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1월호

“해외 라이선스 수입? 너희들끼리 해라!”

맘마미아 1000회 신시뮤지컬 박명성 대표

  • 김유림 기자│rim@donga.com

    입력2011-12-22 11: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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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000회 개근한 배우 성기윤 “존경한다”
    • 고교시절 연극 ‘산불’보고 공연에 미쳤다
    • 국내 최초 뮤지컬 라이선스 정식 수입
    • “남경주, 최정원도 공개 오디션 봐라”
    • 제작비 45억, ‘댄싱 섀도우’불태운 사연
    “해외 라이선스 수입? 너희들끼리 해라!”
    12월10일 뮤지컬 ‘맘마미아’가 공연 1000회를 맞았다. ‘김종욱 찾기’ ‘빨래’ 등이 소규모 극장에서 1000회 기록을 세운 적은 있지만, 대극장(1000석 이상)에서 1000회를 맞은 공연은 2009년 뮤지컬 ‘명성황후’ 이후 처음이다. 게다가 ‘맘마미아’는 첫 공연 이후 7년 만에 1000회 공연을 달성해 ‘명성황후’의 기록(14년)을 절반 가까이 단축했다. 현재까지 ‘맘마미아’의 누적 매출액은 800억원, 130만명이 관람했다.

    맘마미아 신화를 만든 이가 바로 신시뮤지컬컴퍼니 박명성 대표다. 그는 ‘맘마미아’뿐 아니라 뮤지컬 ‘아이다’ ‘렌트’ ‘더 라이프’ ‘키스미 케이트’ 등 다양한 라이선스 뮤지컬을 선보였고, 뮤지컬 ‘댄싱 섀도우’ ‘퀴즈쇼’ ‘엄마를 부탁해’ 등 창작극도 제작했다. 그 공로를 인정받아 한국뮤지컬대상 프로듀서상(2003년), 대한민국 문화예술상(대통령상, 2010년) 등을 받았고 현재 명지대 영화뮤지컬학부 전임교수를 맡고 있다.

    12월2일 서울 종로구 대학로에서 박 대표와 만났다. ‘브로드웨이 박’이라는 별명답게 대한민국 뮤지컬 역사의 산 증인으로 다양한 이야기를 쏟아냈다. 통쾌했고 거침없었다. 외워 말하는 숫자는 정확했다. 건강관리 비법을 물었더니 폭탄주 50잔을 먹어도 새벽 5시 반에 일어나 조깅을 한단다. ‘직원들이 무서워하지 않느냐’고 묻자 “실력이 없으면 내가 무섭겠지”라고 딱 잘라 말했다. 그가 배우나 연출이 아닌 극단의 살림꾼, 프로듀서가 된 것은 어쩌면 당연숙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맘마미아 통해 중년층 대리만족

    ‘맘마미아’는 그리스 작은 섬에서 결혼을 앞둔 소피가 ‘자신의 아빠일 수도 있는’ 엄마의 옛 남자친구 3명을 초대하면서 벌어지는 사건을 다룬다. 스웨덴 출신 팝그룹 ‘아바(ABBA)’의 음악만으로 만들어졌다. 1999년 영국 런던 웨스트엔드에서 초연해 우리나라에서는 2004년 처음 관객을 찾았다. 그는 ‘맘마미아’의 인기 비결을 중장년층을 공략한 데서 찾았다.



    “요즘 TV, 영화, 연극 중 중장년층을 위한 프로그램이 없는데 ‘맘마미아’는 딱 그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맘마미아’의 관객 70%가 40대 이상이고요, 그중 70% 이상이 여성입니다. 40대 이상 여성분들은 대리만족을 느끼죠. ‘나도 저렇게 남자친구 사귄 적 있었지’ ‘나도 친구들과 노래하고 춤추며 깔깔거리던 때가 있었지’ 하면서요. 또 기껏 키워놓은 딸이 시집가겠다고 할 때 엄마가 느끼는 허탈감도 잘 담고 있죠. ‘맘마미아’는 우리 엄마들의 마음에 불을 지폈습니다.”

