산을 팔기 위해 소유권 보존등기를 할 경우에는 건물을 신축한 시점이 아닌 실제 소유권 보존등기를 하는 시점의 가액이 등록세의 과세표준이 된다. 가령 건축물 신축 후 20년 정도가 지나 그 건물을 팔기 위해 소유권 보존등기를 할 경우 보유기간의 감가상각비가 과세표준에서 공제됨으로써 신축 시점에 소유권 보존등기를 할 경우와 비교해 납부할 등록세가 절반 이하로 줄어들어 그 기간의 이자만으로도 등록세를 납부하고도 남는 결과가 되는 것이다.

    결국 세금도 안 내고 장사한다는 L사는 건물을 지은 후 이를 당장 타인에게 팔 것도 아니고, 자금력이 풍부해 금융권으로부터 부동산 담보대출에 따른 저당권 설정 등의 등기를 요구받을 일도 없고, 소유권 보존등기를 안 했다고 해 소유권 주장에 지장을 초래하는 것도 아니어서 굳이 등록세를 내가며 등기할 필요성이 없었던 것이다. 한마디로 탈세가 아닌 ‘절세’인 것이다.

    세법을 다루는 사람들에게 조세법률주의는 금과옥조다. 이 조세법률주의는 과거 절대왕정 시절 군주의 말 한마디에 온갖 명목의 세금이 징수되어 국민에게 경제적으로 큰 부담을 주는 폐해를 바로잡기 위해 사회적으로 합의된 근대 세정의 대원칙이다.

    법적 근거 없이 “돈 있는 사람이 세금을 많이 내야지”라는 주장을 쉽게 접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런 발상은 자유민주주의와 자본주의 사회의 근간인 법적 안정성을 해치는 일이다. 세금으로부터 자유로운 이는 아무도 없다. 세금은 국민이 선출한 대표들이 모인 국회에서 법률을 제정해 부과해야 한다. 우리 조세 행정을 보면 시행령, 시행규칙, 세무당국의 예규 등이 주어진 법률의 한계를 벗어나거나 임의로 변경하는 것같이 보이는 사례도 적지 않다. 물론 최종적으로는 사법부의 판단에 의해 과세행정의 적법성에 대한 결론이 내려진다. 하지만 국민, 특히 기업은 세무당국에 약한 것이 현실이니 세무당국에 맞서 세금 부과의 올바름을 다투는 것이 쉬운 일만은 아니다. 납세는 국민의 의무이자 권리다. 항상 자신이 내는 세금이 올바르게 부과되었는지, 그리고 올바르게 사용되는지를 지켜보고 감시하는 것도 국민의 의무다.

    세금도 내지 않고 장사한다는 기사가 게재된 날 저녁 퇴근길에 택시를 탔다. L사가 운영하는 백화점 앞을 지날 때 택시기사는 입에 거품을 물고 비난해댔다. “가진 사람들이 더해, 이런 기업 물건은 팔아주면 안돼요.” 그 택시기사에게 그렇게 된 사유를 설명해줬다. 그가 “그런가요?” 하며 머쓱해 했던 기억이 새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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