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6월호

재미 만끽하고 실력도 업그레이드

갤러리로 경기 참여하기

  • 정연진│골프라이터 jyj1756@hanmail.net

    입력2012-05-22 09:2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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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골프대회에서 선수가 꽃이라면, 갤러리는 자양분이다. 대회의 수준을 가늠하는 척도 중 하나는 갤러리 문화다. 갤러리의 수준에 따라 선수들의 실력이 좌우된다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역으로 갤러리들은 대회를 참관하면서 많은 것을 배운다. 골프의 색다른 묘미를 현장에서 느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선수들의 모습에서 실력 향상을 꾀할 수 있다.
    재미 만끽하고 실력도 업그레이드
    지난해 발렌타인챔피언십에서 황당한 일이 벌어졌다. 3라운드 선두를 달리던 호주의 브랫 램퍼트가 회심의 티샷을 날렸다. 볼은 선수의 기대와는 달리 카트 길로 굴러갔다. 이때 한 갤러리가 볼을 발로 막아버렸다. 그린 쪽으로 향하던 볼은 속도가 눈에 띄게 줄었다. 오히려 낮은 언덕을 넘지 못하고 티잉그라운드 방향으로 되돌아왔다. 브랫은 적어도 수십 미터의 거리 손실을 봤다. 방송을 중계하던 아나운서와 해설위원은 안타까운 탄식을 쏟아냈다. 발렌타인챔피언십은 국내 유일의 유러피언 투어이기에, 이 장면은 고스란히 전 세계로 전해졌다.

    어처구니없는 사건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티샷을 준비하는 선수에게 다가가 사인을 요구하는 갤러리도 있었다. 아예 티잉그라운드에 올라가 돗자리를 깔고 간식을 먹는 가족도 있었다. 휴대전화 벨소리가 울리고, 사진 촬영을 하는 모습은 애교에 가까웠다. 보다 못한 캐디들이 연신 “No Camera”를 외쳤다. 지난해 발렌타인챔피언십 우승자인 리 웨스트우드는 “앞으로는 더 나아질 것”이라며 에둘러 비판했다.

    수준 높은 경기를 보기 위한 배려

    국내 갤러리 문화도 꽤 성숙해졌다. 스타만 보러 가는 것이 아니라 대회 자체를 즐긴다. 최근 가족 단위 갤러리가 부쩍 증가한 사실이 이를 입증한다. 유러피언 투어나 LPGA와 같은 굵직한 대회가 열리면서 더욱 그렇다. 하지만 눈살을 찌푸리게 만드는 장면이 완전히 없어지진 않았다. 갤러리 에티켓을 모르는 사람이 의외로 많다. 그 나라의 골프 수준은 갤러리 에티켓과 직결된다.

    ‘꿈의 무대’라는 마스터스는 휴대전화, 카메라 등 전자 장비를 갖고 들어갈 수 없는 것으로 유명하다. 선수들이 최고의 기량을 발휘할 수 있도록 분위기를 조성하기 위해서다. 수만 명이 운집하지만 선수들이 샷을 할 때는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는다. 최고 스타들의 수준 높은 경기력을 놓치지 않으려는 배려다. 그래서 마스터스에 참가하는 선수들이나 갤러리들 모두 ‘가문의 영광’이라고 입을 모은다.



    최경주는 선진적인 갤러리 문화를 만들고 싶어한다. 지난해 자신의 이름을 내건 ‘최경주 CJ인비테이셔널’에서 휴대전화 반입 자제를 요청하고 보관함을 설치했다. 덕분에 대회는 큰 잡음 없이 무사히 치러졌다. 갤러리들의 반응도 호의적이었다. 선수들의 플레이를 한 단계 향상시키는 데 갤러리들이 한몫했다. 최경주는 후배들에게 “갤러리들의 소란도 경기의 일부분”이라는 조언을 잊지 않았다.

    갤러리들도 할 말이 없는 것은 아니다. 숨소리조차 내지 않을 수는 없는 것 아니냐는 항변이다. 특히 주최 측의 강압적인 대회 운영에 볼멘소리를 하는 갤러리가 적지 않다. 즐기러 왔다가 스트레스를 받고 간다는 얘기다. 여기에는 대회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갤러리를 홀대한다는 불만이 섞여 있다.

    골프대회는 상업적일 수밖에 없다. 스폰서는 자사의 이름을 대회명에 쓰는 대신 상금을 내건다. 대회장 곳곳에는 광고판이 설치돼 있다. 선수가 착용한 모자나 옷, 캐디백 역시 최고의 홍보수단이나 다름없다. 갤러리들은 입장권을 구매한다. 그 밑바탕에는 돈이 연결고리 역할을 한다. 만약 갤러리가 없다면? 대회의 존재 가치가 떨어진다. 방송사는 중계를 꺼리게 된다. 선수를 후원하는 스폰서는 주판알을 다시 튕길 수밖에 없다. 따라서 갤러리는 대회를 떠받치는 든든한 버팀목이다.