    ▼ 한국 공연계가 발전하려면 중장년층을 공략해야 한다고 하셨죠?

    “요즘 대학로 연극 보면 젊은 사람 위주 프로그램밖에 없는데 사실 중장년층이 고급 관객이에요. 스스로 돈을 벌어 쓰는 직접소비층이기 때문에 작품성만 있으면 아무리 가격이 비싸도 사 보죠. 그것도 가장 좋은 좌석으로. 실제 뉴욕 브로드웨이나 런던 웨스트엔드 등 ‘뮤지컬 1번지’의 주 고객은 중장년층이고요, ‘팬텀 오브 오페라(오페라의 유령)’ ‘미스 사이공’ ‘에비타’ 등 세계적인 흥행 뮤지컬도 대부분 주 타깃이 중장년층입니다.”

    ▼ ‘맘마미아’는 무대 연출, 의상 등 초기 투자비용이 많이 들었죠.

    “2004년 초연 당시 제작비로 107억원을 썼어요. 전례 없는 초기 투자였는데 결국 초연을 높은 퀄리티로 완성하고, 이후 작품성을 떨어뜨리지 않은 게 ‘맘마미아’ 롱런의 힘이 된 것 같아요.”

    “해외 라이선스 수입? 너희들끼리 해라!”

    뮤지컬 ‘맘마미아’ 커튼콜은 6분짜리 작은 콘서트다.

    ▼ 박해미, 이태원, 최정원, 전수경, 이경미씨 등 대표적인 뮤지컬 디바들이 모두 ‘맘마미아’를 거쳤는데, 가장 기억에 남는 배우는 누구인가요?

    “초연 ‘도나’역을 맡은 박해미씨는 발랄한 성격이 극중 역할과 딱이었고, 2007년부터 합류한 최정원씨는 정말 자기희생을 할 줄 아는 배우입니다. 갑상선암 투병에도 불구하고 이번 공연에서 ‘타냐’ 역을 소화해준 전수경씨도 대단하고요. 가장 칭찬하고 싶은 배우는 ‘샘’ 역의 성기윤씨입니다. 성기윤씨는 맘마미아 초연부터 1000회째 개근하고 있거든요. 한 배우가 7년11개월 동안 같은 역할을 한다는 거 쉽지 않아요. 뼈를 깎는 자기 관리와 성실, 기본기가 필요하죠. 감기에 걸렸을 때는 온몸에 핫팩을 붙이고 연기했어요. 책임감이 대단하죠. 이렇게 주연뿐 아니라 조연과 앙상블의 투혼 덕에 ‘맘마미아’가 롱런한 것 아닐까요?”

    연기도, 연출도 못해 프로듀서의 길로

    전남 해남 출신인 박 대표가 평생 연극쟁이로 살게 된 결정적 계기가 있다. 바로 까까머리 고등학생 때 본 차범석 희곡의 연극 ‘산불’이다. 인민군과 사랑에 빠진 두 여성의 욕정과 본성을 다룬 이야기는 그의 마음에 불을 지폈다. 그는 “배우들과 함께 웃고 우는 사이 내 마음속에 불꽃이 피어났다”고 회상했다.

    그는 재수 끝에 1983년 서울예전(현 서울예술대학) 무용과에 입학했다. 무용과를 택한 이유는 연기과보다 경쟁률이 낮아서다. 학창시절 그는 학교보다 극단을 더 많이 찾아다녔다. 몇몇 연극에 단역으로 출연했지만 재능을 인정받지 못했다. 그는 배우로서 3분 이상 무대에 서본 적이 없다.

