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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아·서울대 HK문명연구사업단 공동기획 - 문명의 교차로에서 <마지막 회>

깨달은 동양 구루가 왜 성(性)스캔들 주인공이 됐을까?

종교적 프리즘으로 본 문명 교류

  • 성해영│서울대 인문학연구원 HK교수·종교학 lohela@daum.net

깨달은 동양 구루가 왜 성(性)스캔들 주인공이 됐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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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기에 이루어진 종교 간 만남은 근대 이전의 문명 교류 과정에서 흔히 목도되던 타자에 대한 노골적 폭력에서 벗어났다. 그런 덕분에 동양 종교는 종교의 자유를 철저하게 보장한 미국에서 마치 물을 만난 물고기처럼 활기를 띠었다. 하지만 그 과정이 그저 순탄하기만 했던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동양 종교의 미국 진출은 개인적인 원망(願望)의 투사, 과도한 이상화, 동서양 문화의 차이로 인한 갈등, 구루와 신도의 인간적 불완전함 등이 함께 어우러진 냉혹한 드라마였다. 그 대표적인 사례를 더욱 자세하게 살펴보자.

‘미국이 기다리던 메시아’ 라즈니시

우리가 살펴볼 첫 번째 인물은 바그완 스리 라즈니시(Bhagwan Shree Rajneesh·1931~1990)다. 후일 오쇼(Osho)로 개명한 그는 인도 출신 구루 중에서도 세계적으로 가장 유명한 인물 중 하나다. 특히 라즈니시는 동서양 경전에 대한 해박한 지식, 타고난 달변, 명쾌한 논리, 인간적 카리스마를 골고루 갖춘 사람이었다. 폭발적 인기를 반영하듯 라즈니시의 아시람이 있던 인도 푸나(Poona)는 미국인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서 가르침을 듣고자 했던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라즈니시의 가르침은 책을 통해 한국에도 널리 알려졌으나 유명세에 비해 그가 미국에서 일으킨 스캔들은 우리에게 그리 많이 알려져 있지 않다.

라즈니시는 1931년 인도에서 태어났다. 번뜩이는 지성과 재치를 가진 병약한 소년이던 그는 어린 시절부터 광범위한 독서로 폭넓은 지식을 쌓았다. 그러나 우울증, 만성적인 허리 통증, 당뇨와 같은 질병이 그를 평생 괴롭혔다. 대학에서는 철학을 공부했고, 스물한 살이 되는 해, 치열한 수행 끝에 깨달음을 얻었다고 전해진다. 스물아홉 살인 1960년 모교인 자발푸르 대학에서 철학과 교수직을 얻었지만, 거침없는 발언으로 인해 결국 6년 만에 대학을 떠나게 된다. 이 시기 라즈니시는 간디를 마조히즘(이성으로부터 육체적 또는 정신적으로 학대받고 고통받음으로써 성적 만족을 느끼는 병적인 심리)에 빠진 성도착자로, 테레사 수녀를 사기꾼으로 비난해 후일 그가 일으키는 커다란 논란을 미리 살짝 보여주기도 했다. 사직한 후 그는 영적인 가르침을 전하는 구루로 나선다.

그의 가르침은 ‘종교 없는 종교(religionless religion)’라는 표현으로 요약된다. 윤리라는 미명하에 인간의 타고난 욕망을 억압하는 모든 낡은 종교를 혁파하고, 개인의 자유를 존중하는 새로운 종교를 만들자는 것이다. 특히 개인의 영적 탐구와 성적 에너지의 자유로운 충족을 결합해 ‘지금 이곳’에서의 즐거움을 강조하는 탄트라(tantra)가 핵심이었다. 하지만 즐거움에 초점을 둔 라즈니시의 종교 공동체는 역설적으로 괴로움의 원천이 되기도 했다. 초창기 그는 노동이 곧 영적 수행이라는 주장을 실현하고자 30여 명의 제자를 가족 소유의 농장에 보내 일을 시켰다. 그러나 이 계획은 과도한 노동과 영양 부실 때문에 몇몇 제자가 건강을 크게 해치면서 무위에 그치고 말았다. 이외에도 공동체 내부의 자유로운 성생활은 지역 주민의 비난을 끊임없이 불러일으켰고, 외국에서 온 수행자들과 주민들 사이의 갈등도 이런저런 이유로 계속됐다. 그럼에도 라즈니시의 아시람은 한때 6000명이 동시에 머물 만큼 급속도로 성장했다. 하지만 규모가 커질수록 주민과의 마찰 역시 점증했고, 결국 400만 달러 상당의 세금을 추징하려는 지방 정부와 갈등하는 사태마저 빚어졌다.



