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1월호

농약관리법상 취급 제한 물질까지 버젓이 모기약으로 유통

사람 잡는 살충제

  • 송화선 기자│spring@donga.com

    입력2011-12-22 11: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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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식약청이 안전성 재평가 중인 살충제, 지자체가 구입해 살포
    • 한번 허가받으면 문제 될 때까지 계속 생산
    • 발암성 확인돼 사용 금지한 살충제 성분, 전국 어린이집에서 검출
    농약관리법상 취급 제한 물질까지 버젓이 모기약으로 유통

    지난여름 전국 10개 지자체는 식약청이 재평가 중인 살충제를 구입, 사용해 논란이 일었다.

    2011년12월 환경보건시민센터와 가습기살균제피해자모임은 서울 정동에서 피해자대회를 열고 지금까지 집계된 가습기 살균제로 인한 사망자는 총 43명이라고 밝혔다. 간질성폐렴, 폐섬유화증 등을 앓는 피해자는 153명에 달한다. 이에 앞서 보건당국은 한때 원인이 밝혀지지 않아 ‘산모와 영·유아만 공격하는 괴질’로까지 불렸던 급성 폐질환의 원인이 가습기 살균제라는 사실을 공식 확인했다. 또 1996년부터 판매돼온 가습기 살균제의 일부 제품에 대해 강제수거명령을 내렸다.

    그러나 정부가 지난 15년간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시판된 적 없는 ‘치명적 화학물질’을 방치해왔다는 점에서, 생활용품 전반에 대한 불안이 확산되고 있다. 특히 살균제와 마찬가지로 강한 독성을 지닌 살충제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2011년 9월 미국 ‘뉴욕타임스’는 무분별한 살충제 사용이 벌레보다 더 위험하다는 내용의 기사를 실었다. 보도에 따르면 2010년 미국 7개 주에서 살충제 남용으로 인한 부작용을 호소한 사람은 111명에 달했다. 미국 노스캐롤라이나 주의 60대 여성은 살충제 남용으로 목숨을 잃기도 했다. 2011년 5월 태국에서 휴가를 즐기다 갑자기 사망한 20대 뉴질랜드 여성의 사인이 살충제 과용이라는 주장도 나왔다. 이 사건을 조사한 유해 화학물 전문가 론 맥도왈 유엔 자문위원은 “고인이 묵은 호텔방에서 채취한 샘플을 검사한 결과 독성 농약으로 분류되는 클로르피리포스가 나왔다”며 “이것이 사망의 유력한 원인일 것”이라고 밝혔다. 이 주장은 우리나라를 비롯한 세계 여러 언론에 보도됐다.

    클로르피리포스는 빈대와 바퀴벌레 등을 잡는 데 효과적인 화학물질로, 부착형 바퀴약 등에 널리 쓰인다. 최근 미국 UC버클리대 연구진이 클로르피리포스에 노출된 임산부의 태아 지능이 정상아에 비해 떨어진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하는 등, 유해성 논란이 끊이지 않아왔다. 이에 따라 미국에서는 2000년, 유럽연합(EU)에서는 2008년부터 사용이 중단됐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여전히 제한 없이 쓰이는 게 현실. 현재 우리나라에서 사용되는 살충제 성분은 총 55개다. 이 중 클로르피리포스를 비롯해 △피리미포스메칠 △바이오레스메츠린 △알레스린 △바이오알레트린 △에스바이올 △붕산 △페니트로치온 △프로폭술 △히드라메칠논 △퍼메트린 △피페로닐부톡시드 △피레트린엑스 등 13개는 미국과 EU 등에서 안전성이 입증되지 않았다는 등의 이유로 사용을 금지한 물질이다.

    부처 간 소통 난맥상



    우리나라에서도 문제제기가 없었던 건 아니다. 2011년 5월 열린 중앙약사심의위원회에서 이 13개 성분이 함유된 제품의 허가 제한 및 생산중단 건의가 나왔다. 살충제의 관리 감독기관인 식약청도 7월 ‘의약외품 살충제 안전관리 개선방안’을 내놓고 문제의 13종에 대한 안전성 재평가를 실시하겠다고 발표했다. 이 성분을 이용해 살충제를 만드는 업체 42곳에 2011년 연말까지 제품의 안전성을 입증할 수 있는 서류를 제출하도록 하고, 근거를 내지 못하면 2012년 상반기에 생산 중단을 지시하겠다는 내용이었다. 나아가 2017년까지 55개 살충제 성분 전부의 안전성 검증을 마치겠다는 계획도 밝혔다.

    하지만 식약청의 이런 계획은 정부 부처 내에서 공유되지 않았다. 이에 따라 질병관리본부와 전국 10개 지방자치단체는 2011년 여름에도 해당 성분이 든 소독제를 대량 구입해 방역에 사용한 것으로 드러났다. 등산로와 공원, 가옥 등에 살포하고 관내 경로당에 지원한 지자체도 많았다. 식약청 조사에 따르면 전국적으로 이용된 고형살충제 14만개와 용액제 2만4000L에 이 13종의 물질이 들어 있었다.

