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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의 비밀 간직한 명품의 쌍둥이 ‘로스’의 세계

구호·오브제·타임 등 국내 명품 브랜드 백화점가 40~60%로 유혹하는 전문점 늘어

  • 김민경 기자| holden@donga.com

출생의 비밀 간직한 명품의 쌍둥이 ‘로스’의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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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셔널 명품 로스의 부상

같은 이유로 정품 로스가 많이 나오는 종류가 가죽, 니트, 패딩, 모피 소재 옷이나 가방, 신발, 액세서리 등이다. 특수 소재와 부자재를 소량으로 조달해 제작해야 하는 아이템이기 때문에 브랜드 MD가 원단을 공급하지 않고, 하도급 공장에서 이 과정을 모두 책임지기 때문이다.

“아휴, 아무리 관리를 해도 하도급 공장 사장님이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정품 로스를 만들어 빼돌릴 수 있어요. 라벨도 청계천에 가면 얼마든지 똑같이 고급스럽게 직조해줘요. ‘오브제’ 정품 로스를 빼돌린다는 정보가 있어 하도급 공장을 급습한 적이 있는데, 사장님이 도망가버리니까 어쩔 도리가 없더라고요. 의류 브랜드 하면서 제일 중요한 일이 양심적인 하도급 공장 사장님 만나는 거예요.”(패션디자이너 윤한희)

최근 국내 패션브랜드들이 해외 명품 소비자를 공략하기 위해 럭셔리화(상품의 질과 이미지의 고급화 전략)하면서 로스 소비자들도 십중팔구 가짜인 해외 브랜드의 로스를 사기보다는 ‘믿을 만한’ 국내 고가 브랜드의 로스를 훨씬 선호하는 추세다. 한 패션지 기자는 “로스 구매가 ‘패피(패션피플)’에게는 일종의 특권”이라고 말한다.

“패션업계에 있으면 정품 로스 구매 기회가 다른 사람보다 많아요. 내셔널 브랜드의 하도급 업체 사장이 정품 로스나 본사에서 클레임 받은 물건들을 디자이너나 내부 직원에게 싸게 주는데, 이런 물건들이 나오면 믿을 만한 사람끼리 비밀리에 바로 사버리죠. 동대문시장 같은 데서 파는 ‘무늬만 로스’완 달라요. 이들은 절대 로스 샀다고 말하지 않아요.”



국내 브랜드의 경우 구조적으로 로스 유통이 가능하고, 소비자가 백화점 매장에 가서 확인할 수 있으니, 확실한 정품 로스를 구매한다면 정품을 싼 가격에, 심지어 남보다 빨리 ‘득템(인기 아이템을 획득하는 것)’하는 쾌감까지 얻을 수 있다. 정품 로스는 생산 공장에서 나오는 것이므로 백화점보다 먼저 유통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정품 로스의 필요조건은 따끈따끈한 신상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취재 중 정품 로스 가방을 추천받아 살펴보니, 정품으로 보였지만 몇 년 전 재고를 파는 아웃렛으로 들어간 제품이었다. 아웃렛에서 직접 살 때보다 15% 정도 비싼 가격을 불렀다. 정품 로스 중에는 이런 재고가 꽤 많이 섞여 있다.

정품 로스 마켓에서 인기 있는 브랜드는 제일모직이 생산하는 구호, 르베이지, 빈폴, 아동복 빈폴키즈와 SK네트웍스의 오브제, 한섬(최근 현대쇼핑이 합병)의 타임·마인, LG패션의 모그, 그리고 손정완 디자이너의 손정완 등이다. 이들 브랜드의 공통점은 수입 원단을 쓰는 등 고급화해 내셔널 브랜드 중 최고가 라인이라는 점. 백화점 매출 순위 상위권을 경쟁하면서, 해외시장에서도 인기가 있어서 콧대 높은 백화점도 함부로 대하지 못하는 ‘내셔널 명품’이라는 점 등이다.

가격대도 해외 중급 명품보다 높다. 봄 정장 한 벌이 150만 원 안팎, 트렌치 코트류는 100만 원 이상, 모피는 1000만 원대를 넘는 것이 많고 가방은 소재에 따라 100만 원에서 300만 원을 상회하기도 한다. 그래서 정품 로스도 결코 싸지 않다. 원가 자체가 높고, 유통업자와 소매업자의 마진에 ‘위험부담금’까지 붙기 때문이다. 정품 로스가 대개 백화점 가격의 40~60% 정도에 팔리므로, 웬만한 내셔널 브랜드 정품보다도 비싸다.

예복이나 맞선용 정장으로 인기 있는 손정완 브랜드의 홍보담당자는 “아무리 예복이라도 보통 여성이 구매하기엔 가격이 높아서 로스를 사칭한 가짜가 인기가 있다. 가짜라도 ‘손정완’을 예복으로 샀다고 말하고 싶은 여성들이 있으니까”라고 말했다. 그는 정품 로스를 인정하기 어려운 듯했다. 그러나 로스 유통업자는 “손정완 정품 로스를 구할 수 있고, 혼수로 인기 있는 모피는 예약을 받을 정도”라고 말했다.

‘사입 삼촌’과 ‘나까마’

이처럼 수요가 있고, 공급이 있으니 로스를 유통하는 전문업자도 있다. 우선 브랜드 지정 하도급 공장과 동네 로스 판매점을 연결하는 ‘로스 도매상’들이 있다. 이 업계에서는 (소매 옷가게의) ‘사입 삼촌’ 또는 (하도급 공장의) ‘나까마’라고 부른다. 사입 삼촌들이 하도급 공장에서 나오는 정품 로스를 받아 동네에 있는 소매점에 넘기는 것이다. 하지만 정품 로스만 주는 사입 삼촌은 거의 없고, 대부분 ‘정카피’ ‘로스 카피’ ‘이미테이션’ 등으로 부르는 짝퉁과 이월 재고를 섞어서 공급한다. 인기 있는 정품 로스를 주는 조건으로 끼워 팔기를 하는 셈이다.

동네의 로스 소매점에서 한 명이 아니라 여러 사입 삼촌을 두다 보니, 삼촌들 간에 경쟁이 붙기도 한다. 짝퉁을 팔고 있다고 경찰에 신고하는 사람은 소비자가 아니라 이 사입 삼촌인 경우가 많다. 다른 ‘삼촌’을 들이는 것에 대한 보복이다.

출생의 비밀 간직한 명품의 쌍둥이 ‘로스’의 세계

로스를 파는 인터넷 사이트들. 브랜드명을 손정×, 구×로 가리거나 개인 판매자임을 강조한다. 단속에 대비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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