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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adership in Sports ⑭

아르센 벵거 아스날 감독

조직관리의 새 이정표 제시한 ‘아름다운 축구’의 창시자

  • 하정민│동아일보 경제부 기자 dew@donga.com

아르센 벵거 아스날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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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스날의 전성기를 열다

이방인 감독의 요상한 방식에 반신반의하던 선수들도 성적이 좋아지자 벵거의 말에 순응하기 시작했다. 벵거는 부임한 지 두 번째 해인 1997∼98년 시즌에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를 꺾고 프리미어리그 우승을 차지했다. 2003~04년 시즌에는 26승12무의 성적으로 무패 우승이라는 신화도 만들었다. 100년 전인 1888~89년 시즌 프레스턴 노스엔드가 18승4무로 무패 우승을 달성하긴 했지만 당시 축구계의 경쟁이 지금처럼 치열하지 않았다는 점, 아스날이 프레스턴 노스엔드보다 16경기나 더 치렀다는 점을 감안할 때 아스날의 무패 우승은 사실상 최초라고 봐도 무방하다. 저가의 유망주를 발굴해 슈퍼스타로 만든 후 부자 구단에 최고로 비싼 값에 파는 벵거의 능력도 최고조에 달했다. 벵거는 1997년 당시 17세에 불과하던 스트라이커 니콜라 아넬카를 파리 생제르맹에서 아스날로 데려왔다. 비용은 단돈 50만 파운드(약 10억 원). 하지만 불과 2년 후인 1999년 아넬카는 무려 2230만 파운드(446억 원)에 레알 마드리드로 이적했다. 당시 레알 마드리드가 선수 영입에 지불한 돈 중 최고 금액이었다. 2년 만에 45배의 투자 차익을 올린 셈이다. 마크 오베르마스와 에마뉘엘 프티를 800만 파운드(160억 원)에 영입해 FC 바르셀로나에 3200만 파운드(640억 원)에 이적시킨 사례도 있다. 전설적인 스트라이커 티에리 앙리도 빼놓을 수 없다. 앙리는 1999년 아스날에 왔다. 하지만 이전 소속팀인 이탈리아 유벤투스 FC에서는 벤치 선수로 지낼 때도 있었기에 “앙리가 과연 아스날에 얼마나 기여할까”우려의 시선을 보내는 사람도 존재했다. 하지만 앙리는 역대 아스날 선수 중 가장 많은 226골을 넣은 후 두둑한 이적료를 팀에 안겨주고 2007년 FC 바르셀로나로 떠났다. 2011년 8월 4000만 유로(약 616억 원)에 FC 바르셀로나로 떠난 미드필더 세스크 파브레가스도 마찬가지다. 벵거는 파브레가스가 불과 17세이던 2003년 그를 영입해 세계적인 선수로 키워냈다.

벵거는 자국 리그에서는 강하지만 국제전에서는 다소 약했던 아스날의 팀 컬러도 확 바꿔놓았다. 아스날은 2007~08년 시즌 챔피언스리그 8강에 올랐고 2008~09년 시즌에는 4강에 올랐다. 한 해 뒤에도 8강에 올랐다. 그 사이에 수많은 선수가 빠져나가고 새로 들어오기를 반복했지만 아스날은 여전히 강팀으로 군림하고 있다. 최근 몇 년간 우승컵을 들어 올리지 못했지만 벵거 부임 후 아스날은 프리미어리그 4위 밑으로 떨어진 적이 없다.