    최경주의 뒤땅과 존 댈리의 부상

    마스터스의 성공요인은 여러 가지다. 그중 갤러리들의 헌신을 빼놓을 수 없다. 마스터스의 갤러리는 ‘후원자’라는 뜻의 패트런(Patron)으로 불린다. 4만 명 정도의 패트런은 평생 관람이 보장된다. 패트런은 스스로 최고의 갤러리란 자부심을 갖고 있다. 대회를 마음껏 즐기되 선수들의 플레이에 지장을 주지 않는 철칙을 지킨다. 대신 선수들에게 최고의 플레이를 요구(?)한다. 마스터스에서 예술에 가까운 샷을 자주 볼 수 있는 요인이다.

    갤러리로 골프대회를 찾는 이유는 다양하다. 자신이 좋아하는 스타를 보거나 선수의 실력을 내 것으로 만들려는 의도로 대별된다. 최근에는 나들이 삼아 골프장을 찾는 사람이 늘어났다. 목적이야 어떻든 갤러리에게는 에티켓이 요구된다. 갤러리 에티켓의 시작과 끝은 선수들의 스윙을 방해하지 않는 것이다. 최경주는 갤러리의 휴대전화 카메라 소리에 뒤땅을 친 적이 있다. 천하의 최경주도 소리가 난 곳을 한참 쳐다보며 불쾌한 심정을 간접 표현했다. 심지어 부상을 당하는 경우가 있다. 존 댈리는 갤러리의 잘못된 행동으로 인해 부상해 대회를 포기해야만 했다.

    선수들은 작은 소리나 움직임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선수가 샷을 마치기 전까지 카메라 소리를 내거나 움직이는 것은 절대 금물이다. 휴대전화는 진동으로 설정하거나, 아예 꺼놓는 게 좋다. 갤러리는 어떤 경우라도 그린을 밟아서는 안 된다. 작은 오차가 전혀 예상치 못한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국내 대회에서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 것 중 하나가 홀 간 이동에 관한 문제다. 자신이 응원하는 선수의 샷이 끝났다고 움직이면, 다음 선수의 스윙에 나쁜 영향을 미친다. 간혹 구두를 신고 오는 갤러리가 있다. 구둣발 소리는 선수들의 신경을 건드릴 뿐만 아니라 잔디 손상 등을 가져올 수 있다.

    별로 어렵지 않고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이 갤러리 에티켓이다. 내가 지키면 마음이 즐거워진다. 모두가 지키면 대회 수준이 올라간다. 선수들은 평소보다 더 뛰어난 실력으로 보답한다. 갤러리 에티켓은 골프 에티켓과 연관성이 깊다. 골프 에티켓을 잘 지키면 골프가 더욱 흥미로워진다. 더불어 실력 향상까지 덤으로 얻을 수 있다. 인터넷에는 갤러리 에티켓에 대한 많은 정보가 올라와 있다. 사전에 정보를 알고 가는 게 골프의 흥미를 배가시킨다.

    선수들은 골퍼들에게 살아 있는 교과서

    김대현의 호쾌한 장타와 김경태의 수준급 운영능력, 그리고 김하늘의 상큼한 미소와 김혜윤의 감각적인 퍼팅…. 골프대회에 가면 이 모든 것을 몇 미터 앞에서 볼 수 있다. 녹색 그라운드에서 펼쳐지는 선수들의 아름다운 스윙은 자연과 닮아 있다. 꼭 골프대회가 아니더라도 일상의 찌든 때를 벗겨내기에 부족함이 없다.

    선수들의 모습은 골퍼들에게 살아 있는 교과서나 마찬가지다. 선수들의 행동 하나하나는 곧바로 실전에서 활용이 가능하다. 방송으로 보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현장감을 얻을 수 있다. 정확한 공략으로 타수를 줄이는 방법과 위기상황에서의 리커버리샷 구사 등을 눈으로 배울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쇼트게임의 중요성을 일깨우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비싼 입장료를 내고 갤러리가 된 만큼 ‘본전’ 이상은 뽑아야 한다. 그러자면 계획적인 관람이 필수다. 대개 입장권과 함께 코스 레이아웃과 선수들의 조 편성 자료를 받게 된다. 코스 전체의 관전 전략을 잘 세워 선수들의 다양한 코스 공략법을 관찰하는 것이 좋다. 자신이 좋아하는 선수의 동선을 미리 파악해야 더 많은 플레이를 볼 수 있다. 관전하는 장소에 따라 선수들의 샷은 달리 보일 수 있다. 티샷과 세컨드샷, 쇼트게임 등의 샷 장소를 미리 잡으면 선수들의 공략법을 내 것으로 만들 수 있다.

    골프대회 관람의 가장 큰 장점은 연습방법과 실전활용법을 제시해준다는 사실이다. 수능을 앞둔 학생이 마음을 다잡기 위해 대학 캠퍼스를 가보는 것과 동일하다. 골프대회를 다녀온 후 마음가짐이 달라지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갤러리로 골프대회에 참여하는 것은 골프의 색다른 맛을 느끼는 또 하나의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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