    이런 문제가 발생한 이유는 화학물질의 관리 감독 권한이 여러 부처에 갈라져 있기 때문. 현재 우리나라에서 사용되는 화학물질은 4만3000여 종에 달한다. 이를 1차적으로 관리감독하는 기관은 환경부다. 하지만 특정 성분이 제품에 사용되면 담당 부처가 바뀐다. 공산품은 지식경제부, 의약품과 식품 첨가물은 식약청, 농약과 비료는 농촌진흥청이 관리하는 식이다. 이처럼 여러 기관이 각각 화학물질 관련 기준을 세우다보니, 한 부처에서 ‘위험물질’로 평가한 성분을 다른 기관에서 버젓이 사용하는 일도 벌어진다.

    지난봄부터 많은 사람을 패닉 상태에 빠뜨린 가습기 살균제 ‘메틸 이소티아졸린’과 ‘클로로 메틸 이소티아졸린’도 이미 2009년 환경부가 ‘어린이 건강에 영향을 끼치는 환경유해인자’로 지정했던 것들이다. 환경부가 작성한 ‘클로로 메틸 이소티아졸린’의 특정 유해성 자료에는 ‘흡입, 섭취, 피부 접촉 시 심각한 부상 및 사망을 초래할 수 있음’이라고 적혀 있다. 그러나 이 성분을 함유한 가습기 살균제는 이후에도 2년 이상 판매됐다. 질병관리본부가 2011년 11월 가습기 살균제의 동물실험 결과를 발표하면서, 피해자들의 폐에 치명적인 손상을 입힌 물질로 지목한 ‘염화 에톡시에틸구아니디움’도 보건복지부와 식품의약품안전청, 농림수산식품부가 공동 운영하는 식품안전포털 식품안전정보서비스(www.foodnara. go.kr)에 유해물질로 소개돼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농약보다 강한 모기약

    현재 이 사이트에서는 검색할 수 없지만, 포털 사이트의 고급 검색 기능을 이용해 해당 사이트 내 검색을 지정하고 이 성분명을 검색하면 과거 홈페이지에 정리돼 있던 ‘흡입 시 타는 듯한 느낌, 기침, 인후염 등으로 숨쉬기가 곤란함. 신선한 공기와 휴식이 필요’ 등의 설명이 나타난다. 신체 접촉 시 발진과 고통을 유발한다는 내용도 있다. 그러나 이 물을 ‘흡입’함으로써 수십 명의 사상자가 발생할 때까지도 관계 당국은 문제의 원인을 찾지 못했다.

    농약관리법상 취급 제한 물질까지 버젓이 모기약으로 유통

    무심코 사용하는 살충제 가운데 일부에는 EU 등 선진국이 사용을 막는 화학 성분이 함유돼 있다.

    살충 효과가 뛰어나 피부에 바르는 해충차단제에 많이 쓰이는 화학물질 ‘퍼메트린’에 대한 평가도 부서마다 엇갈린다. 식약청은 퍼메트린 성분을 규제하지 않는다. ‘소비자시민모임’이 시중에서 판매 중인 가정용 살충제 16개 제품의 표시 성분을 조사한 결과, 9개 제품에 퍼메트린이 들어 있었다. 그러나 농림수산식품부의 농약관리법은 이 물질을 취급 제한 물질로 규정하고 있다. 퍼메트린은 유해화학물질관리법상 유해물질이기도 하다. 농약으로도 쓸 수 없는 유해 물질을 가정용 살충제에는 사용하는 셈이다.

    가정용 살충제와 농약은 모두 해충을 잡기 위한 약이라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다. 그러나 살충제는 소비자가 쉽게 구입해 사용할 수 있는 점, 사용 기준보다 많이 써도 제어할 방법이 없는 점, 밀폐된 공간에서 사용할 경우 공기 중 부유물질과 결합해 오래 잔류할 수 있는 점 등을 감안해 더욱 철저하게 관리해야 한다. 문제는 우리나라에서 이 원칙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국내에 등록된 모든 농약은 10년에 한 번씩 위해성 재평가를 받아야 한다. 이 과정에서 인체에 유해한 것으로 판정될 경우 생산이 금지된다.

    그러나 살충제에 대해서는 이런 규정 자체가 없다. 1998년 4월 마련된 ‘의약품 등의 품목허가신고심사규정’에 따라 살충제를 허가할 때 제품의 안전성과 유효성을 검토하고 나면 끝이다. 그 결과 2010년 현재 우리나라의 살충제 제조 허가 품목은 113개 업체 1090개에 달한다. 반면 EU와 미국은 각각 10년과 15년에 한 번씩 살충제의 안전성을 재검토해 허가 여부를 결정한다. 현대 과학의 발전에 따라 한때 이로운 것으로 알려졌던 화학물질의 독성이 속속 밝혀지고 있다는 점에서 살충제의 재평가 시스템은 반드시 마련돼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다. 이에 대해 설효찬 식약청 화장품정책과장은 “우리도 약사법을 개정해 10년마다 살충제 허가를 재검토하는 것을 추진 중”이라고 했다.