    그럼에도 연극판을 떠날 수 없었다. 그는 연출가인 고(故) 김상렬 선생에게 부탁해 극단 ‘신시’에서 스태프 생활을 시작했다(극단 ‘신시’는 훗날 ‘신시뮤지컬컴퍼니’로 이름을 바꿨다). 군 제대 후 1989년 연극 ‘동물농장’을 연출했지만 이 역시 실패. 배우로서, 연출로서 실패한 박 대표는 연극판을 떠나지 않기 위해 프로듀서의 길을 택했다. 그는 “‘프로듀서’란 이름은 멋있지만 사실 작품 선택부터 쫑파티까지 모든 걸 책임지는 일꾼”이라고 말했다. 이후 ‘그리스’ ‘웨스트사이드 스토리’ 등을 흥행시키며 기획자로서 입지를 굳혀가던 그가 1998년 ‘무모한 도전’을 시작했다.

    “당시 우리나라에는 라이선스 문화라는 게 없었어요. 그냥 해외 뮤지컬을 무단으로 베껴서 공연하는 거예요. 브로드웨이에서 뮤지컬 악보, 극본 사와서 책 보고 흉내만 내는 거죠. 악보가 없는 삽입곡은 그냥 알아서 만들고요. 저작권에 안 걸리려고 30~40년 전에 브로드웨이에서 했던 구닥다리 뮤지컬만 그것도 1, 2주 단기로 무대에 올렸어요. 전 생각했죠. ‘우리 관객에게 현재 브로드웨이에서 하고 있는 생생한 공연을 보여줄 수 없을까?’ 그러기 위해서 국내 최초로 정식 공연 라이선스를 따오기로 했습니다.”

    박 대표는 당시 브로드웨이에서 공연 중이던 뮤지컬 ‘더 라이프’ 저작권자를 찾아갔다. “한국은 도둑고양이처럼 무단으로 무대에 올리는 나라”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박 대표는 “도둑질할 사람이 왜 대낮에 집주인을 찾아왔겠느냐”며 믿어달라고 부탁했다. 삼고초려 끝에 박 대표는 ‘더 라이프’의 라이선스를 얻었다. 1998년 여름, 세계 금융위기로 돈이 말랐고 태풍 ‘매미’ 때문에 대한민국 전역이 물에 잠겼지만 ‘더 라이프’가 공연 중인 예술의전당 오페라하우스는 연일 만원 행진이었다.

    2000년대 초반 대한민국 라이선스 뮤지컬의 70%가 신시뮤지컬컴퍼니 작품이었다. 그는 “199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노래를 사전에 녹음해서 뮤지컬 배우가 립싱크 하거나, 심지어 노래 녹음은 다른 배우에게 맡기는 말도 안 되는 공연이 많았다. 관객에게 ‘진짜 뮤지컬’을 선보이는 게 신시의 사명이었다”고 말했다.

    “해외 라이선스 수입? 너희들끼리 해라!”
    2000년대 뮤지컬 ‘명성황후’‘오페라의 유령’‘지킬앤하이드’ 등이 연속으로 성공하면서 뮤지컬 시장의 외연이 급격히 넓어졌다. ‘뮤지컬에 투자하면 돈이 된다’는 소문이 나면서 ‘눈먼 돈’이 굴러들어왔다. 자연히 해외 라이선스를 획득하려는 경쟁이 붙었다.

    “한국 뮤지컬 프로듀서는 봉이에요. 뉴욕 브로드웨이나 런던 웨스트엔드에 작품이 올라오면 한국 프로듀서 30여 명이 그날로 달려가 보고 서로 값을 높여 불러요. ‘웃돈’ 얹어주는 것도 서슴지 않죠. 거품이 심할 땐 그런 회사가 한 80개 됐어요. 해외 저작권자들은 그냥 앉아서 돈 버는 거죠.”

    박 대표는 “최근 10년 사이 해외 작품 라이선스 가격이 5~7% 올랐다. 1998년 100억원이었다면 105억~107억원이 된 것”이라며 “그 부담은 고스란히 관객에게 간다”고 말했다. 실제 요즘 뮤지컬 공연 가격은 부담스러운 수준이다. R석 기준 11만원이 기본이고 VIP석은 15만원까지도 한다. 박 대표는 2000년 초반 오페라의 유령 때부터 유지됐던 ‘R석=10만원’을 10년 만에 깨뜨렸다. 2010년 여름 오픈한 뮤지컬 ‘맘마미아’ R석을 9만원으로 낮춘 것.

