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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차! 보고서를 작성하자

제2장 연이은 수소폭발 세계를 긴장시키다

  • 이정훈 전문기자 hoon@donga.com

아차! 보고서를 작성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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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차! 보고서를 작성하자

연속된 수소폭발로 시미즈 도쿄전력 사장은 결국 사퇴했다.

그렇다면 4호기는 대지진으로 자동정지한 1~3호기 상황과 다를 바가 없다. 차이점이라면 핵연료의 양이 3분의 1정도 적었다는 것뿐이다. 따라서 원자로 안에 있는 물은 핵연료의 열을 받아 줄어들 수가 있었다. 그러나 사고 후 조사한 바에 따르면 4호기의 물은 핵연료 상단을 물 밖으로 노출시킬 만큼 줄어들지 않았다. 4호기의 핵연료는 전체가 물에 잠겨 있었다.

따라서 사고 원인 조사팀은 4호기 사용후핵연료 저장수조의 물이 줄어 사용후핵연료 상단이 물 밖으로 노출돼 녹아내렸는지도 살펴봤는데 4호기 수조는 모든 사용후핵연료를 물에 담아놓고 있었다. 그렇다면 4호기에서는 수소폭발이 일어나지 말아야 하는데 폭발이 일어났다. 이 때문에 도쿄전력 측은 다른 호기에서 발생한 수소가 관 등을 타고 4호기로 들어와 폭발한 것으로 해석했다.

다른 호기에서 발생한 수소가 4호기 사용후핵연료 저장수조의 천장으로 올라가 폭발했다는 것은 후쿠시마 제1발전소의 격납용기들이 완전 밀봉돼 있지 않았음을 뜻한다. 그렇다면 원자로가 훼손돼 원자로 밖으로 방사성물질이 나올 때 이러한 틈을 통해 격납용기 밖으로 누출될 수가 있다. 이러한 사실은 GE의 마크-1 격납용기가 매우 부실하게 설계되고 건설됐음을 증명한다.

아차 보고서와 머피의 법칙

후쿠시마 제1발전소 사고가 일어나기 36년 전인 1975년 미국 GE의 과학자들이 이러한 문제점을 제기한 적이 있다. 1975년은 후쿠시마 제1발전소의 1호기가 상업가동한 지 4년, 2호기는 1년이 지난 시점이다. 3호기는 거의 다 지어 시운전을 하고 4·5·6호기는 한창 짓고 있을 때였다. 도쿄전력은 용량이 큰 6호기(110만kW)보다 강화한 마크-2 격납용기를 채택하고 5호기까지는 전부 마크-1 격납용기를 선택했다.



당시 GE의 직원이었던 데일 B. 브리덴보(Dale B. Bridenbaugh) 씨 등은 마크-1 격납용기가 너무 얇고 내부 면적이 좁아 원전사고 시 안전을 보장하지 못한다고 주장했으나 회사가 받아들이지 않자 GE에 사직서를 낸 사실이 있다고 밝혔다. 브리덴보 씨는 미국 ABC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우리가 1975년에 발견한 문제들이 바로 이것이다. 냉각수가 공급되지 않아 원자로가 과열됐을 때 마크-1 격납용기는 그 압력을 이기지 못한다고 지적했었다”고 말했다.

설계자들은 최소 비용을 추구하는 경향이 있다. 법과 규정, 발주처가 요구하는 범위 내에서 안전성을 지키되 사업을 따내기 위해 최소 비용으로 짓는다. 안전성은 법과 규정, 발주처가 요구하는 데까지만 지키는 것이다. 법과 규정, 발주처의 요구에 허점이 있다는 것을 알아도 낙찰을 받는 것에 방점을 찍기에 무시한다. 브레덴보 씨는 이 점을 지적한 것이다. 이러한 문제 제기에 대해 GE는 후쿠시마 제1발전소의 원전들은 규모 9.0의 강진을 이겨냈다고 해명하는 것으로 대응했다.

이은철 서울대 원자핵공학과 교수는 “엔지니어들이 자유롭게 ‘아차 보고서’를 쓸 수 있게 하자”고 주장한다. 살다보면 “아차!” 하는 실수를 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현실에서는 “아차” 했는데, 운 좋게 넘어가는 경우는 훨씬 더 많다.

그러다 사고는, 특히 대형사고는, 아차 하고 넘어갔던 곳에서 일어난다. 이 교수는 “엔지니어들이 평소에 아차 하고 지나간 부분에 대한 보고서를 자유롭게 쓰게 하자 그리고 아차 보고서가 많은 부분은 장차 큰 사고가 날 수 있다고 보고 미리 수정하는 시스템을 구축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한다.