    슬로 데스

    이와 동시에 유독성 등을 이유로 이미 사용이 금지됐으나 여전히 사용되고 있는 살충제도 철저히 감독하기로 했다. 연세대 환경공해연구소 김호현 교수 등이 2008년부터 2년간 전국의 어린이 보육시설과 유치원 및 실내놀이터 등의 유해물질을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전국 대부분의 시설에서 유기인계 살충제인 디클로르보스 성분이 검출됐다. 디클로르보스는 동물 실험에서 발암성이 확인돼 2007년부터 사용이 전면 금지된 물질이다. 김 교수는 “이후 상대적으로 독성이 낮은 피레스로이드 성분 살충제를 사용하도록 했지만, 해당 제품의 가격이 기존 제품에 비해 14배나 비싸고 살충 효과도 떨어진다는 인식 때문에 여전히 디클로르보스 성분 살충제를 사용하는 업체가 있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1999년 소독업이 허가제에서 신고제로 전환되면서 영세업체들이 범람하는 것도 문제다. 김 교수는 “영세업체들이 저렴한 가격을 경쟁력으로 내세워 영업하면서 금지된 소독제를 사용하는 경우가 있는 것 같다. 살충제의 유해성에 대한 교육과 계도, 행정단속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2011년 10월 번역 출간된 릭 스미스, 브루스 루리에의 저서 ‘슬로 데스’는 캐나다의 환경운동가인 두 저자가 우리의 일상 속에 들어와 있는 각종 화학물질이 인체에 미치는 영향을‘생체 실험’을 통해 확인하는 내용이다. 이들은 프탈레이트와 트리클로산이 포함된 목욕용품으로 샤워하고, 플라스틱 컵에 담긴 커피를 마시며, 코팅이 된 프라이팬에 음식을 조리하고, 일회용 포장용기에 담긴 스파게티를 전자레인지에 데워 먹는다. 그렇게 다양한 방식으로 몸속에 화학성분을 ‘집어 넣은’ 결과는 놀라웠다. 체내에서 생식 관련 장애를 일으키는 모노에틸프탈레이트 농도가 실험 전보다 22배, 내분비계를 교란하는 트리클로산 농도는 2900배 증가한 것. 이들이 사용한 제품이 모두 동네 상점에서 쉽게 구입할 수 있는 것으로, 대부분의 사람이 그동안 문제의식 없이 써오던 것들이라는 점에서 이 실험은 캐나다 내에 큰 반향을 일으켰다. ‘일상 속 내 아이를 서서히 죽이는 오리 인형의 진실’이라는 부제에서 알 수 있듯, 저자들은 어린이 장난감에 함유된 독성 화학물질 문제도 제기한다. 이들의 조사 결과 상당수 놀잇감과 유아복에 납, 브롬화합물, 프탈레이트 등 치명적인 독성 화학성분이 들어 있었다.

    화학가정용품 위해성 평가

    ‘슬로 데스’는 2009년 캐나다에서 출간된 이후 현지 소비자의 생활 방식에 여러 가지 변화를 가져왔다. 비스페놀A가 든 젖병, 강한 인공 향이 첨가된 목욕용품과 방향제, 오래된 테플론 프라이팬 등이 가정에서 퇴출당했고, 정부도 독성 화학물질에 대한 규제와 감시체계를 개선하는 다양한 정책을 내놓았다.

    우리나라에서도 최근 비슷한 움직임이 시작되고 있다. 2011년 7월 여성민우회생협, 녹색연합, 환경운동연합, 건강사회를 위한 약사회, 노동환경건강연구소 등 시민사회단체가 모여 구성한 ‘발암물질 없는 사회만들기 국민행동’은 중국산 장난감 등 우리가 일상에서 쉽게 접하는 물건들 속 독성 물질의 위험성을 고발하는 운동을 펼치고 있다.

    정부도 생활화학용품의 안전성을 엄격하게 검사, 관리하겠다는 방침이다. 2011년 12월 초 보건복지부는 2013년까지 세정제, 방향제, 접착제, 광택제, 탈취제, 합성세제, 표백제, 섬유유연제 등 일상생활과 밀접하게 관련된 8가지 화학가정용품의 위해성을 평가해 해당 품목의 안전기준에 반영하겠다고 발표했다. 환경부도 국내에 유통되는 모든 화학물질에 대한 위해성 여부를 분석·평가해 그 결과를 정부에 보고·등록하도록 강제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화학물질등록평가법’ 제정을 추진 중이다. 김호현 연세대 환경공해연구소 교수는 “우리는 지금 무수히 많은 화학물질에 둘러싸여 살고 있다. ‘이렇게 누구나 사용하는 물질이 위험한 건 아니겠지’라는 생각은 위험할 수 있다. 살균제나 살충제 같은 독성 물질을 사용할 때는 더욱 그렇다. 벌레가 살 수 있는 환경이 사람에게도 좋은 환경이라는 걸 깨닫고, 스스로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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