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5월호

포퓰리즘의 광풍이 휩쓸고 지나간 거리

  • 조동근│명지대 경제학과 교수·한국하이에크소사이어티 회장

    입력2012-04-19 11:2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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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포퓰리즘의 광풍이 휩쓸고 지나간 거리

    지난해 나경원 서울시장 후보의 선거유세 장면.

    발라드 가수 변진섭이 부른 노래 중에 ‘홀로 된다는 것’이 있다. “이별은 두렵지 않아. 아픔은 참을 수 있어. 하지만 홀로 된다는 것이 나를 슬프게 해…” 굳이 남녀 애정관계가 아니더라도 ‘홀로 된다는 것’은 두려운 일이다. 누군가에 의지하고 싶은 것이 인지상정이다. 따라서 누군가 자신을 보듬어주기를 원한다. 만약 국가가 자신을 보살펴준다면 금상첨화일 것이다. 사회적 연대는 이렇게 개인을 공동체의 일원으로 귀속시킨다.

    인간은 자신의 의지로 태어나지 않는다. 신(神)에 의해 던져진 존재로서의 ‘피투성(被投性)’일 뿐이다. 던져진 존재에게 ‘자유의지’는 참으로 역설이 아닐 수 없다. 실존을 위한 대반전(大反轉)인 것이다. 그렇기에 ‘홀로 되는 것’과 ‘홀로 서는 것’은 구별돼야 한다. ‘홀로 되는 것’을 두려워할 수는 있겠지만 ‘홀로 서는 것’을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 사회적 연대도 ‘홀로 서는’ 문제를 해결해줄 수는 없다. ‘사회적 연대’가 ‘사회적 보장’일 수 없기 때문이다. 사회에 의존하는 순간, ‘나’는 존재하지 않는다. 개인의 책임은 방면되며 모든 책임은 사회에 귀속된다. 국가에 의존하는 것은 ‘자조 의지’를 저상시킨다. 그리고 경제 활력이 상실된다.

    올해는 국회의원 총선과 대통령선거가 8개월 간격으로 치러진다. 총선은 대선의 전초전으로서 그 의미가 크다. 모든 달걀을 ‘한 바구니’에 넣은 셈이다. 그래서인지 여야의 선거전은 비이성적 과열 양상으로 치닫고 있다. 일반적으로 선거는 주어진 방향으로의 ‘속도 경쟁’이 아닌 ‘방향을 선택’하는, 비유하자면 ‘스톱워치’가 아닌 ‘나침반’의 경쟁이어야 한다. 이념과 가치 기반을 달리하는 정당 간의 경쟁이 ‘정반합(正反合)’을 통해 자연스럽게 정치발전을 가져오기 때문이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19대 총선에서는 여야 모두 ‘똑같은 방향으로의’ 속도 경쟁을 벌였다. ‘비겁한’ 선거가 아닐 수 없다. 정책방향이 동조화된 것은 한쪽이 다른 쪽을 베꼈기 때문이다. 그 기저에는 인기 영합적 포퓰리즘이 똬리를 틀고 있다.

    선거는 ‘스톱워치’ 아닌 ‘나침반’ 경쟁이어야

    민주주의는 인간이 만들어낸 가장 좋은 정치 시스템이지만 역설적으로 타락할 여지도 다분하다. 민주주의에서 권력의 원천은 ‘다수의 지지’ 그 자체다. 문제는 다수의 지지를 이끌어내는 정강이 굳이 ‘가치 지향적’일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대중을 위무(慰撫)해 인기를 끌 만한 것들을 ‘정책바구니’에 담기만 하면 된다. 바구니 계산을 종국적으로 누가 하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당장 집권이 중요할 뿐이다. 여야 정책바구니에는 ‘경제민주화와 보편적 복지’라는 정치상품이 공히 담겨 있다.



    경제민주화가 왜 시대정신이어야 하는지에 대한 설명은 없다. 엄밀한 논증이 수반되지 않은 “신자유주의가 양극화를 초래했다”는 인기 영합적 발언이 그 자리를 메우고 있다. 그리고 보편적 복지의 지속가능성에 대한 고민은 처음부터 아예 없었다. 경제민주화로 재벌을 규제하고 중소기업을 육성하며, 보편적 복지를 통해 ‘국민의 행복’을 책임지겠다는 것이다.

    경제민주화는 2분법적 대립구도를 전제로 한 ‘국가개입주의’나 다름없다. 이는 “시장질서를 이성으로 대체하겠다”는 ‘치명적 오만’이 아닐 수 없다. 국가개입주의는 ‘지식의 문제’에 봉착하기 때문에 설계주의의 폐해를 낳는다.

    경제민주화의 맥락에서 중소기업정책은 오도되고 있다. “보호, 육성, 지원”의 범주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개인’은 국가의 보호를 받을 수 있지만 ‘기업’이 국가의 보호를 받는 것은 다른 문제다. 대·중소기업의 ‘2분법적 대립구도’는 암묵적으로 중소기업 전체의 ‘공동체적 이익’을 전면에 등장하게 한다. 이는 중소기업 간의 경쟁을 제한하는 것이다. 중소기업정책은 중소기업의 경쟁력을 제고시키는 것이어야 한다. 경쟁을 촉진하고 진입과 진출을 원활하게 함으로써 기업생태계를 강건하게 만들어야 한다. 하지만 현재의 중소기업정책은 ‘기존 중소기업’의 이익을 지켜주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중소기업적합업종제도도 예외는 아니다.