    “그간 뮤지컬 제작업자들이 늘 정부에 얘기했어요. ‘뮤지컬 전용 극장이 늘어나면 티켓 가격이 떨어지고 관객 부담이 준다.’ 실제 최근 10년간 뮤지컬 전용 극장이 많이 생겼는데 가격 인하를 실천한 사람은 없었어요. ‘맘마미아’는 오래 공연하고, 무대장치나 의상은 이미 다 가지고 있고, 무엇보다 스타 마케팅을 안 하죠. 공연장인 신도림 디큐브시티 측도 우리 뜻에 동감했고요. 공연장이 있는 신도림동은 사실 문화적으로 소외된 곳이잖아요. 서민들이 뮤지컬 보는 부담을 조금이나마 줄이기 위해 결단을 한 거죠.”

    ‘R석 10만원’ 벽 허물다

    그는 “뮤지컬 티켓 가격에 거품이 심하다”며 “솔직히 요즘 한국에서 하는 뮤지컬 중에 R석 기준 10만원 이상 주고 볼 작품이 없다”고 말했다. 그는 “6개월 이상 공연하면 티켓 가격을 더 낮출 수 있다. 전 세계인이 깜짝 놀랄 만한 작품이 나온대도 R석 기준 10만원 이상 받을 생각이 없다”고 말했다. 그 기한이 언제까지인지 묻자 “대한민국 소득 수준이 3만달러 달성할 때까지”라며 웃었다.

    요즘 공연계에는 한 배역에 여러 배우를 캐스팅하는 ‘더블 캐스트’가 횡행한다. 2010년 11월부터 공연한 뮤지컬 ‘삼총사’에서 주인공 달타냥 역에 배우 5명이 캐스팅됐다. 같은 해 7월 공연한 뮤지컬 ‘잭더리퍼’의 경우 주인공 다니엘 역에 4명, 앤더슨 역에 3명, 먼로 역에 3명이 캐스팅됐다. 주인공 6명이 공연할 수 있는 경우의 수가 288가지에 이른다. 한편 신시뮤지컬컴퍼니는 한 배역에 배우 한 명만 캐스팅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뮤지컬 ‘맘마미아’의 경우 최정원, 성기윤, 이경미 등 대부분 주연 배우가 ‘원 캐스트’다. 갑상선 암 수술을 한 전수경만 배우 황현정과 더블캐스팅됐다.

    “요즘 심한 경우는 한 배역에 4, 5명씩 배우를 캐스팅하죠? ‘깜냥’이 안 되는 배우들도 일단 캐스팅하고 보는 거예요. 일명 ‘끼워 넣기’인데 그래서는 작품성이 좋아질 수가 없죠. 실제로 더블캐스팅 심한 뮤지컬에 출연하는 한 배우는 ‘매회 새로운 배우랑 호흡을 맞추니까 매번 작품이 새롭다’고 하더라고요. 그냥 대사랑 동작선만 외워서 한다는 건데, 그래서 어떻게 관객에게 감동을 주겠습니까?”

    이처럼 더블캐스트가 늘어난 이유 중 하나가 뮤지컬에 진출한 아이돌 스타가 많아졌기 때문이다. 최근 슈퍼주니어 규현, 성민, 소녀시대 제시카, f(x) 루나, SS501 허영생, 비스트 양요섭 등 상당수 아이돌 스타가 뮤지컬 배우로 데뷔했다. 박 대표는 “단기간으로 티켓 파는 데는 도움이 되겠지만 실력 없는 배우를 유명하단 이유만으로 무대에 올리는 것은 장기적으로 보면 뮤지컬 관객에게 죄를 짓는 것”이라고 말하며 “나도 뮤지컬 ‘아이다’에 아이돌 가수 출신 옥주현을 캐스팅하는 등 스타를 쓰긴 하지만 능력이 없다면 쳐다보지 않는다”고 말했다.