벵거 감독의 성공이 주는 경영 교훈

1)조직원의 건강관리는 리더의 최우선 과제다



“강한 놈이 오래가는 게 아니라 오래가는 놈이 강한 거다.” 류승완 감독의 영화 ‘짝패’에서 배우 이범수가 남긴 명대사다. 무한 경쟁 시대를 이보다 간결하고 명확하게 설명한 말이 있을까. 오래가기 위한 첫 번째 조건은 건강이다. 직원 건강관리는 조직의 형태와 업종을 불문하고 모든 리더의 첫 번째 책임이자 의무다. 핵심 인재를 뽑는 일도 중요하지만 기껏 뽑아놓은 핵심 인재가 질병이나 스트레스에 시달려 능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한다면 기업에 이보다 더 큰 손해는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선수 개개인의 몸이 조직의 핵심 자산인데다, 100년이 넘은 역사를 지닌 EPL에서 이 명제는 통하지 않았다. 벵거 이전에는 선수단 건강관리에 대해 체계적인 접근을 시도하는 지도자가 전무했다는 뜻이다. 축구 종주국이라는 전통에 엄청난 자부심을 가진 영국 축구계가 낯선 프랑스인의 변혁을 받아들인 것도 벵거가 이 점을 포착하고 개혁에 착수한 첫 번째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1990년대 후반 아스날의 주전 선수였던 토니 애덤스, 리 딕슨, 나이젤 윈터번 등 노장들은 벵거의 부임 이후 자신의 몸에 큰 변화가 나타났으며, 덕분에 선수 생활을 연장할 수 있었다고 칭송하고 있다. 프랑스 출신 이방인에게 적대적이었던 영국 감독들도 결국 그의 방식을 인정하기 시작해 이제 EPL 구단의 대부분은 지방 및 염분을 엄격히 제한한 식단을 내놓고 있다. 히딩크 감독도 한국 대표팀을 지도하던 시절 염분이 많다는 이유로 김치찌개와 고추장 등을 금지하려고 시도한 바 있다. 이런 추세는 비단 축구계에만 국한된 일이 아니다. 세계적 기업들은 직원의 건강관리를 위해 다양한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구글은 사내 음식점에서 건강에 유익한 정도에 따라 음식을 녹색, 노란색, 빨간색으로 분류해 판다. 유기농 식품 업체 홀푸드마켓은 비흡연자나 적정 수치의 혈압을 가진 직원이 매장에서 물건을 사면 할인 혜택을 준다. 인텔, 파파존스 피자 등도 직원이 살을 빼고 콜레스테롤 수치를 낮추면 인센티브를 주고, 다양한 운동관리 프로그램도 운영한다. 조직원의 건강이 곧 조직 경쟁력인 시대에 벵거의 성공 사례는 상당한 시사점을 준다.

2)역(逆)혁신의 중요성을 깨달아라

중국의 의료 인프라는 매우 열악하다. 국토가 워낙 넓고 서부 내륙과 동남부 중공업 지대의 생활 격차도 어마어마하다. 이 때문에 시골 주민의 대부분은 현대식 의료 시스템의 혜택을 받지 못한다. 미국 제너럴 일렉트릭(GE)은 2009년 이런 사람들을 대상으로 등에 가볍게 메고 다닐 수 있는 휴대용 심전도 기계를 개발했다. 심전도 측정을 위한 필수 기능만 탑재한 이 제품의 대당 가격은 단돈 500달러(약 55만 원)이다. 가벼워서 휴대하기도 좋다. 선진국 병원의 심전도 기계가 대당 1만 달러(1100만 원)가 넘는다는 점을 감안할 때 상당히 싼 편이다. GE가 개발도상국 소비자를 타깃으로 개발한 이 상품은 선진국에서도 날개 돋친 듯 팔리고 있다. 교통사고 현장에서 유용성이 입증됐기 때문이다. 병원과 달리 신속한 대응이 중요한 교통사고 현장에서 병원 내 심전도 기계처럼 복잡한 기능을 갖추고 무거운 기계는 소용이 없다. 이처럼 신흥시장 소비자를 공략하기 위해 제품을 개발하고, 이를 선진국 시장에서도 판매하는 경영 전략을 ‘역(逆)혁신(reverse innovation)’이라고 한다. ‘역’이라는 말이 붙은 이유는 과거 세계적인 기업들이 채택했던 성장 방식과는 정반대이기 때문이다. 즉 과거에는 선진국 시장의 부유한 소비자를 대상으로 값도 비싸고 질도 우수한 상품을 개발한 다음, 이를 개발도상국 현지 상황에 맞게 변형한 상품을 내놓았다면 이제는 개발도상국 시장에서 성공을 거둔 뒤 여기서 얻은 경험, 지식, 노하우를 토대로 선진국 시장에 진출하는 방법이 먹히고 있다는 뜻이다. 벵거는 세계 스포츠계에 역(逆)혁신의 중요성을 입증한 거의 유일무이한 지도자다. 한국과 일본이 각각 월드컵 4강과 16강에 진출하고, 박지성이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주전 선수로 활약하고, 유럽 축구계가 막대한 경제력과 인구를 지닌 아시아 시장의 가치를 주목하고 있지만 유럽 축구계가 보기에 여전히 아시아 축구는 변방에 불과하다. 21세기인 지금도 상황이 이러할진대 1990년대 중반에는 어땠을까. 당시 유럽 축구계 인사들이 보기에 유럽 구단의 축구 감독직을 포기하고 아시아 구단의 감독이 된다는 것은 미친 짓이었다. 언어와 문화가 모두 다른 낯선 땅에서 적응하는 일도 쉽지 않았다. 하지만 벵거는 이 모든 우려를 뒤로하고 일본으로 떠났다. 일본에서 그 어떤 축구 감독도 해내지 못한 일, 즉 절제된 일본식 생활습관과 자신의 축구 철학을 접목시키는 전략을 만들어냈다. 일본에서의 성공을 바탕으로 선진국 시장인 프리미어리그에 진출했고 일본식 성공 방식이 프리미어리그에서도 통한다는 점을 보여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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