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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adership in Sports ⑩

김성근 고양 원더스 감독

일구이무(一球二無) 정신으로 평생을 야구에 바친 ‘야구의 신’

  • 하정민│동아일보 경제부 기자 dew@donga.com

김성근 고양 원더스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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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근 고양 원더스 감독

2010프로야구 SK와 넥센히어로즈의 경기에서 4회초 1사 1루 때 SK 선발 투수 김광현이 흔들리자 김성근 감독이 마운드에 올라 진정시키고 있다.

이를 통해 SK 와이번스는 스타 선수가 없어도 누구나 스타 몫을 하는 야구, 끈끈한 조직력으로 선수단 중 누구 하나가 빠져도 절대 티가 나지 않는 야구를 하는 팀으로 거듭났다. SK 와이번스 팬들이 ‘SK 구단 전력의 반은 김 감독’이라고 칭송하며 ‘인천 예수’라는 별명을 붙여준 이유다.

일흔 살 감독, 독립구단에서 새로운 실험을 시작하다

김 감독은 SK 와이번스에서 지도자 인생 최초로 영광의 나날을 보냈고, 한국 야구계의 완연한 주류로 부상했다. 하지만 이는 오래가지 않았다. 2011년 8월18일 SK 와이번스 구단은 김 감독을 퇴진시키고 이만수 2군 감독을 감독대행으로 선임했다. 김 감독이 “올해 시즌이 끝나고 SK 와이번스를 떠나겠다. 재계약은 하지 않겠다”고 말한 지 하루 만이었다.

양측이 가장 크게 대립한 부분은 이만수 2군 감독 대행의 거취였다. 우수한 성적을 거뒀음에도 재계약에 뜨뜻미지근한 반응을 보이던 SK 구단에 김 감독이 섭섭함을 표시하자 “재계약을 하려면 이만수 2군 감독의 양해를 구해야 한다”는 뜻을 비친 것. 이는 자존심 강한 김 감독에게 큰 충격을 줬고 결국 그는 스스로 옷을 벗겠다고 선언했다.

실제 2006년 말 SK가 김 감독과 이만수 현 SK 와이번스 감독을 같은 팀에 영입했을 때 많은 야구인은 두 사람이 한 팀에서 뛴다는 사실에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두 사람의 인생 역정과 야구관이 달라도 너무 다르다는 이유에서다. 앞서 말한 대로 한국과 일본 모두에서 이방인으로 살아야만 했던 김 감독은 ‘프로는 승리로 증명한다’는 야구관을 절감하며 살아왔다.



하지만 한국 야구를 대표하는 스타플레이어였던 이만수 감독은 달랐다. 늘 국가대표로 뽑혔고 올스타 투표 때마다 최다 득표를 기록한 그는 “팬이 즐거워하는 야구를 하겠다”라고 공언해왔다. 승리를 삶의 존재 이유로 삼는 감독과 성적만큼 흥행과 쇼맨십을 중시하는 코치의 동거는 늘 불안할 수밖에 없었다.

이만수 감독의 거취 문제 외에도 선수단 훈련 문제 등으로 종종 구단과 갈등을 빚어온 김 감독이 시즌 도중 옷을 벗는 사태가 벌어지자 인천 팬들은 분노했다. 이들은 문학구장에다 ‘김성근 감독님 사랑합니다’‘김 감독님 폄하한 구단 관계자 사퇴하라’‘감독님을 내몰아? 우린 프런트를 자른다’‘프런트! 퇴진!’ 등의 현수막을 곳곳에 걸고 김성근을 연호했다. 일부 관중은 SK 와이번스 깃발을 불태우고 오물까지 투척하며 격렬한 항의 시위를 벌였다.

많은 사람이 SK 와이번스에서 물러난 김 감독이 당분간 쉴 것이라고 예상했다. 하지만 그는 야구장을 벗어날 수 없는 사람이었다. “갑갑한 감독직을 떨쳐버리니 더 쉴 틈이 없다”며 의욕을 불살랐다. 자신이 가르친 후배와 제자들이 지도자로 있는 아마추어 팀 선수들을 가르치기 위해 전국 곳곳을 누비고 다녔다. 그의 그라운드 밖 인생 역시 야구뿐이었다. 최근까지 일본 진출을 타진했던 그는 장고(長考) 끝에 2011년 말 한국 야구 최초 독립구단 고양 원더스의 초대 감독을 맡아 야구계에 복귀했다.

