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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view

“범죄자는 우리 주위에 있다. 처벌보다 중요한 건 사전에 막아내는 일”

‘국내 1호’ 범죄심리학자 강덕지 국과수 범죄심리과장

  • 박은경│신동아 객원기자 siren52@hanmail.net

“범죄자는 우리 주위에 있다. 처벌보다 중요한 건 사전에 막아내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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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죄자는 우리 주위에 있다. 처벌보다 중요한 건 사전에 막아내는 일”

30년간 국과수에서 범죄심리 분야를 담당해온 강덕지 범죄심리과장

시종 카랑카랑하고 거침없던 강 과장의 말투는 ‘타고난 기질’과 ‘범죄 성향’에 대해 언급할 때면 조심스러워졌다. 지난 6월 미국 ‘뉴욕타임스’는 “일부 범죄학자들이 유전자가 범죄를 저지를 위험성을 높이고 그러한 특성이 유전되는지에 대해 조심스럽게 연구하고 있다”는 내용의 기사를 실었다. 이 기사를 소개한 국내 언론은 “유전자와 범죄의 연관성은 일부 유전자가 행복 호르몬으로 불리는 세로토닌의 분비를 억제하는 것과 관련이 있다. 이런 유전자를 가진 사람은 더 공격적이고 충동적인 성향을 갖게 된다는 것이다. … 하지만 과학자들은 유전자만 갖고 누가 범죄자가 될지를 알 수는 없다고 강조한다. 충동적인 성향을 억누르는 자제력이 약하다든지 범죄를 저지를 가능성이 큰 성향의 유전자를 갖고 있더라도 주변 환경에 따라 범죄 성향이 발현될 수도, 억제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똑같은 범죄 성향의 유전자를 갖고 있더라도 어떤 부모 밑에서 자랐는지, 또 어떤 친구와 사귀었는지 등에 따라 범죄를 저지를 수도,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라고 했다. 인간의 유전자가 범죄에 영향을 미칠지 모른다는 가설은 현재 범죄학자들 사이에서도 매우 조심스럽게 검토되고 있는 단계다.

▼ 어떤 환경이 범죄에 영향을 미치나요?

“1997년 외환위기 이전과 이후의 사회를 비교해보세요. 이전에는 우리 사회에 ‘정’이란 게 있었어요. 어려우면 돌봐주는 인간적·유기적 관계가 있었지요. 하지만 외환위기 이후 철저한 ‘승자독식’의 생존경쟁이 치열해져 나 아니면 자신을 구제할 사람이 없어졌잖아요. 외환위기 때 자살자와 노숙자, 이혼자가 속출했지요. 공생·공동체 문화가 살아있다면 어려움에 내몰릴 때 기댈 곳이라도 있을 텐데 이제는 그게 사라졌단 말이죠. 지금은 1등 아니면 전부 꼴찌 취급을 받아요. ‘패자부활전’이란 것도 없어졌고. 얼마나 억울하겠어. 이런 사회 분위기에서 궁지에 몰린 사람들이 어디 가겠어요? 사회가 황폐해지고 패자가 늘면 범죄를 일으키는 사람이 늘 수밖에요.”

가해자 vs 피해자

▼ 요즘 ‘묻지마 범죄’나 연쇄살인, 존속살인 등의 사건이 점점 늘어나는 느낌입니다. 범죄가 점점 잔혹해지는 것 같은데, 현장에서 보시기엔 어떻습니까.