    ▼ 뮤지컬에 스타 캐스팅이 늘어난 데는 투자자 입김도 영향을 미쳤죠?

    “네, 투자자들이 뮤지컬에 대해 제대로 된 정보나 지식도 없으면서 ‘누구 캐스팅해라’ ‘탤런트 A급 캐스팅 안 하면 투자 안 한다’ ‘주연 배우 분량을 늘리기 위해 작품을 30분 이상 늘려라’ 이런 식으로 횡포를 부리니까 제작사 입장에서는 어쩔 수 없이 스타 캐스팅에 나서죠. 스타들은 개런티도 훨씬 많이 받으니 제작비가 쪼들리고 작품 수익이 줄어드니 다음 작품에 또 투자를 받게 되고…. 상당수 뮤지컬 컴퍼니가 이런 악순환에 빠져있어요.”

    그는 “뮤지컬계는 성장했지만 아직 투자문화가 정착하지 않았다”고 꼬집었다.

    “투자자들이 장사, 흥행에만 몰두해 문제예요. 연극은 흥행하고 싶다고 되는 게 아니에요. 여전히 제작자들에게 원금보장을 요구하고 연대 보증하라고 하고…. 이게 투자자인가요? 고리대금업자지.”

    박 대표는 2006년 이후 투자를 받지 않는다. ‘투자자가 예술가 위에 군림하는’ 상황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다. 처음에는 힘들었지만 점차 자생력을 갖추고 있다. 한편 ‘원 캐스트’의 의의는 좋지만 그만큼 위험부담이 높을 수 있다. 실제 2011년 1월 뮤지컬 ‘아이다’는 옥주현의 컨디션 난조로 공연이 취소됐다.

    “당시 커버 배우가 있긴 했는데 무대에 올릴 실력은 안 됐어요. 어쩔 수 없는 사고였고 앞으로 더욱 철저히 대비해야죠. 결국 110% 환불해줬고 초대권 관객은 좌석을 한 등급씩 올려드렸습니다. 그래도 원 캐스트 원칙은 계속 지킬 겁니다. 전문 뮤지컬 배우가 자기 몸 관리를 철저히 해야죠.”

    그는 대한민국 뮤지컬계에 ‘전 배역 공개 오디션’을 처음 시작했다. 시작은 2000년 뮤지컬 ‘렌트’였다. 당시 남경주, 전수경, 김선영 등 명성 있는 배우도 모두 공개 오디션에 응했다. 스타급 배우들에게 공개 오디션을 요구하자 거부반응은 없었을까? 그는 “생각 있는 배우라면 공개 오디션의 순기능을 아는데 누가 거부하겠느냐”라고 오히려 반문했다.

    그가 공개오디션을 통해 발견한 ‘진흙 속의 진주’는 많다. 정선아, 김보경, 이건명, 김선영, 이정미, 황현정 등은 현재 한국 뮤지컬계에 없어서는 안 될 보물들이다. 2011년 11월에 열린 제17회 한국뮤지컬대상에서 ‘아이다’로 남우주연상을 받은 김우형 역시 박 대표의 선택이었다.

    “김우형은 그동안 ‘지킬앤하이드’ ‘그리스’ 등에서 대중스타가 주연을 맡을 때 커버 역할을 많이 해왔어요. 그만큼 아픔이 있는 배우죠. 이번 뮤지컬 ‘아이다’ 남자주인공 오디션을 할 때 마지막 후보가 7명 남았거든요. 그중에는 영화배우, 가수 등 유명한 사람이 많았고 김우형이 제일 인지도가 떨어졌지요. 그때 다들 ‘이미 유명한 배우 내정해놓고 형식상 오디션 보는 거 아니냐’고 했어요. 근데 결국 인지도는 제일 떨어져도 그 역할에 제일 맞고 성실한 김우형을 뽑았어요. 그 결과는? 관객과 평단이 인정을 해주는 거죠.”