    경제민주화와 보편적 복지의 함정

    재벌의 경제력 집중을 규제해야 중소기업이 살아난다는 주장은 ‘아날로그’식 정책인식에서 비롯된 것이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은 내수시장을 놓고 경합하지 않는다. 2010년 기준으로 10대 업종 대표기업의 매출 중 수출이 차지하는 금액은 194조8000억 원으로 내수(89조5000억원)의 2배가 넘는다. 대기업의 해외수주는 국내 중소협력업체의 납품기회로 연결된다. 대·중소기업 간에 서로 짝을 찾게끔 울타리를 쳐주는 것이 필요하다. 중소기업정책의 핵심은 ‘중소기업 간 경쟁촉진과 대·중소기업 공정거래’여야 한다. 중소기업 간 경쟁을 억압해서는 중소기업의 경쟁력이 제고될 수 없다.

    여야의 무차별적 복지경쟁은 미래의 성장기반을 해칠 수 있다. ‘요람에서 무덤까지’로 요약되는 서구의 복지모델은 지금 수술대에 누워 있다. 국가가 모든 국민의 생활안정과 행복을 책임지기에는 국가의 능력이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우리만 과욕을 부리는 것이다. 개인의 생활안정은 일차적으로 본인의 책임이어야 한다.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 경쟁에서 탈락한 사람의 패자부활 기회 마련이 국가의 책무여야 한다.

    주지하다시피 자본주의 시장경제에서 국가는 ‘무산(無産)국가’이다. 국가가 가진 것은 ‘징세권’ 밖에 없다. 징세권은 형식적인 동의를 거친 후 임의로 다른 사람의 주머니를 열겠다는 것과 다르지 않다. 국가의 보호는 ‘원칙적으로’ 소나기를 잠시 피하는 처소여야 한다. 소나기를 피한 사람은 자기의 길을 다시 떠나야 한다. 무상복지는 달콤해 보이지만 재정을 매개로 누군가가 다른 누군가에게 부담을 전가시켜 혜택을 누리는 것이다. ‘세금은 남에게, 복지는 나에게’라는 도덕적 해이를 부를 수밖에 없다. 보편적 복지는 사전적 기대와 달리 사회에 갈등을 낳을 수 있다.

    보편적 복지의 궁극적인 지향점은 국민행복이다. 하지만 국민행복이 맹목이어서는 안 된다. 어떤 가치와 이념에 기초해 국민의 행복을 꾀할 것인지를 말할 수 있어야 한다. 미래 세대에 ‘빚’을 남기면서까지, 사회주의적 발상을 마다하지 않으면서라면, 국민행복론은 독(毒)이 아닐 수 없다.

    ‘탈무드’에 “남의 자비에 의존하느니 차라리 가난을 택하는 것이 낫다”는 구절이 있다. ‘자비’를 폄훼하고 ‘가난’을 미화시키려는 것이 아니다. 탈무드는 ‘자비’보다는 ‘의존’에 방점을 찍고 있다. 즉 다른 사람의 자비에 의존하는 타성에 빠지면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잃을 수 있다는 경고인 것이다. 탈무드는 이어 다음과 같이 말한다. “남의 돈을 거저 받느니 차라리 ‘빌리는’ 것이 낫다. 만약 거저 받으면 받은 사람은 준 사람의 ‘밑’에 있게 되지만, 빌리고 빌려주면 서로 ‘대등’해 질 수 있기 때문이다.”

    포퓰리즘의 광풍이 휩쓸고 지나간 거리
    趙東根

    1953년 경기 광주 출생

    1975년 서울대학교 건축공학과(공학사)

    1979년 서울대학교 대학원 경제학과 (경제학 석사)

    1985년 미국·신시내티 대학교 대학원 경제학과(경제학 박사)

    현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 바른사회시민회의 공동대표, (사)시장경제제도연구소 이사장, 현 한국하이에크 소사이어티 회장


    포퓰리즘에 물든 정치인들은 “이제는 사회가 개인을 부양해야 할 때”라고 말한다. 가장 인간적인 방법으로 국가가 국민에게 ‘따뜻한 빵’을 주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따뜻한 빵’은 이내 식기 마련이다. 중요한 것은, 개인이 ‘따뜻한 빵을 만드는 기술’을 터득하는 것이다.

    포퓰리즘의 광풍이 휩쓸고 지나간 자리는 공허하기 짝이 없다. 표를 얻기 위해 영혼을 파는 사람들만 넘치고 있다. 그런 사람들에게 자신을 의탁하려는, ‘홀로 서기’를 두려워하는 사람들로 넘쳐난다. 자조 의지를 잃고 국가에 의존하는 것만큼 개인의 존엄을 해치는 것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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