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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션 칼럼

한국 여성 정치인은 왜 하이힐을 신지 않을까

패션 탐닉 여기자의 눈으로 본 여의도 풍경

  • 김민경 기자│holden@donga.com

한국 여성 정치인은 왜 하이힐을 신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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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묘한 베스트드레서, 박근혜

한국 여성 정치인은 왜 하이힐을 신지 않을까

박근혜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은 스타일에 대한 철학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역대 여성 정치인 중 베스트드레서로 평가받는다. 하지만 30년 전 라도 시계를 차고 다니는 데서 알 수 있듯 과거의 스타일에 머물러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재클린 케네디의 원피스와 진주목걸이, 커다란 선글라스가 ‘재키룩’이라면 ‘박근혜룩’은 깃을 세운 원브레스티드(한 줄로 단추를 잠그게 디자인) 재킷에 볼륨감 있는 액세서리와 실용적인 토트백이라고 할 수 있다. 목선에 걸린 목걸이는 시선이 아래로 내려가는 것을 차단하며 토트백은 공적·사적인 일을 참모진에게 맡기기보다 직접 결정하는 타입이라고 말해준다. 칼라를 세운 V라인의 재킷은 권위적이면서 한복의 V자 앞섶 라인과 일치하는데, 두말할 것도 없이, 대한민국 퍼스트레이디의 아이콘이자 어머니인 육영수 여사의 스타일과 완벽한 ‘싱크로율’을 보인다.

박 위원장은 지난해 5월 유럽을 특사 방문할 때 국내에서 보여주지 않던 화려한 스타일로 화제를 모았다. 방문국의 상징색, 면담 대상자와 장소에 맞춰 하루에 서너 번씩 옷과 구두를 바꿨다. 이런 모습을 처음 본 한국 언론은 분석에 열을 올렸고 이 같은 보도에 인상을 찌푸린 사람도 많았다. 왜 ‘옷 따위’에 관심을 갖느냐는 것이다.

하지만 옷은 말과 행동처럼, 그 인간을 이루는 총합 중 한 부분이다. 게다가 패션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영국의 다이애나 비나 프랑스의 브루니 여사, 미국의 미셸 오바마 여사 등이 자국 디자이너들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켰듯 박 위원장도 ‘패션 한류’를 알리는 역할을 해주었으면 했다.

그랬을지도 모른다, 30년 전이었다면. 박 위원장은 퍼스트레이디다운 태도와 외교상 TPO를 정확히 교육받은 사람다운 모습을 보여주긴 했다. 하루에 옷을 서너 번 갈아입은 것, 옷이 바뀔 때 구두와 백과 액세서리를 바꾼 것, 당연하다. 추모를 위해 군인묘지를 방문할 때와 여왕을 알현할 때 똑같은 차림을 하는 것은 결례 아닌가. 폴란드 아우슈비츠 해방 기념식 날 검은색으로 성장한 유럽 정상들 사이에 스키파카와 털모자, 등산용 부츠를 신고 혼자 ‘등 따스운’ 표정으로 서 있던 딕 체니 미국 부통령이 ‘무식하고 오만하다’는 평을 들어도 싸지 않은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쩌면 한국의 여성정치인대부분은 거무칙칙한 정장 슈트로 때웠겠지만, 박 위원장은 스스로 ‘내추럴 본’ 국가대표인 것이다.



그러나 그녀의 시계는 30년 전 국빈을 만나던 은성한 연회장에서 멈춘 듯했다. 20세기 말 ‘벨 에포크’와 반 세기 전 크리스티앙 디오르의 뉴룩을 연상시킨 박 위원장의 특사 패션은 최근 미국의 미셸 오바마 여사나 콘돌리자 라이스 전 장관, 독일의 메르켈 총리 등과 비교했을 때 전혀 ‘동시대적’이란 느낌을 주지 않는다. 클래식이라고 부르기엔 과거의 디테일들이 두드러진다. 박 위원장은 실제로 30년 된, 이미 업체에서도 생산을 하지 않는 오래된 ‘라도 시계’를 차고 다닌다. 이미지 메이킹을 공부한 한 패션 전문가는 “진부한 옛날 스타일이다. 그런데 왜 기묘하게 (박 위원장과) 잘 어울리는지 모르겠다”고 말한다.