    주연배우 월급 낮추고 앙상블 월 300만원 이상

    2010년 제대 후 돌아온 배우 조승우가 뮤지컬 ‘지킬앤하이드’에서 회당 8000만원을 받는다고 보도되면서 ‘뮤지컬 스타 몸값 거품 논란’이 일었다. 사실 조승우는 알려진 만큼은 아니지만 회당 1400만원 이상, 일반 뮤지컬 배우에 비해서 높은 개런티를 받았다. 박 대표는 “배우나 뮤지컬 제작사가 ‘받은 만큼 가치를 했다’고 한다면 할 말이 없지만, 시장 자체가 부익부 빈익빈 상황이 되면 건강한 공연시장이 만들어지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TV 연속극 한 회 만들 때 1억원 드는데 그중 주연배우 1명이 5000만원 가져간다고 보세요. 나머지로 기타 배우들, 스태프 돈 주고 세트 만든다? 좋은 작품이 나올 수가 없잖아요. 결국 스타들이 고액 개런티를 가져가면 그 비용은 제작사, 그리고 관객에게 전가될 수밖에 없죠.”

    박 대표는 “우리는 스타에게도 절대 ‘수준 이상’의 개런티를 주지 않는다”고 말했다. 뮤지컬 ‘맘마미아’ 주연 최정원의 경우를 묻자 “개런티는 배우의 자존심이기 때문에 밝힐 수는 없다. 단, 최정원이 다른 극단에서 받는 것보다 덜 준다”고 말했다.

    “최정원, 전수경, 남경주 모두 뮤지컬을 천직으로 알고 해온 ‘선수’인데 새파란 아이돌 스타가 더 받는다? 얼마나 자존심 상하고 인생에 회의를 느끼겠어요. 저는 그들에게 상처 주고 싶지 않아요.”

    한편 뮤지컬에서 합창과 군무를 하는 조연배우, ‘앙상블’은 어떨까? 2010년 8월 한 뮤지컬 제작사 임원이 밀린 임금을 요구하는 뮤지컬 배우를 무대 장치용 쇠망치로 폭행한 사건이 있었다. 이는 뮤지컬 업계의 열악한 형편을 대변한다. 물론 공연 규모마다 다르지만 보통 뮤지컬 앙상블 배우는 회당 3만~5만원을 받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 달 30회 공연을 해도 월 150만원이다. 박 대표는 “우리 극단은 앙상블 배우에게 월 300만원 이상은 준다. 뮤지컬의 핵심은 주연이 아니라 앙상블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단순히 합창하고 춤 따라 추는 게 앙상블이 아닙니다. 가장 노련해야 하고 노하우가 있어야 공연을 풍성하게 끌어갈 수 있어요. 저희 뮤지컬 ‘맘마미아’의 앙상블은 모두 30대 이상입니다. 절대 대학생이나 대학 막 졸업한 신입은 안 써요. 아마 대한민국 뮤지컬 극단 중 저희가 앙상블 월급이 가장 높을 거예요.”

    대학로는 흔히 대한민국 연극, 뮤지컬 1번지로 불린다. 하지만 박 대표는 “나는 대학로 연극, 뮤지컬은 잘 안 본다”고 잘라 말했다. 그는 대학로에서 활동하는 후배들에게 쓴소리를 아끼지 않았다.

    “지금 대학로에 극단이 300개예요. 근데 대부분 로맨틱 코미디 아니면 개그 연극 일색이야. ‘이렇게 말하면 관객들이 자지러지게 웃겠지’ 이런 계획을 짜고 대본을 쓰는 거예요. 제목만 다를 뿐이지 다 비슷한 작품들이죠. 나는 20~30대 연출, 극본, 프로듀서 하는 사람들이 이런 작품 만든다는 게 너무 짜증나고 화가 나. 구조적으로 획기적인 작품, 정말 한국에 존재하지 않는 작품을 선보이지 않고 당장 관객 몇 명에 연연해서 작품을 쓰는 건 우리 공연계에도, 자기 자신에게도 도움이 안 돼요. 공연이 관객에게 해답을 주지는 못할지언정 숙제라도 던져줘야 합니다. 그런데 요즘 대학로 연극 중에서 관객한테 숙제를 던져주는 공연이 있나? 나는 없다고 봐요.”