아차 보고서는 머피의 법칙과 상통한다. 전투기 조종사들은 급격한 가속과 감속 상황에 자주 놓인다. 급감속을 하면 큰 중력이 걸려 급가속을 할 때보다 더 큰 충격을 받는다. 급감속 시 조종사가 정신을 잃으면 항공기가 추락한다. 따라서 급감속 시 조종사의 신체 반응을 조사할 필요가 있었다. 1949년 미 공군의 정비장교인 에드워드 머피 대위가 이 조사를 하게 되었다.

그는 급감속 시 조종사가 신체에 받는 충격을 체크하는 장비를 만들었다. 그런데 이 장비가 제대로 작동되지 않아 조사해보니 전극이 잘못 연결돼 있었다. 머피 대위는 이 장비를 만들 때 ‘전극을 잘못 연결하면 절대 안 되지’ 하고 걱정했는데, 그가 염려한 대로 된 것을 알고, 걱정을 많이 하면 걱정하는 대로 되는 경향이 있다고 정리했다. 이것이 유명한 ‘머피의 법칙’이다.

“아차”를 여러 번 해서, ‘저걸 손보긴 봐야 하는데…’ 하고 지나가는 일이 얼마나 많은가. 그리고 사고가 일어나면 머피의 법칙을 떠올린다. Think the Unthinkable을 하려면 아차 보고서를 작성해야 한다. 인간의 상상력은 무한하기에 천재지변도 그려볼 수가 있다. 사람이 갖고 있는 창의력을 최대한 활용하는 체제가 궁극적으로 승리한다.

6호기는 비상발전기가 온전해서 무사

4호기에서 사고가 났다면 같은 상태였던 5·6호기에서도 사고가 날 수 있다. 그러나 5·6호기에서는 사고가 일어나지 않았다. 도쿄전력 직원들은 후쿠시마 제1발전소에 설치해놓은 14대의 비상발전기 가운데 6호기용 비상발전기를 복구해냈다. 6호기용 비상발전기 한 대는 운 좋게 덜 침수돼 가동시킬 수 있었다. 이 때문에 핵연료 교체를 위해 정지시켰던 6호기는 원자로 안에 있던 핵연료를 완전히 냉각시켰다. 사용후핵연료 저장 수조에서도 물을 돌려 완전히 냉각시켰다.

원전은 2개 호기를 묶어서 짓는 경우가 많다. 6호기와 5호기는 전기적으로 연결돼 있었다. 따라서 6호기의 비상발전기가 일으킨 전기를 5호기로 보내 원자로와 사용후핵연료 저장수조도 완벽하게 냉각시켰다. 이러한 사실은 전기만 살아 있으면 원자력발전소의 사고와 사건에 대처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반대로 모든 전기가 끊어진 SBO를 맞으면 겉잡을 수 없는 위기에 처한다. 책임자들이 용단을 내리지 못하면 피해는 기하급수적으로 커지게 된다.

왜 GE와 도쿄전력은 14대의 비상발전기를 모두 지하에 설치했는가. 왜 GE와 도쿄전력은 얇고 좁은 마크-1 격납용기를 채택했는가? 왜 도쿄전력 수뇌부는 해수 주입을 신속히 결심하지 못했는가? 왜 요시다 마사오 소장은 1호기에서 수소폭발이 있기 전에 자기 고집으로라도 1호기에 해수 주입을 지시하는 항명(抗命)을 하지 못했는가?

후쿠시마 제1발전소 사고에는 숱한 ‘왜’를 붙일 수 있다. 왜?에 대한 대답이 같은 사고를 피하는 대책이 된다.

후쿠시마는 한자로 ‘福島’라고 쓴다. 복이 많은 섬이어서 이런 한자로 적었나 보다. 그러나 많은 왜에 대답할 수 없다는 점에서 후쿠시마 제1발전소는 지질히도 ‘복’ 없는 발전소였다.

도쿄전력에는 살신성인(殺身成仁)하려는 사람이 없었다. 한 사람만 독배(毒杯)를 들었으면 많은 이가 살 수 있었는데, 그 한 사람이 없음으로 도쿄전력의 많은 사람이 독배를 마시게 되었다. 도쿄전력은 기업붕괴로 치달은 것이다.

신동아 2012년 3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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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훈 전문기자 ho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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