“과거에 비해 충격적이고 잔인한 사건이 확실히 많아졌죠. 지금 우리 사회가 정신적·인격적으로 문제아를 양산하는 환경이기 때문일 겁니다. 사회 전체가 정신적 스트레스를 가중시키는 분위기인데 그걸 풀어줄 장치는 없고 인성교육도 안 되니 성격과 인격에 문제가 오는 거예요. 그런 사람이 끔찍한 범죄를 저지르니 사정과 배경을 모르면 동기도 불분명해 보이고 쉽게 이해가 안 가는 거지요. 과거에 비해 정신질환자도 늘었고, 질병이 아닌 성격장애, 인격장애를 가진 사람도 많아졌어요. 이런 사람들은 이해하기 어려운 범죄를 저지릅니다. 불안장애를 가진 친구가 사랑하는 여자한테 버림받을까봐 늘 불안해하다 결국 자기를 떠나지 못하게 죽여버린 사건이 있었어요. 그런 거지요. 스트레스가 심해지면 언젠가 자기가 살기 위해 그걸 풀게 됩니다. 밥 먹고 배설이 안 되면 변비가 되듯, 스트레스도 적당한 순간 배설하지 못하면 범죄가 되는 거예요. 분노 때문에 살인한 사람이 있다고 칩시다. 옛날에는 자극을 열 번 받아야 사람을 죽였다면 지금은 세 번, 네 번 만에 살인해요. 역치(·#53451;値) 수준이 낮아진 거죠.”

▼ ‘역치’라는 게 임계점이나 한계 같은 건가요

“그렇죠. 심리학적으로 ‘역치’는 외부 자극에 대해 반응이 나오는 수준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사람은 역치 상황이 되기 전까지는 참을 수 있지만 그걸 넘어서면 생명의 위협을 느끼고 반응하게 돼요. 자신이 살기 위한 반응이죠. 부모를 살해한 뒤 사체를 잔인하게 훼손한 명문대생 이은석 사건이나 교수 아버지와 할머니를 살해한 분당 대학생 사건, 최근 엄마를 죽이고 방치한 고3 학생 사건 같은 걸 깊이 들여다보면 공통점이 있어요. 범인이 ‘저 사람을 죽이지 않으면 내가 죽을 것 같다’는 심리적인 위협을 느꼈다는 점이죠. 역치를 넘어선 거예요.”

강 과장은 이은석에 대해 “부모자식 사이를 떠나 아이를, 한 인간을 그렇게 철저히 짓밟고 폐허를 만든 예는 없었다”고 안타까워했다. 겉으로 볼 땐 잔혹한 범죄라도 속을 파고들면 가해자가 피해자가 되고, 함부로 손가락질할 수 없는 범죄가 많다는 게 강 과장의 얘기다. 강 과장은 이은석의 형을 통해 변호사를 선임하게 하고 가족을 설득해 탄원서를 받기도 했다. 그가 수십 년의 현장 경험을 통해 내린 결론은 “범죄는 동정하지 않는다. 그러나 범죄 동기는 동정한다”이다.

▼ 불특정 다수를 향한 ‘묻지마 범죄’는 어떻게 이해해야 합니까?

“길 가다가 아무나 죽이는, 흔히 말하는 ‘묻지마 살인’도 들여다보면 똑같아요. 이런 사람들은 주로 남 탓을 한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모든 문제를 남 탓으로 돌리니 자기반성이나 개선이 없고 발전도 없어요. 그 상태로 계속 사회와 부딪치니 실패할 수밖에요. 그럼 ‘이놈의 사회가 잘못됐다’고 분노를 쏟아내는 거지요. ‘에라 모르겠다’는 심정으로 살인을 저지른다고. 안 그래도 범죄는 달콤한 유혹인데, 정신적·기질적으로 취약한 사람은 범죄 유혹에 굉장히 쉽게 빠져요. 그래서 병든 우리 사회를 빨리 건강하게 만들어야 합니다.”

국과수 30년

▼ 범죄가 왜 ‘달콤한 유혹’인가요?

“내가 보기엔 에베레스트 가서 죽는 사람이나 범죄자나 똑같아요. 험한 산을 타는 사람치고 ‘거기 가면 내가 죽는다’고 생각하면서 가는 사람은 없어요. 100% 죽는 걸 알면 가겠어요? 다른 사람은 죽어도 나는 사고를 당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범죄자도 똑같아요. 자기는 분명히 안 잡힌다고 확신하지요. 그러니 유혹이라는 거예요. 스스로를 유혹하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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