곤란에 직면한 그는 제자들의 권고에 따라 미국에 진출한다. 1981년 신도들의 열렬한 환영을 받으며 미국에 도착한 그는 공항에서 ‘나는 미국이 기다리던 메시아’라고 당당하게 선언한다. 미국에 온 라즈니시는 오리건 주에 넓은 목장을 마련하고, ‘라즈니스푸람(Rajneeshpuram·라즈니시의 도시)’이라고 이름 붙인다. 이곳 역시 인도의 아시람처럼 큰 성공을 거둔다. 그 단적인 예로 공동체는 1981~85년 4년 동안 1억2000만 달러의 수입을 올렸다. 라즈니시는 이곳에서 마치 왕과 같았다. 어릴 적부터 수집벽으로 유명했던 그는 무려 93대의 롤스로이스 자동차를 사들였고, 이 차를 타고 신도들이 늘어선 공동체를 주기적으로 퍼레이드했다. 심지어 신도들은 그가 날마다 다른 차를 탈 수 있도록 365대의 롤스로이스를 마련하겠다는 원대한 목표를 세우기도 했다.

하지만 이런 기적적인 성장 중에 라즈니시는 재발한 우울증과 허리 통증으로 자신이 좋아하던 강연조차 그만둔 채 오랜 침묵의 시간을 보냈다. 교단의 운영은 제자이자 여비서였던 마 아난드 쉴라(Ma Anand Sheela)에게 주로 맡겨졌다. 그러나 교단의 폭발적인 성장과 힘의 집중은 많은 문제를 야기했다. 모금에 혈안이 된 교단은 신도들을 병에 걸렸다는 거짓말로 그들의 부모에게서 돈을 타내게 부추기는가 하면, 질서를 유지한다는 이유로 신도에 대한 도청과 폭행도 서슴지 않았다. 인도에서처럼 공동체와 지역 주민들의 관계는 점차 악화됐고, 이 과정에서 교단은 허위로 투표인단의 수를 늘려 안티로프(Antelope)라는 지역 명칭을 아예 라즈니시푸람으로 바꾸기까지 했다. 또 지역 주민과 갈등하면서 방화, 공무원 폭행 사건이 벌어졌으며, 심지어 살모넬라 균을 지역 식당에 살포하기도 했다. 이 사건은 미국 내에서 일어난 최초의 화생방 테러다. 비슷한 사례로 1995년 도쿄 지하철에 사린가스를 살포해 12명을 사망하게 만든 옴진리교의 화생방 테러가 있다.

‘비밀스러운 삶’을 산 구루 묵타난다

상황이 점점 심각해지자 당국은 교단을 수사하기 시작했고, 위기감을 느낀 쉴라는 1985년 19명의 동료와 함께 독일로 도피했다. 그러나 그곳에서 곧바로 붙잡혀 미국으로 송환됐다. 그는 재판을 거쳐 이민사기, 도청, 살모넬라 균 살포, 방화, 폭행 등의 혐의로 20년 형을 선고받았다. 이 같은 상황에 직면하자 라즈니시는 모든 잘못을 쉴라 탓으로 돌리면서도 쉴라의 전체주의적 교단 운영이 사람들로 하여금 파시즘을 경험해 자유의 참된 가치를 알려주려는 자신의 계획이었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이런 주장과는 별개로 그는 전용 비행기를 타고 버뮤다로 탈출하려다 이민법 위반으로 공항에서 체포됐다.

붙잡힌 라즈니시는 사법 당국과의 협상을 통해 40만 달러의 벌금과 미국 정부의 허가 없이는 5년 안에 재입국하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1985년 미국에서 추방됐다. 인도인들에게 라즈니시의 추방은 동양 구루에 대한 서양의 탄압으로 여겨졌다. 그는 인도인들의 열렬한 환영을 받았다. 그는 1990년 심장마비로 파란만장했던 삶을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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