한 정치부 기자는 “박 위원장이 유럽 특사 패션이 국내에서 크게 기사화되고, 비판적인 칼럼 등이 나오는 데 대해 매우 불편해하는 것 같았다. 그 후 한동안 같은 옷을 몇 번씩 입고 나오기도 했다”며 “이는 전에 없던 일”이라고 전했다.

박 위원장은 결벽적으로 입을 다물고 있는데, 옷은 너무 많은 걸 이야기한다. 박 위원장이 정치적 소신과 철학을 이야기하고, 비판과 논란으로 단련되면서 오늘의 자리에 이르렀다면, 그녀의 우아한 스타일도 동시대적으로 발전했을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혹은 그 역도 가능하다. 그런 예가 미셸 오바마 여사다. 그녀는 삶의 중요한 순간마다 스타일을 바꾸면서 스스로의 역할 변화와 자존감을 표현해왔고, 영부인이 된 후에는 미국 디자이너들, 그중에서도 제이슨 우, 타이쿤처럼 다문화(아시아계) 배경을 가진 신진들의 드레스와 제이크루 같은 중저가 미국브랜드를 입고 나와 세계에 그것을 홍보했다. 그것에 대해 예쁘다 아니다라거나, 특정 브랜드의 ‘옷 로비설’을 이야기하는 이는 없다. 모델의 비쩍 마른 몸매와 비교하기 좋아하는 우리 눈에 미셸은 이상적인 체형이 아닌데도, 미국 언론은 미셸이 ‘아메리칸 스타일’을 만들어냈다며 찬사를 보낸다(Kate Betts,‘Everyday Icon: Michelle Obama · the Power of Style’ ).

퇴행과 위선의 시대

4년 전 ‘여성의 지위변화로 본 한국 여성 정치인의 이미지변화’를 발표한 최현숙 동덕여대 디자인학장은 5선 의원이던 박순천(1898~1983) 여사와 대선에도 나섰던 김옥선 전 의원이 각각 한복과 남성양복을 입음으로써 여성성을 극도로 배제했던 과거에 비하면, 박 위원장 등장 이후 여성 정치인들은 최근 분위기가 퇴행하기 전까지 부드러움, 아름다움 같은 여성적 특징으로 대중에게 친근하게 다가서고 세상이 진보할 수 있음을 깨달은 것으로 보인다고 말한다.

여성적 패션 이미지를 가장 적극적으로 강화한 최근의 여성 정치인은 강금실 전 법무장관일 것이다. 2006년 서울시장선거 출마 전까지 그녀는 지적이고 자신감 있는 ‘파워 우먼’ 스타일로 보였다. 마치 중년의 뉴요커 같았달까. 그러나 유명세와 함께 보라와 핑크가 자주 등장하고 ‘오버’횟수가 많아지더니, 급기야 시장선거 과정에선 보라색 정장에 보라색 구두를 신고, 보라색 파시미나를 휘날리면서 나타나곤 했다. 참신한 여성 ‘정치인’의 이미지는 증발하고, 감당하기 어려운 판타지만 남았다. 길에서 보라색으로 머리부터 발끝까지 휘감은 중년의 여인을 만났다고 상상해보자. 참 난감하다.

그래도 좋은 시절이었다. 개성 있고 능력도 있는 정치인들이 나왔고, 국회의원들이 패션 화보를 촬영하고 국내 디자이너들과 친분을 자랑하기도 했다. 국회에 ‘백바지’를 입고 들어오기도 했다. 거칠기는 해도 스타일로 자신을 알리려는 정치인들로 시끌벅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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