고양 원더스는 모기업의 지원을 받는 대기업 산하 계열사라는 기존 프로 구단의 운영 형태를 완전히 벗어난 팀이다. 구단주인 허민 나무인터넷 위메이크프라이스 이사회 의장이 출연한 사재(私財)로만 운영되기에 재정도 빈약하고 성공 여부도 불투명하다. 하지만 김 감독은 거기서 가능성을 읽었다고 주장한다. 기존 구단이 하지 못하는 일을 해볼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고양 원더스는 현재 40여 명의 선수를 선발했고 올해 프로야구 2군팀과 약 40경기를 치러 이 중 유망주들을 프로야구 1군 선수로 성장시킬 계획이다.

그만큼 프로야구 1군 무대의 문호가 좁다. 2011시즌에 프로야구단 신인지명에 도전한 고교 야구 선수는 708명이다. 이 중 10%인 78명이 지명됐지만 첫해 1군에서 주전이 된 선수는 LG 트윈스의 임찬규 1명뿐이다. 즉 고교 선수가 프로야구 1군 선수로 살아남는 확률이 1%도 안 된다는 뜻이다. 이를 감안하면 프로구단의 지명도 받지 못한, 즉 78명에도 들지 못한 선수들로 꾸려진 고양 원더스가 언제까지 존속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김 감독은 왜 이런 어려운 실험을 자청했을까. 그는 “1982년 프로야구 출범 때도 과연 이 땅에 프로야구가 생존할 수 있을까 생각했는데 30년간 성공적으로 뿌리내렸다. 이제 한국 야구의 발전을 생각할 두 번째 시기가 왔다. 독립야구단이 좋은 성적을 거두고 한 명의 선수라도 1군 무대에 올려야 또 다른 독립야구단이 생기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독립야구단이 한 팀이라도 더 생겨야 많은 선수가 야구를 하며 잊었던 자신들 꿈과 희망을 찾는다는 뜻이다. 하지만 그간 맡았던 프로구단들과 성격 자체가 판이하니 그의 어깨가 무거울 수밖에 없다. 김 감독은 취임사에서 “다시 유니폼을 입게 돼 무한한 행복을 느낀다. 현장을 떠날 시기가 왔다고 여겼는데 다시 이런 기회가 오니 마지막 행운이다. 창피를 당하지 않도록 어떻게 팀을 만들어나갈지 깊게 생각해보겠다”고 밝혔다. 일구이무의 신념처럼 미지의 세계에 대한 야신의 새로운 도전은 이미 시작됐다.

김성근 감독이 다른 조직의 리더들에게 주는 교훈

1)리더는 아버지다

김 감독은 평소 선수들을 ‘우리 아이들’이라고 칭한다. 마흔이 넘은 선수도 그에게는 예외 없이 ‘아이들’이다. 그는 항상 선수들의 아버지 노릇을 자청한다. 승리를 했건 패배를 했건 절대 선수 탓을 하지 않는다. 결국 선수를 기용하는 것도, 빼는 것도 감독이라는 이유에서다. 한 TV프로그램에 출연한 그는 ‘지도자는 아버지’라는 지론을 강조해 깊은 인상을 남겼다. 또한 김 감독은 늘 “우리 아이들이 잘살게 해줘야 한다”고 말한다. 그가 이 약속을 지킨 덕에 SK 와이번스에서 최저 연봉 2000만 원을 받던 수많은 선수가 억대 연봉자로 발돋움했다.

지도자는 곧 아버지라는 그의 신념은 윤길현 사건에서도 잘 드러난다. 2008년 6월 19일은 김성근 감독의 야구인생 중 가장 아픈 날로 기억된다. 이날 SK 와이번스의 홈구장인 문학에서 벌어진 KIA 타이거즈와의 경기에서 투수 윤길현이 욕설 파문으로 큰 논란을 일으켰기 때문이다. 20대 초반의 젊은 투수 윤길현은 10대 1로 크게 앞선 8회 초 자신보다 훨씬 나이가 많은 30대 중반의 최경환에게 머리로 날아가는 빈 볼(Bean Ball)성 공을 던졌다. 불쾌해하는 최경환에게 침을 뱉는 등 불량한 태도를 보인 윤길현은 최경환을 삼진으로 잡아낸 후에도 상스러운욕설을 내뱉으며 마운드를 내려갔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이 TV 중계에 고스란히 잡히면서 연공서열을 중시하는 한국 야구계가 발칵 뒤집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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