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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바꾼 책 이야기

불의한 정부에 대한 도덕적 저항의 근거

  • 김학순│언론인·북칼럼니스트 soon3417@naver.com

불의한 정부에 대한 도덕적 저항의 근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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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은 “나는 ‘가장 좋은 정부는 가장 적게 다스리는 정부’라는 표어를 진심으로 받아들이며 그것이 하루빨리 조직적으로 실현되기를 바라마지 않는다”는 문장으로 시작한다. ‘가장 좋은 정부는 가장 적게 다스리는 정부’라는 말은 미국의 독립선언문을 기초한 3대 대통령 토머스 제퍼슨의 이상이기도 하다.

이 책은 소로의 다른 저작이 그랬듯이 당대에는 별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글에 담긴 메시지와 소로에 대한 당대의 평가가 턱없이 야박했던 탓이다. 그의 멘토였던 랠프 월도 에머슨과의 불화, 멕시코 침략전쟁으로 불거진 미국의 애국주의적 분위기 등이 결정적 요인이었다. ‘세계를 뒤흔든 시민 불복종’의 저자 앤드루 커크는 이렇게 표현하고 있다. “예언자가 자기 나라에서는 영광을 누리지 못한다는 격언의 본보기를 찾는다면 소로 만큼 딱 들어맞는 경우도 없으리라. 그때도 소로는 주로 자립적인 삶과 ‘자연으로의 회귀’를 옹호하는 낭만주의자로 알려져 있었다.”

소로의 이념과 철학은 50년 뒤인 19세기 말 톨스토이의 눈에 띄어 획기적인 전환점을 맞는다. 20세기 초에는 남아프리카에서 인도의 독립운동을 전개 중이던 간디에게 무한 감동을 안겨주었다. 톨스토이는 “왜 당신네 미국인들은 돈 많은 사람들이나 군인들 말만 듣고 소로가 하는 말에는 귀를 기울이지 않는 거요?”라고 타박했을 만큼 소로를 숭앙했다.

간디와 킹 목사의 멘토

소로가 세계 역사에 본격적인 영향을 미치기 시작한 것은 간디를 통해서였다. 간디는 이 책이 자신의 이념을 세워 준 교과서와 같은 저작이라며 소중히 여겼다. 간디는 “나는 소로에게서 한 분의 위대한 스승을 발견했으며 ‘시민의 불복종’에서 내가 추진하는 운동의 이름을 땄다”고 칭송해 마지않았다. 간디가 펼친 운동은 ‘사티아그라하’를 말한다. 산스크리트어로 ‘진실의 힘’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는 사티아그라하는 비폭력 저항운동이었다. 간디는 1907년 자신이 편집하고 있던 ‘남아프리카에서의 인도인의 견해’에 ‘시민의 불복종’을 발췌해 싣기도 했다.



미국에서 ‘시민불복종’이 정치사상과 법철학의 주제로 떠오르고, 일상적인 낱말로 자리 잡은 것은 1950년대부터다. 이 무렵 소로의 성가를 높이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한 사람이 마틴 루터 킹 목사였다는 건 의심의 여지가 없다. 대학에서 ‘시민의 불복종’을 접한 킹은 더없이 강렬한 인상을 받았다. 킹이 흑인민권운동과 ‘시민의 불복종’의 관계를 인식한 것은 1955년 앨라배마 주 몽고메리에서 벌어진 버스 안 타기 운동을 통해 민권운동이 시작된 직후였다. 로자 파크스라는 흑인여성이 불을 붙인 투쟁이다.

킹이 저술과 연설에서 ‘시민의 불복종’을 자주 언급하면서 소로는 흑인민권운동, 나아가 1960년대의 반체제·저항문화와도 매우 밀접하게 연계됐다. “악에 협조하지 않는 것은 선에 협조하는 것만큼이나 도덕적인 의무다. 소로만큼 이러한 사상을 유창하게 열정적으로 전파한 사람은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다. 소로의 저술과 그가 몸소 보여준 행동 덕분에 우리는 창조적인 항의라는 유산을 물려받게 된 것이다.”

이밖에도 이 책은 영국의 노동운동가들, 나치 점령하의 레지스탕스 대원들, 베트남전쟁 반대 운동가들과 톈안먼 광장에서 민주화운동을 벌이던 중국 대학생들, 부도덕한 정권을 무너뜨렸던 필리핀 국민 등 불의한 권력과 싸우는 세계의 수많은 사람을 격려하고 그들에게 용기를 불어넣었다. 이제 미국과 유럽을 중심으로 한 반전 시위대, 환경운동가, 평화주의자, 무정부주의자, 나체주의자, 히피 등이 서로 앞 다퉈 소로를 자기 이념의 일원으로 내세우기에 이르렀다.

소로에 대해 잘못 알려진 것은 ‘비폭력주의자’라는 호칭이다. 소로가 비폭력주의자란 가면을 쓰게 된 것은 본의가 아니었다. 전적으로 시민운동 진영에서 그를 자기편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만든 것이다. 소로가 살던 19세기 시민불복종운동에서 비폭력은 필수적인 요소가 아니었다. 이런 오해 때문에 소로는 실제보다 간디와 킹 목사에 훨씬 더 가까운 인물로 묘사되곤 한다.

‘시민의 불복종’은 ‘월든’만큼이나 소로의 명성에 기둥이 되었다. 1968년 판본은 통상적인 순서를 바꿔 ‘시민불복종·월든’이라는 제목으로 나왔다. 1967년부터 1972년까지 미국에서는 신학자, 역사학자, 정치사상가, 법이론가, 연구원, 대법원 판사들이 ‘시민불복종’이란 말이 들어간 제목을 붙여 100여 권의 책을 출간했을 만큼 유행의 중심에 섰다. ‘시민의 불복종’은 지금까지 미국에서만 수십 종의 판본이 출간되었을 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 각급 학교의 커리큘럼에 들어 있다.

한국에서도 1986년 KBS 시청료 거부운동, 2004년 총선시민연대 낙천낙선운동, 2008년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촛불시위 등 크고 작은 시민운동이 논란 속에 ‘시민의 불복종’ 정신을 이어받고 있다. 소로의 외침은 여전히 지구촌 곳곳에서 현재진행형이다.

신동아 2012년 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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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학순│언론인·북칼럼니스트 soon341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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