    또한 소규모 연극을 지원하는 정부의 태도도 지적했다. 서울문화재단 등은 연극, 뮤지컬 제작사에 1년에 한 작품, 2000만~3000만원 정도의 지원을 한다. 박 대표는 “극단별로 조금씩 나눠줘서는 절대 좋은 작품이 안 나온다. 정말 좋은 공연에 몰아서 지원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렇게 2000만~3000만원 지원받으면 빚 갚고 끝이에요. 다음 작품도 날림으로 하거나 투자받을 수밖에 없지. ‘왜 누구는 해주고 나는 안 해주느냐’ 하는 말 듣기 싫어서 모든 단체에 쪼개서 지원하는데, 이거 막아야 돼요. 중극장에 작품 하나 올리면 제작비 2억원 들거든요. 정부에서 1억원만 지원해줘도 좋은 작품 나오죠.”

    박 대표는 2005년 신규 라이선스 경쟁에 뛰어들지 않기로 결정하면서 매년 한 편씩 창작극을 올리기로 결심했다. 2007년 ‘댄싱 섀도우’, 2009년 ‘퀴즈쇼’, 2011년 ‘엄마를 부탁해’ 등을 선보였다.

    1년에 창작극 한 편씩

    현재 환경에서 창작극으로 성공하기는 어렵다. 최근 배우 조승우는 “내 마음을 뛰게 한 작품 중 창작극은 한 편도 없었다”고 말했다. 박 대표는 “20년 이상 업계에 몸담은 사람으로서 책임을 통감한다”며 “아직 한국 창작자가 세계적인 수준에 못 올랐다면 영국, 미국의 세계적인 제작자와 작업한 후 한국어로 번역하면 된다. 창작극이 안 된다고 한탄만 할 게 아니라 창의적으로 방법을 찾아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박 대표가 창작한 극 중 뮤지컬 ‘댄싱 섀도우’는 박 대표의 인생을 바꾼 차범석의 희곡 ‘산불’을 기본으로, 글로벌 무대를 겨냥해 만든 작품이다. 기획부터 무대에 올리기까지 7년이 걸렸다. 제작비는 45억원. 하지만 흥행에는 참패했다. 관객과 연극계 선후배의 평도 좋지 않았다. 그해 가을 한국뮤지컬대상 5개 부문에서 수상한 것으로 위로를 삼았다. 공연이 끝나고 그는 무대장치와 의상 일체를 태워버렸다. 그는 “8t 트럭 7대가 와서 실어갔다. 의상 등 불태우는 데도 600만원 넘게 들었다”며 웃었다.

    “처음부터 해외 관객까지 사로잡겠다는 생각으로, 해외 유명 스태프들과 제작했어요. 이 때문에 토속적인 매력, ‘산불’ 안에 담겨 있는 인간의 애증 등 감정을 잃어버렸습니다. 배경, 의상, 소품도 보편성을 찾다보니 국내 관객들은 공감을 못 하는 거예요. 다시 시작하기 위해서 기존 ‘댄싱 섀도우’를 버렸습니다.”

    아깝지 않았느냐고 묻자 그는 “성공, 실패를 떠나서 선진 뮤지컬 제작 시스템을 몸으로 배웠다는 데서 만족한다”고 말했다. 박 대표는 2011년 초 국립극장 대극장에서 연극 ‘산불’을 선보이며 “기본부터 다시 시작하겠다”고 밝혔다. 그의 마음속에는 까까머리 고등학생 때 연극 ‘산불’을 보고 품었던 불꽃이 아직도 활활 타고 있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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